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34)
던전 견문록-134화(134/319)
# 134
던전 견문록
제 135 화
노쓰우드 著
#53. 역전
[전장의 사령관이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패배 없이 전승 가도를 달리는 사령관의 명성은 아군에게는 축복이지만, 적에게는 악몽입니다. 아군의 움직임이 한층 더 기민해집니다. 아군은 쉽게 지치지 않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사령관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흡사 광신도와도 같은 아군의 움직임에 적들이 위축되었습니다. 적들의 움직임이 둔해집니다.]전장의 사령관, 심층의 백작들마저 탐을 내던 타이틀의 효과가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애초부터 적들을 학살하다시피 하고 있던 모리건과 헤임달이 더욱 더 날뛰어대기 시작했다. 거기까지였다면 적들도 몸을 빼낼 틈 정도는 어떻게든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진우는 그들이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았다.
끄에에에엑!
흉측한 외모만큼이나 추악한 비명 소리, 김진우가 지나간 길에 피가 튀고, 살점이 날아올랐다.
“주인님! 거짓말쟁이! 우리한테 다 맡긴다면서!”
모리건이 다시 한 번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아무래도 김진우의 참전으로 자신의 몫이 줄어든다는 생각이라도 한 모양이다.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앞의 적들을 베어댔다.
***
“이게 정복자의 진짜 힘.”
트린달은 기어이 신음을 내뱉고 말았다. 전투에 배제되었을 때 느꼈던 억울함과 분함 따위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난 후였다.
지금의 그를 지배하는 것은 김진우와 그의 일행에 대한 경탄뿐이었다.
사백의 적을 맞이하여 단 셋이 나서서 학살에 가까운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것은 김진우의 모습이었다.
전장의 까마귀처럼 전장을 가로지르는 부산스러움도 없다. 새벽닭처럼 거칠게 적을 몰아붙이는 과격함도 없다. 그는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적진의 한가운데를 그저 거닐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의 주변에는 적의 비명과 죽음만이 존재했다. 이래서야 적들이 제 스스로 칼날 앞에 몸을 바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지저에 퍼진 왕의 명성은 그 탁월한 지휘능력에 있었다. 그와 함께 싸우는 군대는 몇 배의 힘을 발휘하고 두려움을 잊는다.
그리고 적은 그 명성에 짓눌려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니 그가 함께하는 전투에 패배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트린달이 들은 명성은 딱 거기까지였다.
지저에 퍼진 왕의 명성 중 그 어디에도 본신의 전투 능력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남 말하기 좋아하는 몇몇 인사들은 수하들의 뒤에 숨어서 9층 지저를 좌지우지하는 그를 비웃기도 했다. 9층의 미궁 중 상당수가 전장의 까마귀에게 습격당해 억지로 굴복한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은 이따금씩 왕의 전투력에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어쩌면 운 좋게 고대 지저의 영웅을 수하로 둔 덕분에 지금의 호사를 누리는 것은 아닐까. 트린달 역시 그런 의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다 지저에 떠도는 뜬소문에 불과했다. 비록 육체가 반쯤 붕괴된 적들이라지만 그만큼 그들의 공격은 기괴하고 악랄했다.
하나의 힘이 부족할 때는 둘이 힘을 모아, 그도 모자라면 아예 서로의 몸을 합쳐 온갖 기괴한 공격을 일삼는 적들이다.
그런 그들 중에 왕의 걸음을 잠시라도 멈춰 세우는 이들은 없었다.
“크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는 적들의 모습, 트린달은 넋을 잃고 말았다. 이래서야 그토록이나 악을 쓰며 적과 싸우던 자신의 수하들이 한심할 지경이었다.
멍하니 왕의 활약을 보고 있자니, 그렇게나 많아 보이던 적들의 수가 어느덧 한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 해봐야 미처 도망치지 못한 적의 지휘관뿐, 사실상 전투는 끝이 났다고 해도 좋을 상황이었다.
“키에에엑!”
적들도 패배를 직감하고는 발악적으로 포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마지막 반전의 수로 김진우를 거꾸러트리는 것을 선택한 모양이다.
남아 있던 적들이 한데 모여 발작적으로 김진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딜!”
모리건과 헤임달이 나서 그들을 가로막으려다 물러섰다. 그런 그들 앞으로 김진우가 한발 앞으로 나서는 것이 보였다.
“아…….”
섬광이 터져 나왔다. 지저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 강렬한 섬광에 트린달은 눈이 타버릴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비명을 지르며 그는 연신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김진우만이 전장에 홀로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를 향해 달려들던 적들도, 또 온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던 시체들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
남은 적들은 무리 중에서도 가장 강한 이들, 400의 군세를 이끄는 지휘관이라고 할 수 있는 실세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합공은 과연 400의 군대가 펼치는 차륜전보다 더욱 위협적이었다.
길게 내뺀 손톱은 심장을 후벼 팔 듯 날카로웠고, 쩍 벌어진 주둥이의 송곳니는 당장에라도 뼈를 바스라트릴 듯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들의 합공은 위협적이었을 뿐, 그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의 몸에 손 하나 대지 못한 채 지저를 떠도는 먼지가 되었으니까.
“이건…….”
멀찌감치 물러나 있던 모리건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김진우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전장을 정리하라 명령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전장을 휩쓸고 간 섬광 탓에 시체조차 남지 않은 전장은 멀끔하기만 했다.
하다못해 공허의 기사들이 흘린 갑주의 파편조차도 남지 않은 전장, 나가들이 멀뚱멀뚱 주변을 돌다 그의 곁에 모여들었다.
그 모양새가 당장에라도 또 다른 전장을 찾아 이동할 것만 같아 트린달이 황급히 달려왔다.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김진우는 열성적으로 매달리는 트린달을 빤히 바라보다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동한다!”
그의 눈앞에서 다시 한 번 포탈이 열리고 나가들이 열을 지어 이동을 시작했다.
***
김진우는 무려 하루동안 무려 세 개의 전장을 전전했다. 트린달의 미궁에 이어 다른 쪽의 습격자들 역시 연달아 격퇴한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나가들의 피로를 생각해 무리를 하지 않았겠지만, 실질적으로 나가들이 본 전투에 나선 것은 세 번째 전투부터였던지라 전투력의 저하 같은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두 번째 전투에서는 거의 미친 것처럼 날뛰어댄 김진우는 세 번째 전투에는 지쳐 나서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하기야 세 번의 전투 중 두 번의 전투를 헤임달과 모리건의 도움을 받아 거의 홀로 처리하다시피 한 그였다.
아무리 온갖 증폭 효과로 도배한 그일지라도 지치지 않는 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전투에 직접적으로 뛰어드는 대신 멀찌감치 물러나 나가들의 뒤를 받쳐주었다.
“주인님.”
전투라면 자다가 일어나서도 날뛰어대는 모리건이 어쩐 일인지 후방에 남아 그를 불렀다.
“그대가 전투를 마다하다니 별일이군.”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싶었지만 헤임달이 멀쩡히 전장에서 날뛰어대는 모습을 보니 그도 아닌 듯 싶었다. 까마귀나 새벽닭이나 지닌바 힘은 거의 동등했던 탓이다.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그렇게 말한 모리건이 슬쩍 다가와 그의 곁에 붙어 섰다.
“주인님.”
“할 말이 있는가?”
잡담을 나누기에 좋은 때와 장소는 아니었지만, 김진우는 태평하게 그녀의 말을 받아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얼굴에 가득 떠오른 의문을 풀어주지 않았다가는 귀찮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던 탓이다.
그리고 김진우는 그녀가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까 그 빛…….”
아니나 다를까 모리건이 첫 번째 전투 말미에 터져 나왔던 섬광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늘 확신에 차 움직였던 그녀의 표정이 어쩐 일인지 혼란스러워 보였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시큰둥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해주겠다. 어차피 그대도 반쯤은 눈치챈 모양이지만.”
김진우의 말에 모리건이 입술을 깨물었다.
“한 가지만 대답해주세요.”
그녀는 그의 허락을 기다리는 대신 곧장 질문을 쏟아냈다.
“그 힘, 고대의 군주와 관련이 있나요?”
“이미 그대도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명확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이미 그 안에는 답이 들어 있었다. 모리건이 경악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주인님이 어떻게 그 힘을?”
“운이 좋았지.”
지독스러울 정도로 성의 없는 대답, 모리건은 납득하지 못했는지 다시 입을 오므렸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내내 질문에 시달릴 판국이라 결국 김진우가 툭, 하고 한마디를 내뱉었다.
“백작들이 떠넘긴 별동대, 그 안에 그 파편이 있었다. 대답이 되었나?”
앞뒤 다 잘라낸 말이었지만 모리건을 설득하기에는 충분한 말이었다. 그녀는 혼란이 어느 정도 가신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묻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녀는 어차피 더는 설명해주지 않을 그를 다그치는 대신, 전장에 뛰어드는 것을 선택했다.
“엄한 데 화를 푸는군.”
운 나쁘게도 심기가 편치 않은 그녀를 상대하게 된 적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런 그녀의 주변에 깃털이 휘날리고 피가 튀었다.
***
왕의 군대는 과연 강했다.
마법사들의 주문은 전장을 꽁꽁 얼려버릴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았지만, 아군의 움직임을 보조하고 적의 발을 묶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움직임이 둔해진 적들은 사나운 용을 탄 기사들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용사니 투사니 그들은 그저 뒤를 받쳐주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의 용기사들은 거침이 없었다.
열 배가 넘는 적을 향해 달려드는 그 압도적인 위용에 호응하기 위해 나섰던 미궁의 병력들이 엉거주춤하게 물러날 지경이었다.
당연하게도 전투는 나가들의 압승이었다.
“허억, 허억.”
나가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연이은 전투에서 무리한 트린달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피로를 참아내야 했다.
“약해 빠져가지고는…….”
그런 그를 스쳐 지나며 전장의 까마귀가 혀를 찼다.
트린달은 억울한 얼굴로 그녀를 향해 따지려다 이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똑같이 전투에 혹사당한 나가들이 자신과는 달리 아무렇지도 않게 전장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던 탓이다.
지휘관도 아닌 일개 병사들만도 못한 자신의 처지에 그는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저의 혼란이 극에 달한 이때, 9층만이 평온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토록 강한 군대가 항시 대기하고 있으니 적들이 쉬이 넘보지 못하는 것이리라.
실제로도 다른 층의 미궁들은 연일 이어지는 습격과 적들의 파상 공세에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다고 들었다.
그에 비해 9층의 미궁들은 어떠한가. 초반의 피해가 크기는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나름대로 적의 습격을 잘 막아내고 있는 편이었다.
근 두 달 이내로 멸망한 미궁이 없다는 사실만 보아도 9층이 얼마나 방어를 잘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바로 눈앞의 사내 탓이었다.
한때는 이름 없는 미궁의 주인으로 시작하여 강대한 적들을 이겨내고 하다못해 10층의 귀족들마저 격퇴한 입지전적인 인물, 그가 9층을 규합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9층은 진즉에 적의 습격에 쓸려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아니, 그 전의 명성이나 업적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좋았다. 오늘 자신의 눈으로 본 전투만 해도 그는 9층의 왕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트린달이 홀린 듯이 그의 앞에 나서 무릎을 꿇은 것은.
“왕이시여!”
***
전장이 정리되자 요새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던 김진우는 갑작스레 자신 앞에 엎드려 피를 토하듯 외치는 트린달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게 왕의 군대와 함께할 영광을 주소서!”
이어진 외침에 그는 더욱 의아한 얼굴을 해보였다. 자신의 군대와 함께 하는 것이라면 이미 오늘만 해도 무려 세 번의 전투를 치른 트린달이다.
그런 그가 갑작스레 이리 나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곁에 서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나이다! 부디 그 발치에 엎드려 디딤돌이라도 되게 해주소서.”
도대체가 영문을 모를 행동인지라 눈살을 찌푸린 그의 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