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04)
던전 견문록-104화(104/319)
# 104
던전 견문록
제 105 화
[소환석을 통해 고대의 영웅이 소환되었습니다.] [지저와 지상의 통로를 지키던 파수꾼 헤임달이 깨어났습니다.]번쩍이는 빛이 사라지고 모습을 드러낸 헤임달은 지저의 어둠과는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깃털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새의 모습이었다.
대지를 딛고 선 두 발은 강인하고 억세 보였으며 그 발톱은 더없이 날카로웠다. 머리에 돋아난 붉은 벼슬이 헤임달이 숨을 쉴 때마다 푸르르 떨어댔다.
“헤임달은 땅 위와 땅 밑 세상의 경계를 지키던 파수꾼입니다.”
헤임달을 본 모리건이 말했다.
“쓸 만한가?
“헤임달의 눈은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지만 결코 등 뒤를 돌아보는 법이 없습니다. 그 탓에 제 주인의 궁전이 불타오르고 있는지도 모르고 최후의 최후까지 제 할 일만 하던 멍청한 놈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 경멸의 빛이 떠올라 있다.
“파르테논 놈, 감히 나를 헤임달 따위와 비교하다니.”
그녀는 자신을 교환하는 조건으로 헤임달을 내세운 파르테논에게 이를 갈아붙였다.
“근데 말이야.”
그런 그녀에게 김진우가 신음처럼 한마디 꺼냈다.
“파수꾼이고 뭐고 다 좋은데, 왜 저런 모습이지?”
혹시라도 상급 나가 마법사들의 실험 때문에 무언가 어그러진 것은 아닌지 그의 얼굴에 걱정이 한 가득이다. 하지만 모리건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헤임달은 전쟁을 알리는 파수꾼, 새벽닭이니까요.”
***
붉은 벼슬과 축 늘어진 볼, 하늘을 날기에는 지나치게 비대한 몸까지, 헤임달은 영락없는 수탉의 모습이었다.
차라리 황당할 지경이다. 같은 새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모리건은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런데 가슴팍에 머리를 묻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헤임달은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덩치만 빼면 어딘가의 양계장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닭이라고 해도 믿어질 지경이다.
“그는 지저에서 가장 목청이 좋은 자, 한번 깨어나 울면 온 지저에 그의 울음소리가 퍼져 나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단 한 번도 마음껏 울지 못했지요.”
“그래서 닭인가?”
모리건의 설명에 묘하게 납득이 갔다. 그 기묘한 감정에 그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멍청하긴 하지만 약한 놈은 아닙니다. 헤임달은 전쟁의 파수꾼이자 싸우는 닭, 투계(鬪鷄)이기도 하니까요.”
하기야 저 억세고 강인한 발톱만 보아도 어지간한 크리쳐 따위는 단숨에 찢어발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닭이 닭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근데 왜 깨어나지를 않지?”
게다가 수시로 고개를 꾸벅거리며 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고대 영웅들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기분이라 김진우는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헤임달이 경계를 지켜온 것은 헤아릴 수도 없는 오랜 시간, 무료한 파수꾼은 하루 중 대부분을 잠으로 보낸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각인도 하지 않았는데?”
모리건처럼 대뜸 깨어나자마자 싸우자고 달려들기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소환석에서 깨어났으니 주인을 택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꾸벅꾸벅 졸고 있는 헤임달은 도통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제가 깨우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모리건이 냉큼 달려가 헤임달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그녀가 바로 지척에 다가서는데도 세상모르고 자고 있던 헤임달이 충격에 나자빠지는데,
“꼬꼬?”
그 비명 소리마저도 닭의 그것과 완전히 똑같았다.
“새로운 주인이시다. 예를 표해라.”
어느새 전장의 까마귀로 돌아간 모리건의 살기 넘치는 음성에 눈을 끔벅거리던 헤임달이 벌떡 일어났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수탉의 입을 통해 나온 음성은 뜻밖에도 웅장하면서도 위엄이 있었다.
‘나는 지켜보는 자, 그리고 전쟁을 알리는 자. 그대는 내가 지켜야 할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고대의 영웅 헤임달이 자격을 시험합니다.] [헤임달은 한번 맡은 임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완수해 내는 고집불통입니다. 대답에 따라 긍지 높은 파수꾼은 당신의 자격을 보려 할 겁니다.]우스꽝스러운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태도였지만, 김진우는 도리어 피식 웃고 말았다.
헤임달의 눈가가 꿈틀하더니 벼슬이 날카롭게 일어섰다.
‘그대는 아직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의 태도에 아무래도 헤임달이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웃음을 거두기는커녕 노골적인 비웃음을 머금었다.
“글쎄. 내 가치를 그대가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 제 주인조차도 지키지 못한 반쪽짜리 파수꾼이 이제 와서 누굴 지킨다는 말인가?”
‘감히!’
“감히?”
비웃음이 사라진 김진우의 얼굴은 차가웠다.
“모리건도 그렇더니 고대의 영웅이란 족속은 하나같이 건방지고 버릇이 없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그대가 상상할 수도 없는 오랜 세월 동안 지저를 지켜온 파수…….’
“그리고 한 것도 없었지. 지켜봤을 뿐이잖아. 그런 주제에 이제 와서 누가 누굴 시험해?”
그간 쌓여온 스트레스가 많은 것일까. 하기야 바로 얼마 전에도 자신을 두고 저울질을 한 블랙 머천트가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또다시 헤임달이 자격을 시험한다고 하니 심기가 불편할 만도 했다.
‘나의 임무는 지상과 지저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지상과 지저의 경계가 무너진 지가 언젠데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무너지다 뿐인가, 전쟁까지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도 지상의 인간들은 꾸준히 지저를 들락거리고 있다.
‘믿을 수 없다.’
“네가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야. 근데 말이야,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임무가 뭐냐고 했지?”
‘음.’
몰아치듯 쏟아지는 김진우의 신랄한 말에 잠시 멍한 얼굴을 해 보인 헤임달이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에게 줄 임무는.”
김진우의 얼굴에 비틀린 웃음이 떠올랐다.
“집 지키는 개다, 이 자식아!”
‘그런 하찮은…….’
“제 왕조차 지키지 못한 놈이 건방지게 하찮고 말고가 어딨어?”
‘나의 긍지를 욕보일 참인가?’
당장에라도 싸울 것처럼 발톱을 세우고 벼슬을 부풀린 헤임달을 보며 김진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너희 고대 영웅들은 하나같이 건방져. 소환석에 처박혀서 여생을 보낼 걸 꺼내줬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너무 건방지고 버릇이 없어. 그리고 난 그 버릇을 고치는 법을 하나 알고 있지.”
그렇게 말한 그가 모리건에게 말했다.
“모리건, 끼어들지 마라.”
그의 말에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전투가 끝이 났습니다.] [나가 요새의 사령관이자 지저 자작인 김진우가 헤임달을 상대로 승리했습니다.] [한때는 지상과 지저의 경계를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던 파수꾼답게 헤임달은 강력했습니다. 하지만 전승의 사령관에게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헤임달은 당신을 둘러싼 각종 증폭 효과에 불만이 있는 기색이지만, 자긍심 높은 파수꾼은 변명보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을 택했습니다.] [다소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고대 영웅 헤임달의 시험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온몸의 깃털이란 깃털이 죄 뽑히고 피투성이가 된 헤임달은 피가 흥건한 부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전쟁을 알리는 새벽닭 헤임달이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헤임달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던전 오너의 증폭 효과와 전승의 사령관이 누리는 각종 증폭 효과는 차라리 사기에 가까웠다.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진 스스로의 힘에 도취된 나머지 정도 이상으로 손을 쓴 것이 다소 미안해 김진우는 괜스레 투덜거렸다.
“너희 족속들은 꼭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군.”
그 말에도 헤임달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처분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 모습이 그래도 모리건과는 다르게 다소 순종적이라 그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그녀를 향했다.
그 시선이 마치 앞으로는 고분고분하게 굴라는 듯한 느낌이라 그녀가 모르는 척 딴청을 피워댔다.
“받아들이지. 이제부터 그대는 요새를 지키는 초병이다.”
[전쟁을 알리는 새벽닭 헤임달(고대 영웅)이 나가의 요새에 합류했습니다.] [고대의 외눈박이 군주를 섬기던 헤임달은 그 누구보다 멀리 보고 들을 수 있는 타고난 파수꾼입니다. 때로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 맹목적이고 외골수적인 면이 있지만 헤임달이 지키고 있는 한 어느 누구도 몰래 요새로 숨어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헤임달의 가장 큰 능력은 전운을 읽는 감각입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먼저 주인에게 전쟁의 조짐을 알릴 것입니다.] [헤임달은 기력이 몹시 쇠한 상태입니다. 모리건과는 다르게 단 한 번도 깨어나지 않은 헤임달은 소환석 안에서 힘의 상당 부분을 소진했습니다. 게다가 소환석의 힘을 멋대로 뽑아 쓴 누군가에 의해 원래 힘의 절반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회복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헤임달의 능력을 일부 공유합니다.]어쩐지 너무 쉽게 제압했다 했더니 헤임달은 본신의 힘을 반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힘의 누수가 있었고 거기에 더해 막판에는 나가 마법사들에 의해 한참을 시달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끄응. 당장 써먹지는 못하겠군.”
멀리서나마 연구실이 있는 방향을 노려보던 김진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
“뭐?”
연구실을 지나던 김진우는 나가 마법사가 내민 보석을 받아 들고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확인해 보라고?”
헤임달의 힘이 누수된 것은 나가 마법사들의 탓보다는 세월 탓이 컸다. 거기에 자신이 관리를 소홀히 한 점이 있으니 사실상 화는 전부 풀린 상태였다.
하지만 언제 또 사고를 칠지 모를 이 말썽쟁이 마법사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그는 엄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이게 대체 뭔…….”
[상급 나가 마법사의 소환석.] [헤임달의 소환석을 두고 실험을 거듭한 결과 상급 나가 마법사들은 소환석의 신비에 상당 부분 접근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지식을 토대로 만들어낸 소환석은 비록 등급이 높지는 않지만 어지간한 소환수들을 담을 수 있습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확인한 김진우는 뜨악한 얼굴로 상급 나가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진짜 연구에 미친놈들이구나, 너희들.”
그렇게 감탄도 신음도 아닌 애매한 말을 내뱉는 그의 눈앞으로 메시지 하나가 더 떠올랐다.
[소환석의 안에는 연구에 미쳐 스스로 실험체를 자처한 상급 나가 마법사가 들어 있습니다.]***
카아아앗!
소환석에서 뛰쳐나온 상급 나가 마법사는 잠시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더니 이내 환호성을 내질렀다.
길게 내뺀 혀를 날름거리며 바람 소리를 연신 내는 것을 보니 실험이 성공했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기쁜 모양이다.
“미쳤어, 미쳤어. 완전히. 그래도 예전에는 말 잘 듣는 맛이라도 있었는데.”
신이 나서 동료들과 함께 법석을 떨어대는 상급 나가 마법사를 본 김진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소환수는 등급이 올라갈수록 자아가 강해져요. 상급 마법사쯤 되면 어느 정도 개인의 욕구와 야망도 있을 거예요.”
곁에 있던 도미니크의 설명에 그가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이 관자노리를 꾹꾹 눌러댔다.
“하지만 그 안에는 주인님께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크니 너무 심려치 마세요. 조금 더 성장하면 그나마도 균형이 맞을 테니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거랍니다.”
“끄응. 무슨 미운 여섯 살도 아니고, 말 안 듣는 애들이 생긴 기분이군.”
김진우의 비유에 도미니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주인님은 왜 후계를 만들지 않으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