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66)
65화에계속 –
65화 기상
레지아 계곡에서 서쪽에 위치한 숲 속.
여섯 대의 마차 행렬이 가도를 피하여 정돈되지 않은 거친 길목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곳곳에 박혀 있는 돌부리와 길게 뻗어난 가지들 때문에 혹여 마차가 망가지지나 않을까 걱정한 가렛이었으나, 용병단이 쓰던 운용하던 것이라 그런지 마차는 끄떡도 없었다.
한참을 마부석에 앉아 있던 가렛은 자신이 몰던 마차의 운전을 부하에게 잠시 맡긴 뒤 짐칸으로 이동했다.
“좀 괜찮나?”
가렛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고 있던 엘레나가 짧은 숨을 들이쉬며 퍼뜩 일어났다.
머리카락은 윤기를 잃어 푸석푸석해지고, 눈가에는 다크 서클이 끼어있는 그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측은함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깨어나자마자 신경 쓰는 것은 자신의 몸 상태 따위가 아니었다.
“네.”
엘레나가 다시 손을 뻗자, 끝에서 발산된 마력이 누워있던 스테치의 신체를 에워쌌다.
그가 정신을 잃은지도 오늘로 8일째.
그 사이 밥은 커녕 물 한 방울조차 섭취할 수 없었지만, 정작 스테치는 멀쩡하게 생명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도리어 잠든 그의 모습은 편안해 보이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스테치의 상태와는 달리, 그를 옆에서 지켜보는 가렛의 속은 걱정으로 타들어 갈 지경이었다.
‘브라이언, 이 멍청한 놈아…… 빨리 좀 일어나라고.’
세레나(엘레나)는 분명히 그가 나아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까지도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브라이언(스테치) 때문에 거의 기절하기 일보 직전인 데다, 이제 목적지까지 고작 하루 남짓한 거리를 남겨두고 있었다.
한꺼번에 겹친 악재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던 가렛은, 한숨을 내쉬며 수통의 물을 들이켰다.
“보스! 숲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엉?”
가렛이 그 말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서서 마차 옆에 늘어선 숲 쪽을 바라보았다.
바퀴 소리에 묻혀 눈치채는 것이 늦었지만, 분명히 숲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점점 커져 가는 소리에 가렛이 이상을 감지하고는 망토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순간, 굉음과 함께 나뭇가지를 헤치고 거대한 마차 한 대가 행렬 한가운데로 난입했다.
쾅!
“조심해!”
뒤늦게 가렛이 외쳤으나, 그것을 제대로 들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바퀴 축과 외벽에 철판을 둘러 보강한 이 불청객은, 다짜고짜 가렛의 부하가 몰던 마차 한대를 옆으로 밀어붙이며 억지로 끼어 들어왔다. 강철 마차를 끌고 있는 말은 놀랍게도 희미한 푸른 불꽃으로 휩싸여 있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그 생김새가 마치 유령마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흉흉했다.
“무기를 들어라!”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누가 봐도 우호적이진 않은 그 모습에 가렛이 명령을 내리자, 마차에 타고 있던 부하들이 전부 무기를 들고 일어섰다. 그러나 지저분한 백병전이 벌어질 거라는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강철 마차는 빠르게 선두로 치고 나와 가렛이 타고 있던 마차로 곧장 따라붙었다.
“어?!”
“보, 보스가 위험하다!”
일부러 가도를 피해서 인적이 없는 길을 택한지라, 적습이 있을 거라곤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다.
때문에 가렛의 마차에는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탑승자의 수가 가장 적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독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어차피 숨을 것도 없겠다. 가렛이 망토 안에 번뜩이는 단검을 만지작거리고선 가만히 강철 마차를 노려보고 있으니, 마차의 옆면이 덜컥 열리더니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맞아, 저 녀석! 혹시나 해서 와봤더니 빙고네. 생각보다 거물이 걸려들었잖아?”
“전단지에 생긴것보단 훨씬 반반하게 생겼잖아?”
체격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남성과 여성의 이인조가 가렛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중 덩치가 크고 근육질인 쪽인 여성은 어깨에 거대한 도끼를 걸치고 있었다.
말하는 내용으로 보아하니 이 녀석들도 가로드 용병단과 같이 가렛을 쫓는 추격자들 중 하나임이 틀림없었다.
“날 노리고 온건가?”
가렛이 냉기가 풀풀 묻어나는 목소리로 묻자, 여성이 말했다.
“뭐, 사실은 네가 아니라 실종된 가로드 용병단을 찾으러 온건데…”
“그렇게나 유명한 용병단이 그냥 사라졌을 리가 없잖아.”
“……그러시겠지.”
가렛은 입술 끝을 삐죽였다. 그가 구축한 도적단의 네트워크는 생각 이상으로 거대하고도 촘촘했다.
정보를 캐내려면 상식적으로 죽이는 것보단 생포하는 편이 이득일 터.
만약 가렛이 죽어도 상관없었다면 저들은 진작에 마차부터 박살 냈으리라.
‘그나저나 이놈들은 대체 무슨 수로 이동중인 내 위치를 포착한거지?’
레지아 계곡에서 벗어나 일부러 눈에 띄지 않는 루트로 들어왔는데도 찾아온 점이나, 처음부터 그가 타고 있는 마차를 정확히 노리고 온 것을 생각해보면 녀석들은 모종의 뛰어난 추적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듯했다.
“잡아! 다른 놈들은 죽여도 좋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마차의 크기가 크지 않은 관계로, 올라 탈 수 있는 숫자가 한정된다는 점이었다.
강철 마차에 타고 있던 적들이 가렛이 있는 쪽으로 하나둘 넘어가기 시작하자, 마음이 다급해진 가렛의 몇몇 부하들이 후열의 마차들로부터 몸을 날려 옮겨 타기를 시도했다.
“허튼 짓 하기는!”
촤악!
강철 마차에 탄 남자가 손을 휘젓자 유령마처럼 몸에 푸른 불꽃을 두른 매 한 마리가 허공에서 나타나더니, 때마침 뛰어오른 가렛의 부하 하나를 순식간에 양분했다.
순식간에 시체가 된 부하가 바닥을 구르며 뒤편으로 사라져갔다. 저 능력은 뭐지? 가렛은 다급하게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마차를 뒤로 빼! 가까이 오면 너희가 당한다!”
여자는 가렛의 말에 비아냥거렸다.
“착하기도 해라.”
여차하면 부하들의 마차 전체가 인질처럼 쓰일 우려가 있었다.
보스의 말을 들은 다른 마차들은 속도를 줄여 가렛이 탄 마차와의 거리를 점차 벌려 나갔다.
남자는 또다시 매를 소환해 가렛의 목을 노렸지만, 타른카페를 사용하여 간단히 피해 보이는 모습에 혀를 찼다.
“역시 패밀리어 둘을 동시에 다루는 건 힘든 것 같군. 타샤, 가렛은 너한테 맡긴다!”
‘과연. 날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 때문인가.’
상대가 동물의 혼령을 사역마(패밀리어)로 부리는 마법사라면 추적 능력과 활동 시간이 일반인에 비해 월등히 뛰어날 테니, 가렛이 포착된 것도 설명이 된다.
아마도 녀석들은 가로드 용병단의 족적을 쫓아 레지아 계곡으로 오는 과정에서, 마차를 끌고 이동하는 자신들을 발견한 것이 틀림없었다.
타샤라 불린 여성은 미소를 지었고, 가렛의 마차에 올라탄 총 여섯의 졸개들은 저마다 무기를 든 채 엘레나와 스테치의 앞에 서 있는 가렛에게로 다가갔다.
물론 그것을 순순히 용인할 그가 아니었다.
휘익!
휘둘러진 망토 끝단이 제일 가까이 접근한 졸개의 눈을 후리고 지나갔다.
두 개의 눈알을 가로지르는 자상으로부터 울컥울컥 핏방울이 배어나오자, 상대는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엎어졌다.
“으아아아아악!!”
가렛은 망토 끝자락에 걸린 단검들을 흔들어 피를 털어낸 후, 몸을 그대로 한 바퀴 돌리며 다시 망토를 휘둘렀다.
두 번째로 단검이 베고 지나간 것은 옆에 서 있던 다른 졸개의 목덜미. 깨끗한 캔버스 위로 그어진 한 줄기 선처럼, 잠시 후 졸개의 목덜미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커흑. 크르르륵.”
털썩.
그 모습에 무심코 뒷걸음질 치는 나머지 녀석들.
가렛은 그런 그들을 향해 깨끗한 단검들을 뽑아 슬며시 내밀어 보였다. 이 모든 것은 최대한 잔혹하게 상대를 제압하여 다른 적들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가하기 위한 그의 퍼포먼스였다.
“하, 한꺼번에 덮치자!”
“그래서 누가 먼저 공격할 건데?”
확실히 첫 두 명을 쓰러뜨리자, 남은 졸개들은 선뜻 먼저 나서질 못하고 있었고, 가렛은 그런 그들에게 윽박질렀다.
“감히 날 상대로 ‘생포’라고? 해볼 테면 해봐라, 건방진 새끼들아!”
그러자, 달리는 마차 위에서 그의 말을 듣고 있던 거구의 여성은 부하들에게 다시 지시했다.
“어이, 멍청이들. 대가리가 있으면 놈을 노리지 말고 그 뒤의 여자를 노려라. 딱 봐도 그쪽을 지키려고 가로막은 거 안 보이냐?”
‘빌어먹을 년.’
가렛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가 이렇게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이유는, 적들이 무방비 상태인 세레나(엘레나)와 브라이언(스테치)을 놔두고 오롯이 자신에게 공격이 집중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적들의 리더인 여성은 그런 간단한 꾀에 넘어가기엔 제법 눈치가 있어 보였다.
한편, 뒤에서 스테치에게 계속 마력을 주입하던 엘레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지금의 그녀는 잠시라도 한눈을 팔 수가 없는 데다, 힘은 진작에 다 빠져 도저히 싸울 수가 없는 상태. 고로 이 마차에서 전투가 가능한 사람은 가렛 밖에 없었다.
“우와아아!”
일제히 엘레나와 스테치에게로 육박하는 졸개들. 그러자 가장 앞에서 선두로 달려오던 졸개의 안면에 가렛의 주먹이 꽂혔다.
빠악!
뭉개진 얼굴을 그대로 찍어내려 마차 바닥으로 쓰러뜨리는 가렛.
그대로 반대쪽 손에 든 단검을 던지자, 예리한 날이 가죽갑옷을 관통하고 적의 흉판 깊숙이 박혔다. 그러나 일단 빈틈이 생기자, 기세등등해진 적들은 더욱 거세게 덤벼들었다.
“저리 꺼져!”
가렛은 두 개의 단검을 새로 뽑은 뒤, 타른카페를 발동시켰다.
망토 위에 수놓아진 별자리들이 밝게 빛나는 순간, 모습을 감춘 가렛이 몰려드는 적들의 틈새로 파고들었다.
보이지 않으면 막을 수도 없는 법.
쥐고 있던 검으로 가드를 올려보지만, 가렛의 단검은 이미 그 너머에 있는 상대의 목을 베고 있었다.
뒤이어 나선 적이 레이피어같이 기다란 검을 찔러넣자, 가렛은 그것을 겨드랑이 사이로 통과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은 뒤 단검을 수차례 목으로 쑤셔 넣었다.
그 틈을 타 엘레나에게 돌진하는 녀석을 가렛이 발을 걸어 넘어뜨리자, 엘레나는 단검을 뽑아 바닥에 드러누운 적의 뒤통수를 찍어버렸다.
“……잘했어, 아가씨.”
가렛이 남은 적의 머리통에 단검을 던져 쓰러뜨린 뒤 말했다.
“두 사람 다 곱상해선 하는 짓은 전혀 귀엽지 않군.”
중얼거린 여자는 훌쩍 뛰어올라 가렛이 탄 마차로 올라탔다.
그녀에게 있어 가렛이 그만한 수의 부하들을 모두 제압해낸 것은 상정외였던 모양인지, 말투는 담담했어도 제법 놀란 눈치였다.
엘레나는 여성이 가까이 다가오자 한층 더 강하게 마력을 스테치에게로 불어넣었다.
한계까지 몰아붙인 그녀의 몸은 이미 엉망진창이었고, 그 탓인지 그녀의 입가에서는 한 줄기 붉은 선혈이 턱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가씨!”
당황한 가렛이 붙잡고 있던 적의 시체를 바닥에 툭 내려놓고선 무심코 여성을 돌아보자, 그녀는 어느 틈엔가 자기 몸집만 한 거대한 도끼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금속 날의 반사광에 눈살을 찌푸린 가렛은, 뒤늦게 여성이 하려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아챘다.
“한 가지 잊어먹었나 본데, 우린 그냥 네 모가지만 들고 가도 된다 이 말씀이야!”
“……읏-?!”
휙!
거대한 도끼가 가렛, 아니 정확히는 그 뒤에 있는 엘레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막아서면 가렛이 죽고, 피하면 엘레나나 스테치중 하나는 반드시 죽는다. 그야말로 꼼짝없는 외통수. 게다가 타른카페를 세 사람 모두에게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이므로, 피할 수도 없었다.
‘젠장!’
찰나의 순간속에서 가렛은 한바탕 욕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의미 없는 행동인줄 스스로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렛이 날아드는 도끼를 향해 몸을 날리려던 순간, 그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어 불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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