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71)
70화에계속 –
70화 카일덴트 (2)
《액티브 스킬 : 오토매틱 리플렉스(lv 1 -> lv 2). 낮은 확률로 적이 가해오는 공격의 순간, 반사 신경이 ‘대폭’ 상승합니다. 숙련도가 높을수록 스킬의 발동 확률 및 스텟 상승률이 증가합니다.》
스테치는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를 겪어오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바로 기습이 들어올 수 있는 방향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 《오토매틱 리플렉스》의 보조를 잘만 이용한다면 공격자의 위치를 추측하고 방어하는 것쯤은 생각 외로 어렵지 않았다.
“뼈 하나 분질러놓기 전에 대답하는 게 좋을 거다. 누구냐?”
상대는 스테치의 물음에 대꾸할 정도로 어리숙하지는 않았다.
첫 화살을 막아 낸 순간부터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걸 느낀 습격자는, 기습이 실패하자 허겁지겁 저격 포인트에서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야!”
스테치는 뒤로 돌아서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에어 불렛》을 발사했다.
바람의 탄환이 나무 하나를 통째로 뒤흔들어놓자, 그 위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땅으로 떨어졌다.
“윽!”
젊은 남성의 고통에 찬 신음이 들려왔다.
쏟아지는 나뭇잎을 그대로 머리 위에 뒤집어쓰며 일어서던 그의 목덜미에는, 어느새 차가운 금속제 칼날이 이빨을 드리우고 있었다.
“어딜 감히…… 음?”
검 끝을 까딱여서 고개를 들어 올리게 만들자, 젊은 청년의 얼굴이 메멘토 모템의 빛을 받아 드러났다. 그러나 정작 스테치의 시선은 다른 어디도 아닌 그의 뾰족한 귀로 향해 있었다.
“……엘프?”
청년은 상대가 자기 목에 검을 들이밀은 것조차 까먹고선 재빨리 뒤로 몸을 뺐다.
스테치를 일격에 처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는지, 그의 얼굴은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이, 인간! 대체 어떻게…….]”
“하아아…….”
스테치가 늘어지게 한숨을 쉬는 모습에 청년은 꺼내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
인간이 엘프를 볼 때마다 으레 보여주던 반응인 ‘혐오스런 시선’은 온데간데없었다.
청년이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스테치가 먼저 말을 걸었다.
“이봐, 일단 일어서.”
대체 이 인간은 뭐지? 이해할 수 없는 상대의 행동에 멍하니 주저앉아 있던 청년은, 얼떨결에 내밀어진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눈앞에 있는 남자는 전혀 공격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날 쏴 죽이려던 건 봐줄 테니까, 지금 이 숲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나 알려줘.”
스테치의 질문에 청년은 선뜻 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인간을 상대로 말을 섞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드는 듯했다. 스테치는 검을 소드 벨트에 걸어 자신에게 공격의사가 없음을 표시한 뒤 다시 말을 꺼냈다.
“잘 들어. 내 하나뿐인 엘프 친구의 몸 상태가 지금 많이 안 좋아. 약의 재료를 구하려면 산꼭대기로 가야 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말하길 산에 오르려던 사람들은 모두 기억을 잃어버린다더라고. 그게 혹시 누구 소행인지 알아?”
“…….”
탓!
기나긴 질문에도 답이 없던 청년은 갑자기 어딘가로 뛰어갔다.
답답해진 스테치는 머리를 잔뜩 헝클어뜨리며 청년의 뒤를 쫓아갔지만, 거리는 좀처럼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주 잠깐이나마 청년의 다리를 마법으로 얼려 붙잡아볼까 생각한 스테치였으나, 카일덴트 숲의 사정에 대해 훤히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무작정 겁부터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젠장! 엘프라서 그런가 더럽게 빠르네…….”
멀어져서 점으로 보이는 청년의 모습에 스테치는 투덜거렸다.
* * *
“[방금 뭘 했다고?!]”
여성의 호통에 청년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청년이 스테치를 피해 도망쳐 온 장소는, 숲속의 나무뿌리 밑에 교묘하게 숨겨진 아지트였다.
청년은 엘프들의 리더인 여성에게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전했고, 그 결과는 보는 바와 같이 불벼락이었다.
청년이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그…… 감시 중에 인간이 숲에 들어왔어. 그래서……]”
“[그래서 날 부르지도 않고 다짜고짜 활부터 쐈다 이거냐?]”
“[어, 어쩔 수 없잖아! 누나가 그 사람을 직접 봤다면 나한테 뭐라고 못할걸? 혼자서 검이랑 마법으로 그로자크네를 찢어발기더라니까. 그런 놈이 이 숲으로 들어올 이유가 뭐겠어? 틀림없이……]”
과장인지 아닌지 모를 청년의 증언에 여성은 물론이고, 옆에서 귀를 기울이던 다른 이들까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그로자크네는 파워풀하고 맷집이 강하며, 덩치에 비해 잽싼 몬스터였다.
그런 녀석을 도륙낼 정도의 실력자가 왜 이런 변두리 숲을 찾아 들어왔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카일덴트 숲에 숨어 지내는 자신들을 노리고 온 것이라면 또 모를까.
여성은 한숨을 쉬고 청년에게 되물었다.
“[그래서? 제대로 죽이고 온 거야?]”
“[아니…… 그게 사실……]”
여성과 다른 이들은 청년의 넋두리와도 같은 설명을 듣고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차라리 죽였다면 다행일 텐데, 그마저도 실패해서 도망치기까지 했단 말인가? 참다 못 한 여성은 홧김에 청년에게 주먹을 날렸다.
빠악!
“아야!”
“[잘하는 짓이다, 내 수개월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줘서!]”
불쌍하게도, 감히 여성에 맞서 그의 행위를 변호해주려는 사람은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청년이 저지른 실수는 앞으로 그들의 미래를 끝장낼 수도 있는 행위였기에.
“[내가 뭐하러 지금까지 인간들의 기억을 지워서 되돌려보낸 건데?! 이제 다 끝장이야! 네가 말한 그 인간이 여기까지 찾아온다면……]”
“그런다면 뭐?”
낯선 이의 목소리에 모두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돌아가자, 인간 하나가 귓구멍을 후비며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테치는 새끼손가락 끝을 후 불며 말했다.
“아냐, 계속해. 도대체 왜 사람들 기억을 멋대로 주무르고 다녔는지 궁금했거든.”
누구도 은신처의 위치가 발각되리라곤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인간이 엘프들의 언어를 알아듣고 대답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할 큰 충격을 받았다.
한창 청년을 힐난하던 여성도 이 순간만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뭐야? 왜 대답이 없어?”
스테치가 거듭 질문을 던져봐도 서로의 눈치만 살피는 엘프들. 숫자로만 따지면 압도적인 열세인데 어째서 이 인간은 태연하게 굴 수 있는 건지…… 모두가 머뭇거리는 사이, 여성이 먼저 행동에 나섰다.
《액티브 스킬 : 윈드 커터(lv 3). 손날에서 날카롭게 벼린 바람의 검을 생성합니다. 만들어진 검으로 공격할 시 적에게 일정 확률로 상태이상 ‘출혈’을 유발합니다.》
여성의 손끝에 미세한 바람이 모여 휘몰아치는 무형무색의 검으로 화하자, 그녀는 상대의 목을 노리고 손날을 있는 힘껏 찔러넣었다. 그러나 스테치는 고개를 꺾어 공격을 피하더니, 그대로 손을 뻗어 여성의 팔을 붙잡았다.
퓩!
엘프들이 뒤늦게 쏜 화살 몇 개가 날아들었지만, 스테치는 《크로스 윈드》의 장벽으로 그것들을 죄다 무시하며 꿋꿋이 자기 말을 이어나갔다.
“아까 저놈에게도 말했지만, 내가 여기 온 목적은 너흴 때려잡기 위한 게 아니야! 간단한 대답 하나만 해주면 알아서 꺼져줄 텐데 왜 아까부터 다들 이 난리냐고?”
스테치의 말에 여성은 물론이고, 심지어 막 화살통에서 새 화살을 끄집어내던 몇몇 엘프들마저 그대로 벙찐 얼굴이 되어버렸다.
뭐지? 갑자기 바뀐 분위기에 스테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여성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자는 인간의 말을 모른다. 대답은 둘째치고 알아듣는 것 자체가 가능할 리 없지.”
그녀의 발언은 스테치의 말문을 틀어막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모든 말이 죄다 헛소리나 다름없었다는 생각에 이번엔 도리어 스테치가 어이없어하자, 여자는 그에게 물었다.
“그건 됐고. 방금전에 그 말은 정말인가? 넌 우릴 죽이려고 인간들이 보낸 암살자가 아니란 말이지?”
“내가 너흴 죽이려고 마음만 먹었으면 지금 이 장소에 들어오지도 않고 쓸어버렸을 거야.”
스테치가 으르렁거렸다.
“저 친구가 내 말을 하나도 이해 못 했다고 하니까 다시 설명해 주지.”
그제야 스테치는 조금 전에 자기가 청년에게 했던 말들을 여성에게 그대로 다시 읊어주었다.
자신이 왜 산에 올라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나, 카일덴트 주민들의 기억 상실 문제, 그리고 그로자크네와 싸웠던 이야기들…… 스테치의 말을 듣고 있던 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계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대화를 나눠볼 용의는 있는 듯했다.
“그렇군…… 잘 알아들었다. 인간이 엘프와 친구가 되었다는 부분은 도저히 믿기 힘들지만.”
“어쭈. 지금 날 의심하는거야?”
스테치의 말에 여성은 이전보다는 확연히 조심스러워진 말투로 질문했다.
“혹시 그 엘프의 이름이 뭔지 알 수 있을까?”
“엘레나 드레이노어.”
그녀의 이름은 엘프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일말의 경계심조차 깡그리 날려 버릴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갑자기 주변의 모든 엘프들이 깜짝 놀라 수군거리기 시작하자, 스테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여성에게 물었다.
“다들 걔가 누군지 알아?”
“대체 어떻게 그 애의 이름을…… 아니, 그렇다면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라!”
여성의 태도가 급박해졌다.
“엘레나가 아프다고? 대체 왜? 병이라도 걸린건가?!”
스테치는 잠시 침묵했다.
엘레나의 지인으로 보이는 사람 앞에서 ‘엘레나가 아픈 이유는 바로 나 때문’이라고 대놓고 밝히는 건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리를 해서 그래. 그것보다도 먼저 내 질문에 대답해.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는 게 정말 너라면, 그 이유가 뭐야?”
대답 여하에 따라선 적으로 간주할 용의도 있었다. 그러자 여성은 손사레를 치며 답했다.
“오해하지 마라, 인간! 우린 우리를 해하려는 자가 아니면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그러자 스테치는 대답 대신 뒤에서 멀뚱멀뚱 서 있던 청년 엘프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불편한 침묵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청년이 당황하여 물었다.
“[뭐야, 다들 왜그래?]”
“……저 바보는 나중에 내가 두들겨 패서라도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어쨌든 우리에게 악의는 없었어! 산의 동굴 안에 몬스터가 자리 잡는 바람에 사람들을 그냥 들여보낼 수가 없었단 말이야!”
“무슨 몬…… 아.”
스테치는 몇 분전에 자신이 손수 박살냈던 그로자크네를 떠올렸다.
그럼 남은 놈들이 죄다 동굴 안에 자리잡았다 이 말인가? 저 말이 사실이라면 여성은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 되는 셈이었다.
“일단은 믿어주도록 하지. 바쁘니까 난 이만 가봐야겠어.”
“미쳤나?”
스테치의 목적지를 알고 있는 여성은 짧고 묵직한 한마디를 던졌다.
그로자크네와 평지에서 싸우는 것도 정신 나간 짓거리인데, 놈들의 영역에 제 발로 기어들어 가겠다는 인간이 정상인으로 보일 리 없었다.
그러나 스테치는 그녀의 걱정이 우스웠는지 청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 저 녀석이 내 얘기 안 하든? 그로자크네 따위가 몇 마리가 몰려와도 나한텐 상대도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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