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and Artifacts RAW novel - chapter (97)
96화에계속 –
96화 의뢰
해도 뜨지 않은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이른 시각에 잠에서 깬 스테치는 눈을 뜨고 나서야 자신이 카시아의 저택에서 하룻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을 채워 만들었는지 감도 안 잡히는 푹신한 매트릭스와 베게 덕분에, 길거리 노숙하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편안하게 숙면할 수 있었다.
다만 전날 점심때부터 밤늦게까지 북부에 대한 여러 생소한 지식들을 카시아로부터 들어 두느라 머리가 아파 올 지경이었다. 때문에 몸을 일으킨 스테치는 침대 끝에 걸터앉고선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으로 카시아가 부탁했던 일에 대해 먼저 떠올렸다.
‘누군가의 뒤를 캐라니…… 막상 하려고 보니 이것도 꽤나 까다로운 일이구먼.’
카시아가 스테치 개인의 정보수집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일을 맡긴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말했다시피 스테치는 배후자의 감시망에 포함조차 되지 않을 외부인이면서, 동시에 어떤 위협요소도 극복할 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스테치는 메멘토 모템의 불을 밝힌 뒤 침상에서 빠져나와 자그마한 탁자로 걸어갔다. 전날 밤 살펴보느라 놔둔 지도가 아직도 펼쳐져 있었다.
노벨리아 리버펠.
카시아로부터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그는 크로마토스 제국의 동쪽 끝이자 라켄 공국의 아래쪽에 위치한 도시에서 주로 활동한다. 거대한 상회를 바탕으로 사일라스에서 생산하는 물품 일체를 제국에 유통하는 대상인.
‘정보상을 통해서 그의 최근 행적과 비밀을 파헤쳐 보면…… 하지만 어떻게?’
스테치는 남부 태생으로서 뒷세계의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구축한 인맥도 탄탄하고, 마음만 먹으면 필요한 사람과 어떻게 접촉해야 할지도 잘 알았다. 하지만 북부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상인인 카시아의 도움을 받더라도, 진짜 유용하고 쓸모 있는 정보는 그녀가 개입할 수 있는 범위 그 너머에 존재하고 있을 터.
그는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나무 명패를 꺼냈다.
제국 출생을 증명해 주는 평민 계급의 신분증. 클라우디아 측에서 새 출발을 위해 준비해 준 물건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블랙 마켓과 접촉할 수 없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자신의 직업을 확실하게 정하는 것. 갑자기 나타난 일개 평민이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던전과 뒷세계를 기웃거린다니, 너무나도 눈에 띄는 행동이다. 그러므로 본래의 목표인 아티팩트 획득과, 뒷조사 임무를 가려 줄 적절한 위장 신분이 필요하다.
똑똑.
“실례합니다…….”
노크 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엘레나. 때마침 해도 뜨고 있었기 때문에 스테치는 하품을 하며 탁자 위의 지도를 접었다.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다는데요.”
“응, 같이 가자.”
식당으로 내려간 스테치는 먼저 자리에 앉아 있는 카시아를 발견했는데, 푸석푸석한 머리카락과 퀭한 눈은 어쩐지 잠을 설친 분위기였다. 진중하고 날카롭던 어제와는 달리 완전히 무방비한 그녀의 모습에 피식거린 스테치는 스프를 떠먹으며 말을 걸었다.
“카시아, 여기서 가장 가까운 모험가 길드는 어디지? 라이센스 시험 좀 보려고 하는데.”
“미르 항구 쪽에 지부가 하나 있어요.”
빵을 뜯어 먹던 카시아는 무언가 막 떠오른 듯 눈쌀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제 편으로 발급해드릴까요? 불편하게 시험 따위 치르지 않아도 될 텐데요.”
“그거 불법 아냐?”
“‘불법‘은 돈 없는 자들에게만 찍히는 낙인이랍니다. 슬픈 이야기지만요.”
카시아의 말에 스테치는 질려 버렸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라이센스를 취득해 두면 합법적으로 던전에 들어갈 수단이 생기는 셈이니 시간이 있을 때 해결해 두는 편이 좋았다.
식사를 마친 뒤, 빠르게 짐을 챙긴 스테치와 엘레나는 저택을 빠져나왔다.
문 앞에는 저택으로 올 때 타고 온 마차가 대기 중이었는데, 마차에 타기 직전 말콤이 잡다한 물품들이 들어 있는 배낭 하나를 건네주었다.
“보존 식량과 돈, 그리고 탐험에 필요한 장비를 넣어 뒀습니다. 그리고…….”
그는 배낭 안을 직접 뒤져 자그마한 구슬 하나를 꺼내 보였다. 혹시라도 깨질세라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것을 들어 올린 말콤이 말했다.
“통신구입니다. 직통 라인으로 카시아님과 연락하실 수 있으니, 필요할 때 써 주세요. 다만 명심하세요, 사용 가능횟수는 10번 밖에 안 되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통신구는 항상 페어로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제작 단가가 높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 고급품까지 쓸 생각인 걸 보면 카시아가 확실히 스테치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A급 탐험가 자격의 라이센스 카드입니다. 인증 절차를 마쳐 주세요.”
칙칙하고 후져 보이는 제국의 나무 신분증과는 달리, 길드에서 발행하는 라이센스 카드는 특수한 합금으로 이루어져 금속판이었다.
말콤이 장갑 낀 손으로 건네주는 라이센스를 스테치가 만지는 순간, 스테치의 정보를 기록한 카드가 은은한 빛을 뿜어냈다.
어린아이처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엘레나에게 스테치가 말했다.
“위조 방지 장치야. 소유자로 기록된 사람이 만져야만 발광 현상이 일어나는 합금인데, 합금 비율은 길드에서밖에 모르는 정보거든.”
똑같은 과정을 거쳐 엘레나에게도 카드를 넘긴 말콤은, 꾸벅 하고 허리 숙이며 말했다.
“모쪼록 주의하십시오. 향후 모든 것은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스테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엘레나와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 * *
2시간 정도 되는 지루한 시간을 견뎌 내고 다시 항구로 되돌아온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곧장 모험가 길드 본부로 향했다. 처음 항구에 도착했을 때 비하면 거리는 매우 한산했다.
스테치는 자신이 처음으로 길드에 방문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기술이고 뭐고 아무 근본조차 없었던 그는 라이센스 취득 시험에서 몇 번이고 떨어졌고, 보다 못한 베테랑들은 스테치를 포터(Porter, 짐꾼)로 부리면서 여러 기술들을 전수해 주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아마 진작에 던전 어딘가에 기어들어 갔다가 죽어 버렸을 것이다.
추억에 잠긴 채 걷다가 어느새 본부 건물 앞까지 다다를 무렵, 스테치가 엘레나에게 경고했다.
“엘레나, 미리 말해 두겠는데, 아티팩트는 되도록이면 남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하는 편이 좋아.”
“왜요?”
일반적으로는 아티팩트 하나를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며, 분배의 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는 획득한 아티팩트를 길드에 넘긴다. 애초에 2~3명의 인원수로 던전 키퍼를 쓰러뜨리면서 수많은 던전을 재패해 온 스테치가 비상식적인 것이다.
끼익-.
문을 열자 나타난 넓은 홀에는 새로운 의뢰를 수주받는 사람, 함께 활동할 사람을 구하는 사람, 혹은 정보 교환을 위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등등 각양각색의 모험가와 탐험가들이 있었다.
그중 상당수는 낯선 이들의 등장에 경계 어린 시선을 보내 왔다.
“…….”
스테치는 아랑곳하지 않고 엘레나와 함께 구인 의뢰가 붙어 있는 보드까지 걸어갔다.
적당한 의뢰가 없나 살펴보는 스테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누군가가 대충 휘갈겨 놓은 듯한 두꺼운 의뢰 용지 뭉치였다.
-라켄 공국까지 가는 호위 구함. B급 이상 라이센스 보유자만 받음!
-일당 최소 200 쿼드에서 시작, 협상 가능.
-식사 제공.
선뜻 알아보기가 힘든 그 글씨체의 내용은 얼핏 보기엔 그저 그런 조건을 제시하고 있었다. 라켄 공국까지의 거리가 상당하다는 점과 남부의 화폐 단위인 크라운과 북부의 쿼드의 단위당 가치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그다지 매력적인 제안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북부 대륙의 육로 대부분이 그다지 안전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지역을 오가는 상단의 경우 상당한 수의 호위를 고용하는 게 일반적인데, 저렇게 애매한 조건이라면 지원자가 그다지 많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한테 중요한 건 임무의 위험도가 아니니까.’
스테치는 구인지를 뜯어서 창구로 가져갔다. 접수를 받는 남자는 종이에 적힌 내용과 스테치의 얼굴을 번갈아 훑어보더니,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등급은?”
“A.”
그 순간, 엘레나는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이 움찔거리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뭐지?
라이센스 카드에서 나오는 빛에 접수를 받던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리긴 했지만,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스테치에게 새로운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어디 보자…… 집합 장소는 항구의 서쪽 입구 앞이군요. 그런데 서두르셔야 할 겁니다. 이 의뢰가 게재되는 기간은 오늘 점심 때까지로 되어 있거든요.”
“그건 지금이라도 서두르면 상관없는 문제고…… 혹시 의뢰를 받아 간 사람이 저희 말고도 또 있었나요?”
“한, 다섯 명쯤 되려나? 솔직히 그 정도라도 모인 게 기적이죠. 요즘 누가 이런 조건으로 일 합니까?”
남자의 비아냥은 알게 모르게 스테치에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A급이나 되는 탐험가가 뭐 아쉬울 게 있어서 이런 일이나 하냐는, 시기 어린 말투. 스테치는 입술 끝을 삐죽이며 서류를 들고 엘레나와 함께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뭐였나요, 방금 그 이상한 분위기는?”
묘하게 적대적인 기류로 가득 찬 길드에서 나오자마자 엘레나가 물었다. 한참을 즐겁게 떠들던 이들조차 스테치 일행이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선 눈을 떼지 못했다.
“시답잖은 텃새랑 질투일 뿐이야.”
웬 듣도 보도 못 한 새파랗게 어린놈이 A급 딱지까지 달고 나타났으니, 마음에 들래야 들 수가 없었을 테지.
스테치는 콧방귀를 뀌며 빠른 발걸음으로 항구의 서쪽 입구까지 걸어갔다. 마차에서 내렸을 때가 11시쯤이었으니, 점심까지는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잠시 후.
집합 장소에 도착한 스테치의 눈에 막 출발 준비를 마친 마차들이 눈에 띄었다.
남부와는 다르게 체모가 더부룩한 말들이 이끌고, 튼튼하게 강철과 체인으로 보강된 바퀴가 달린 마차가 다섯 대 가량 늘어서 있었다.
막 선두의 마차에 오르려던 늙은이는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스테치를 쳐다보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내려왔다.
“넌 뭐냐?”
“의뢰를 받고 온 사람입니다. 라켄 공국으로 가면서 호위를 구하시던 분이 맞으신지요?”
스테치가 내미는 서류를 낚아챈 늙은이가 글자들을 빠르게 훑어보더니,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서류를 거의 집어 던지듯 스테치에게 되돌려 주었다.
“A급이라고? 지금껏 어중이떠중이들만 와서 잘난 척 하는 꼴 보느라 실망스러웠는데, 이제야 좀 제대로 된 사람이 왔군. 그런데 정말 일당은 200으로도 괜찮겠어? 요즘 좀 빠듯해서 그다지 줄 수 있는 게 많진 않은데?”
“그런 거 신경 썼으면 왔겠습니까?”
“말이나 못하면…… 어서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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