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02)
던전 견문록-102화(102/319)
# 102
던전 견문록
제 103 화
“저를 말입니까?”
그렇게 되묻는 김진우의 표정이 복잡했다.
“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미궁을 침입한 적은 최소한 심층 크리쳐 이상의 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미궁에 배치된 중화기는 어지간한 5층, 6층의 크리쳐들을 상대로 충분한 저지력을 검증 받은 것들인데…….”
[어떻게 할까요?]김주혁 차장의 설명 사이로 불쑥 끼어드는 기묘한 울림, 안젤라의 음성에 김진우가 흘깃 포탈 쪽을 바라보았다.
[계획대로 해. 먼저 제안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알겠어요.]어쩐지 신이 난 듯한 목소리에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안젤라의 기척이 포탈 너머로 사라지고 이내 완전히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김진우 씨?”
“아, 네. 듣고 있습니다.”
“어쨌건 지원 병력이 들어가도 전황을 뒤집기에는 몹시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이 미궁은 대한민국에게 있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합니다.”
야심차게 발족한 지저개발국 입장에서는 언제 주인을 찾을지 모르는 미궁보다는 이미 활성화된 미궁이 더욱 중요한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수많은 던전 베이비와 탐색자들의 생명보다 중요할까 생각하면 김진우의 대답은 회의적이었다.
“심층의 크리쳐가 일백이라 하셨죠?”
“네? 네, 그렇습니다. 지금 그에 맞춰서 레벨 7 이상의 인원만 100여 명 가까이…….”
김주혁 차장은 아무래도 대한민국 유일의 12레벨 탐색자인 김진우가 상징적으로 지원팀을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이미 블랙 머천트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마당에 하리마오 미궁의 편을 들었다가는 암상인과 척을 지고 만다.
그래서 그는 김주혁 차장의 제안을 거절했다.
“네?”
그의 말에 김주혁 차장이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가려는 김주혁 차장의 말을 그는 가차 없이 끊어버렸다.
“저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어째서?”
김주혁 차장은 꿈에도 그가 거절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뜨악한 얼굴을 했다.
“김주혁 차장님이 말하는 사명감도, 애국심도 저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 죽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그의 짐작대로 지금 하리마오 미궁을 공격한 이들이 블랙 머천트의 용병이라면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영웅급 용병의 수가 무려 일백이다. 요새에 대기 중인 모든 나가를 끌고 와도 층간 페널티가 4층이나 중첩되어서야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자리까지 온 것은 확인해 볼 것이 있어서였다. 또한 이준영 역시 가능하면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기존에 소집된 지원 병력을 투입하는 것까지는 막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가 팔짱을 끼고 포탈로부터 한 걸음 물러났다.
[주인님.] [어떻게 됐지?]김주혁 차장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모습을 보며 김진우는 안젤라의 텔레파시에 집중했다.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는 저를 신뢰하지 않더군요.] [멍청한…….]미궁에 남아 있는 인원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당사자가 걷어 차 버렸다.
[시간이 많지 않아요. 벌써 여기까지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있답니다.]안젤라는 어쩐지 지금의 상황이 즐거운지 잔뜩 들뜬 기색이다. 어쩌면 이 성질 고약한 흡혈귀는 주인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을 즐기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떻게 할까요?]기대감 가득한 질문에 김진우가 눈을 질끈 감고 대답했다.
[핵을 추출한다.] [현명한 판단이에요.]텔레파시가 채 끝나기도 전에 포탈의 표면이 요동을 치더니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어? 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포탈이 있던 자리를 보며 김주혁 차장이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아무래도 늦은 것 같군요.”
포탈이 사라지기 직전 느껴진 에너지의 파동은 분명 김진우도 여러 번 느껴온 것이다.
그간 그의 손에 살해당한 미궁의 주인들과 미궁이 완전히 분리되었을 때 몇 번이고 느껴온 파동이었다.
***
지저개발국은 완전히 난리가 났다. 미궁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져 버린 것이다. 적들이 중앙 통로를 통과했다는 그 어떤 보고도 없이 포탈이 사라지고 연결이 끊겼으니 난리가 날 만도 했다.
완전히 뒷전이 되어버린 김진우는 김주혁 차장이 대기하고 있던 지원팀을 탐색대로 재구성하는 것을 지켜보다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안젤라가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시키신 대로 모두 처리하고 왔어요.”
마치 칭찬이라도 해달라는 듯 머리를 내미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김진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피부터 좀 닦지?”
아래턱을 완전히 적신 붉은 액체, 분명 일부러 닦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양손에 가득 묻힌 핏자국을 아직까지 달고 있을 리 없었다.
그의 타박에도 그녀는 배부른 고양이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다.
“수고했다는 말부터 해주셔야지요. 저는 주인님을 위해 이렇게 고생하고 왔는데.”
김진우는 차마 그녀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입가와 손에 묻은 피가 누구의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탓이다.
한참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그녀는 결국 입을 삐죽 내밀고 보고했다.
“목표물 설득 시도했으나 실패,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핵을 추출했습니다.”
“네 모습을 본 사람은 없겠지?”
“없어요. 산 사람 중에는요.”
위험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녀를 보며 김진우는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저토록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본질이 얼마나 음험하고 사나운지를 그는 뼈저리게 느꼈다.
“미궁을 습격한 적들은?”
“바로 몸을 빼내던데요.”
그나마 다행이었다. 침입자들의 목표가 미궁의 제거가 아닌 인간들의 말살이었다면 막을 방법이 없는 탓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침입자들은 핵이 제거당한 미궁에는 볼일이 없었는지 그대로 몸을 돌려 빠져나갔다.
정찬식 일행이 그때까지 살아 있었다면 아마도 이준영도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 그의 속내를 들여다본 것일까. 안젤라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생존자들은 살아남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 그 정도 파동이었으면 아마도 인근의 크리쳐도 미궁의 주인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느꼈겠죠. 지금쯤이면 침을 질질 흘리면서 찌꺼기라도 먹겠다고 미궁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걸요.”
악취미였다. 그녀는 지금 이준영 일행의 안위를 걱정하는 주인의 염려를 탐식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자극하고, 끝내 그 안에서 자라난 온갖 마이너스적인 감정을 먹어치우고 마는 그녀의 모습이 지독스러울 정도로 이질적이다.
“적당히 하지? 더 이상은 봐주기가 힘들군.”
그대로 두었다가는 머리끝까지 기어오를 기세인지라 김진우가 정색했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그의 기세가 돌변하자 입을 다물었다.
농담이 아니라 더 장난을 쳤다가는 그가 정말로 화를 낼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주인은 지상인답게 다정다감하고 자애로운 성격이기는 했지만, 이따금씩 보이는 모습은 그 어떤 지저의 귀족보다 더욱 차갑고 살벌했다.
그래서 그녀는 선을 지키기로 마음먹고 아양을 떨었다.
“그보다 여기 추출해 온 핵이에요. 5층에 있기에는 좀 아까운 놈이던데요.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지만.”
그녀가 품에서 꺼내 든 푸른빛의 다운 잼은 누군가의 피에 절어 완전히 붉은 빛이 되어 있었다.
정말로 악취미야.
이번에는 화를 내기도 뭐한지라 결국 김진우는 한숨을 내쉬고 피 묻은 최상급 다운 잼을 받아 들었다.
***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국가들이 이번 사태에서 미궁을 잃었다.
뉴스에서는 연신 속보라며 미궁에 대한 소식을 전해왔고, 그간 탐색자들이니 지저니 잊고 살던 사람들 사이에 다시금 지저의 존재감이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10년 전의 전쟁을 떠올리고 불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사람들은 지난 전쟁의 승자를 인류로 기억하고 있었다.
감히 패퇴한 지저의 세력이 다시 지상을 넘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김진우는 부모님과의 문제를 피해 도망치듯 지저를 찾았다. 당분간이라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왕좌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암상인의 방문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재미있는 소식이 있어서 겸사겸사 지나는 길에 들렀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즐거운 기색의 암상인은 천연덕스럽게 떠들어댔다.
“저번에 함께 방문한 그 흑호의 미궁 있잖습니까? 그 미궁이 얼마 전에 공격 받았답니다.”
마치 속을 들여다보듯 말간 눈동자에도 김진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꾸했다.
“그런가?”
“네. 정확하게 말하면 핵만 탈취당한 것이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김진우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암상인과 블랙 머천트는 분명 그의 개입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적당히 사실을 섞어 대꾸했다.
“정체불명의 집단이 공격했다더군.”
“오! 알고 계셨습니까?”
“지상에는 뉴스라는 게 있거든. 어지간한 정보는 금방 퍼지기 마련이야.”
암상인이 호들갑스럽게 맞장구를 쳤다.
“근데 듣기로는 그 침입자들이 저층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놈들이었다더군.”
“그렇습니까?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군요. 파수꾼이 나섰을 리도 없고 5층에 그런 놈들이 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죠.”
“그러니까 말이야. 근데 침입자들의 모습이 공교롭게도 내가 아는 어딘가의 집단과 비슷하더군.”
속내를 감춘 대화가 자꾸만 언저리를 맴돌았다. 서로가 서로를 탐색하는 지루한 대화 속에서 먼저 속내를 드러낸 것은 암상인 쪽이었다.
“뭐, 사실 저희 쪽에서 손을 쓰긴 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암상인은 솔직하게 블랙 머천트의 개입을 인정했다.
“어째서지? 블랙 머천트는 흑호의 미궁의 존속을 인정한 것이 아니었나?”
“글쎄요.”
말꼬리를 길게 뺀 암상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대답했다.
“인정했다기보다는 그저 보류해 두었을 뿐입니다. 자작님께서 선택을 보류하신 것처럼 저희도 선택을 보류한 것이지요.”
금세 말머리를 돌린 암상인의 한마디에 김진우는 애써 태연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암상인이 히죽 웃었다.
“그러는 자작님도 다른 마음을 품고 계시던 것 아닙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암상인과는 다르게 김진우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꼬투리를 잡힐 테니 지금은 최대한 발뺌하는 게 최선이었다.
대체 어떤 식으로 자신의 개입을 알아낸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정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만약 그랬다면 지금의 길고 지루한 대화는 없었을 테니까.
“뭐, 좋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지저에 비일비재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의외로 선선히 물러나는 암상인의 모습에 김진우는 도리어 속이 불편해졌다. 그런 그를 보며 암상인이 말했다.
“이런 일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지저다운 사건 아니겠습니까?”
“지저다운 사건?”
어딘지 기묘한 울림이 있는 말이라 그가 반문하니 암상인이 예의 그 말간 눈을 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핵을 탈취해 간 범인이 앞에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군요.”
암상인은 정체불명의 누군가를 향해 이야기한다고 했지만, 그 대상이 명백하게 김진우임은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걸 느낀 순간 김진우는 알 수 있었다.
흑호의 미궁은 애초부터 들러리였다.
그들의 명멸 따위는 애초부터 블랙 머천트의 안중에도 없었다. 지상인들의 의도니 뭐니 떠들어댔지만, 결국은 아무래도 좋았던 것이다.
블랙 머천트의 심사 대상은 흑호의 미궁과 지상인들이 아닌, 김진우와 나가들이었다.
“그 누구보다 지저의 존재다운 일 처리 방식이었다고.”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는 심사를 통과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