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07)
던전 견문록-107화(107/319)
# 107
던전 견문록
제 108 화
단말마와도 같은 고함이 터져 나오고 바로 곁을 지키고 있던 일꾼이 곡괭이를 힘차게 움켜쥐었다.
“진우야, 꼭 살아남아야 해.”
흙먼지를 대비해 흥건하게 적신 토굴이었지만, 역시나 피어오르는 먼지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무너진 토벽을 기준으로 먼지가 마치 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여기저기에서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앙!
그리고 그 기침 소리가 채 잦아들기도 전에, 희뿌연 흙먼지가 사라지기도 전에 전투는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전장에 난입한 것은 진즉부터 거칠게 목을 울려대고 있던 줄무늬거미였다.
줄무늬거미는 굴이 뚫리기가 무섭게 흙먼지를 가르며 내달리기 시작했는데, 미처 피하지 못한 일꾼 중 한 명이 그 무자비한 돌격에 짓밟혀 머리가 부서져 버렸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일꾼의 죽음에 기겁한 다른 일꾼들이 황급히 벽으로 붙어 섰지만, 이내 토굴을 빽빽하게 채우며 밀려드는 크리쳐들의 파도에 휩쓸려 버렸다.
“아악!”
“살려줘!”
김진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그토록 숨으라고 신신당부했건만, 아직 여물지 못한 그는 눈앞에 펼쳐진 처참한 광경에 넋이 나간 듯 입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아아, 아아아아.”
실성한 듯 보이는 그의 모습에 곁에 있던 일꾼, 군인 출신의 사내 장기수가 이를 악물었다.
앙상하지만 탄탄한 근육질의 팔뚝이 가련한 김진우를 감쌌다.
벽에 바짝 붙어 숨을 죽이고 있지만, 전장의 광기를 피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절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총 한 자루를 쥐어주면 두려울 게 없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특전사이던 자신이 이제 와서는 곡괭이를 쥐고 벌벌 떨고 있다니. 하지만 눈앞을 스쳐 가는 거대한 덩치의 괴물들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가장 선두에서 달려나간 줄무늬거미만 해도 인간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존재였는데, 그런 존재조차 맞대응으로 나온 적으로 인해 순식간에 반 동강이 나버렸다.
무력한 스스로의 모습에 치가 떨리지만 품에서 몸을 떨고 있는 김진우의 존재가 그의 정신을 붙잡아주었다.
전장은 흉악한 모습을 한 크리쳐 병사들의 모습만큼이나 흉험했다. 거대한 거미들이 괴성을 지르고, 촉수를 주렁주렁 단 이름 모를 크리쳐가 그런 거미를 찢어발긴다.
그리고 그런 크리쳐를 또 어디선가 나타난 크리쳐가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그 흉험한 전장 어디에도 인간이 설 자리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뒤편에서 달려오는 거대한 모습의 괴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집채만 한 몸에 불길한 얼룩이 가득 새겨진 거미다. 토굴 벽을 쓸어내며 달려오는 거미의 모습에 호영이 비명처럼 경고했다.
“앞으로 달려! 그대로 있다가는 밟혀 버린다!”
그렇게 경고한 그 자신도 김진우를 품에 안고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무너진 토벽을 넘어서자 끔찍한 전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산처럼 높다랗게 쌓인 크리쳐의 시신과 악취가 나는 푸른 피가 온 사방에 가득 차 있다.
“진우야! 달려!”
마침 이쪽의 크리처들과 전투를 하느라 적 크리처들은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이지석을 포함한 일꾼들이 그대로 그들을 지나쳐 달렸다. 가장 후방에서 그들을 따르던 호영은 경악해야 했다.
다른 이들은 제대로 보지 못한 듯했지만, 바닥에 피를 뿜으며 눕는 것은 모두 아군 크리쳐뿐이었다.
정체조차 알 수 없는 거대한 적 크리쳐는 너무도 수월하게 거미들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포효를 울리며 뛰어온 집채만 한 거미도 토굴을 빠져나오자마자 자신의 반의반 크기도 안 되어 보이는 맹수형 크리쳐에게 목덜미를 물어뜯기며 비명을 질렀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잠시 넋이 나간 장기수였지만, 다른 일꾼의 비명에 정신을 차렸다.
이곳에 끌려오기 전에는 안 가본 곳이 없다고 자랑하며 틈만 나면 노래를 불러주던 가수 출신의 박형태가 크리쳐들의 흉험한 전투에 휘말려 전신이 터져 버렸다.
상대 크리쳐의 공격에 물러나던 아군 크리쳐의 발길에 짓밟힌 것이다.
끔찍한 비명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지만 일꾼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 전장의 시작점에 있었다.
압도적인 전력을 믿는지 대열도 없이 아군 크리쳐들을 맞아 싸우는 상대 크리쳐들 탓에 전선이 길게 형성되어 버렸다. 난전 형식으로 상대 크리쳐 하나에 이쪽의 크리쳐 여럿이 달라붙어 처절한 전투를 하고 있다.
이지석을 비롯한 일꾼들은 그런 전장을 가로지르고 있는 중이다.
가장 작은 크리쳐만 해도 3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덩치다. 그 어마어마한 덩치들이 치고받는 전장을 지나가는 일꾼들이 위험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악!”
아차 하는 사이에 또 다른 일꾼 한 명이 어디선가 흘러든 독 안개에 녹아버렸다.
언젠가 재료를 구해서 동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을 대접하겠다던 제빵사 정태수였다. 일꾼들은 슬퍼할 사이도 없이 방향을 틀었다.
전방을 스쳐 가는 독 안개를 피해 이리저리 방향을 틀고 거구의 크리쳐들을 회피하다 보니 아직도 전장의 한가운데였다.
아군 크리쳐들이 밀고 들어온 탓에 오히려 더욱 위험한 지경에 처한 일꾼들은 필사적으로 활로를 찾았다.
“제길! 이대로 가다간 다 죽겠어!”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군인이 체질에 맞아 부사관을 고민했다던 이지석이 비명처럼 탄식했다.
그의 말처럼 이미 전장에 휩쓸려 다니는 와중에 벌써 수많은 일꾼이 죽었다. 김진우의 곁에 남은 일꾼들이라고 해봐야 이제 불과 다섯이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육군 병장 출신의 이지석, 장교 출신의 장기수, 요리사 출신의 오현일, 기술자 출신의 이지웅, 기자 출신의 정영태.
그들이 절망한 표정으로 한곳에 모였다. 정작 크리쳐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건만 무력하게 죽어야만 하는 자신들의 처지에 그들은 절망했다.
“방법이 없다. 다 같이 살아남기는 그른 것 같아.”
요리사 출신의 오현일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이지웅이 그런 그에게 한소리 하려다가 엉망으로 망가진 자신의 다리를 가리키자 입을 다물었다.
언제 휩쓸렸는지 독 안개에 당해 그의 오른쪽 다리가 보기 흉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끔찍한 고통일 텐데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 서린 기색은 고통보다는 비장함이 더 컸다.
“내가 유인할 테니 너희들은 곧장 달려가.”
그렇게 말한 오현일이 다른 이들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절룩거리는 걸음으로는 앞을 향해 내달렸다.
“야, 이 괴물 같은 새끼들아! 내가 바로 언젠가 네놈들의 살점으로 최고의 만찬을 준비할 오현일 쉐프님이다!”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내지르며 내달린 그였지만 일꾼들 중 누구 하나도 그를 비웃는 이는 없었다. 침통한 표정을 한 그들에게 장기수가 호통 쳤다.
“뭐 해! 어서 달려! 현일이 희생을 헛되게 할 참이야!”
그렇게 말한 그가 김진우를 품에 안고 그대로 내달렸다.
앞서 달려나간 오현일과는 조금 다른 방향이었는데, 그쪽에 있던 크리쳐들이 오현일의 고함 소리를 듣고 주춤주춤 이동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드러난 작은 틈새로 장기수가 내달렸다. 그리고 그런 그를 앞질러 이지웅이 선두에 서기 시작했다.
“김진우를 잘 부탁해!”
이미 자신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한 듯한 그의 외침이었지만 누구도 의문을 표하지 못했다.
이런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선두에 선다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역시나 선두에 나선 이지웅은 갑작스럽게 솟구친 칼날에 수십 갈래로 갈라졌다. 미궁의 한편에 설치되어 있던 함정인 모양이다.
그가 수십 갈래로 갈라져 흩뿌려진 자리에는 함정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그저 흉물스러운 핏물과 살점만이 어지럽게 널려 있을 뿐이다.
“제기랄!”
장기수가 욕설을 내뱉었다. 비록 출신도 다르고 성격도 달랐으나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함께한 동료들이 하나둘 쓰러지자 그는 참을 수가 없었다.
품에 안은 김진우를 잠시 바라보다 곁에 있던 이지석에게 말했다.
“곡괭이 줘!”
한창 내달리던 와중이라 이지석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한참이나 더 내달렸다.
그가 다시 소리치자 그제야 고개를 돌린 이지석이 장기수의 표정을 발견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닥쳐! 지상에선 네놈이 위지만 여기선 내가 더 고참이야! 잔말 말고 진우나 잘 감싸!”
사납게 소리친 이지석이 그대로 전방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오현일의 희생이 아예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 크리쳐 사이로 길이 하나 나 있다. 그 사이를 망설임 없이 내달리던 이지석이 저 광장의 끝에 보이는 조그만 토굴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저쪽까지만 도착하면 살 수 있어!”
하지만 그런 그들의 희망도 잠시였다. 적 크리쳐 중 하나가 거대한 몸을 꾸물거리며 통로를 막아서고 있었다.
그들을 의식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는지 그들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는 모습이다. 장기수를 비롯한 이들은 그 지독스러운 우연에 욕설을 내뱉었다.
“제길, 살고 싶었는데.”
가장 앞서 달리던 이지석이 잠시 뒤를 돌아보더니 그대로 뛰쳐나갔다. 장기수가 만류하기도 전이다.
그는 앞서 희생한 오현일을 따라 크게 고함치며 크리쳐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는 이내 크리쳐들의 거체에 뭉개져 형상도 알아볼 수 없는 고기 조각이 되고 말았다.
살아남은 장기수와 정영태가 이를 악물고 그가 희생으로 열어둔 길을 향해 내달렸다.
시꺼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통로를 보며 그들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달려들었다.
“허억! 허억!”
턱 끝까지 차오른 호흡에 그들은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방금 전에 통과해 온 전장의 살벌함이 무색하게도 통로는 조용했다.
“헉헉! 이런 비좁은 통로라면 크리쳐들이 들어오지 못할 거야.”
거친 숨을 가다듬으면서 정영태가 주절거렸다. 장기수 역시 그 말에 동감하는지 품에 안고 있던 김진우를 내려놓았다.
지나친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김진우는 기절한 지 오래였고, 지금은 규칙적으로 숨만 쌕쌕거리고 있었다.
***
김진우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정영태만 남아 있었다. 아련하게 자신을 바라보던 모두의 얼굴이 아직도 그의 눈앞에 생생한데 이제는 남은 이가 정영태뿐이라니.
김진우는 영문을 몰라 멍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 더는 지켜주지 못할 것 같아.”
그렇게 마지막으로 남은 정영태마저도 알 수 없는 꼬챙이에 배를 꿰뚫린 채 죽어가고 있다.
검붉은 빛깔의 그것은 반질반질 윤기가 돌면서도 표면이 거칠었는데 끔찍하게도 복부의 정중앙을 관통했다.
멍한 표정을 하고 있던 김진우는 죽음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정영태의 음성에 담긴 감정이 너무도 안타까워 가슴이 답답해졌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자신의 고통보다는 그런 김진우가 걱정되었는지 그의 표정에 안타까운 빛이 가득했다.
“가엾은 진우, 이제 누가 너를 돌봐줄까.”
피가 잔뜩 묻은 손으로 김진우의 얼굴을 쓰다듬으려다 제풀에 놀라 손을 내리는 정영태였다. 김진우는 뭔지 모를 안타까움에 그의 힘없이 늘어지는 손을 잡아 자신의 뺨에 대었다.
“아아…….”
그리고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는데 그 어눌한 모습에 정영태가 눈물을 흘렸다.
피가 잔뜩 묻은 자신의 손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뺨을 비벼대는 그 모습이 어찌나 안타까운지 내장이 쏟아지는 중상을 입은 와중에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지경이다.
“우리 진우, 우리 동생.”
점점 어두워지는 시야 속에서 정영태는 김진우를 불렀다. 이내 어눌한 발음이나마 김진우가 대답하자 그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어갔다.
“부디 살아남아야 해. 너만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꼭 살아남아야 해.”
이제는 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는 세상 속에서 그는 필사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크리쳐의 역겨운 살점을 뜯어 먹고 악취가 나는 피를 들이마시더라도 너만은 꼭 살아남으렴.”
그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진다.
“이 빌어먹을 지옥을 떠나 바깥세상을 알기 전에는 절대 죽어선 안 돼.”
끝에 가서는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작아진 음성에 김진우는 바짝 귀를 들이댔다. 한참을 귀를 기울여 보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영태 형?”
이름을 불러보지만 대답할 리가 없다. 이미 굳게 닫혀 버린 눈꺼풀 사이로 가려진 눈동자는 생기가 빠져나간 지 오래였으며, 차갑게 식어버린 육체는 지저 세계의 암벽보다 더 차가웠다.
하지만 죽음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김진우는 정영태가 잠을 자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는 그의 곁에 누웠다. 자신 역시 포악한 감시자에게 두들겨 맞았을 때에는 정신없이 잠을 잤다.
처참한 꼴로 곁에 누워 있는 장기수 역시 마찬가지로 잠을 자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진우가 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도 그들은 눈을 뜨지 않았다. 몇 번이나 잠을 청했는데도 여전히 눈을 뜨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김진우는 의아할 뿐이다.
한참이나 시간이 흐르자 김진우는 배가 고팠다.
‘크리쳐의 역겨운 살점을 뜯어 먹고 악취가 나는 피를 들이마시더라도 너만은 꼭 살아남으렴.’
정영태의 마지막 말이 떠올라 그는 주변을 살펴봤다. 다행스럽게도 처참한 꼴로 나자빠진 크리쳐가 바로 근처에 있다.
정영태의 배를 꿰뚫은 꼬챙이와 같은 재질의 표피를 가진 크리쳐는 곤충과도 같은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이 꽤나 흉물스러웠다.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외형마저도 처참하게 망가져 눈 뜨고 봐줄 수 없을 지경이지만 김진우는 개의치 않았다.
구토가 쏠리는 악취조차도 그는 느끼지 못하는지 흉악한 크리쳐의 사체를 두들기며 부드러운 부분을 찾았다.
본능적으로 크리쳐의 배 부분이 그나마 부드럽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를 들이댔다.
물컹한 감촉과는 다르게 꽤나 질긴 크리쳐의 복부를 한참이나 질겅거리던 그는 이내 배가 부르는지 크리쳐의 곁에 퍼질러 누웠다.
하지만 이내 정영태와 장기수를 떠올리고는 크리쳐의 질기디질긴 살점을 뜯어내 비틀거리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이 잠에서 깨어나면 자신처럼 배가 고플 거란 생각이라도 한 모양이다.
크리쳐의 역겨운 살점을 그들 곁에 조심스럽게 내려둔 김진우는 다시 정영태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김진우가 근방에 있던 곤충형 크리쳐의 살점을 거의 다 뜯어 먹었을 즈음, 그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눈을 뜨지 않는 정영태와 장기수의 모습에 혹시라도 그들이 영원히 잠을 자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많이 아픈 나머지 잠이 많이 필요한 모양이라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인 그는 며칠이나 더 그들의 곁을 지켰다.
이제는 바짝 말라 버린 크리쳐의 거체에도 살점 하나 없고 남은 것이라곤 딱딱한 표피뿐이다.
며칠이나 억눌러 온 공포에 김진우는 눈물을 흘렸다. 이제는 일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장기수와 정영태의 시체를 부여잡고 마구 흔들어댔다.
털썩!
반쯤 썩어버린 정영태의 육신에서 머리통이 떨어져 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통은 끔찍하게도 그대로 으깨져 버렸는데, 김진우는 꼭 자신이 그런 것만 같아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이나 눈물을 흘리던 그는 이내 기력이 떨어져 잠이 들었다. 다시 깨어나서 머리통이 떨어져 나간 몸통을 보고 울기를 몇 차례, 이제는 울 기력도 없는지 멍한 눈으로 어두운 토굴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이 시벌겋게 달아올랐다. 설상가상이라고 몸에서 열이 나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김진우는 한참 만에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눈을 뜬 그가 처음으로 본 것은 말간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거미였다.
김진우는 거미들에 의하여 다시 수거되었다.
다시 공작의 미궁으로 끌려온 김진우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장기수를 비롯한 일꾼들은 전쟁통에 끌려온 수많은 노예 중 하나였으며, 자신은 그런 그들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이 지저에 넘치도록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음…….”
김진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스스로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기이할 정도로 자각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꿈이라기보다는 과거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여정과도 같았다.
가장 비참하던 토굴꾼 시절의 기억에 그는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는 이질적인 느낌에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는 눈을 번뜩였다.
평범한 꿈과는 다르다. 단순한 악몽도 아니었다.
꿈속이자 현실인 듯한 기묘한 감각에 그가 마음속에 한 자루 칼을 세웠다.
비천하고 나약하던 토굴꾼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해 정복자 김진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광망이 줄기줄기 흘러내리는 눈빛이 온 사방을 훑어가다 기묘할 정도로 음습한 어둠 한 자락을 잡아냈다.
“나와.”
마치 목을 울려대듯 사나운 으르렁거림. 김진우는 어둠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지금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아.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나와.”
말뿐이 아닌지 눈에서 번뜩이는 빛이 살벌했다. 그래서인지 음흉하게 웅크리고 있던 어둠이 불쑥 모습을 바꿨다.
“만나서 반갑군, 전승의 사령관이자 지저에 유일무이한 층의 정복자여.”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인상의 사내였다. 하지만 푸른 피부와 머리에 돋아난 양 뿔이 지독스러울 정도로 이질적이다. 그런데 그런 사내의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어 김진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