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78)
77화에계속 –
77화 요새 탈취 작전
쿠당탕!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스카이의 뒤로 쓰러진 의자가 나뒹굴었다. 스테치가 꺼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해 당황스러워 하는 엘레나의 귓전으로, 스카이의 웃음소리가 날아들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나보다 더 또라이 같은 놈은 너 밖에 없을거다.”
“지랄. 살면서 지금보다 멀쩡했던 적이 없는데, 뭔 헛소리야?”
스테치가 말했다.
그가 말한 감비니 요새는, 북부 전선의 서쪽 끝에 위치한 성의 이름이었다.
높은 절벽 위에 자리 잡은 덕택에 암벽을 타고 잠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길 하나만이 유일했다. 하지만 감비니 요새가 유명한 이유는 단순히 난공불락이라는 점 외에도 하나가 더 있었는데, 그건 바로 성 바로 아래에 거대한 던전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유달리 요새의 수비가 안팎으로 두터운 이유는 바로 이 던전의 확장을 억제하기 위한 것.
스카이가 물었다.
“그런데 거길 무슨 수로 빼앗을건데?”
“성으로 들어가는 보급품으로 위장해서 정면으로 들어갈 거야.”
방어가 아무리 철저해도, 요새 자체는 식량의 자급자족이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다. 북부 전선을 통해 간접적으로 공급되는 보급품이 차단되면 바로 굶주림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스카이는 부정적이었다.
“바보냐? 감비니 요새에 상주하고 있는 병력의 수나 그 수준은 장난이 아니야. 여기 사람들을 다 끌고 어렵사리 성안에 들어가 봤자 포위당할 텐데?”
“며칠 전에 아주 좋은 정보를 얻었지.”
스테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기와 마력이 축적된 던전은 세력을 키우기 위해 주기적으로 강력한 몬스터들을 배출한다. 때문에 감비니 요새에서는 주기적으로 토벌대를 구성하여 던전 안을 정리하곤 했다.
이는 뒤집어 말하자면 토벌대가 던전 안으로 들어간 순간이 요새의 수비가 가장 취약해지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최근에 어떤 엘프랑 친해질 기회가 있었거든.”
던전이 생성되거나 폭주할 때 뿜어내는 독특하면서도 꺼림직한 마력 파장. 감비니 요새의 던전으로부터 대량의 몬스터가 창궐할 것이라는 그 ‘전조’를 읽어내 스테치에게 귀띔해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카일덴트 숲의 미리아드였다.
요새가 카일덴트 숲으로부터 머지않은 곳에 위치한 탓에, 미리아드가 마력의 흐름을 항상 예의 주시해온 탓이었다.
“놈들은 절대 보급품을 마다하지 않을거야. 요전번엔 내가 북부 전선으로 가는 보급 마차까지 죄다 털어먹었으니, 지금쯤이면 감비니 요새 놈들도 많이 굶주렸겠지. 공격하기에 이보다 최적의 타이밍이 또 어디 있겠어?”
“그 보급 행렬을 전부 끊어놓은 게 너였다고? 또라이같으니.”
“뭐야, 알고 있었어?”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지만, 알만한 놈들 귀에는 이미 들어간 지 오래된 이야기야. 그래서, 성을 빼앗은 다음엔?”
“유사시 감비니 요새를 즉시 지원해줄 수 있는 세력은 제라드 밖에 없어. 다른 요새를 점거하고 던전을 미끼 삼아 왕자 앞에 흔들어주면, 다른 곳의 지원“
스테치가 펼쳐 보인 양손 사이로 고농도의 마력이 휘몰아치는 것을 본 스카이는, 그제야 자신의 친구가 이제껏 능력을 완전히 발휘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스테치는 휘파람을 불며 감탄스러워 하는 스카이에게 말했다.
“개인의 기량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엔 한계가 있어. 그래서 너한테 도움을 구하러 온거야.”
스카이는 승산을 점쳐보기 위해 고민하는 듯싶더니, 생각보다 흔쾌히 협력을 약속했다.
간단히 거절하고 뿌리치기엔 상황이 너무나도 딱 들어맞았다.
“좋아. 나와 내 부하들의 목숨, 너한테 맡기겠다. 이 썩어빠진 나라에 한 방 먹일 수 있다면 뭐든 해주지.”
* * *
스카이와의 이야기가 잘 끝난것을 다행스러워 하는 스테치였으나, 그는 내심 스카이의 부하들이 이 일견 무모해보이는 계획에 반발을 일으키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과연 그 리더에 그 부하들답다고나 할까? 불만을 표하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자, 이야기는 끝났으니까 다들 나가봐!”
수성은 단순히 요새에 틀어박혀 농성하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기에, 스카이는 부하들을 풀어 버든베어의 모든 사용 가능한 마차들과 식량을 공수해 오라고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다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에 스카이의 부하들은 앞다투어 아지트 밖으로 몰려나갔다.
“언제쯤 출발할 수 있지?”
스테치가 안절부절 못해하자 스카이는 핀잔을 주었다.
“재촉하지 마.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오늘 당장 이동하는 건 무리야. 버든베어에는 보는 눈이 많아서, 모든 자원을 동시에 움직였다간 반드시 꼬투리를 잡히게 돼. 게다가 마차가 벌건 대낮에 몰려나가는걸 보여서도 안 되니까, 빨라 봐야 내일 저녁에나 출발할 수 있을걸.”
버든베어의 영주인 이드릴 헨리에타는 첫째 왕자인 랍토레스의 심복이면서 서방의 수비를 책임지는 장군으로 유명했지만, 한편으로는 깐깐하기로 악명높았다.
그런 그녀가 다스리는 도시에서 무언가를 꾸미고 준비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스카이가 벗어둔 작업복을 다시 주섬주섬 챙겨입자, 스테치가 물었다.
“그건 또 왜 입어?”
“지금 내 공방 안에는 조금만 공정을 더해주면 고성능 폭약으로 뒤바뀔 수 있는 물질이 한가득이야. 이런 기회에 가져다 써먹어야지, 아끼다 똥 되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
마지막으로 안면 보호대까지 걸친 그는 물끄러미 스테치의 허리춤에 걸린 검을 쳐다보더니, 다짜고짜 손을 뻗어 빼앗아갔다.
“야!”
“그래, 이 검. 처음 봤을 때부터 한 번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지.”
붙잡으려고 내민 손을 스카이가 요령좋게 빠져나가자 스테치는 결국 포기해버렸다.
한 번 저렇게 무언가에 푹 빠진 스카이는 절대 말릴 수 없었다. 한참 동안 검을 만지작거리며 살핀 스카이가 폼멜을 돌리자, 힐트의 덮개가 열리며 컴버스쳔 체임버의 내부가 드러났다.
“흥미롭군. 화약탄을 사용하는 무기를 만든 건 이 대륙에서 내가 최초인 줄 알았는데. 제작자가 누구야?”
“클라이드라고 하는 드워프야. 넌 들어본 적도 없을걸.”
검의 각 부분을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는 스카이. 그것을 지켜보던 스테치가 슬슬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하려는 순간, 갑자기 스카이는 검을 든채로 공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궈버렸다.
“뭔……?!”
다급히 문을 두들기고 당겨보기도 했지만, 안에 틀어박힌 스카이는 도무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스테치에게 말했다.
“좋은 일 해주는거니까 차분히 기다리고 있어.”
“야! 너 그거 망가뜨리면 죽을 줄 알아!”
“알았으니까 말 시키지 마. 나 바쁘다.”
스테치는 이를 갈며 문에서 떨어졌다. 공방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망치질 소리를 애써 무시한 그는, 아지트에 덩그러니 놓여진 의자의 다리를 툭툭 걷어찼다.
모두가 각자의 맡은 일을 하러 나간 지금, 현재 가장 여유로운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테치 한 명뿐이었다.
결국 하릴없이 스테치가 아지트에서 시간을 떼우는 사이, 바깥에서 산책을 마친 엘레나가 돌아왔다.
“잘 갔다 왔어? 시비거는 놈은 없었고?”
그 말에 엘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긴, 애초에 엘레나를 상대로 누가 시비를 걸어봤자 결과가 어찌 될지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것보다 다른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요.”
어째서인지 몰라도, 엘레나의 목소리에서는 은근한 불만의 기색이 엿보였다. 왜 저러지? 영문을 몰라 당황스러워 하는 스테치에게 그녀가 물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신거죠?”
“어? 뭐가?”
“미리아드 언니한테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길래 버든베어로 온 건지 싶었어요. 하지만 설마 요새를 공격한다는 생각을 하고계실 줄은…….”
그러고보니 엘레나한테는 카일덴트 마을에서 떠난 이후로 감비니 요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은근히 서운해하는 엘레나의 모습에 스테치는 아차 싶어 뒤통수를 긁적였다.
미리아드가 귀뜸해준 내용은 ‘최근 감비니 요새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것뿐이었다.
여러 조건과 상황이 맞물리지 않았더라면 스테치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준의 정보였다.
“어쩔 수가 없었어. 어차피 스카이의 협력을 약속받지 못한다면, 요새를 공격한다는 계획 자체가 무산되었을테니까. 확실히 정해지기 전까진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낫겠다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미리 말해줄 걸 그랬네.”
자신을 잠자코 따라와준 엘레나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낀 스테치는 사과의 말을 건넸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이번 계획이 성공하면, 모든 게 다 끝나는 거죠?”
“그렇…… 겠지.”
그 말을 들은 스테치는 문득, 어쩌면 이번 싸움이 복수를 위한 마지막 여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엘레나를 쳐다보았다.
또 한편으로는 일국의 왕자를 죽이기 위한 준비 기간치고는 제법 짧았다는 느낌도 들었다.
“…….”
엘레나는 심중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스테치를 말없이 마주 보았다.
복수를 마치면 그녀의 여정도 끝난다. 하지만 어딘지 실망스러워 보이는 엘레나의 반응에 의아해하던 스테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있잖아, 나도 그러고보니까 마침 할 말이 있거든.”
“뭐죠?”
“이제 모든 일이 막바지에 이르렀으니까, 은혜를 갚는 것도 충분하지 않을까? 케인 아저씨도 딸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실 텐데…….”
스테치의 발언에, 한순간이지만 기대감으로 부푼 그녀는 인상을 확 구겼다.
갑작스러운 불편한 분위기에 스테치도 엘레나도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던 그때, 그녀는 스테치의 면전에 대고 휙 돌아서서 그대로 아지트를 나가버렸다.
“……아.”
다시 혼자가 된 스테치가 멍청하게 중얼거리자, 머릿속에서 메멘토 모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일이 끝나면 너도, 저 엘프도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냐? 동화 속 이야기도 아니고…….’
스테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 계획을 진행해버리면, 결과가 어떤 식으로 나오든간에 베네지아 왕국 전체가 스테치를 죽이려 들 것이다. 그리고 그가 대륙을 아예 뜨거나 북부로 넘어가지 않는 이상, 추격을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정상인이라면 누구도 그런 피곤한 삶을 원하지 않는다.
원래부터 거처 없이 떠돌던 스테치야 그 정도 문제는 충분히 감수할 의향이 있었지만, 엘레나는 달랐다.
그녀에겐 가족과 집이 있었다. 이미 여기까지 만으로도 그녀가 주장하던 은혜 갚기는 충분한 셈이니, 스테치로선 일이 더 커지기 전에 그녀를 숲으로 되돌려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보아하니 스테치의 말은 오히려 엘레나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어버린 모양이었다.
『저쪽은 도중에 그만둘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이는데?』
‘젠장.’
아마 무슨 말을 하더라도 듣지 않겠지.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스테치는 아지트에 있는 침대에 기어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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