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15)
던전 견문록-115화(115/319)
# 115
던전 견문록
제 116 화
#46. 전쟁의 이유
지상에 오른 김진우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정보 수집이었다.
지저의 정보를 지상에서 찾는다는 게 아이러니했지만, 사실 지저에서 수집하는 정보는 한계가 있었다.
그간 정보의 출처이던 암상인은 감감무소식이었고 11층은 접근 자체가 금지되다시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11층과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존재들을 탐문하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정보라고 해봐야 편린에 불과했다.
“망할! 심층이 그 모양이니 그나마 공급되던 다운 잼의 공급이 끊겨 버렸어. 겁 많은 탐색자 놈들이 이제는 저층에도 안 들어가려고 한단 말이지.”
오랜만에 만난 백 선생은 그를 보며 울분을 토해냈다.
파수꾼들이 나서서 탐색자들을 몰아낸 뒤로 탐색자들은 선뜻 지저행을 결정하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각국의 미궁들마저 정체불명의 세력에게 점거당한 이후로는 그런 양상이 더욱 심해진 모양이다.
“시장에 풀린 다운 잼도 대체 누가 쟁여둔 건지 코빼기도 안 보이고 말이야.”
당연하게도 다운 잼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지저의 개발을 노리고 확보한 미궁이 소실되며 오히려 상황이 전보다 안 좋아진 것이다.
“혹시 자네, 다운 잼 가진 거 있으면 좀 내놓으시게. 내 값은 후하게 쳐줌세.”
그렇지 않아도 지상에서 활동할 자금이 필요하던 참이라 김진우는 다운 잼을 현금으로 환전할 생각이었다.
챙겨 온 가방을 거꾸로 뒤집어 테이블에 털자 다운 잼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오! 역시 자네라면 있을 줄 알았지.”
테이블에 가득 놓인 다운 잼을 본 백 선생이 들뜬 얼굴을 했다.
“어디 보자. 거의 다 중급이군. 지저에서 캠핑이라도 하는 건가? 뭔 다운 잼이 이리도 많은가.”
신이 나서 다운 잼을 감정하느라 정신이 없는 백 선생을 보던 김진우가 슬며시 품에서 다운 잼 하나를 더 챙겨 들었다.
“그, 그건 최상급 다운 잼이 아닌가?”
빛깔부터 여타 다운 잼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주먹만 한 다운 잼을 본 백 선생은 완전히 눈이 돌아갔다.
홀린 것처럼 백 선생이 손을 뻗는데 그가 약이라도 올리듯 슬며시 다운 잼을 다시 품에 갈무리했다.
“정보, 정보가 필요합니다.”
“말해보게,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내가 아는 거라면 다 말해주겠네.”
그렇게나 최상급 다운 잼이 귀한 걸까. 백 선생은 전에 없이 흥분한 얼굴로 손바닥을 비벼댔다.
“11층의 정보, 그리고 지난 전쟁에 관련된 정보라면 모조리 다.”
입에 침을 튀며 떠들어대던 백 선생이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전쟁에 관련된 정보라면…….”
“10년 전에 종결된 지상과 지저의 전쟁, 그리고 자잘하게 있어온 지저 내부의 전쟁까지.”
이미 반쯤 넘어와 있던 백 선생의 몸이 돌연 쑥 빠져 버렸다. 어딘지 모르게 말을 아끼는 듯한 표정이라 김진우는 슬며시 품속에 다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손을 다시 꺼냈을 때는 최상급 다운 잼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다.
“정보의 질에 따라 가지고 있는 최상급 다운 잼을 전부 넘겨드리지요. 물론 시세 역시 예전 시세로 받겠습니다.”
“그, 그런 게 또 있는 건가?”
이번에는 어지간한 백 선생도 놀랐는지 말까지 더듬어댔다.
그런 백 선생을 보며 김진우는 대답 대신 다운 잼을 다시 품에 갈무리했다. 그리고는 소파의 등받이에 깊게 몸을 파묻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무엇을 기다리는지 빤한 상황, 백 선생은 갈등하는 얼굴로 입술을 핥아댔다.
“끄응.”
하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속에 든 꿍꿍이가 무엇이든 간에 그가 본 백 선생은 장사꾼이었다.
그리고 장사꾼은 눈앞의 이득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법이다.
예상대로 한참을 고민하던 백 선생은 결국 다운 잼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니진 않을 거라 믿고 이야기하겠네.”
“말할 곳도 없습니다.”
“그거야 알지만… 혹시 다른 데 이야기가 퍼져도 나는 모르는 걸세.”
그렇게 입을 열고도 한참을 망설이던 백 선생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자세한 건 자료로 전달해 주겠지만, 생각나는 대로 먼저 말해주겠네. 자네 지상과 지저의 전쟁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딱 일반인들이 아는 만큼 알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그는 지난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라고 할 수 있는 던전 베이비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얽힌 이야기에 무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던전 베이비들이 풀려난 것은 종전 직후, 그 과정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끄응. 그럼 처음부터 이야기해 주어야겠군.”
백 선생이 느릿느릿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
감정소를 나선 김진우의 얼굴이 기괴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얼굴이 딱딱하게 경직되어 어린아이가 만든 삐뚤빼뚤한 가면처럼 보일 지경이다.
지나가던 행인들조차도 그 기괴한 분위기에 억눌려 저도 모르는 사이에 걸음을 빨리하고 쫓기듯 그의 곁을 스쳐 갔다.
“으아앙! 어, 엄마! 아아앙!”
그를 보고 놀란 것일까.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 자지러지는 소리에 김진우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
자신을 보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의 눈빛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저도 모르게 손끝으로 얼굴을 더듬었다. 기괴하게 비틀린 안면 근육, 보지 않아도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자리를 떠나는 그의 등 뒤로 따라붙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그 사이로 백 선생의 음성이 불쑥 떠올랐다.
***
“혹시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알고 있나?”
“모릅니다.”
백 선생은 그럴 줄 알았다며 혀를 차고 말을 이어갔다.
“흔히 알려지기로는 지저의 괴물들이 먼저 지상을 침공했다고 알려져 있지. 어쩔 수 없이 살아남기 위해 그 끔찍한 전쟁을 겪어야 했다고. 하지만 말이야, 그건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일세.”
먼 곳을 바라보듯 흐릿해진 백 선생의 눈동자, 몇 번인가 입술을 떨어대던 노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사실 전쟁은 지상이 먼저 시작했네.”
그리고 그렇게 어렵사리 꺼내놓은 한마디는 기묘한 울림이 되어 좁은 감정소를 울려댔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저의 존재는 그다지 알려지지도 않았고 신경 쓸 만한 곳이 아니었거든. 오히려 알음알음 위쪽에서는 지저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던 모양이야. 그런데 말일세, 다운 잼이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네.”
주름 가득한 손이 반짝반짝 빛나는 다운 잼을 어루만졌다. 그런데 그 손길이 다운 잼을 금 보듯 하던 평소 모습과는 다르게 오물이라도 만지듯 꺼림칙했다.
“최초로 발견된 다운 잼, 그 다운 잼을 우리는 위시 스톤(Wish stone)이라 불렀지.”
다운 잼 하나가 다운 잼 무더기 위로 턱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위태롭게 쌓여 있던 다운 잼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 전지전능한 돌덩이 하나가 수천만의 생명을 앗아가는 전쟁을 불러일으킨 것일세.”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김진우는 평생 동안 당연하게 생각하던 상식과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선과 악이 뒤바뀌는 혼란 속에서 늙수그레한 음성이 이어졌다.
“그 뒤로 다시 위시 스톤이 발견된 적은 없었지만, 대신 이 다운 잼이라는 놈들이 발견됐지. 그리고 전쟁은 계속됐다네. 지저에 더 이상 위시 스톤의 존재가 남아 있지 않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말이야.”
***
빠아앙! 빵! 빵!
“야, 이 새끼야! 미쳤어! 길 한가운데서 뭐 하는 짓이야!”
귀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소음에 김진우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빨리 비키라고, 새끼야!”
바로 코앞에서 머리를 비튼 차량 한 대가 보였다.
그 뒤로 엉망진창으로 엉켜 버린 차량의 행렬이 보인다. 아마도 생각에 잠긴 사이에 저도 모르게 도로를 건너려 한 모양이다.
“미안합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그가 짧게 사과를 하고 도로를 벗어나려는데,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차문을 열고 내렸다.
“이 새끼가 돌았나?”
운전석 문을 열고 나선 사내는 평소 운동깨나 했는지 단단한 체구가 위압적이었다.
사납게 눈을 치켜뜬 사내가 두꺼운 팔뚝을 과시하듯 내밀며 다가와 욕설을 내뱉었다.
“마! 너 때문에 내 인생 종치면 니가 책임질 거야! 뒤지려면 혼자 나가 뒤지지!”
“미안합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정말 미안합니다.”
하마터면 인명사고를 낼 뻔한 운전자의 마음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라 김진우는 거듭 사과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인지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삿대질을 해댔다.
“이 새끼야! 너 같은 새끼 때문에 나 같은 선량한 운전자들이 피해를 보는 거라고! 젊은 새끼가 정신이 쏙 빠져가지고는!”
“미안합니다.”
상대방의 태도가 다소 도를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한 번 미안하다 말했다. 어쨌거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자신인 탓이다. 게다가 대거리를 했다가는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끓어오르는 짜증과 분노를 애써 다독였다.
하지만 사내는 그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얌마! 너 우냐? 울어? 고개 들어봐! 새끼가 사람이 말을 하면 얼굴을 봐야지, 길바닥에 돈 흘렸냐! 엉? 인마!”
급기야 손가락을 뻗어 그의 이마를 밀어 올렸다. 그 손길에 바짝 숙여져 있던 김진우의 고개가 치켜 올라가고 말았다.
“새끼가 사람이 말을 하…….”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고만장해서 떠들어대던 사내가 입을 다물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얗게 질린 사내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미안합니다.”
그런 그를 보며 김진우가 사과를 하는데 눈가로 푸른 광망이 줄기줄기 흘러내리고 있어 그 모습이 마치 악귀처럼 보일 지경이다.
“혹시 다치셨거나 차가 망가졌으면 변상하겠습니다. 전화번호라도 주시겠습니까?”
“아, 아냐. 아니, 아닙니다. 그럴 것까지는…….”
사내가 도망치듯 차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막혀 있던 차량의 행렬이 그제야 꿀렁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말간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던 그는 다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머릿속으로 다시 한 번 백 선생의 음성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자네를 비롯한 심층의 던전 베이비들은 최초의 지저 탐사대, 그들의 후예일세.’
백 선생은 던전 베이비들이 전쟁 포로들의 후손이 아니라 그 이전에 지저를 찾은 최초의 탐색자들 후예라 했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전쟁을 일으킨 원흉, 지저 크리쳐들의 등 뒤에 칼을 꽂고 마침내 위시 스톤을 강탈해 온 약탈자들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