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75)
74화에계속 –
74화 버든베어
“왕자님! 큰 놈이 왔습니다!”
비번 병사들의 점심 식사가 한참인 어느 대형 천막.
뛰쳐 들어온 누군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왕자를 찾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동석하여 희멀건 죽을 떠먹던 제라드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북부 전선에서 ‘큰 놈’이라 함은 말 그대로 중~대형급 몬스터에게만 붙는 호칭.
절대 일개 병사나 중대 정도로 상대할 수 있는 클래스가 아니었다.
“거리와 방향은?”
“전선을 따라 서쪽으로 불과 1km 입니다!”
슈쾅!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와 동시에 천막이 흔들거리고, 병사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이 독특한 파공음은 분명 포병대의 곡사포에서 나는 소리였다.
상대가 누구길래 마법포까지 동원하고 있는걸까.
제라드는 옆에 세워두었던 검을 집어들고 천막 바깥으로 나섰다.
말구유 앞에 묶여있던 그의 말은 이미 준비만반의 태세로 앞발을 구르고 있었다.
“이럇!”
말 위로 훌쩍 뛰어오른 제라드는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수 km에 걸친 방벽을 우측에 두고 달리는 그의 시야에, 거대한 몸을 일으키며 전선으로 접근중이던 모래 거인이 들어왔다. 거리를 감안하면 그 크기는 얼추 50~60m.
실로 어마어마한 사이즈였다.
‘늦지 마라……!’
모래 거인은 그의 예상보다도 훨씬 더 성벽에 가까워져 있었다. 아마도 모래 속에 몸을 숨길 수 있는 모래 거인의 특성상 병사들의 색적이 늦은 것도 한몫 했으리라.
까딱 잘못했다간 기껏 구축해둔 전선이 돌파당해버리고 만다는 생각에 제라드의 입안은 바싹바싹 말라갔다.
거인이 모래가 줄줄 흘러내리는 거대한 손을 뻗자, 성곽쪽에서 파란 폭염이 뿜어져 나와 거인의 손가락 하나를 완전히 날려버렸다.
“우어어어억-!”
그러나 이것도 결국은 시간 벌기일 뿐, 몬스터를 저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제라드가 초소쪽에 막 도착할 때 즈음, 이미 몇몇 마법사들이 다음 발사를 위해 곡사포의 에너지 응집구에 마력을 투입하고 있었다.
“발사!”
투쾅!
푸른 빛을 띤 고에너지 압축탄이 굉음와 함께 포구에서 일제히 발사되었다.
수 사람 분의 마력이 응집된 덩어리가 턱과 복부를 차례로 강타하자, 모래거인은 크게 뒤로 주춤거리며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그으으으-”
마침내 제라드가 초소에 도착하자, 급격한 마력 소모로 진이 빠져 비틀거리던 마법사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왕자님이 오셨다!”
제라드가 말에서 내린 후, 가장 나이 들어보이는 마법사와 노병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들기며 격려했다.
“모두들 수고 많았다! 뒤는 내가 맡도록 하지!”
“예, 예!”
마법사들이 감격스러워 하며 물러서자, 제라드는 허리춤에 찬 황금빛 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겉모습만 화려한 일반 예장용 검과는 달리, 그가 쥔 것은 날이 시퍼렇게 선 실전용이었다.
아티팩트 ‘골드메라’.
모래 거인이 뒤로 한껏 당겼던 주먹을 내지르자, 제라드와 다른 병사들의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러나 잔뜩 겁을 집어먹은 병사들과는 달리, 제라드는 코웃음을 치며 검을 휘둘렀다.
써컥!
눈 앞을 가리는 섬광이 번뜩인 직후, 그들이 본 것은 모래 거인의 중지부터 어깨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균열이었다.
“아…….”
마법사 신병 하나가 무심코 입을 벌렸다.
세로로 반토막 난 거인의 팔은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주먹은 멋드러진 궤도를 그리며 크게 허공을 갈랐다.
단 일격으로 수십 미터에 달하는 적의 공격을 막아 내다니? 병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모래 거인이 이윽고 멀쩡한 반대쪽 손을 크게 치켜들자, 제라드의 두 번째 참격이 이어졌다.
검에서 발생한 충격파는 채찍처럼 모래 거인을 강타하고 지나갔고, 녀석은 엉거주춤한 자세를 유지한 채 덜컥 멈췄다.
“……?”
잠시간의 적막. 어찌 된 일인지 몰라 제라드와 모래 거인을 번갈아 쳐다보던 병사와 마법사들은, 충격파가 거인의 허리를 훑으면서 남긴 기다란 흔적을 발견했다.
푸화아악!
분리된 거인의 허리 틈새에서 모래가 피 분수처럼 새어 나왔다.
상반신부터 하반신에 이르기까지 신체를 구성하던 모래가 통채로 지면에 쏟아지며 커다란 동산을 이루었다.
장장 40m 이상이나 되는 덩치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광경은 가히 압권이었다.
거인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모래가 전부 흘러내리고, 남은 것은 허공에 떠있는 모래 거인의 핵이었다.
“드디어 나왔구나!”
탓!
회심의 미소를 지은 제라드는 성벽 밖으로 뛰어오르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크로스 가드에 새겨진 슬릿이 입처럼 벌어지더니 검의 날 표면을 따라 검붉은 기운이 어른거렸다.
스으윽-.
버터 자르듯 가볍게 양분된 모래 거인의 핵은 액체처럼 녹아 골드메라로 흡수되었다.
발 디딜 곳 없는 공중에서 성벽 밑으로 떨어진 그는, 착지한 후에도 아무런 충격 하나 없이 멀쩡하게 일어섰다.
“오오!”
모든 것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마법 포격을 받고도 끄떡없던 모래 거인을 단 두번의 공격으로 무력화시킨 제라드. 그 경이로운 능력을 직접 목도하고도 흥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성벽 위에서 제라드를 내려다보며 함성을 내지르는 포병대. 검을 들어올려 그 열화와 같은 성원에 응해 보인 제라드는, 말을 타고 천막으로 돌아갔다.
“음?”
배급 천막에 막 도착한 제라드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경외 어린 시선에 피식 웃어 보였다.
하기사, 그 정도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태연하게 밥이나 먹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왕자님. 마실 음료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부관 하나가 묻자, 제라드는 자신의 개인 막사로 향하며 고개를 저었다.
“됐고…나는 좀 쉴 테니 당분간 부르지 말아주게.”
안으로 들어가는 제라드의 등을 향해 부관이 경례를 올렸다.
“…….”
오롯이 홀로 남은 천막 안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재차 주변을 확인한 제라드는 병사들이 보지 못하도록 망토로 감춰두었던 팔을 드러내며, 참았던 숨을 터뜨렸다.
“크하악! 헉…… 헉…….”
꿀럭-. 꿀럭-.
골드메라로부터 나온 가느다란 촉수들. 제라드의 손 전체를 휘감은 그것들은 살 곳곳에 박혀 들어가 게걸스레 무언가를 빨아올리고 있었다.
* * *
“가는 길 조심해!”
“예, 건강하십시오!”
스테치는 사내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카일덴트를 떠난 지 이틀 뒤.
엘레나의 완전한 회복을 기다릴 겸, 필요한 물자를 보급한 그는 곧장 길을 떠났다.
스테치가 향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마차의 행선지와는 길이 다른지라, 가렛의 부하와는 도중에 작별을 고하게 되었다.
“그런데…지금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거죠? 또 던전에 갈 계획이신가요?”
멀어지는 마차를 뒤로 한 채 엘레나가 묻자, 스테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던전은 이제 됐어. 버든베어로 간다.”
베네지아의 서쪽 끝에 위치한 거대 항구 도시 버든베어.
대륙이 카델트 대사막을 중심으로 분단된 지금, 그곳은 남과 북의 교류를 책임지는 유일한 장소였다.
다양한 물자와 사람들이 모여드는 그 특성상, 베네지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었다.
“?”
그러나 엘레나는 스테치의 뜬금없는 목적지 선정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둠의 숲에서 외부물자 보급을 책임지는 스트라이더 출신으로서, 그녀는 버든베어에 몇 번인가 방문해본 경험이 있었다. 때문에 수배자 신분인 스테치가 왜 굳이 경계가 삼엄한 항구도시로 가려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스테치는 그런 그녀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뒤늦게 덧붙여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이 있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꼭 만나봐야 해.”
그의 말에는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오랜만에 기나긴 도보행을 다시 시작한 그들은, 다음날 해가 떨어지고 저녁이 되어서야 멀찍이에서 풍겨오는 바다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스테치와 엘레나가 작은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버든베어는 한눈에 전부 담기 힘들 정도로 거대했다. 게다가 밤의 어둠이 깊어진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곳곳의 불빛 덕분에 대낮처럼 밝았다.
“예쁘다…….”
엘레나는 무심코 감탄했다.
어둠의 숲에서 이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광경을 보기 위해선 오직 축제가 열리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잔뜩 기대감에 부푼 그녀와는 대조적으로, 스테치의 얼굴은 바짝 굳어있었다.
‘왜 저러시지?’
엘레나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스테치를 쳐다보았다.
어쩐지 조급해 보이고, 하기 싫은 무언가를 억지로 하는 듯한 행동들.
거기다 부쩍 줄어든 말수까지…… 이 모든 것은 바로 스테치가 미리아드에게서 ‘무언가’를 들은 직후에 일어난 변화였다.
평소와는 달리 굳이 버든베어로 온 이유는 커녕 무엇 하나도 확실하게 알려주지 않는 스테치를, 엘레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따라갈 뿐이었다.
“이런.”
스테치는 버든베어로 진입하는 다리 앞에서 멈춰 섰다.
버든베어는 거대한 섬 위에 만들어진 도시였기에, 진입하기 위해선 무조건 다리를 건너야만 했다. 문제는 그 끝에 있는 검문소. 수하물 관리가 엄중한 도시 특성상, 정문으로 곧장 들어가려 했다간 감시망에 걸려들 것이 뻔했다.
“여기는 블랙 마켓의 도움이나 뒷문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없는 건가요?”
평소와는 달리 도시 안에 들어가는 것에도 끙끙대는 스테치에게 엘레나가 물었다. 그러자 스테치는 한참동안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하긴 여기 계속 있어봤자 우리만 고생이지.”
스테치가 밑으로 내려가자, 다리 건너편 검문소 바로 아래쪽에 쇠창살로 가로막힌 하수 배출구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기대어져 있는 낡은 조각배 하나.
스테치는 메멘토 모템을 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광신호?’
일정한 패턴으로 깜빡이는 반지의 빛. 그러자 잠시 후, 조각배가 천천히 물살을 가르고 스테치와 엘레나가 있는 쪽으로 접근해 왔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배 위에는 어딘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노를 젓고 있었다.
“스테치 아텔리어?”
놀랍게도 사내는 스테치를 보자마자 알아보았다.
“놀랍군. 다시는 이 도시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스스로 공언하지 않았던가?”
비아냥거리는 사내의 말에 스테치는 얼굴을 돌려 사내를 노려보았다.
“렉 페이스. 주둥이 안 닥치면 그냥 널 이 자리에서 죽이고 배를 빼앗는 수도 있어.”
엘레나는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몰라 스테치와 사내를 번갈아 쳐다보았지만, 도저히 질문을 던질 분위기가 아니었다.
싫은 티를 팍팍 내는 스테치를 따라 엘레나가 조각배에 오르자, 사내는 킬킬 거리며 배를 출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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