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24)
던전 견문록-124화(124/319)
# 124
던전 견문록
제 125 화
#49. 보복
가장 먼저 이변을 알아차린 것은 선두에서 흉포하게 달려들던 마르쿠스였다. 갑작스레 허공에 흩날리는 검은 깃털을 본 그가 본능적으로 속도를 늦추었다.
푸드득!
그리고 귓가에 날카로운 날갯짓 소리가 들려온 순간, 마르쿠스는 그대로 양발의 근육을 터질 듯 팽창시키고 땅을 박찼다.
육중한 거체가 무색하게 마르쿠스의 거체가 천장에 머리가 닿을 듯 날아올랐다.
“크아아아악!”
마르쿠스가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순간, 허공에 날려대던 검은 깃털이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는 혈사자들의 비명이 이어졌다. 순식간에 혈사자 셋이 온몸에 깃털을 꽂고 그대로 널브러져 버렸다.
“크허어엉!”
쿵 하고 사납게 바닥에 내려선 마르쿠스가 흉포하게 포효했다. 그 사나운 고함 소리에 선두의 언더 엘프들이 겁에 질려 주저앉았다.
그런 그들 앞에 검은 깃털이 휘몰아치듯 한곳에 모이더니 이내 거대한 까마귀의 형상을 이루었다.
“전장의 까마귀가 여긴 무슨 일인가?”
거대한 까마귀 모리건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챈 마르쿠스가 경악해서 외쳤다
“킥, 까마귀가 왜 왔을까?”
그런 마르쿠스를 보며 모리건이 부리를 까딱거렸다.
“그야 시체 파먹으러 왔지. 물론 난 방금 갓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시체를 좋아해.”
“잘도 내 부하들을……!”
조롱하는 기색이 다분한 모리건의 음성에 마르쿠스가 분노해 소리치며 내달렸다.
그런데 막상 방금 전까지 모리건이 있던 곳에 도달하자 다시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모리건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언더 엘프들의 뒤편이었다.
“감히 너 따위가 혈사자들을 적대하려는 것인가!”
이미 수하들의 피를 보고 난 뒤라 잔뜩 흥분한 마르쿠스의 포효가 그 어느 때보다 사나웠다. 하지만 모리건은 눈 하나 꿈적하지 않았다.
“감히?”
그녀는 가소롭다는 듯이 마르쿠스를 조롱했다.
“전장의 까마귀가 어느 미궁 소속인지는 모르는 모양인가 봐?”
그제야 전장의 까마귀 모리건의 소속을 떠올린 혈사자의 낯빛이 검게 죽어버렸다.
“8층에 힘만 센 멍청이가 있다더니 그게 바로 너로구나!”
부리를 딱딱거리며 조롱하는 모리건의 태도에도 마르쿠스는 쉽사리 대응하지 못했다.
이 거대하고 흉포한 혈사자는 처음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방을 둘러볼 뿐이다.
“설마 전승의 사령관이 언더 엘프들을 탐내고 있는 건가?”
뒤늦게 모리건을 따라온 추가 병력이 없음을 깨달은 마르쿠스가 무거운 음성으로 물었다.
“멍청이. 그게 아니야.”
그렇게 대꾸한 모리건이 푸드득거리며 날아올라 언더 엘프들의 뒤에 내려섰다.
“처음부터 이쪽은 우리 주인님 거였다구.”
그렇게 말한 그녀가 거대한 날개를 펼쳐 후열에 남아 있던 릭샤샤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렇지?”
모리건의 친한 척에 릭샤샤가 고개를 끄덕거리다 물었다.
“왕께서는?”
“순찰자들이 돌아온 게 언젠데 벌써 도착했겠니. 주인님께서 하도 성화시라 나 먼저 온 거란다, 언더 엘프 꼬맹이야.”
놀리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릭샤샤는 기분 나쁜 기색도 없이 오히려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럼 지금은 너 혼자로군.”
그사이에 생각을 정리했는지 마르쿠스가 두 여자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어머나, 그래서 어쩌시게? 혼자라 만만해 보이니 다 죽이고 입 싹 씻으시게?”
실제로도 혈사자들은 노골적으로 살기를 드러내며 다가오고 있었지만, 모리건은 태연하기만 했다.
아니, 그녀는 태연하다 못해 혈사자들을 무시했다. 그녀는 자신을 노려보며 다가오는 혈사자들을 뒤로하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이제 지척까지 짓쳐든 줄무늬 땅벌들을 향해 마구잡이로 깃털을 날려댔다.
“크어어엉!”
그렇게 모리건이 등을 보이는 순간, 마르쿠스와 혈사자들이 포효하며 몸을 날렸다. 아무래도 그들은 까마귀의 주인이 도착하기 전까지 상황을 정리하고 몸을 빼낼 작정인 듯했다.
“양쪽은 못 막아! 저쪽이 수가 더 적고 몸놀림이 느리니 알아서 피하든지 싸우든지 해!”
수백의 땅벌들이 날갯짓을 해대는 통에 앵앵거리는 거북스러운 소음이 사방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 사이로 혈사자들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 사이에 선 릭샤샤가 양쪽을 번갈아 바라보다 곡도를 움켜쥐곤 뛰쳐나갔다.
“저년이 우두머리다! 저년은 잡지 말고 죽여!”
마르쿠스는 처음부터 릭샤샤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건방지게 언더 엘프 주제에 부대의 지휘관이라도 된 것처럼 떠들어대는 것이 영 눈에 거슬린 것이다.
마르쿠스의 지시에 혈사자 몇이 선두에서 툭 튀어나오더니 릭샤샤를 향해 곧장 돌진했다.
그 앞에 선 언더 엘프들은 싸울 생각도,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 사나운 돌격에 휘말려 밟혀 죽고 말았다.
그렇게 몰아붙였음에도 여전히 무력한 일족의 모습에 릭샤샤가 이를 악물고는 곡도를 내질렀다. 단번에 목덜미를 노리는 그림자의 칼날이 혈사자의 피부를 베어냈다.
하지만 혈사자들은 팔이 잘려나가는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어 그녀에게 이빨을 내밀고 손톱을 내질렀다.
혈사자들의 움직임은 사납고 강맹한 면은 있을지언정 언더 엘프 러너를 잡기에는 턱없이 느렸다.
릭샤샤는 손쉽게 그들의 공세를 피하고 계속해서 칼날을 뿌려댔다.
“역시 네년이 우두머리였군.”
하지만 그런 그녀의 분전도 일족의 도움 없이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으니 언제 다가왔는지 마르쿠스가 다가와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네년만 잡고 나면 언더 엘프들도 원래의 얌전한 태도를 되찾…….”
사납게 웃으며 지껄여 대던 마르쿠스가 말을 하던 도중 급하게 숨을 들이마시며 머리통을 뒤로 쭉 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대한 머리통이 있던 자리를 검은 칼날이 스치고 지나갔다.
주르륵.
빨간 핏물이 두툼한 콧잔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만히 양손을 번갈아 바라보던 마르쿠스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머리카락 뭉치가 뭉텅 잘려나가 있음을 확인하고는 이를 갈아붙였다.
자신에게 잡혔다 싶은 순간, 이 독한 언더 엘프가 망설임 없이 제 머리채를 잘라내고 반격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신속한 대응은 혈사자의 화만 돋웠을 뿐이다.
하찮은 언더 엘프에게 일격을 허용했다고 생각하니 부아가 치민 혈사자가 붉은 갈기를 바짝 세우고는 달려들었다.
릭샤샤가 눈살을 찌푸렸다. 속도는 자신이 더 빨랐지만 이 노련한 혈사자는 자신을 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넓지 않은 통로, 예상대로 금세 등이 차가운 벽에 닿고 릭샤샤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게 되었다.
멀리 땅벌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날뛰어대는 모리건이 보였다. 하지만 차가운 눈빛을 한 그녀는 더 이상 도움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분명히 여유가 있음에도 그녀는 언더 엘프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따금씩 자신의 일족에게 향하는 붉은 눈동자에 언뜻언뜻 경멸의 빛이 떠올랐다. 그 눈빛을 본 순간 릭샤샤는 확신했다.
저 전장의 까마귀에게는 모두를 도울 힘이 분명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건은 자신들을 돕지 않을 것이다.
마치 자신이 일족을 죽음으로 내몰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라 강요하던 것처럼 모리건 역시 언더 엘프들의 자격을 시험하고 있었다.
그녀는 설령 여기서 언더 엘프들이 전부 몰살당하더라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원망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녀 역시 같은 심정이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 혈사자들에게 목숨을 구걸하다 허무하게 죽어가는 일족의 모습은 그녀조차도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비루하고 가치가 없었다.
“너무 기분 내지 말고 적당히 살려 돌아간다!”
마르쿠스는 마치 상황이 전부 끝난 것처럼 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곧 그와 혈사자들의 의도대로 모든 일이 마무리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릭샤샤가 웃었다. 하얀 이가 드러날 정도로 환한 미소. 마르쿠스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미소에 인상을 찌푸렸다.
“재수없어. 언더 엘프 주제에 감히 우두머리 노릇을 하려 하다니…….”
아무래도 마르쿠스는 언더 엘프들이 받은 저주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릭샤샤를 바라보는 눈빛에 혐오와 일말의 두려움이 엉켜 있을 리가 없었다.
환하게 웃고 있던 릭샤샤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이제 와서 목숨을 구걸해 봐야 소용 없…….”
“늦으셨나이다.”
그녀의 행동을 본 마르쿠스가 비아냥거리다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행동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함을 그제야 눈치 챈 탓이다.
하지만 깨달음이 늦었으니 마르쿠스는 갑작스레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신음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몸이 부웅 날아오른다 싶더니 숨이 턱 막히는 통증이 느껴졌다.
“크아아악!”
한발 늦게 수하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온 사방에 피가 흩날리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곁을 지키고 있던 혈사자 넷이 그대로 반 동강이 나 허물어지듯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마르쿠스는 그제야 누군가가 자신의 갈기를 움켜잡아 내던지고 수하들을 도륙 냈음을 깨달았다.
“타임 오버다, 병신아!”
그 순간 지독스러울 정도로 싸늘한 음성이 마르쿠스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
바닥에 널브러져 멍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거대한 사자인간을 보며 김진우는 싸늘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타임 오버다, 병신아.”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혈사자들의 대열 뒤가 소란스러워진다 싶더니 높고 날카로운 포효가 연달아 들려왔다.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화염과 폭발. 혈사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내몰렸다.
그런 그들 사이로 턱 끝에 불꽃을 매단 도마뱀 무리가 사납게 달려들었다.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령관의 고유 능력 ‘전장의 지배’가 활성화되었습니다.] [나가 용기사들은 용맹한 사령관과 함께 전투를 한다는 사실을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아군의 집단 전투 능력이 상승했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작은 혼잣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그대로 따르려 할 것입니다.] [아군들의 진형이 한층 더 단단해지고 탄력적으로 변모합니다.] [전장의 지배 효과로 아군의 전투 능력이 증폭되었습니다.] [정복자의 고유 능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부대 하나가 층간 페널티에서 벗어났습니다.] [용기사들이 층간 페널티에서 자유로워져 본래의 능력을 되찾았습니다.]고개를 흔들어 눈앞의 메시지들을 털어낸 김진우가 가만히 릭샤샤를 바라보았다.
그간 고초가 많았는지 얼굴이 잔뜩 상한 그녀였으나 눈빛만큼은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고생이 많았구나.”
“주인께 심려를 끼쳤나이다. 이 미천한 종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릭샤샤는 재회의 인사 대신 언제나처럼 벌을 자청했다. 이제는 그런 태도가 많이 익숙해진 김진우가 피식 웃어 보였다.
“그런데 이들이 그대가 말한 일족인가?”
“그러하나이다.”
릭샤샤의 음성이 기어들어 가듯 자신이 없었다. 하기야 당연한 일이었다.
일족을 모아오겠다며 호언장담하고 미궁을 떠났는데, 막상 주인의 손에 구조를 받게 되었다.
하물며 그렇게 대령한 언더 엘프 일족이란 족속들이 하나같이 바닥에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고 있으니 그녀가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대의 반의반만큼이라도 닮기를 바랐지만 아무래도 과욕이었던 모양이군.”
릭샤샤는 자신의 예상대로 김진우가 언더 엘프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싸늘해지자 덩달아 죄를 지은 것처럼 몸을 떨었다.
“오랜 세월이 일족의 긍지와 투쟁심마저 앗아갔나이다.”
“하긴 그대 역시 처음엔 저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지.”
릭샤샤와의 첫 만남을 떠올린 그가 피식 웃으며 얼굴을 풀었다. 고작 하급 다운 잼 하나에 오체투지하던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그대는 적을 앞에 두고 도망친 적이 없으니 그대와 그대 일족은 분명히 다르다. 그대 일족의 가치는 이 전투가 끝이 난 뒤에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그도 잠시, 다시 차갑게 얼굴을 굳힌 김진우가 단호하게 선언했다.
“주인의 뜻대로.”
릭샤샤는 다 포기했는지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던 그가 낮게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런 그의 시선이 보기 흉하게 잘려 나간 그녀의 탐스러운 머리채를 향해 있다.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지.”
그렇게 한마디를 툭 내뱉은 김진우가 몸을 돌렸다.
“으음…….”
그때까지만 해도 용기사들에게 맹공을 당하는 수하들을 보며 눈치를 살피고 있던 마르쿠스가 그의 시선을 느끼고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언제부터인지 그의 눈가로 시퍼런 귀화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