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29)
던전 견문록-129화(129/319)
# 129
던전 견문록
제 130 화
51. 적의 침공
새벽닭의 포효는 마치 비명과도 같았다. 끝내 종말을 고하고야 만 지저가 내지른 단말마처럼 헤임달의 울음소리는 끔찍했다.
그 불길한 전쟁의 전조를 들은 순간, 김진우는 그토록이나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미궁의 경계를 강화하고, 순찰자들을 내보내 상황을 살펴라!”
정복자의 미궁은 수많은 나가와 적들의 피로 세워진 요새다.
당연하게도 나가들이 완벽하게 임전태세를 갖추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미궁의 경계가 완벽한 방어 태세를 갖췄고, 수많은 나가 순찰자들과 언더 엘프 순찰자들이 인근을 돌며 혹시 모를 적의 침입을 대비했다.
동시에 다른 미궁의 주인들에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라는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나가의 요새에 비해 다른 9층 미궁의 반응은 너무나 굼떴다.
그들은 김진우의 경고를 들었음에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그 대가는 너무나 뼈아팠다.
[흰 발바닥 거인들의 왕, 골로투스가 전사하고, 그의 미궁이 소멸되었습니다.] [외눈 도마뱀들의 왕, 파르나리우스가 살해당했습니다. 봉신의 계약이 깨어지고, 파르나리우스가 다스리던 미궁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녹색 난쟁이들의 왕, 압토스와 그 미궁이 완전히 소멸되었습니다.]순식간에 세 개의 미궁이 멸망했다. 그들의 멸망은 김진우와 나가들이 미처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작스러웠고 빨랐다.
“이런 망할 새끼들!”
김진우가 욕설을 내뱉었다. 자신의 말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은 이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 분노를 받아줄 이들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적들에 대한 정보는? 순찰자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조금만 기다리면 소식이 올 거예요. 지금 순찰자들을 한계까지 운용하고 있어요.”
도미니크의 보고에 그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순찰자들로는 부족해. 용기사들을 투입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감이 좋지 않아.”
비록 소멸한 미궁들이 9층에서도 꽤 하위에 속하는 미궁이었다고는 하지만, 불과 반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멸망해버릴 정도로 허약하지는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들은 저층 가장 깊은 곳에 속한, 당당한 9층 미궁의 주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구원 요청을 하기도 전에 멸망했다는 것은 그만큼 침입자들의 공격이 무자비했다는 의미였다.
“제길,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으면.”
이미 심층의 상황을 확인하고 전쟁을 대비하려던 참이다. 조금만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완벽한 방어망을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그의 편이 아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미궁들이 공격받고 있었다.
“주인님! 순찰자가 돌아왔어요!”
“데려와!”
순찰자가 돌아왔다는 말에 김진우가 반색했다.
“부상이 심해서 이곳까지 올 수 없어요! 지금 나가 사제들이 최대한 시간을 벌어보고는 있지만, 상태가 좋지만은 않아요.”
도미니크의 대답에 그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왕좌를 떨치고 나섰다.
“와, 왕이시여.”
돌아온 순찰자는 릭샤샤의 인도로 요새에 합류한 언더 엘프였다. 나가 사제들에게 둘러싸여 치유의 주술을 받고 있었지만, 그의 상태는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온몸은 선혈이 낭자했고, 한쪽 팔은 무언가에 뜯어 먹혔는지 온데간데없었다. 한눈에 보아도 생명에 경각이 달한 언더 엘프, 나가 사제들이 그를 보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언더 엘프 순찰자도 마지막을 예감했는지, 제 상세를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빠르게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전해주었다.
“뭉개진 얼굴, 뒤틀린 사지. 적들은 언뜻 보기에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납고 포악했습니다.”
언더 엘프는 그들이 마치 나병에라도 걸린 것 같은 끔찍한 몰골이었노라 말했다.
또한 그들은 너무나 쉽게 순찰자들의 은신을 간파했고, 노출된 순찰자들은 미처 빠져나갈 새도 없이 둘러싸여 산채로 잡아먹히고 말았다 말했다.
“장담컨대 그들은 이제껏 이 지저에 존재하지 않던 이들임에 분명합니다.”
끔찍한 출혈과 부상으로 몸을 덜덜 떨어대던 순찰자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언더 엘프 특유의 유연한 육체가 딱딱하게 굳어 식어가고, 보고를 이어가는 음성은 마지막 힘을 쥐어짠 듯 힘겹기만 했다.
“왕이시여, 청컨대 미천한 종의 작은 공을 하찮게 여기지 않으신다면, 제 일족에게 약간의 자비라도 베풀어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언더 엘프 순찰자의 말에 김진우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희생이 그대의 일족을 평안케 하리라.”
“왕의 자비에 감사를…….”
결국 언더 엘프는 고개를 푹 떨구고 말았다. 그는 음울한 눈으로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체를 바라보았다.
“시체가 더 손상되지 않도록 하여, 일족에게 인도하라.”
비록 한때는 노예근성에 사로잡혀 자신의 자유마저 타인을 통해 얻으려 했던 언더 엘프라고는 하나, 일족을 위한 희생은 결코 값싸지 않았다.
그의 짧은 애도에 나가 마법사들이 다가와 언더 엘프의 사체를 그대로 얼려버렸다.
언제 몰려든 것인지 음울한 눈으로 동족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던 언더 엘프들이 일족의 사체를 받아들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복잡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시선으로 언더 엘프 무리들을 쫓던 김진우가 이내 단호한 표정으로 지시를 내렸다.
“순찰자들의 은신 능력이 무용지물이 된 지금, 순찰자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없어. 그들의 임무 범위를 제한하고, 그 자리를 용기사들로 대체하라.”
비록 11층으로 향한 언더 엘프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는 없겠지만, 인근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순찰자의 희생은 막아볼 생각이었다.
“놈들의 정체는 필시 11층을 뒤흔든 놈들과 관련이 있을 테지.”
그렇게나 아니기를 빌었건만 결국은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졌다. 지금 9층을 공격하고 있는 적들은 11층을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만든 타 지저의 괴물들이 분명했다.
“그럼 이제 9층도…….”
가뜩이나 하얀 얼굴을 더욱 창백하게 만든 도미니크가 질린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가 차마 끝맺지 못하고 흐려버린 뒷말, 그 여운이 주는 불길함에 김진우가 어두운 얼굴을 해보였다.
“이제 이곳도 지옥이 되겠지.”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적들이 요새의 인근에 출몰했다.
[요새의 외곽을 순찰하던 용기사들이 전투를 시작했습니다.]메시지를 확인한 그는 대기하고 있던 용기사들을 이끌고 출진했다. 요새를 나서기가 무섭게 끈적끈적한 악의가 온몸에 들러붙었다.
“정신 바짝 차려라!”
그 농도 짙은 악의에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 그가 용기사들에게 당부했다.
다소 굳어 있던 용기사들이 그제서야 어깨를 펴고는 쭉쭉 발을 내딛었다. 순식간에 그들은 요새의 중심부를 벗어나 외곽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용기사들이 전장에 도착했을 때, 전투는 이미 끝난 후였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용기사들이 아닌, 정체불명의 괴물들이었다.
우드득. 우드득.
문드러진 피부와 비틀린 사지, 반쯤 썩어버린 육신, 괴물들의 모습은 언더 엘프의 보고보다 한층 흉물스러웠다.
저들에 비하면 발리셔스가 만들어낸 망자들은 차라리 멀끔한 편이었다.
마치 반쯤 썩다 만 거인의 모습을 한 괴물은 커다란 덩치가 무색하게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아그작아그작 씹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미 늦은 건가.”
온 통로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나가들의 피를 확인한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 나직한 중얼거림을 용케도 들었는지, 아귀처럼 입을 놀려대던 적들 중 몇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 바람에 그들이 마구잡이로 씹어대던 푸른빛의 무언가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이리저리 씹어 먹혀 훼손되기는 했지만, 억센 비늘이 붙은 팔뚝의 원주인이 용기사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런 개자식들이!”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김진우는 격노하여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푸른 안광을 줄줄 흘려대는 그의 기세는 어지간한 적들 따위는 감히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사납고 매서웠다.
하지만 적들은 그런 그를 보며 오히려 흉폭하게 이를 드러냈다. 입술을 꿰뚫고 나온 송곳니가 끔찍했다.
“쓸어버려라!”
분노에 찬 그의 고함에 맞춰 뒤따라 온 용기사들이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내뱉었다. 그들은 전우의 시체로 만찬을 벌이고 있던 적들에게 진정으로 분노했다.
“크아아아!”
분노한 용기사들의 돌격은 무지막지했다. 그들은 마주 달려오는 거대한 적들을 보고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가장 먼저 적들과 충돌한 것은 김진우였다.
그는 충돌 직전에 호법룡의 등 뒤에서 뛰어올라 괴물들을 향해 난입했다. 그리고 허리춤에 비껴 차고 있던 칼을 꺼내 그대로 휘둘렀다.
아무것도 아닌 그 투박한 공격에 적의 팔뚝이 잘리고, 허리가 두 동강이 났다.
순식간에 괴물들의 선두가 무너지고 뒤따라온 용기사들이 나자빠진 적들을 짓밟고 지나갔다.
“음…….”
적의 선봉을 완전히 무너뜨렸지만 김진우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적들이 너무도 무력하게 무너졌던 탓이다.
이런 정도라면 순찰을 나갔던 용기사들이 당했을 리가 없었다.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우려를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용기사들에게 짓밟힌 괴물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마치 잘려져 나가고 짓뭉개진 육신의 고통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는 것처럼 기분 나쁜 포효를 내뱉으며 달려들었다.
그 사실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용기사들의 후열이 괴물에게 뒷덜미를 잡아채이기 직전이었다.
“뒤는 무시하고 그대로 달려! 속도 올린다!”
김진우는 앞뒤로 적에게 둘러싸였음에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용기사들을 독려해 돌격 속도를 끌어올렸다.
그의 손에 들린 칼이 정신없이 흔들렸고, 전방을 가로막고 있던 괴물들이 빠른 속도로 썰려 나갔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용기사들은 마침내 적을 관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짓밟고 뭉개버린 적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다시 들러붙으니, 전투는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다.
***
결국 전투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적들을 짓밟고 나서야 겨우 끝이 났다. 어지간해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김진우조차도 질린 얼굴을 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쓰러트렸다 생각한 적들을 다시 마주하는 것은 그만큼 끔찍한 경험이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 망자들과 똑같지만, 적들은 더 맹목적이고 집요해. 공격력이 부족한 나가 용사들만 해도 미궁 밖에서 이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전투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김진우의 평가는 냉정했다.
“용기사들도 위험해. 까딱 잘못하면 돌격하는 도중에 적들에게 둘러싸이고 만다.”
만약 자신이 선두에서 적들을 분쇄하지 않았다면 용기사들만으로 이 끔찍할 만큼 집요한 적들을 전멸시키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만약 용기사들의 돌격도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면, 다른 이들은…….”
“아마 막아내기 힘들겠지.”
단 한 번의 전투였지만 김진우는 적들이 얼마나 끔찍하고 집요한 상대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는 직감적으로 9층에 존재하는 미궁 중에서 이들을 상대할 만한 이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만약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9층은 멸망이다.”
불길한 예언, 그 어느 때보다 위기감이 느껴지는 한마디에 도미니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항상 그렇듯이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리고 지저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그러한 예상은 언제나처럼 최악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고야 만다.
전황은 악화 일로였다.
9층의 주인들은 미궁을 걸어 잠그고 버티는 게 고작이었고, 그렇게 방어에 전념했음에도 무너지는 미궁이 속출했다. 이틀 사이에 무너진 미궁이 무려 일곱이었다.
그리고 끔찍하게도 지금 이 순간에도 공격받고 있는 미궁들은 무수히 많았다.
“왜 11층의 백작들이 그렇게 고전했는지 알 것 같군.”
9층의 미궁들을 움직여 적의 이동 경로를 틀어막고, 방어선을 꾸리는 것으로 전선을 제한할 수만 있다면 한결 상황이 나아지련만, 적들은 그럴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방향성도 일관성도 없는 산발적인 공격에 미궁의 주인들은 발이 묶여 버렸고, 미궁과 미궁 간의 네트워크가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이대로라면 고립된 채 서서히 죽어갈 뿐이에요.”
11층의 강대한 백작들도 막아내지 못한 적이다. 그런 괴물들을 상대로 따로따로 떨어져 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도미니크는 다수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9층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했다.
“좀 위험하긴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의중을 헤아리기 위해 끙끙거리던 도미니크가 별안간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해보였다.
“설마…….
“포탈을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