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79)
78화에계속 –
78화 감비니 요새
“이런 시발, 스카이는 언제 나오는거야?!”
“좀 참아봐요. 거 알만한 사람이 왜 그렇게 날뛰는건지 원…… 우리 보스가 어디 허튼짓할 사람인가?”
스테치는 다음날 해가 떨어질 때까지도 스카이가 공방에서 나오질 않자, 그의 부하들을 상대로 소리를 질러댔다.
마차를 육지로 옮겨놓을 배도 준비되었고, 식량과 무기들로 가득 채워두었다. 이제 나와서 출발만 하면 되는데…….
도대체 안에서 무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불안해하던 스테치는, 잠시 후 문을 열고 나온 스카이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시간이 아주 썩어넘치냐, 스카이? 빨리 출발해야한다고!”
“걱정도 팔자셔. 야, 안에 있는 통들을 전부 마차에 옮겨다 실어 놔. 하나라도 떨어뜨리면 너네 다 뒈지니까 조심하고.”
“네!”
부하들은 문이 열린 스카이의 공방으로 들어가 정체불명의 가루나 액체가 가득 들어있는 나무통을 번쩍 들어 아지트 밖으로 들고 나갔다. 그러나 스테치는 그쪽으론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 스카이에게 물었다.
“페네트레이터는 어디있어?”
“그게 네 검 이름이야? 망가뜨리진 않았으니까 그만 징징거려. 자.”
스카이가 던져준 페네트레이터를 받아 들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전에 없던 이상한 부착물 하나가 크로스 가드 부분에 달려있었다. 납작한 박스같은 디자인에 붉은 스위치가 하나. 스테치는 스카이에게 위협적으로 검을 내밀며 설명을 요구했다.
“미친놈아, 대체 이게 뭔데?”
그러나 스카이는 그저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으며 대답을 피할 뿐이었다.
“네 비장의 무기.”
“뭐?”
이건 웬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스테치가 물끄러미 스카이를 바라보자, 그가 말했다.
“단 한 번 밖에 쓸 수 없는, 최후의 수단이자 차선책이다. 내가 14년간 쌓아온 모든 지식의 정수를 그 안에 담았지. 위급한 상황에서만 사용하라고.”
알 수 없는 소리만 지껄이던 스카이는, 마차의 운송을 지휘하기 위해 아지트를 나가버렸다. 스테치는 페네트레이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넌 이게 뭔지 알겠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메멘토 모템이라면, 스카이가 달아둔 장치의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메멘토 모템조차 장치의 기능에 대해 온전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흠…안에다가 마법 회로를 새겨놓은 것 같은데, 케이스 겉표면에 불가시화 술식을 새겨놓았군. 이래선 회로가 무슨 기능을 하는지 정확히 확인해 볼 수가 없어.』
‘그렇게 수상쩍은 걸 대체 왜 내 무기에?’
스테치가 기겁하자 메멘토 모템이 말했다.
『네 친구라며? 해가 될 물건을 달아두진 않았겠지. 하지만 조심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 구조인지는 모르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회로의 형태로 짐작하건데 꽤나 강력한 물건같아.』
스테치는 짜증을 부리며 검을 소드 벨트에 걸어두었다. 노골적으로 수상한 티를 팍팍 내는 것은 스카이의 오랜 악취미 중 하나였다.
“준비되셨나요?”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돌아보자, 그곳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완전무장한 엘레나가 서 있었다.
어제 한 이야기에 대해선 눈꼽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듯한 그 모습에, 스테치는 결국 포기해버렸다.
“……응.”
* * *
뙤약볕이 내리쬐는 북부 전선의 계곡. 그 서쪽 끝의 절벽 위에는, 축성된 이래로 몬스터나 불청객들의 접근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 감비니 요새가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최근의 요새는 다른 날에 비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성벽 위에서 한창 뻣뻣하게 허리를 펴고 경계근무를 서야 할 병사들은, 그늘이 될만한 곳에 주저앉아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끼에에엑!”
찌는 듯한 폭염을 뚫고 날아든 독수리가 하늘을 빙빙 돌며 연신 울어대자, 병사의 입으로부터 짜증스러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꺼져!”
목도 갈라져서 따끔거릴 지경이다. 병사는 허리에 찬 수통을 들어 올려보았지만, 느껴지는 것은 절망적일 정도로 가벼운 무게감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몽땅 들이키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다스린 병사는, 물기로 입가만 살짝 적신 뒤 다시 경계를 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병사들이 이토록 힘이 없는 이유는 정기적으로 요새를 방문하던 보급 마차가 끊긴 탓이었다. 이상을 감지한 요새의 지휘관이 배급을 조절하여 식량 소모를 최소화했지만, 그것도 슬슬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젠장…… 중앙 전선쪽은 그렇다 치더라도 수도 놈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우리들이 굶어 뒤져도 상관없다 이건가? 이제 거의 2주일째라고!”
“화내지말게, 기운빠지니까.”
요새의 내리막길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멍하니 쳐다보던 병사가 불만을 터뜨리자, 옆에 서 있던 다른 병사들이 그를 말렸다.
감비니 요새는 몬스터의 습격을 막아줌과 동시에 던전의 확장을 막는 요충지였다. 하지만 주위 환경이 작물을 기르기엔 매우 척박한데다, 던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기의 수확물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식량을 비축해두는 것도 힘들었다. 때문에 그만큼 외부 보급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걸 모를 리 없는 왕가에서는, 어째서인지 현 상황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이, 저것 좀 보게.”
갑자기 자그마한 비행체 하나가 접근해 오는 것이 들어오자, 병사는 양눈을 가늘게 뜨고선 그것을 노려보았다.
“저건…전서구잖아? 누가 보낸거지?”
“지금 그게 문제인가? 보급품은 고사하고 꼴랑 편지 한 통이라니, 그건 절대 좋은 징조가 아니야.”
병사들의 불안감 어린 시선이 한순간에 비둘기에게로 쏠렸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편지를 매달고 날아온 전서구는, 요새의 본관 창문 안으로 휙 날아들었다.
모두가 숨죽여 본관 입구를 지켜보고 있으려니, 잠시 후 번쩍이는 갑옷을 갖춰 입은 중년의 사내가 본관으로부터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잿빛의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에 신경질적인 인상을 가진 그는 어딘지 불만에 가득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원, 집합!”
쩌렁쩌렁 요새 전체에 울리는 지휘관의 목소리가 병사들의 귓전을 때렸다.
명령을 들은 요새의 모든 병사들이 공터에 집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5~10분 남짓. 그 사이, 지휘관 앙겔라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끓는 속을 가라앉힌 뒤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부관.”
앙겔라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자, 부관인 니콜라스가 대신 말했다.
“감비니 던전의 몬스터 수용량이 슬슬 한계점에 도달했다. 제 426기 토벌대원을 뽑겠다.”
그의 말을 들은 몇몇 젊은 병사들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수근거렸다.
지금같이 힘이 빠지고 남은 식량도 한계인 상태에서 토벌이라니? 하지만 몬스터들이 이쪽의 사정 따위는 봐주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토벌대를 보내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한편, 앙겔라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북부 전선의 전서구가 가지고 온 편지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경호 병력을 포함한 전선의 보급 마차 행렬이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는 소식.
당연히 요새에 식량을 보내주기는커녕 전선 유지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다.
이런 현 상황을 지금의 병사들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 아니, 절대 불가능하다.
설령 식량 저장고가 텅텅 비었어도, 요새를 지키고 유지해야 할 앙겔라의 입장에서는 사기 저하를 감수하면서까지 진실을 털어놓는 건 할 수 없었다.
“너, 너, 그리고…… 너.”
일단 겉보기에 영양 상태가 그나마 양호한 이들이 토벌대로 뽑혔다.
당연히 차출된 당사자들은 썩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지휘관의 말에 함부로 거역할 수는 없었다.
‘모두 날이 바짝 서 있군…… 까딱 잘못했다간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겠어.’
부관 니콜라스가 잔뜩 긴장하여 병사들을 훑어보았다.
감비니 요새에서의 일상은 고난과 역경 그 자체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누적된 판국에 이 이상의 악재까지 겹치면…… 침을 꿀꺽 삼키는 니콜라스의 뒤로 앙겔라가 다가오더니 말을 건넸다.
“니콜라스.”
“예!”
앙겔라는 남들이 듣지 못하도록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니콜라스에게 일렀다.
“남은 식량으로 우리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나?”
“…….”
하루도 빠듯합니다, 라고 어떻게 감히 입을 열 수가 있을까.
선뜻 답을 내놓지 않는 니콜라스의 모습에 앙겔라는 예상대로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토벌대를 이끌고 던전에 들어가겠네. 그동안 자네는 요새를 책임지고 맡아주게.”
앙겔라는 들고 있던 투구를 뒤집어쓰며 말했다.
* * *
덜그럭- 덜그럭-
마차 바퀴 구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계곡 사이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드럼통과 말 먹이,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큼지막한 자루들이 가득 쌓인 마차 떼가 물기 하나 없는 흙길을 내달렸다.
각각의 마차를 몰고 있는 사람들은 열기와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후드와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조심스레 나아가던 도중, 그들은 가파른 절벽위에 웅장하게 서 있는 한 요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긴가?”
마차를 덮은 시트 아래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마부석에 앉아 있던 스테치가 대꾸했다.
“맞아, 감비니 요새. 시발, 여기서 보니 왜 다들 철옹성이라 부르는지 알겠군.”
보급 문제만 빼놓고 본다면 수성하기에 알맞은 위치였다.
주변에는 뾰족하게 솟아오른 사암 기둥 때문에, 요새를 피해 돌아가는 것 자체가 힘들게 되어있었다. 게다가 감비니 요새는 고지대에 자리잡은데다 근처에는 엄폐물이 적어, 다가오는 적의 접근을 쉽게 포착할 수 있었다.
“쫄 필요 없어. 작전대로만 하면 돼.”
“쫄긴 누가?”
스테치는 피식 웃더니 당당하게 요새 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당초의 예상대로라면 요맘때쯤이 감비니 요새가 가장 약화될 시기였다. 식량 부족으로 굶주려 체력과 사기도 바닥을 기는대다, 몬스터 토벌 일정까지 겹쳐 수비 병력까지 반토막 났을 터. 이런 상황에 던져주는 달콤한 미끼를 물지 않을 자는 없으리라.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후, 요새로부터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멈춰라!”
선두의 마차가 멈추자, 뒤따르던 나머지 마차들도 그 자리에 정지했다.
“이곳은 북부의 서쪽 전선에 위치한 감비니 요새다! 그쪽의 신원과 요새로 접근하는 목적을 말해라!”
불시에 날아들 기습에 대비했는지 병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스테치는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성벽로 주변을 슬쩍 둘러보며, 상대편의 질문에 차분히 대답했다.
“저희는 길드의 지시를 받고 파견된 행상인들입니다! 요새에 필요한 식량을 운송해 왔습니다!”
총안 틈새로 바깥을 내다보던 요새의 병사들은 깜짝 놀라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그 시선은 이내 부관인 니콜라스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그조차도 행상인들의 방문에 대해선 뜻밖이었는지, 상대가 한 말을 곱씹어보는 눈치였다.
이윽고 니콜라스가 외쳤다.
“길드에서-”
“베네지아 왕가의 긴급 요청을 받고 온 겁니다! 돈은 이미 지불받았으니 식량만 가져가시면 됩니다!”
스테치의 말에 니콜라스는 입을 콱 다물어버렸다.
군의 보급사정을 알 턱이 없는 상인 길드에서 어떻게 이토록 기막힌 타이밍에 나타날 수 있는지가 의문이었지만, 왕가에서 직접 식량을 수매해서 공급할 계획이었다면 말이 된다.
“그쪽이 상인이라는 걸 증명할 방법은 있는가?”
“계약서, 그리고 길드에서 준 신분증입니다.”
스테치는 품 안에서 양피지로 된 계약서와 강철 뱃지를 꺼내 보여주며 살살 흔들어 보였다.
인장에 서명까지 적어놓은 리얼한 가짜 문서와 적당히 원본을 흉내내어 만든 가짜 뱃지. 스파이 글래스로 살펴보고 있겠지만 어차피 이렇게 떨어져 있어서야 진위 여부를 가려낼 수는 없다.
스테치는 자기가 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어이가 없었는지 피식 웃어버렸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 묵직한 금속 사슬이 절그럭거리며 굳게 닫혀있던 요새 문이 열렸다.
스테치는 후드 밑에서 미소지으며 마차를 감비니 요새 안으로 이동시켰다.
마차들이 들어서는 내내 병사들의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본 그는, 이들이 얼마나 굶주림과 피로에 지쳤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성벽에서 내려온 니콜라스가 스테치에게로 다가왔다.
“수고했다. 덕분에 숨통이 좀 트이는군.”
“저희도 계약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물품을 보시겠습니까?”
“그러지.”
스테치가 마부석에서 훌쩍 뛰어내려 자기가 타고 있던 마차 시트 위에 손을 얹자, 니콜라스가 그 옆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 순간, 시트의 밑에서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총구가 빼꼼 튀어나왔다.
“음?”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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