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05)
던전 견문록-105화(105/319)
# 105
던전 견문록
제 106 화
“후계?”
난데없는 질문에 뜨악한 얼굴을 해 보인 김진우가 엉겁결에 되물었다.
“요새가 가장 융성한 지금, 주인님의 생명력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답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주인님의 정기를 받은 후계 역시 일부나마 그 강력한 힘을 물려받겠지요.”
도미니크의 난데없는 질문에 당황한 것도 잠시, 그는 자신이 생각한 후계자와 지저에서 말하는 후계자가 전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도미니크는 가장 번성했을 때 태어난 후계야말로 미궁의 힘을 가장 빠르게 늘릴 수 있는 힘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지저에서 말하는 후계자는 믿을 수 있는 조력자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악몽의 디나리온처럼 적자생존의 원칙으로 후계 다툼을 권장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주인은 자신의 대리자로 내세워 전력을 보강한다고 했다.
“나가의 요새가 그 어느 때보다 융성한 지금, 주인님의 후계는 필시 강력한 힘을 지니고 태어날 게 분명해요.”
김진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강한 힘, 어쩌면 후계야말로 모자란 전력을 채워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일지도 몰랐다.
당장 자신의 힘을 반의반만 갖고 태어난 아이가 있다면 어지간한 영웅급 소환수 이상의 힘을 발휘할 테니까.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가들은 알에서 태어나 성체가 되기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김진우는 나가가 아니었다. 그리고 인간의 아이는 자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과연 그 긴 시간을 기다릴 가치가 있는가가 문제였다.
아니, 그 이전에 이 저주받은 운명, 지저의 업을 자식에게까지 물려주어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김진우는 어쩐지 얼굴이 따가운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음?”
도미니크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그가 저도 모르게 주춤 물러서고 말았다.
“그 문제는 천천히 다시 생각해 봐야겠어. 당장 결정할 만한 문제는 아니니까.”
“모든 것은 주인님의 뜻대로.”
평소와 같은 태도, 평소와 같은 대답,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쩐지 모르게 도미니크의 표정이 꺼림칙했다. 그래서 그는 무의식중에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
후계의 문제를 일단락 지은 김진우는 골칫덩이 나가 마법사들과 또다시 대면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소환석에 포함된 나가들은 요새의 병력 수용 한계와 별개란 말이지?”
그가 흥미를 보이자 거듭 꾸중을 듣는 바람에 다소 기가 죽어 있던 상급 나가 마법사가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 마법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가의 요새는 정체되어 버린 병력 증강의 해결책을 찾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까지 실험체로 내던지며 소환석의 실험을 강행한 나가 마법사들의 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만 해도 나가 마법사는 자신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 그의 눈앞에서 동료들을 소환석에 우겨넣어 보였다.
실제로 미궁의 스테이터스 창에 표기된 병력의 수용 현황 수치는 딱 소환석에 들어간 나가 마법사만큼 줄어 있었다.
“그만, 그만! 충분히 알아들었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해.”
그대로 두었다가는 마지막 하나까지 소환석 속으로 기어들어 갈 기세의 나가 마법사를 본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팟!
소환석을 사용해 다시 나가 마법사들을 불러내자 스테이터스 창의 수치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로써 나가 마법사들의 말이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위험하지는 않은 거야?”
만약 위험했다면 스스로 시험체를 자처했을 리가 없지만, 연구에 대한 집념과 광기를 보니 마냥 그런 것도 아니라 김진우는 다시 한 번 질문했다.
나가 마법사는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를 경우 소환석에서 영원히 잠들어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있지만, 단기간 내의 사용에 있어서는 안정성이 보장된다며 자랑스러운 얼굴을 했다.
“다른 미궁의 주인들이라고 이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이렇게 좋은 점만 있다면 다른 미궁의 주인들이 소환석을 사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 말에 상급 나가 마법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런 미친!”
상급 나가 마법사의 말을 들은 김진우는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고야 말았다. 소환석의 재료가 최소한 중급 이상의 다운 잼이라는 이야기를 들 탓이다.
그의 시선이 테이블을 향했다.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인 오십여 개의 소환석, 그리고 그 아래에는 소환석으로 가공하는 데 실패한 다운 잼이 그 몇 배는 굴러다니고 있었다.
***
연구실을 나선 김진우는 몸서리를 쳤다. 연구실에 잠깐이라도 더 머물렀다가는 나가 마법사들의 광기에 가위라도 눌릴 것 같은 탓이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내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비용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나가 마법사들의 연구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지난번에 성공한 핵의 합성이 확률적인 도박에 가까웠다면, 이번 소환석의 연구는 소모 비용의 계산이 비교적 명료하고 결과를 예측하기 쉬웠다.
당연하게도 그만큼 활용할 방법이 무궁무진했다.
소환석에 정예 병력을 담고 새로운 소환수들을 불러내는 것으로 일시적인 병력의 뻥튀기가 가능했다.
물론 수용 한계를 넘어선 병력은 시간이 흐르면 결집력이 약해지는 약점이 있었다. 하지만 병력의 이탈을 염두에 두고도 전시 상황에 한정한다면 한 번쯤은 사용해 봄직한 방법임에 분명했다.
그 외에도 병력의 기동성을 올리는 데도, 적의 허를 찌르는 데도 굉장한 이점이 있는 것은 확실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바로 비용이었다.
이번에 나가 마법사들이 실험에 사용한 다운 잼만 해도 던전 에너지로 환산할 경우 오천에 달할 정도로 소모 비용이 무지막지했다.
아마도 이러한 점 때문에 다른 귀족들이 소환석의 존재를 알면서도 활용을 하지 않는 것이리라.
“주인님?”
생각에 잠긴 채로 걷다 보니 어느새 오너 룸에 도달한 모양이다. 도미니크의 의아한 얼굴을 본 그가 되는 대로 나가 마법사들의 연구 결과를 설명해 주었다.
“주인님.”
이야기를 다 들은 그녀의 얼굴에는 어쩐지 숨길 수 없는 흥분이 떠올라 있었다.
“소환석의 연구는 분명 굉장한 실적이에요!”
아무래도 지난번 설명을 들었을 때는 그녀도 안정적인 소환석의 생산에 대해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소환석의 양산에 성공한 지금, 그녀는 소환석의 가치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분명 전략적 가치가 있긴 한데, 장기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무리야. 게다가 병력의 이탈 위험성이 있는데다 비용 소모가 너무 커. 단타성 전술이 되기 십상이지.”
“주인님.”
김진우가 고개를 저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도미니크가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그를 불렀다.
“잊고 계신 게 하나 있어요.”
“음?”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 그는 도미니크의 얼굴을 바라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그녀는 입술이 마르는지 혀를 내밀어 몇 번이고 입술을 훔치고 대답했다.
“제가 뭘 섭취하고 왕의 조언자로 거듭났는지.”
그녀의 말에 김진우가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떠올리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환석은 저희를 성장시키는 가장 큰 열매랍니다.”
***
도미니크의 말을 들은 김진우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그녀의 말은 획기적이었다.
“그럼 소환석을 대량으로 생산해서 나가들에게 제공하면?”
“맞아요. 전무후무한 강군이 만들어지는 거죠. 개중에는 저처럼 종의 한계를 벗어나는 이들도 있을 테고, 어쩌면 영웅급에 오르는 이들도 있을지 몰라요. 설령 그게 아닐지라도 분명 전력이 강화될 것만큼은 분명해요.”
그녀의 말을 곱씹던 김진우는 마침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도미니크를 와락 끌어안았다.
“주인님?”
“도미니크는 천재야! 진짜 조언자라고!”
삭풍의 전사단과 치른 모의 전투의 결과에 충격을 받은 김진우다.
당장 10층을 향해 진군하기가 꺼려질 지경이라 어떻게든 병력의 질을 상승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그런데 지금 도미니크가 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기쁘지 않다면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소환석을 잘만 이용하면 10층의 귀족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강력한 군대를 만들 수도 있겠어! 이게 다 도미니크 덕분이야!”
“주, 주인님.”
그가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던 도미니크가 웃는 듯 우는 듯, 알 듯 모를 듯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살짝 치켜 올라간 입꼬리를 보니 김진우의 품에 안긴 기분이 썩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
김진우는 당장 크리쳐 사냥에 나섰다.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소환석의 섭취는 식사와도 상당히 닮아 있었다.
그런데 당장 병력의 질을 개선하자고 동족인 나가의 소환석을 나가들에게 제공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그가 크리쳐 사냥에 나선 이유였다.
“잔챙이는 전부 버린다. 제대로 된 놈들만 몰이해.”
그를 따라 사냥에 나선 나가 용기사들이 호법룡을 타고 크리쳐들을 몰아댔다. 한때는 미궁의 주인들과 함께 9층을 양분하던 야만 크리쳐들의 모습치고는 지나치게 초라했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미궁의 주인들이 제각각 제 살 궁리에만 골몰하던 시절에야 미궁과 미궁 사이에 완충제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미궁에 속하지 않은 크리쳐들이 맡아왔다. 야성밖에 남지 않은 이 크리쳐들은 누구에게나 공평했으니까.
크아아아악!
“잔챙이들은 이 자리에서 처리하고 강한 놈들은 생포한다!”
하지만 김진우가 9층을 통일한 시점에서 그들은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아니, 오히려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전과는 다르게 같은 진영에 속한 미궁을 공격하고 그 힘을 취할 구실이 사라졌으니 미궁의 주인들이 야생 크리쳐를 사냥하는 것으로 힘을 보충해 온 탓이다.
그리고 지금 그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세력을 지닌 나가들이 일시에 요새를 떨치고 나왔다.
크리쳐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녔지만, 용기사들의 기동력은 따돌릴 수 없을 정도로 신속했다.
운 좋게 그들을 벗어난다고 해도 타고난 추적자인 장거리 순찰자들에 의해 이내 포위망에 갇히고 말았다.
“운반해!”
표범의 모습을 한 놈부터 시작해 형체가 다 뭉개진 기이한 모습을 한 크리쳐까지 수많은 크리쳐가 생포되어 나가의 요새로 실어 날라졌다.
“그들 역시 지저의 일부를 이루는 존재입니다. 그들이 없으면 지저의 균형이 무너지고 말 겁니다.”
그때 방문한 암상인은 마치 환경운동가라도 되는 양 그의 과격한 행보를 만류했다. 하지만 김진우가 그 이야기를 들을 턱이 없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그것이야말로 지저의 유일한 율법 아니었나?”
더 강하기 때문에 사냥을 하는 것이고, 약하기 때문에 사냥당하는 것이다. 그의 논리는 명료했고, 그만큼 반박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암상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나가다는 9층이 지저의 초입처럼 크리쳐도 아닌 어정쩡한 비스트들로 채워지게 됩니다. 그들이 다시 크리쳐만큼 강하게 성장하려면 오랜 세월이 걸리겠지요. 그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자작님께도 결단코 좋지 않을 겁니다.”
크리쳐들이 다 사라지고 나면 미궁의 소환수들 역시 먹을 것을 찾지 못해 결국 고사하고 말 것이라며 암상인은 거듭 그를 만류했다.
평소보다 더욱 간곡한 태도에 김진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9층에 크리쳐의 씨가 마르면 8층이든 10층이든 진출해 먹고살 길을 찾으면 되겠지.”
“그렇게 다 먹어치우다 보면 남아나는 것이 없을 겁니다. 그때는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거침없는 대답에 암상인이 강한 어조로 항변했다. 하지만 김진우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당장 내일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대는 나에게 너무 먼 미래를 보라 강요하는군.”
“자작님.”
지금의 모습만 보면 누가 인간이고 누가 지저의 존재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하지만 지금 김진우의 모습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모습일지도 몰랐다.
수많은 것을 파괴하고, 멸종시키고, 마침내는 대부분의 영역을 자신의 발아래 둔 포악하고 이기적인 정복자,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고 김진우 역시 그러한 인간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