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30)
던전 견문록-130화(130/319)
# 130
던전 견문록
제 131 화
최악의 경우, 감당 못할 적의 군세를 요새의 내부로 끌어들일 수도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던 도미니크는 결국 설득당했다.
혼자 버텨봐야 다른 미궁들이 모두 멸망하고 적들의 집중 공격이 시작되면 버틸 수가 없을 거라는 김진우의 논리가 먹혀든 것이다.
그렇게 미궁에 틀어박힌 채 멸망의 길을 가느니, 차라리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끌어모을 전력이 있을 때 움직이는 게 유리하다는 그의 말은 제법 타당했다.
그래서 도미니크도 더는 반대할 수 없었다.
“그들이 과연 주인님에게 감사를 할까요?”
비록 봉신의 맹세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그들의 충성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복종이 아닌 힘에 의해 강제적으로 맺은 굴종이다.
그들을 구해준다고 해서 없던 충성심이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부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를 바랄 뿐이야.”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미궁의 주인들이지만, 그만큼 자신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에는 민감했다.
그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넘치는 생존 욕구만큼만 그들이 현명하게 처신하기를 바랐다.
“포탈.”
나직한 중얼거림과 함께 허공이 갈라지며 포탈이 열렸다.
“그럼 다녀올게, 요새를 부탁해.”
“부디 무탈하게 돌아오시기를.”
도미니크의 걱정 가득한 배웅을 뒤로하고 김진우는 공간의 문을 넘었다. 그런 그의 뒤를 따라 모리건과 헤임달을 비롯한 영웅급 소환수들이 포탈을 건넜다.
“주인님이 오시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적의 침범을 허용하지 마라!”
김진우를 따라 포탈을 넘어간 전력은 영웅급 소환수들과 망자의 군대뿐이었다.
나가들은 혹시 모를 적의 역습을 대비하기 위해 쩍, 하고 입을 벌린 포탈의 앞을 물샐틈없이 막아서고 있었다.
같은 시각, 요새의 입구를 막아서고 있던 나가들도 완전히 진영을 굳힌 채, 적을 맞을 준비를 끝마쳤다.
***
포탈을 넘어선 김진우와 그의 군대를 반겨준 것은 함락 직전의 난쟁이들의 미궁이었다.
미궁을 가로지르는 중앙 통로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역을 적들에게 넘겨준 말락수스와 난쟁이들은 오너 룸과 몇 개의 시설만을 간신히 지켜낸 채, 힘겨운 전투를 하고 있었다.
“왕께서 오셨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원군의 등장에 환호했고, 안간힘을 다해 적들을 밀어냈다.
하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난쟁이들은 도끼를 쥘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높게 치솟은 사기가 무색할 정도로 무기력했다.
그런 그들을 대신해 적들을 밀어낸 것이 발리셔스와 발자크의 지휘를 받는 망자의 군대였다.
살아 있으나 죽은 자와 외관이 다르지 않은 괴물과, 이미 죽었으나 살아 움직이는 망자의 군대가 부딪쳤다.
망자들과 괴물들은 엉켜 붙어 서로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할퀴어댔다. 살점이 튀어오르고 피가 솟구쳤지만 비명은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고통을 모르는 양측의 격돌에 지켜보고 있던 난쟁이들이 이제껏 그 어떤 상황에서도 꽉 움켜쥐고 있던 도끼를 늘어뜨렸다.
“이건 지옥이야…….”
소리 없이 서로를 물고 찢는 기괴한 전투에 완전히 질리고 만 것이다. 난쟁이들이 질리거나 말거나 전투는 계속되었다.
망자들은 완전히 신체가 박살나지 않는 한 끊임없이 적들을 공격했고, 이는 적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승기는 서서히 망자들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비록 수가 적기는 했지만 망자들의 군대는 발리셔스가 전사한 심층 귀족의 영웅급 소환수를 베이스로 만들어낸 존재들이다.
그런 그들이 죽음의 기사로 진화한 발자크와 사령술사 발리셔스의 지휘를 받으니 생전의 힘 이상을 발휘하는 게 당연했다.
거기에 더해 모리건과 헤임달, 오르테아가를 비롯한 영웅급 소환수들이 전장을 휘저어댔다.
끈질기기가 망자보다 더한 적들이었지만 이 모든 이들의 합공을 버텨내는 건 무리였다.
결국 반나절에 걸친 전투가 끝이 났을 때 일천에 달하던 적들 중 살아 움직이는 이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 과정에서 50기에 달하는 망자들이 파손되었지만, 발리셔스는 뻔뻔하게도 이미 죽어버린 난쟁이들의 시체를 다시 일으켜 세워 손실을 복구하는 악랄함을 보였다.
당연하게도 말락수스와 난쟁이들이 반발했다.
“저들 역시 죽어서라도 원통함을 갚고 싶었을 거요. 나는 그들의 염원을 들어주었을 뿐이니 원망하지 마시오.”
발리셔스의 억지가 통한 것인지 말락수스도 더는 따지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의 미궁을 구원해준 이들에게 감히 더 따지고 들 염치가 없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건 간에 그들이 아니었다면 일족과 미궁의 멸망은 필연이었을 테니까.
원한은 열 배로 갚고, 은혜는 금세 잊어버리는 지저의 존재답지 않은 말락수스의 사고방식, 그러한 성정을 알기에 김진우는 가장 먼저 그를 구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안하지만 쉴 틈이 없다. 최대한 빨리 손해를 복구하여, 전장에 합류하라.”
그는 반파된 미궁을 보고 실의에 빠진 난쟁이들을 다그쳤다. 이미 상황의 심각성을 들은 터라 말락수스는 곧장 손실된 전력의 복구에 들어갔다.
복구에 들어간 다운 잼은 이미 10층 귀족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얻은 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빠르게 전사자들의 공백을 메우고 파괴된 미궁을 복구했다.
그 사이에 김진우는 십여 개의 미궁을 연달아 구원해 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망자들의 손실이 커져 마지막 미궁을 구해주었을 때는 이미 대부분이 급조한 사체로 복구해 이루어져 있었을 지경이었다.
공들여 만든 망자들도 버티지 못했던 격렬한 전장, 급조한 망자 따위가 버텨낼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전투가 벌어질수록 망자들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우는 계속해서 승리해 나갔다. 망자들의 공백을 새롭게 합류한 미궁의 병력들이 채워주고도 남았던 탓이다.
하지만 이는 비교적 운이 좋은 미궁에 한정된 일이었을 뿐, 대다수의 미궁은 여전히 힘겨운 전투 속에서 당장 내일을 장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적들이 조금씩 무리를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 산발적으로 이곳저곳에서 이루어지던 공격이 어느 순간이 되자 조직적으로 변했고, 습격의 규모가 훨씬 더 커졌다.
그 바람에 김진우도 더는 포탈을 통한 유격전을 펼칠 수 없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적의 급증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한 김진우는 하마터면 역습에 당할 뻔했다. 포탈 너머에서 전황을 지켜보던 도미니크가 대기하고 있던 나가들을 포탈 안쪽으로 밀어 넣지 않았다면 큰 손실을 입고 말았으리라.
“이제부터는 전선을 형성하여 적을 밀어내는 식으로 전투를 이어가겠다. 지금보다 몇 배는 힘들고 고된 전투가 되리라.”
그의 말대로였다. 전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마치 이전까지의 전투는 전초전에 불과했던 것처럼 대규모 전투가 9층 곳곳에서 벌어졌다.
김진우와 나가들은 이전보다 더욱 바빠졌다. 김진우는 상대적으로 열세일 수밖에 없는 9층 군대의 전력을 메꾸기 위해 온 지저가 좁다고 뛰어다녀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황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김진우와 나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소생시켰던 미궁의 병력들이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전선을 이탈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비어버린 전력의 공백은 새롭게 합류한 미궁의 병력이 필사적으로 메웠다.
“난쟁이들이 다시 전장에 합류했습니다!”
“반인반마들의 미궁을 전선 안쪽으로 두는 데 성공했어요!”
살아남은 미궁의 핵들이 거의 한계에 가까울 정도로 혹사되었다. 손실된 병력은 막대한 다운 잼이 소모되어 복구되었고 그렇게 모집된 병력이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죽음과 탄생이 끝도 없이 이어졌고,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를 않았다.
“겨우 9층의 절반을 복구하기는 했지만 다운 잼의 소모가 극심합니다. 달리 방도를 찾지 못하면 전리품으로 얻은 다운 잼도 곧 다 떨어지고 전선이 무너질 거예요.”
도미니크는 그 무지막지한 다운 잼의 소모에 우려를 표했다. 당장 군자금이 넉넉한 편에 속하던 나가의 요새만 해도 근래 들어 눈에 띌 정도로 창고가 비어가고 있었다.
다른 미궁들은 나가의 요새보다 몇 배는 상황이 안 좋을 게 분명했다.
“11층의 백작들은 이런 놈들을 상대로 전쟁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9층보다 한참은 이르게 시작한 11층의 전쟁, 그는 새삼스레 11층 백작들의 저력에 감탄을 토해내고 말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백작들의 분전에 감탄만 토해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9층의 미궁들은 있는 다운 잼, 없는 다운 잼 죄다 끌어모아 전선을 유지하느라 피로가 쌓이고 있었고, 적들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그는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디나리온의 의뢰를 받아들이겠다.”
“주인님 없이 전선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해요!”
당장 9층을 지켜내는 것도 버거운 상황, 그런 전선을 두고 9층 방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김진우의 이탈은 절대로 피해야 했다.
그가 지닌 전승의 사령관과 정복자의 타이틀 없이는 단 하루도 전선을 유지하기 버거웠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김진우가 9층을 비우겠다고 하니, 도미니크가 기겁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대로 버티기만 하는 건 무의미해. 전선을 밀어 올려 적들이 넘어오는 통로를 찾아 길목을 막지 않는 이상, 이 끔찍한 소모전은 끝나지 않아.”
도미니크라고 그 사실을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김진우의 이탈을 필사적으로 만류했다.
“절대로! 절대로 안 돼요! 11층의 상황은 이곳보다 더욱 좋지 않다 들었어요. 그쪽은 전선조차 없이 백작들이 따로 적들을 상대하고 있어 언제 어디서 적의 공격을 받을지 몰라요. 그런 위험한 곳에 주인님 혼자 가는 건 절대 안 돼요.”
필사적인 설득과 애원이 이어졌지만, 도미니크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마침내 자금의 소모를 견디지 못한 미궁 하나가 자멸하고 만 것이다. 결국 전선이 무너졌고, 그렇게 뚫린 구멍을 통해 적들이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뒤늦게 전선을 다시 형성하기는 했지만, 9층의 절반을 가로지르던 전선은 3분지 1까지 축소되었고 그마저도 연일 적들의 파상 공세에 시달렸다.
김진우의 말대로 이대로 버티는 것은 곧 제 스스로 입구를 틀어막고 고사를 자청하는 것과 같았다.
결국 김진우는 디나리온의 요청을 수락하고야 말았다.
“9층도 상황이 좋지는 않을 텐데, 힘든 결단을 내렸군.”
디나리온은 9층의 전황을 이미 전해 들었는지, 그의 결단을 몹시 놀라워했다.
“좋은 생각이야, 어쩌면 이 기회에 11층에 입지를 다져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그대의 귀족 위는 자작의 위, 11층에 거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어.”
“아직 좋아하기에는 이르다. 디나리온.”
그대로 두었다가는 자신의 결정을 멋대로 확대해석할 기세인지라, 김진우는 차갑게 말을 막았다.
“나는 내 몸값을 제대로 받아낼 생각이니까.”
“그래, 우리 전승의 사령관께서는 그 타이틀을 얼마에 빌려주실 생각인가.”
디나리온의 질문에 김진우가 입을 열었다.
“9층 전선을 유지할 병력과 군자금의 지원. 그게 내가 원하는 내 몸값이다.”
***
디나리온은 그의 요청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역시도 조건을 걸었으니, 11층의 백작들이 납득할 만한 실적을 먼저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당분간 9층의 전선은 나 없이 버텨야 해.”
김진우의 말에 도미니크가 결연한 얼굴로 다짐을 해보였다.
“반드시, 주인님이 돌아올 때까지 버텨 보일게요.”
왕의 조언자이기 이전에 대리자의 자격을 지닌 그녀라면 힘겹더라도 전선을 어찌어찌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선의 병력들이 의지하고 있는 사령관의 타이틀과 정복자의 타이틀은 그녀가 대체할 수 없는 것, 11층에서의 일정이 길어지면 곤란했다.
그래서 김진우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디나리온이 연결해준 통로를 넘어 홀로 11층으로 향했다.
***
김진우가 9층을 떠난 그날 이후, 전선은 급속도로 위축되기 시작했다. 도미니크를 비롯한 나가들은 그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녀는 고대의 전쟁 영웅들을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혹사시켰고, 그 대가로 일반 병력의 희생을 어느 정도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강력한 모리건과 헤임달도 무적은 아니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전황은 악화되어가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적들을 상대하며 9층의 모든 이들은 생각했다. 하루라도 빨리 위대한 전승의 사령관이 돌아오기를, 그가 약속한 지원군이 9층에 도달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