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01)
던전 견문록-101화(101/319)
# 101
던전 견문록
제 102 화
“1차 방어선이 뚫렸습니다! 현재 2차 방어선 교전 시작! 하지만 오래 못 버팁니다!”
“피해 상황은? 아니, 생존자는?”
“정확한 피해는 현재 확인 중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선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은 3프로 미만입니다!”
상황실에 배치된 오퍼레이터들이 연신 비명처럼 외쳤다. 그때마다 미궁의 방어를 책임지는 이호준 팀장의 얼굴이 마구 일그러졌다.
“제길!”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정체불명의 집단이 미궁을 습격한 지 이제 겨우 20분 남짓, 1차 방어선이 무너졌다. 군용 화기와 나름대로 엄선한 탐색자들을 배치해 두었는데도 겨우 20분을 버티지 못했다.
“방어용 화기가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침입자들, 속도 유지한 채 2열과 충돌! 벙커 라인! 버티지 못했습니다! 라인 무너졌습니다!”
5층, 아니, 6층의 크리쳐들까지 상대할 수 있게 설계된 방어 설비들이 무력화되는 데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잠깐에 불과했다.
군용 화기의 사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통로를 확장해 둔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었다.
지난 전쟁에서 얻은 데이터를 토대로 이 정도의 방어 설비라면 충분한 저지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모든 것이 오판이고 교만이었다.
믿고 있던 중화기들은 크리쳐들의 거죽을 찢는 데 그치고 흉성만 더욱 돋웠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하리마오 미궁이 그토록 공을 들인 중앙 통로는 도리어 적이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는 길이 되었다.
“빌어먹을!”
이호준의 욕설에 오퍼레이터 중 하나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일반 탐색자들의 피해가 극심합니다! 더 이상의 교전은 무의미합니다!”
“빼지 마! 일반 탐색자들까지 빠지면 던전 베이비들도 위험해! 지원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야 해!”
“하지만!”
“버텨! 다 죽더라도 지켜야 해!”
비정하다면 비정한 명령, 오퍼레이터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새끼들아, 나도 속이 속이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나가 전투에 합류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역할은 지원이 도착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미궁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호준은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도록 주먹을 세게 쥐고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하지만 유선으로 연결된 카메라에서 보내오는 화면을 보면서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피가 튀지 않는 곳이 없는 탓이다.
“차라리 흑호들을 투입하자.”
그런 그를 향해서 곁에 있던 김진태가 말했다. 흑호 하나하나가 귀중한 샘플이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흑호는 다시 소환하면 그만이야. 하지만 탐색자들은 돌아오지 않아.”
고민은 길지 않았다. 연신 밀리고 있는 2차 방어선의 상황이 워낙에 위급한 탓이었다. 2차 방어선까지 밀리고 나면 바로 하리마오 미궁의 중심과 연결되는 중앙 통로였다. 외곽보다 몇 배는 공을 들인 방어 설비와 병력이 있지만, 얼마나 저지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였다.
그래서 이호준은 흑호들을 전투에 투입시켰다.
“흑호 50기! 전선에 합류합니다!”
검은 바탕에 붉은 줄무늬가 위협적인 거대한 맹수들이 중앙 통로를 내달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기세만큼은 침입자들에 못지않은 흑호들의 돌격에 상황실의 모두가 굳은 얼굴로 화면을 지켜보았다.
“아……!”
흑호로 적들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인 걸까. 기세 좋게 달려들던 흑호들이 갈기갈기 찢겨져 사방으로 피와 살점이 흩날렸다.
그 광경을 지켜본 오퍼레이터들의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질리고 말았다.
“뭐 해! 흑호들이 시간을 벌고 있는 동안 병력 추슬러서 뒤로 빼!”
하지만 이호준은 이미 흑호만으로는 상황을 반전시키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흑호가 5층에서는 제법 강한 축에 속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5층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였다.
만약 흑호들의 투입으로 상황이 나아질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이 정도로 전황이 불리하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테니까.
“후방에서 대기 중이는 팀들에게 알려! 어떻게든 중앙 통로에서 적을 저지하라고.”
그사이에도 흑호들은 계속해서 맹공을 당하고 있었다.
적들은 마치 어린아이라도 상대하듯 그 거대한 흑호의 몸을 반으로 찢어발기고 다시 또 조각을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호의 수는 줄지 않았는데 김진태가 계속해서 흑호를 소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종 실험을 통해 힘이 향상된 기존의 흑호로도 막지 못한 적이다. 새롭게 소환된 흑호들은 말 그대로 학살당할 뿐이었다.
“지원 온다던 새끼들은 왜 안 오는 거야? 애들 다 죽고 오겠다는 거야, 뭐야!”
***
“상황이 안 좋아 보인다.”
흑호들이 통로를 따라 달리는 것을 본 정찬식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흑호들까지 동원될 정도면 말 다 했지.”
이준영의 대꾸에 정찬식이 눈살을 찌푸렸다. 타국의 미궁들이 공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소집령이 떨어졌다.
탐색을 나간 팀을 제외하고는 개발국에 소속된 거의 모든 팀이 현재 하리마오 미궁에 집결해 있었다.
전열에 배치되어 떠나간 탐색자의 수만 해도 200여 명 이상이다. 그런데 지금 추가적으로 흑호들이 전선에 투입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수십 마리의 흑호가 중앙 통로를 따라 달려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추가적으로 흑호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위험한데? 밀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박살이 나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 지나간 흑호들은 못 보던 놈들이다.”
미궁이 수용할 수 있는 총 수용량을 꽉 채운 흑호들이다. 그런데 지금 새로운 흑호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전선에 투입된 흑호들이 어찌 되었을지는 빤했다.
“어? 저기 앞줄 애들 돌아온다.”
누군가의 말에 정찬식을 비롯한 던전 베이비들의 얼굴이 차갑게 얼어붙고 말았다.
“마흔둘, 마흔셋… 저게 다야?”
피투성이가 되어 도망치듯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인원을 본 이준영이 신음을 내뱉었다.
전선에 배치되었던 탐색자의 수는 200인데 돌아오는 이들의 수가 50을 넘지 않았는데 그 꼴이 말이 아니었다.
“상황은?”
정찬식은 개중 멀쩡한 던전 베이비를 붙잡고 물었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던전 베이비가 흔들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저 앞은 지옥이다.”
***
전열에서 탈출해 온 탐색자 중 중상자들이 제외되었다.
그렇게 남은 탐색자의 수가 서른네 명, 부상자의 비율이 낮은 건 전황이 그만큼 치열해 부상자를 후송할 시간이 없는 탓이었다.
“어떻게 하지? 계약에 이런 이야기는 없었잖아. 우린 5층의 크리쳐만 막으면 된다고…….”
“미궁에서 평생을 노예처럼 살다 겨우 올라왔는데 또 미궁을 위해 싸우다 죽으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난 빠지겠어.”
최후방에 대기 중이던 던전 베이비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부터 큰 의리 없이 계약으로 하리마오 미궁과 인연을 맺은 이들이다. 불리한 전황 속에서 미궁을 끝까지 지켜야 할 의리는 없었다.
“돈값은 해야지. 언제부터 탐색자들이 양아치처럼 상황 봐가면서 이 바닥 생활 했다고.”
그런 그들을 향해 이준영이 으르렁거리면서 말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그나마 있는 병력이 반으로 쪼개질 판이니 계약을 들먹이며 빠질 구멍을 찾는 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다. 절로 그녀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위약금은 물겠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잘못은 아니라고. 애초에 무리한 임무는 배제하기로 하고 계약한 거 아닌가?”
그래도 나름 지저개발국에서 엄선해서 선발한 이들이라고 하더니 결국은 적을 앞에 두고 사분오열되고 말았다.
“너, 이…….”
화가 나 앞으로 나서려는 그녀를 정찬식이 붙잡았다.
“내버려 둬. 이해 못할 일도 아니야.”
“하지만!”
“잊었어? 살아남는 게 최고의 미덕, 그게 우리의 철칙이었어.”
던전 베이비들은 정의감과 신념으로 무장한 슈퍼 히어로가 아니었다. 온갖 더러운 꼴을 보면서도 마침내 살아 올라온 지저의 생존자들일 뿐이다.
의리니 정의감이니 떠들어대던 던전 베이비들은 애초에 지상을 밟지도 못했다. 혹독한 지저에서 살아남기에는 그들은 너무나 선하고 굽힐 줄을 몰랐다.
우스갯소리로 좋은 던전 베이비는 죽은 던전 베이비뿐이라는 말조차 있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던전 베이비 특유의 유대감에 호소할 상황도 아니었다. 애초에 돈으로 묶인 계약, 털어버리면 그만인 탓이다.
“그쪽도 같이 빠지자고. 흑호가 장난감처럼 찢겼어. 우리 중에 흑호를 그렇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 있나?”
오히려 그들은 이준영과 정찬식을 설득하려고 했다. 이것이 그들이 보이는 최선의 호의. 하지만 이준영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리까지 빠져나가면…….”
동료 김진태가 핵과 함께 묶여 버린 탓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후방에서 출발한 흑호들이 통로를 가로지르는 간격이 더욱 짧아지고 있었다.
좋지 않았다. 그만큼 전방에 투입된 흑호들의 소모가 극심하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지원이 곧 올 거라고!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그녀가 외쳤지만 던전 베이비들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보안 규정이 있는데 어디서 지원을 끌고 오겠어. 와봐야 고작 팀 단위로 하나둘이겠지.”
군대의 지원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개발국과 군은 앙숙이었다. 한때는 미궁의 운영권을 두고 대립까지 했으니 이제 와서 군이 나설 리가 없었다.
애초에 군과의 관계가 좋지 못해 방어 설비를 간신히 5층과 6층의 크리쳐들로 상정하고 만들어야 하지 않았던가.
“그럼 그쪽도 너무 늦지 않게 결정을 내리기를 기도할게.”
그렇게 최후방에 남아 있던 던전 베이비 중 반수가 떠나가고 말았다.
이제 남은 이들이라고 해봐야 김진태와 직접적으로 인연이 있거나 아니면 눈치를 살피느라 미처 떠나지 못한 던전 베이비들 뿐이었다.
“제길!”
이준영이 일그러진 얼굴로 애꿎은 땅만 걷어찼다.
“크아아아악!”
그 순간 새롭게 전선을 향해 달려가던 흑호 하나가 비명과 함께 찢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마침내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타라라라라락!
통로에 설치되어 있던 전자동 중화기 수십 정이 불꽃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
포탈 앞에 선 김진우는 쏟아지듯 튀어나온 사내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봐, 혹시 지원 요청을 받고 온 거라면 그냥 돌아가. 저 안은 지옥이야, 지옥.”
개중에 한 사내가 그의 앞을 막아서며 차갑게 말했다.
“지옥?”
“심층에서나 볼 법한 놈들이 달려들고 있어. 절대로 우리만으로는 못 막아. 지금 있는 병력도 빠지는 판국이니 당신도 괜한 위험 자초하지 말라고.”
이미 한바탕 하고 온 모양인지 사내의 온몸은 피투성이였다. 벌겋게 핏대가 선 눈동자를 보니 직전까지 전투에 참가해 있다가 몸을 빼낸 모양이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그때 나타난 김주혁 차장이 사내를 보고 버럭 소리쳤다. 사내는 쳇 하고 혀를 차더니 이내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난 분명 경고했다.”
사내의 말이 머리에 남아 김진우는 김주혁 차장에게 눈빛으로 설명을 요구했다.
“끄응. 들은 대로 상황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기존의 병력도 힘이 달려 지상으로 복귀하는 중입니다.”
김주혁 차장은 거짓말로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사실대로 말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저 말고 다른 지원 병력은 없습니까?”
“현재 레벨 8 이상의 던전 베이비들로 병력을 추려놓았습니다.”
“왜 바로 투입하지 않고…….”
전화를 통해 다급하게 구원 요청을 할 때는 언제고 병력을 모아놓고 투입도 하지 않았다니 의아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눈살을 찌푸린 그를 보며 김주혁 차장이 말했다.
“김진우 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