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18)
던전 견문록-118화(118/319)
# 118
던전 견문록
제 119 화
가죽 없이 빨간 근육이 그대로 드러난 기괴한 모습, 그런데 반송장과도 같은 크리쳐들이 쥐고 있는 무기들이 하나같이 김진우의 눈에 낯익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크리쳐들이 쥐고 있는 칼과 창 따위는 탐색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합금 칼과 똑같은 것이었다.
머릿속으로 설마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그리고 그 설마가 이내 역시나가 되었다.
송종철을 비롯한 탐색자들은 갑작스레 나타난 크리쳐들을 보고도 전혀 놀란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천연덕스럽게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을 풀고는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너무 늦었군.”
그런 가운데 놀랍게도 크리쳐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키가 2.5미터는 될 법한 거인이다.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기괴한 모습을 한 크리쳐의 말에 송종철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늦기는 무슨, 얼마 전에도 우리 애들 다녀갔다던데.”
그렇게 대꾸한 송종철이 김진우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김진우는 깨달을 수 있었다. 송종철이 말한 비밀 통로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놀랍게도 송종철은 지저의 세력과 접점이 있었다. 그것도 심층과 연결된 세력과의 접점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비밀 통로를 알려준다고 한 송종철이 엉뚱한 미궁을 방문했을 리는 없었다.
“사람이 말이야, 머리를 써야지. 안 그래? 맨날 치고받기만 해서는 발전이 없는 거야.”
그렇게 거들먹거린 송종철이 대단한 사실인 양 비밀 통로의 정체를 까발렸다.
“우린 이곳을 통해서 심층으로 들어가지. 물론 공짜는 아니지만, 힘들이지 않고 단번에 심층까지 가는 대가치고는 무척 싼 편이야.”
“대가?”
“사실 대가라고 해봐야 지상의 잡동사니뿐이야. 웃기지? 지저 놈들은 지상의 쓸모없는 물건을 보물 대하듯 한다니까.”
송종철은 낮은 음성으로 크리쳐들을 힐끗거리며 낄낄거렸다.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리는 느낌에 김진우는 탐색자들이 등에 메고 있던 커다란 배낭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10층의 귀족들이 얼마나 지상의 물건을 수집하는 데 열을 올리는지 역시 떠올릴 수 있었다.
“기다려 봐. 내가 소개시켜 줄 테니까. 그래야 우리 진우 씨도 이쪽 통로를 이용하지.”
“아니. 됐어. 정체를 알았으니 됐어.”
송종철이 선심이라도 쓰듯 그렇게 말했지만 김진우는 거부했다.
“아? 후달려서 그래? 걱정하지 마. 이쪽 친구들이라면 우리도 꽤 오래 거래를 해왔어. 어지간한 인간보다는 차라리 양심적이니까 완전히 믿지는 못하더라도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돼.”
제멋대로 그의 생각을 추측한 송종철이 떠들어댔지만, 실상 그가 크리쳐들을 소개 받는 걸 꺼린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그는 지상의 던전 베이비이자 탐색자인 동시에 지저의 당당한 귀족이자 미궁의 주인인 탓이다.
당장이야 스스로의 격이 월등하게 높아 상대 크리쳐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으나 전면에 나서서 대화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고 만다.
최악의 경우 송종철을 비롯한 이들 앞에서 정체가 까발려지는 수가 있었다.
그런 상황만큼은 절대로 피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애써 기척을 감추고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지워 버렸다. 다행스럽게도 탐색자들의 배낭에 정신이 팔린 크리쳐들은 그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사양하고 싶군. 어차피 심층에 갈 일도 없을 것 같으니. 일단은 비밀 통로를 본 걸로 만족하지.”
“거 12레벨씩이나 돼서 몸을 사리기는. 하긴 그러니까 그 깊은 곳에서 지상까지 살아 올라왔지.”
놀리는 것인지 감탄하는 것인지 혀를 찬 송종철이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크리쳐를 향해 몸을 돌렸다.
***
일행과 함께 다시 지상으로 귀환한 김진우는 송종철에게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지저행을 통해 완전히 한패라고 인식한 모양인지 송종철은 거침이 없었다.
그렇게 얻은 정보라는 것이 단편적인 지저의 정보에 불과했고 또 그마저도 날조되어 엉망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탐색자협회가 지저와 커넥션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쨌건 다시 생각해 보라고. 좀 잠잠해진다 싶으면 같이 심층도 들어가자고. 저번에도 말했지만 우리만큼 심층 경험이 많은 탐색 팀도 없어.”
그는 한참이나 심층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떠들어대다가 겨우 그를 놓아주었다.
그렇게 송종철과 헤어진 김진우는 곧장 파티 홀로 통하는 게이트를 열었다.
“주인이시여.”
대체 뭘 하느라 그리 바쁜 것인지 헐레벌떡 나타난 윤희가 뒤늦게 그를 반겨주었다.
“신경 쓰지 마. 오늘은 다른 볼일을 보러 온 거니까.”
그간 눈부시게 발전한 파티 홀을 한번 둘러보고 그는 곧장 파티 홀을 나섰다. 이번 지저행의 목표는 파티 홀과 윤희가 아니었다.
지상과 연합한 정체불명의 미궁, 그곳이 그의 목표였다.
길잡이 능력을 통해 완성된 지도를 따라가다 보니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송종철 일행과 함께 방문한 미궁에 도달할 수 있었다.
미리 준비한 후드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김진우는 조용히 미궁의 앞에 서서 누군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그가 나타나기가 무섭게 이곳저곳에 몸을 숨기고 있던 미궁의 경비 병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들의 왕을 만나고 싶다.”
한껏 기세를 드러내며 말했더니 이내 지저 귀족의 권위가 발동되었다.
불청객을 둘러싸고 창칼을 내밀고 있던 크리쳐들이 그 압도적인 격의 차이에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대들의 왕을 불러오라.”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의미는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송장의 모습을 한 병사 중 하나가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예의 그 송종철을 맞은 거인과 함께 돌아왔다.
[지저 귀족의 고유 능력 하급 귀족의 위엄이 발동되었습니다.] [상대는 또 다른 귀족의 권속입니다. 원래대로라면 당신의 위엄에 저항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상대지만, 굳건한 충성이 그의 정신을 보호합니다.] [하지만 완전한 저항에 성공하기에는 존재의 격차가 지나치게 큽니다.] [상대가 하급 귀족의 위엄에 저항하는 데 절반쯤 성공했습니다. 제한적인 위압 효과가 발생했습니다. 상대는 당신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것입니다.] [제한적인 위압 효과에 그가 몹시 혼란스러워합니다.] [강한 충격을 받을 경우, 위압 효과에서 풀려날 수 있습니다.]썩어문드러진 턱을 반쯤 벌린 채로 어버버거리는 거인을 본 김진우가 씨익 웃으며 물었다.
“네 주인은 누구지?”
“시, 심층의 남작 우스투스님을 모시고 있…….”
그렇게 그의 심문이 시작되었다.
***
위압 효과가 완전히 통하지 않은 덕분에 오히려 김진우는 많은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혼란이 극에 달한 탓에 피아의 구별이 무너진 상대가 주절주절 자신이 아는 사실을 전부 털어놓은 것이다.
피부가 제거된 크리쳐의 이름은 몰자크, 구울의 왕이며 심층의 남작 우스투스가 지상인과의 거래를 위해 특별히 거둔 존재이기도 했다.
강제된 충성의 효과 탓인지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우스투스에 대한 발언은 삼가는 몰자크였지만 지상인에 대한 이야기는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그렇게 몰자크에게 들은 정보 중에는 놀라운 사실이 숨겨져 있었다.
“협정 이전에 풀려난 던전 베이비들이 있다고?”
알려지기로는 모든 던전 베이비는 종전 협정이 있고 나서야 풀려났다.
그런데 몰자크는 그 협정 이전에 풀려난 던전 베이비들이 있다고 말했으며, 자신이 그런 이들과 심층의 귀족들을 연결하는 창구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김진우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변절자.
던전 베이비 중에 지저와 결탁한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송종철이 있으리라. 그가 갑작스럽게 만들어낸 탐색자협회, 그를 따르는 던전 베이비들의 과도한 충성과 복종,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그 목적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몰자크를 다그쳐 심층의 우스투스와의 만남을 주선하게 만들었다. 혼란에 빠져 눈앞의 상대가 지저의 귀족인지 지상인인지조차 구별하지 못한 몰자크는 선선히 포탈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열린 포탈 너머를 살펴보던 김진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쩐지 포탈 너머의 광경이 낯설었다. 당연히 보여야 할 핵이 보이지 않고 왕좌도 보이지 않았다.
허리춤의 칼을 부여잡고 언제든 병력을 소환할 준비를 마친 김진우는 조심스레 포탈을 넘었다.
“음…….”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포탈에 연결된 곳은 미궁의 중심이 아닌, 외딴 밀실이었다. 그간 미궁 간 포탈은 당연하게도 핵으로 연결되어 있는 게 당연하다 생각한 고정관념이 깨져 버렸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조심스레 밀실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기가 무섭게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수십의 크리쳐가 그를 둘러쌌다.
다시 몸을 빼내기 위해 배후의 포탈을 돌아본 김진우는 어느새 자신을 포위하다시피 한 구울과 몰자크를 보고는 혀를 찼다.
몰자크의 얼굴은 언제 스스로가 위압 효과에 제압되었냐는 듯이 멀쩡해 보였다.
“당했군.”
그 싸늘한 눈초리를 보니 몰자크가 진즉 정신을 차리고 연기를 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쓰게 한마디를 내뱉은 김진우는 이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굳세게 움켜잡았다. 어차피 이 정도는 각오한 바였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미궁의 심처에 잠입하는데 위험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기사의 포탈은 반드시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만 열리는 것, 우스투스의 병력이 기다리고 있다 한들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위험을 감수한 것은 스스로가 어떤 상황에서도 10층을 벗어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서 시퍼런 귀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냥 보내줬다면 아무런 피해도 없었을 것을. 쯧.”
서늘하게 한마디를 내뱉은 그는 퇴로를 확인하기 위해 앞과 뒤의 전력을 비교하며 곁눈질했다.
“후읍.”
생각은 길었지만 행동은 짧았다. 비교적 만만한 7층의 구울들을 향해 쏘아질 듯 몸을 낮춘 김진우는 튀어나가기도 전에 다시 허리를 세워야 했다.
“어서 오시오, 전승의 사령관이자 지저의 유일무이한 정복자여.”
그를 부르는 위엄 넘치는 음성이 들려왔다.
몸을 돌린 김진우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기이한 물체를 볼 수 있었다.
커다랗고 동그란 몸통, 아니, 그것을 과연 몸통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눈알로 이루어진 괴물의 모습이 기괴하기만 했다.
“반갑소. 지저 모든 외눈박이의 왕 우스투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