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69)
68화에계속 –
68화 불신
작전 시작 후 정확히 30분.
마차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단 한 사람도 남김없이 괴멸했다.
가렛의 부하들은 시체들을 모두 모은 뒤 소각하거나 매장하여 흔적을 지웠고, 무기와 갑옷들은 수거하여 다른 보급품들과 함께 마차에 실었다.
“이 개새끼들아! 네놈들은 백성도 뭣도 아니야! 더러운 도적떼! 천한 것들!”
생포해둔 한 병사의 입에서 의적단들을 향한 저주의 말이 흘러나오자, 그것을 들은 가렛은 코웃음을 치며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어차피 원하는 대답을 들려줄 것 같지도 않으니, 더 이상 살려둘 가치도 없었다.
써컥!
심장이 서늘하게 만드는 절삭음과 동시에 떠들어대던 병사의 머리통이 바닥을 굴렀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멍청이들 같으니.’
마차들을 몽땅 빼돌려도 북부 전선이 붕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가렛은 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었다.
베네지아 왕가에는 이미 지난 수 세기 동안 다른 남부 연합국과 국민들의 피를 쥐어짜 축적한 부로 배를 불려놓은 지 오래.
북부 전선의 보급을 끊을 수 없는 왕가는 분명히 이번 일로 생긴 손실을 메우기 위해 비자금을 풀어놓을테고, 이는 주변국들과 백성들의 수탈을 일삼으며 내세우던 그들의 ‘전선 유지’명분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킬 터.
때문에 가렛에게 이번 작전은 왕가의 비리를 간접적으로 폭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디 국민들의 것이었던 부를 되돌려줄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신들이 정의로운 것 마냥 행동하는 병사와 기사들의 모습은 가렛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가렛은 나머지 마차들의 출발을 지시한 뒤 곧장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무언가를 찾아 주위를 살피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웅크리고 바닥에 주저앉은 스테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웨에엑!”
세상이 빙빙 도는 듯한 감각에 비틀거리다 뱃속의 것을 게워내는 스테치. 위액마저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토해대던 그는, 가렛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더니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시져는 강력한 어빌리티였으나, 사용 시간에 비례한 리스크가 큰 탓에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이번에는 시전 후 10분 안으로 상황 정리가 끝난 덕분에 그나마 이 정도지만, 10분을 넘기면 어떻게 될지…… 스테치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냐?”
“…물론이지. 이딴 건 아무것도 아냐.”
가렛이 건네주는 수통을 낚아챈 스테치는 물을 머금고 입안을 헹궜다. 목구멍이 따끔거리는 것이 꽤나 기분 나빴다.
“이걸로 쫑인가?”
“그래. 너도 나도 목적을 달성했으니까. 네가 이제 와서 나랑 동업할 생각이라도 든 건 아닐테고?”
가렛의 질문에 스테치는 고개를 저었고,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우린 여기서 일단 작별이군. 나는 이대로 레지아 계곡으로 돌아가겠어. 네 덕분에 시간을 꽤 많이 까먹어서 이쪽은 조금 서둘러야 하거든.”
“이제 어떻게 할거야?”
“보급품 마차들을 도움이 필요한 마을이나 지역으로 파견 보낼 거야. 이 왕국에는 스스로의 동네도 제대로 지키지 못할 정도로 빈약하거나,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 가야 할 길이 머니까 되도록이면 빨리 움직여야지.”
장난스러웠지만 뼈를 찌르는 말투에 스테치는 입을 꾹 다물었고, 가렛은 그런 그를 데리고 나와 마차가 늘어선 행렬로 되돌아왔다.
아직도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마차들이 수두룩 했는데, 가렛은 그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부하한테 너희들을 태워주라고 시켜두었어. 왕국내라면 원하는 곳 어디로든 옮겨다 줄 수 있을 거야.”
스테치가 시선을 옮기자, 마차 위에는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는 엘레나가 있었다.
그녀도 지금 당장 스스로 몸을 움직이기는 힘들었으니, 스테치는 가렛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어디로 갈거야?”
“…… 이번에 갈 장소는…….”
* * *
“형님은 또 외출하셨습니까?”
널찍한 방 한가운데에서, 테이블 위에 다리를 꼬아 올려놓은 채 술잔을 기울이던 랍토레스의 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를 소파 뒤로 재껴 보니, 위 아래가 뒤집힌 알프레드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형을 쳐다보는 그의 시선에서는 한심함까지 느껴졌으나, 랍토레스가 그것을 눈치채는 일은 없었다.
“오오, 우리 아우! 너도 일은 좀 쉬고 이리 와서 한 잔 하는게 어떻겠냐?”
랍토레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성큼성큼 다가가 알프레드의 어깨를 잡고 끌었다.
알프레드의 몸짓에서는 싫은 기색이 팍팍 뿜어져 나왔지만, 문득 테이블 위에 놓인 병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알프레드와 어깨동무를 한 랍토레스는 싱글벙글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알스웨일 95년. 향이 정말 고급스럽지?”
알스웨일. 이명은 무려 ‘술에 젖은 땅(a land soaked with wine)’.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알프레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형의 맞은 편에 착석하여 포도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랍토레스가 바보에 방탕하긴 해도, 취향이 고급스럽다는 점에는 이견을 낼 수가 없었다. 거기에 홀린 자기 자신에게 자조하던 알프레드는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러려고 온게 아니라…… 그래서 얼마나 모으셨습니까?”
“세 개 정도? 이번엔 그다지 수확이 없었어.”
랍토레스는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방 한 켠에 놓인 캐비닛으로 걸어갔다.
덮개를 열자 그곳에는 트로피 마냥 검과 헬멧, 장신구나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보기엔 단순한 장식물이었으나, 두 사람중 어느누구도 그것들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하나는 예뻐서 남겨두었고, 나머지 둘은 싹수가 괜찮아 보이는 친위대 녀석들한테 적당히 나눠주었지.”
랍토레스의 말에 알프레드는 얼굴을 짝 소리가 나도록 손바닥으로 덮었다.
“형님…귀중한 아티팩트를 함부로 여기저기에 뿌리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왕가의 사람들도 권력 투쟁이 심화될까 두려워 소유 개수에 자체적으로 한도를 두는 판국인데, 형님이 앞장서서 그 의도를 흐려놓으시면 어떡합니까?”
“걱정도 팔자시네. 정말 실용성 있는 녀석들은 여기 보관 중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아라.”
알프레드는 볼을 부풀리며 항변하는 랍토레스의 모습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랍토레스는 옛날부터이랬다. 일국의 차기 왕으로서 갖춰야 할 근면 성실함은 어딘가에 팔아먹었지만, 그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주변인들을 아군으로 만드는 타입이었다.
“어때, 너도 하나 가질테냐?”
랍토레스가 씩 웃으며 선반에서 검 하나를 꺼내 내밀자, 알프레드는 고개를 저으며 품 안에 넣어둔 금색의 로드 하나를 꺼내 들었다.
“가질 수도 없고, 필요도 없습니다. 전 이거 하나만으로도 제 앞가림하기엔 충분하니까요.”
“재미없는 녀석.”
캐비닛을 닫은 랍토레스는 자리로 돌아와 다시 느긋하게 술을 마셨다.
알프레드가 포도주를 입에 머금고 살짝 돌리자, 진한 포도향이 숨결 가득히 묻어나왔다. 두 사람 모두 말없이 포도주를 즐기던 것도 잠시, 랍토레스는 알프레드에게 물었다.
“그래, 뭔가 재미있는 소식은 없었어? 우리 막내님은 뭐하고 계시던가?”
“별로…문제 일으키는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소리소문없이 왔다가 조용히 전선으로 복귀했죠.”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제라드의 이야기에 알프레드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랍토레스는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이며 되물었다.
“진짜로 아무 일도 없었어?”
그 순간, 알프레드를 쳐다보는 랍토레스의 눈에서는 장난기가 싹 사라졌다. 아까전과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기가 힘들 정도의 변화에 알프레드의 몸이 긴장감으로 뻣뻣하게 굳었다.
이 표정.
이 태도.
가끔씩 누군가가 제라드를 입에 담을 때마다 보이는 비정상적인 경계심은 알프레드로서도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알프레드는 태연하게 포도주를 들이키며 대꾸했다.
“네.”
“정말? 이드릴 말은 다르던데?”
그 여우가.
랍토레스는 목구멍 바깥까지 튀어나오려던 욕을 간신히 도로 삼키고 미소를 지었다.
평소 알게 모르게 제라드의 편의를 봐주었던 것이 쌓여서 눈에 띈 것일까?
알프레드의 말이 영 미심쩍은 듯 랍토레스는 미간 사이를 좁히며 그의 안면 이곳저곳을 살폈다.
“……흐음.”
이내 의심을 지우고 평소의 그로 돌아온 랍토레스는 남은 술을 전부 마셔버렸다.
베네지아의 삼왕자.
세 사람 모두 공식 석상에서는 우애가 돈독한 형제로 알려져 있으나, 뒤에서는 서로간의 치열한 알력 다툼 탓에 피비린내가 풍길 지경이었다.
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랍토레스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왕위 계승권 1위라는 지위는 무시할 수 없는 데다가, 이드릴 헨리에타와 마르크 맥도웰이라는 걸출한 인재들까지 심복으로 손에 넣었다. 그런 그에게 나머지 두 형제는 경쟁자라기보단 부하에 가까웠다.
그래서 랍토레스는 알프레드와 제라드가 자기 밑으로 들어오길 기대했으나, 두 사람은 누군가에게 순순히 고개를 숙이기에는 자존감이 너무나도 강했다.
우직한 셋째인 제라드는 대놓고 랍토레스를 거부하는 길을 택했다.
그 탓에 첫째의 미움을 단단히 산데다 태생부터가 왕위 계승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인물인 탓에, 왕실에서 설 곳이 없어진 그는 어린 나이일 적부터 악명높은 북부 전선으로 쫓겨나듯 출전했다.
그러나 덕분에 그는 오히려 천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자신만의 든든한 심복과 나라의 기둥과도 같은 베테랑 장군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머리 좋은 알프레드는 랍토레스를 돕는 ‘척’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셋째에 비하면 비교적 안전한 환경 아래, 왕국의 모든 재정을 책임지는 인재이자 차기 왕인 첫째를 위한 조언가로서 그 능력과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비록 그 자신이 랍토레스를 위해 헌신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음에도 말이다.
“혹시나 해서 묻는건데 말이야.”
랍토레스가 잔을 살짝 흔들어 내용물을 휘저었다.
“뒤에서 이상한 짓거리 하고 다니는건 아니겠지, 우리 아우님?”
“하하…… 설마요.”
답지 않게 날카로운 질문에 알프레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비록 알프레드와 제라드가 경쟁 관계이긴 하나, 왕위 계승이 공통된 목적인 이상 최우선 목표는 랍토레스를 먼저 몰아내는 것. 동맹을 맺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엔 제가 와인을 따도록 하죠.”
알프레드는 손을 흔들며 방문을 나섰다. 그러나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랍토레스는 끝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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