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8)
8화에계속 –
8화 이질감
공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소리를 일으키며 발생된 폭발에 의해, 스테치는 시야를 가득 메울 정도로 크게 일어난 먼지구름을 뚫고 날아가 한참 바닥을 굴렀다.
피와 흙으로 뒤덮여 바닥에 늘어진 스테치의 몸 위로 녹색 빛이 반짝이자, 옷에 묻은 피를 제외하고 몸에 난 상처들이 말끔하게 치료되어 갔다.
『기다리라고 했지, 내가!』
“멍청아…… 그런 말은 내가 건드리기 전에 하란 말이야.”
아침 기상 시 뻐근한 몸을 일으키듯 신음하며 힘겹게 일어선 스테치가, 이명으로 잘 들리지 않는 귀를 탁탁 두들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폭발이 일어난 자리 중심에 있어야 할 미네랄 리저드는 스테치가 마력을 흡수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스테치가 콜록거리며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미네랄 리저드의 신체에 마법적인 조작이 가해져 있었어. 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럼 이제부터 나오는 놈들은 죄다 건드리면 터질 것을 각오하고 싸우라 이 말이야?”
스테치가 검을 살펴보며 물었다.
그래도 드워프의 작품이라고, 얼핏 봤을 때 검에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스프링도 멀쩡하고, 내장된 와이어 케이블도 멀쩡해 보였다. 검을 몇 번 휘둘러 보는 스테치에게 메멘토 모템이 말했다.
『모르지, 하지만 조심해야 하는 건 사실이야. 누구건 간에 몬스터의 체조직을 붕괴상태로 만든 녀석이 던전 안에 있다는 소리니까.』
스테치는 조용히 바닥에 손을 대고는 스킬 《패스파인딩》을 사용했다.
어두운 동굴 속 저 깊은 곳을 향하여, 스테치의 시야에만 보이는 방향 지시선이 선명하게 보여 오기 시작했다.
“어쨌든 계속 이동해야겠어.”
배낭에서 훈제한 고기를 꺼낸 스테치가 그것을 씹어 먹으며 통로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후 몇 분을 걸어 들어갔을까? 스테치는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보고는 그 자리에 바짝 굳은 채 천천히 검을 겨눴다.
‘뭐지? 《애니멀 인스팅트》 스킬을 사용 중인데도 아무런 낌새가 없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스테치는 잠시 고민한 뒤 반지의 빛을 더 밝게 앞으로 내보였다.
“저건…….”
스테치가 접근하여 확인해 보니, 수정 결정으로 뒤덮인 채로 바닥에 늘어진 해골이 보였다. 낡은 검 하나가 해골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반지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수정과 검날에 반사되었던 모양이다.
『몬스터네.』
“몬스터야.”
스테치가 메멘토 모템의 말에 맞장구쳤다.
던전에서 죽은 자의 시신은 사기의 영향을 받아 빠른 속도로 썩어 들어감과 동시에, 던전의 꼭두각시가 되어 그곳을 지키는 병사로서 쓰인다.
썩어가는 도중이라면 좀비, 완전히 썩어 뼈만 남게 되면 스켈레톤으로 불리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던전에 뜬금없이 해골이 있다면 십중팔구 몬스터임에 틀림없다.
아니나 다를까 스테치가 널브러진 해골의 발끝까지 접근해 오자, 스켈레톤의 텅 빈 눈알구멍 안쪽에서부터 붉은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테치는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굳이 싸울 필요는 없겠지.’
『이 녀석도 마찬가지야. 잘못 건드리면 폭발할게 뻔하니 그냥 무시해.』
스켈레톤은 적이 주변에 오지 않는 이상 움직이지 않는데, 이 녀석은 하필 그 시간이 너무 길었던 모양이다.
종유석을 타고 떨어지는 광물 성분 물방울을 지속적으로 뒤집어써서 결정이 몸을 뒤덮은 탓에, 그대로 굳어 버린 듯했다.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었던 스테치는 쓰러진 스켈레톤을 훌쩍 뛰어넘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파직.
스켈레톤을 무시하고 걸어가는 스테치의 등 너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마침 쓰러진 스켈레톤의 관절부 여기저기에서 스파크가 일어났고 그것을 뒤덮고 있던 결정이 이상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파지직-, 파직.
절대로 좋은 징조는 아니다.
『뛰어, 스테치.』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걷기 시작하는 스테치에게 메멘토 모템이 다급히 외쳤다.
『뛰어!』
“으아아아-!”
어느 샌가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스테치의 등 너머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과광!
좁은 동굴 구조에 의해 벗어날 곳 없는 폭발력은 곧바로 스테치를 향해 밀려왔고, 스테치는 추풍낙엽처럼 통로의 안쪽을 향해 날아갔다.
“어흑!”
하필 내리막길이라 또 바닥을 구르며 내려가던 스테치가 땅바닥에 가슴을 부딪치며 헛숨을 내뱉었다.
그 직후 쓰러진 스테치의 뒤편에서부터 흙먼지 바람이 날아옴과 동시에 통로 전체가 흔들려 왔다.
쿠르르릉-.
아마 폭발의 여파로 통로가 무너져 내린 듯 했다.
스테치가 바닥에 쓰러진 채 눈을 감고 바닥만 쥐어뜯으며 꿈쩍도 하지 않자, 잠깐 뜸을 들인 메멘토 모템이 말했다.
『일어나.』
“시발…… 건드려도, 건드리지 않아도 터지면 이제 어쩌라는 거야…….”
따끔거려 오는 상처들 때문에 징징거리던 스테치가 눈을 번쩍 뜨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빛나는 돌이었다.
“뭐……?”
스테치가 눈알을 굴려 주변을 살피자, 그가 굴러 떨어져 온 통로 안은 빛나는 반투명의 광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동굴이나 던전에서 간혹 볼 수 있는 흔한 야광석이다.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스테치는 제대로 자리에서 일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통로 안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야광석의 빛을 받아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수정결정들. 던전의 벽 안쪽으로부터 뚫고 나와 형성된 각양각색의 광물 결정체들이 통로를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이 수정동굴은 정말이지 기대 이상인데. 눈에 보이는 광석들만 전부 팔아치운다 쳐도 부자가 되겠군.”
중얼거리는 스테치가 한걸음 내딛자, 그의 발끝이 바닥으로부터 튀어나온 수정 결정을 건드렸다.
빠지지직-.
그러자, 바로 전에 보았던 이상한 빛이 수정체로부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놀란 스테치가 뒤로 몸을 움츠리자, 잠시 뒤 수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빛을 잃었다.
메멘토 모템이 말했다.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이고 있던 것이 있었는데, 이걸로 확실해졌어.』
“뭔데?”
『너한테는 느껴지지 않겠지만, 무언가 이상한 마력이 던전 안의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어. 안쪽으로 갈수록 농도가 심해져서 나조차도 짜증이 날 지경이야.』
메멘토 모템의 말에 스테치는 동굴 안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마주친 몬스터들 기억나? 라타토스크, 미네랄 리저드, 스켈레톤. 던전 안쪽에서 마주친 놈들일수록 자극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 빠르게 폭발했어.』
“지속적으로 마력을 뒤집어쓴 탓에 녀석들의 몸이 불안정해졌다?”
『바로 그거야. 거기다 아까 전의 반응을 보면 단순히 몬스터들뿐만 아니라 던전 안의 오브젝트들도 죄다 영향을 받는 것 같아.』
스테치는 좀 전에 폭발한 스켈레톤의 모습을 떠올렸다. 폭발의 징조는 스켈레톤과 그것을 뒤덮고 있던 수정으로부터 함께 발현되었다. 순간 수정동굴을 바라보던 스테치의 감정이 경이로움에서 공포로 바뀌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 통로는 말 그대로 폭탄 밭이라는 소리가 된다.
메멘토 모템이 말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말인데…… 일이 안 좋게 돌아가고 있어.』
“왜? 대체 어떻게 이것보다 더 안 좋을 수가 있냐?”
스테치는 조그마한 자극이라도 피하고자 목소리를 낮추며 살금살금 걷기 시작했다.
『지나친 마력 농도 때문에 간단한 회복 스킬조차 사용이 안 되고 있어. 눈치 못 챈 거야?』
그 말에 자기 몸을 휘휘 둘러보던 스테치는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항상 상처가 나면 자동으로 치료해 주던 메멘토 모템이 어쩐 일인지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예상이지만, 이렇게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탈출 스크롤을 써도 에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위기 상황을 감지한 뒤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좌표를 지정해 술자를 탈출시키는 방식인데, 이렇게 마력 간섭이 심하면 자칫 잘못했다간 어디 더 깊숙한 흙더미 속 한가운데로 순간이동 할 수도 있다고.』
그 말에 스테치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전 폭발로 통로는 무너져 내린 상태. 다시 걸어서 되돌아 나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스테치의 생각을 예상한 모양인지 메멘토 모템이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진 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마력을 퍼뜨리는 녀석을 제거하면 탈출도 가능해질 거야.』
“그건 그나마 다행이네.”
스테치는 고개를 주억거리곤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안쪽으로 나아갈수록, 스테치가 마주치는 몬스터의 수도 점차 줄어들더니 결국엔 한 마리도 눈에 안 보일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수정으로 뒤덮인 이 통로는 갈수록 구조가 복잡해져 갔는데, 스테치는 거의 매 5분 간격으로 통로 어딘가에서부터 오는 폭발음과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지옥 같은 환경이니 몬스터들의 씨가 마른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상한데. 도무지 탐험등급 B로 지정된 저난이도 던전이라곤 생각하기 힘든 환경이야.’
던전의 난이도는 보통 던전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대부분 이 등급 표기는 실제 던전을 탐험할 때의 체감 난이도와도 잘 들어맞는다. 그런데 이렇게나 높은 위험도는 어째서일까?
고민하고 있던 스테치가 나선형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자, 곧 대공동으로 들어서는 거대한 문이 나왔다.
“결국, 여기에 올 때까지 마력 확산의 주범을 발견하지 못했네. 이 뒤에 숨어 있는 건가?”
스테치가 문을 톡톡 두들기며 반지에게 의견을 구했다.
마력 탐지가 가능한 메멘토 모템이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면, 분명 주변 오브젝트들을 폭탄으로 만든 녀석은 이 문 너머에 있으리라.
『아니, 설마…….』
말끝을 흐리는 메멘토 모템을 뒤로 하고 스테치는 육중한 철문에 두 손바닥을 대고 꾹 밀었다.
“고민해 봐도 소용없겠지. 바로 들어가자.”
수년 간 열려 본 적 없는 철문이 무거운 소리를 흘리며 열리기 시작했다.
파아앗!
문을 열자마자 망막을 때리는 강렬한 광채에 스테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거기에 익숙해질 때쯤,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무언가’였다.
둥실둥실 뜬 채로 공전하는 직경 2미터 크기의 바윗덩어리들 틈새에, 순수한 에너지를 빛처럼 뿜어내는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은 흡사 빛과 바위를 재료로 어설프게 빚어진 인간의 상반신 같았다.
“저…… 저게 뭐야?”
언젠가 보았던 타라스크의 모습보다도 거대한 형체에 스테치가 놀라서 뒤로 주춤거렸다.
『진(Jinn)이야.』
“정령이라고?”
정령은 마력과 사기가 섞여서 탄생한, 자의식이 존재하지 않으며 파괴만을 갈망하는 순수한 원소의 집합체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자연재해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 형성 조건이 너무나도 까다로운 탓에 어지간한 사람들은 일평생 마주칠 일조차 없는 존재였다.
스테치는 난생 처음 보는 존재에 압도되어 할 말을 잃었다.
『저 안을 봐.』
스테치가 빛줄기의 눈부심을 참으며 그 틈새를 억지로 쳐다보자, 정령이 체내에 무언가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알 수 있어…… 저건 아티팩트야.』
휘이익!
말하고 있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는지, 스테치를 향해 거대한 바위 하나가 날아왔다.
일반인이라면 어버버 거리다. 그대로 맞을 엄청난 기세였지만, 스테치는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간신히 피해 낼 수 있었다.
콰광!
애꿎은 바닥만 들쑤신 진은 천천히 ‘주먹’을 거둬들였다.
짐짓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그 동작을 노려보며 스테치가 마른침을 삼키자, 메멘토 모템이 말했다.
『스테치,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저 키퍼가 아티팩트와 융합해 버리면서 사방으로 자신의 마력을 퍼뜨려 간섭하고 있기 때문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움직이는 폭탄이 된 거야!』
“그럼 저놈을 해치우면 나갈 수 있단 말이잖아!”
스테치는 검을 뽑아 또다시 날아오는 바위를 칼등으로 받아 낸 뒤, 그대로 몸을 뺌과 동시에 무기를 바위 위로 휘둘렀다.
캉!
검날의 끝부분조차 안 박히는 단단함에 스테치가 이를 가는 한편, 메멘토 모템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마력이 가장 충만한 장소인 이 장소에 오래 머무를수록,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 심지어는 지금 쥐고 있는 검과 너 자신까지 붕괴되어 터져 버릴 거야!』
주먹이 잘 먹히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진은 아티팩트가 위치한 중심부를 노출시키며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대기를 떨리게 만드는 에너지의 스파크가 중심부의 전면에 모이며 거대한 구체를 생성한 순간,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광선이 스테치에게로 쇄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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