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84)
83화에계속 –
83화 복수의 시간
콰아앙!
제라드의 골드메라와 스테치의 페네트레이터가 격돌한 순간, 눈이 멀어 버릴 정도의 빛이 명멸했다.
바라크에 의해 인챈트 된 스테치의 검은 어지간한 무구를 박살 낼 정도의 절삭력과 내구성을 자랑했지만, 제라드의 골드메라를 상대로는 힘겨루기에서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그 사이 뒤로 빠져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스카이는 재빨리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바깥에 남아 있는 병사들을 모조리 쓸어버려! 왕자는 저 녀석에게 맡긴다!”
엘레나와 스카이, 그리고 그 부하들은 적병의 공격과 침입을 막기 위해 서둘러 성벽로와 망루 위로 향했다.
폭발의 여파로 정신을 못 차리던 외부의 잔존 병사들은, 엘레나와 스카이의 부하들이 쏘아 대는 화살에 놀라 방패를 들어 올린 채 뒤로 물러섰다.
“크…… 으아아악!”
제라드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악을 써대며 핏발 선 눈을 이리저리 굴려 댔다.
그가 찾은 것은 방어구도, 특이하게 생긴 검도 아닌 스테치의 손가락에 끼워진 은색 반지였다.
“그 반지는 내꺼다! 네놈 가지라고 그 고생을 한 게 아냐!”
“지랄하지 마!”
스테치는 제라드의 머리를 이마로 들이받으며 소리쳤다.
“고생이라고?! 스스로 시련을 받아 내기가 겁나서 남에게 떠넘겼던 쫄보 새끼 주제에에!”
검과 검을 맞댄 접촉면에서 튄 강렬한 스파크가, 제라드의 뺨을 핥고 지나갔다. 검을 쥔 두 사람의 손은 이윽고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으윽!”
제라드는 이를 꽉 앙다물었다.
혼자서도 대형 몬스터를 손쉽게 거꾸러뜨릴 수 있는 그가 왜 부하들을 대동하고 다니는가?
그것은 바로 그의 무기, 골드메라가 사용자에게 힘을 빌려주는 대가로 제물(리바운드)을 요구하는 아티팩트이기 때문이었다.
무리해서 아티팩트를 사용하고도 결판을 내지 못할 경우 패배는 기정사실이나 다름없기에, 자신의 결점을 커버해 줄 부하들이 항상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본대와 분리된 이 요새 안에, 그를 백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요새로 따라 들어왔던 병사들의 태반은 폭발의 충격으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제라드가 고민하는 사이, 스테치가 말했다.
“전력으로 덤벼! 오늘 이날을 위해서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해 왔는지 똑똑히 보여주마.”
『커스드 클록 전개!』
스테치의 몸 주위에서 떠오른 검은 입자가 뭉치더니, 칠흑같이 어두운 망토로 변화했다. 그러자 제라드의 팔다리는 모래주머니라도 달아둔 마냥 힘이 쭉 빠졌고,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두 사람의 파워 밸런스도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검을 크게 휘둘러 제라드를 멀리 떨쳐 낸 스테치는 한쪽 손을 내밀어 주문을 시전했다.
“《에어 불렛》!”
투콱!
단단한 무언가에 두들겨 맞은 제라드는 그대로 날아가 성벽에 파묻혔고, 스테치는 으르렁거리며 검 안에 탄을 장전해 넣었다.
이것밖에 안 된단 말인가? 고작 이딴 새끼가 함부로 남의 인생을 짓밟았단 말인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스테치를 향해 성벽을 박차고 달려든 제라드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고, 골드메라의 일격을 검으로 받아 낸 스테치는 수 미터 이상 뒤로 밀려났다.
‘뭐야? 갑자기 힘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메멘토 모템의 《에어 불렛》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주제에 바로 움직일 뿐만 아니라, 커스드 클록을 발동중인 자신의 근처에서 이런 괴력을 발휘하다니?
“착각하지 마라, 스테치 아텔리어!”
제라드가 윽박질렀다.
리바운드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골드메라의 힘을 여지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스테치를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 상대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방금의 일격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싸워 온 북부 전선의 몬스터들 중에 너 정도 녀석은 널리고 널렸어!”
쾅!
제라드의 검을 피한 스테치는 이어지는 발길질에 차여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의 격통.
스테치가 허공에 뜬 채 허우적대는 사이, 바로 코앞까지 추격해 온 제라드가 검을 휘둘렀다.
타앙!
당겨져 있던 페네트레이터의 타격부가 사출하며 골드메라를 강타하자, 검을 쥔 제라드의 팔이 위로 번쩍 들렸다.
“이익-!”
고작 강철검 따위가 아티팩트인 골드메라를 튕겨 냈다는 사실에 제라드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지상에 착지한 제라드와 스테치는 지체하는 일 없이 곧장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스테치는 탄피를 뽑아낸 뒤 새 탄을 장전했고, 제라드는 지면에 닿은 검을 그대로 올려 그었다.
대형 몬스터도 일격에 베어 가르는 공격.
빠른 스피드와 절륜한 위력을 모두 갖춘 이 일섬은 절대 피하거나 막을 수 없다.
골드메라가 발생시킨 충격파가 공기를 가르며 쇄도했을 때, 스테치의 손으로 바람이 모여들었다.
“《에어 버스트》!”
푸화악!
충격파에 의해 양분된 《에어 버스트》가 폭발하며,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던 난기류가 터져 나왔다. 강력한 풍압에 밀려 자신의 공격이 상쇄된 것을 본 제라드는 처음으로 경악했다. 그러나 그가 충격에 젖어 있는 것도 잠시. 스테치는 땅바닥을 양 손바닥으로 내리쳤고, 지면을 타고 빠르게 퍼져 나간 냉기가 제라드의 다리를 얼음으로 붙들어 놓았다.
“《테슬라》!”
제라드가 발을 비틀어 얼음을 깨고 탈출하기 전, 스테치는 한발 앞서 주변에 에너지 구체를 주변에 던져 놓았다.
《테슬라》 구체가 사정 범위 안에 들어온 제라드에게 전격을 퍼붓는 것과 동시에, 스테치의 손에서도 전기가 뿜어져 나왔다.
“끄아아아아악!”
검기로 바람이나 불꽃은 베어 버릴 수 있을지언정, 전기를 막아 낼 방법은 없었다.
스테치는 하얀 김을 모락모락 피워 내며 괴로워하는 제라드에게 소리를 질렀다.
“기분이 어떠냐!?”
첫 죽음이 감전사였던 만큼, 스테치는 제라드가 지금 무슨 고통을 겪고 있는지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전신의 체액은 끓어오르다 못해 말라비틀어지고, 사지는 자기 멋대로 경련한다.
단 몇 초만 지속해 줘도 시간 감각이 사라지고, 차라리 참수돼서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아아아아!’
이제는 덜덜 떨리는 몸으로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는 제라드. 골드메라의 힘은 사용자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어 주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그 정도도 부족했다.
힘이 더 필요하다.
“스테치……!”
제라드는 고통을 억누른 채 얼음을 깨부수고 천천히 스테치에게 걸어갔다.
골드메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힘이 몸에 새 활력을 불어넣었다.
상처는 치료되고, 정신은 점점 맑아진다.
“널 쳐 죽이고, 그 반지를 되찾겠다!”
『이 자식이 듣자듣자 하니까 무슨 헛소리야?!』
“처음부터 네 것도 아니었어!”
스테치와 메멘토 모템이 함께 윽박지르는 것과 동시에,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온 제라드가 그의 얼굴을 한 손으로 비틀어 쥐었다.
저항해 볼 틈도 없이 바닥에 스테치의 머리통을 메다꽂은 그는, 그대로 요새의 안뜰을 내달리며 스테치의 머리로 땅을 긁었다.
“으으윽-!”
제라드는 스테치를 있는 힘껏 앞으로 집어 던졌다.
물수제비처럼 바닥을 튕기며 날아간 그가 성벽 안에 몸을 푹 파묻자, 제라드는 검을 든 팔을 뒤로 한껏 재끼며 달려왔다. 그러나 데미지를 입음과 동시에 재생하기 시작한 스테치에게 어지간한 고통은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서지》!”
“흥!”
처음에 비해 확연히 빨라진 제라드를 쫓으며 스테치가 주문을 날렸지만, 도저히 눈과 손이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잡질 못했다.
안뜰 외곽을 빙빙 돌던 제라드는, 갑자기 달려들어 스테치의 목을 깊숙이 베고 지나갔다.
“그르륵-.”
조금만 더 안쪽으로 검이 들어왔어도 사망했을 것이다.
목에 난 틈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자 스테치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상처를 회복시켰다.
제라드가 외쳤다.
“주제 파악을 해라, 스테치! 지금만 해도 몇 번째지? 그 반지가 없었더라면 넌 진작에 내 손에 죽고도 남았어!”
“주제 파악을 못하는 건 네놈이겠지!”
『커스 디바우러!』
차고 있던 저주받은 팔찌가 스테치의 신체능력을 부스트로 한층 더 높게 끌어올렸다.
‘좀 더……!’
이를 악문 스테치가 손을 꽉 움켜쥐자, 착용하고 있던 완갑으로부터 푸른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는 제라드가 또다시 검기를 날리기 전에 먼저 그의 손이 닿을 거리 안으로 뛰어들었고, 망치처럼 검을 휘둘러 제라드의 골드메라를 후려쳤다.
뻐어억!
대포의 탄알처럼 하늘 높이 날아오른 제라드는 어마어마한 가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일순 정신을 잃었다.
‘?’
눈을 떴을 때, 그의 몸은 수십 미터 상공에서 추락 중이었다.
상반신은 검을 통해 전달된 충격으로 모든 뼈가 으스러져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아마 그는 땅에 떨어질 때까지도 왜 자신이 힘 싸움에서 밀린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으아아아악!”
스테치는 부러진 양팔을 늘어뜨리며 고통스럽게 울부짖었고, 메멘토 모템은 말없이 그런 스테치의 뼈를 재생시켜 주었다.
감비니 요새의 던전에서 얻은 장갑형 아티팩트, ‘폰두스’. 그 기능은 손에 쥔 물건의 질량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
스테치는 이것을 사용해 약 2kg 정도의 페네트레이터를 솜털마냥 가볍게 만든 뒤, 검이 타점에 도달하는 타이밍에 맞춰 수백 킬로그램에 가까운 질량을 얹어 파괴력을 극대화시켰다.
그야말로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성능이 천지 차이로 갈리는 장비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러 단점도 있었다.
생물에게는 능력을 사용할 수 없고, 증감 가능한 무게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군다나 증량한 무기로 공격할 시 발생하는 반동을 폰두스가 전부 흡수하진 못하기 때문에, 여차하면 팔을 박살 내도 금세 회복시킬 수 있는 스테치가 아니면 시도조차 못 할 사용방식이었다.
『끝났군.』
콰앙!
거의 피곤죽이 된 제라드가 땅에 떨어진 것은 그로부터 10초나 지나고 난 후였다.
모래먼지가 걷히자 보인 것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제라드의 모습이었다.
“크웨엑.”
제라드의 입에서 피 섞인 덩어리가 왈칵 쏟아졌다.
골드메라의 힘을 끌어 모아 신체가 단단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방금 전의 데미지는 너무 컸다.
“베네지아의 왕자도 별거 아니군. 고작 그 정도로 잘도 북부 전선을 수호하시겠어.”
스테치가 비아냥거렸다.
폰두스로 힘을 실어주느라 페네트레이터는 파괴되기 일보직전이었다.
날 표면은 골드메라와의 접전으로 이가 나갔다. 더군다나 주문을 난사하느라 마력을 꽤나 많이 소모해서 이제 더 싸우는 것도 무리였다.
“끝이다.”
“…….”
검을 들어 올리는 스테치. 그러자 갑자기, 등 너머로 스카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테치, 입구에서 떨어져!”
콰아아앙!
무너져 내렸던 감비니 요새의 입구가 무언가에 의해 박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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