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35)
던전 견문록-135화(135/319)
# 135
던전 견문록
제 136 화
김진우가 무사히 돌아오고 나서야 대기하고 있던 병력들은 해산할 수 있었다.
세 번의 연이은 전투에 지칠 대로 지친 용기사들과 용사, 투사들 역시 분분히 흩어져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휴우.”
그가 지친 몸으로 털썩 왕좌에 주저앉으니 도미니크가 냉큼 달려와 팔과 다리를 주물렀다. 왕의 조언자라는 입지를 단단하게 다진 도미니크였지만, 여전히 그의 앞에서는 시녀를 자처했으며 온갖 하찮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혹사당한 근육이 그녀의 나긋나긋한 손길에 조금씩 풀려나갔다.
“음…….”
마사지가 계속되자 이제는 몸까지 풀려버리는 것이 잠이 찾아올 지경이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도미니크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던 김진우는 어쩐 일인지 자리를 지키고 선 모리건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도 대답이 부족한가?”
“제가 들은 대답은 고작 파편이 있었다 뿐입니다.”
“별동대 안에 고대 군주의 파편이 있었다. 그리고 난 그걸 흡수했을 뿐이고. 여기서 더 설명이 필요한가?”
시큰둥한 그의 대답과는 달리 그녀는 쉽사리 포기할 기색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도미니크. 고마워.”
그의 손짓에 도미니크가 손을 멈추더니 이내 조용히 물러났다.
“왕의 휴식을 너무 오래 방해하지 말아요.”
물러나면서도 사나운 까마귀에게 한마디를 잊지 않는 도미니크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리건은 도미니크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김진우를 똑바로 노려보았을 뿐이다.
“도대체 주인님이 어떻게 옛 군주의 힘을 지니고 있는 거죠?”
“주웠다.”
몇 번이나 별동대 안에 고대 군주의 파편이 있었음을 설명했지만 대화가 제자리걸음이자 그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 성의 없는 대답에 모리건이 발끈해 물었다.
“고대 군주의 파편이 지저에 널린 다운 잼도 아닌데, 그게 말이 되나요?”
“말이 되건 안 되건 간에 내가 우연히 그 힘을 얻은 건 사실이야.”
그렇게 말한 김진우가 왕좌에서 몸을 빼냈다.
“그만!”
여전히 납득하지 못해 질문을 쏟아내려던 모리건은 그의 한마디에 입을 다물었다.
“마치 그대가 나의 주인인 것처럼 구는군.”
아무래도 거듭된 질문이 추궁처럼 느껴져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김진우의 얼굴에 노기가 떠오른 것을 본 모리건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미 기분이 상한 그는 쉽사리 화를 거두지 않았다.
“착각하지 마라, 모리건.”
김진우의 기세가 돌변했다. 시퍼런 안광이 눈에서 줄줄 흘러나오며 마치 적을 앞에 둔 것처럼 그의 기세가 사나워졌다.
“난 네 주인이지 친구가 아니다.”
1년 사이에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김진우의 기운은 악명이 자자한 전장의 까마귀조차 움츠러들게 만들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전이었다면 그의 위협에 그녀는 콧방귀도 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그녀조차 감당하기 힘든 괴물이 되어 있었다.
수많은 전투와 죽음의 위기 속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전승의 사령관은 심층의 백작들마저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대의 위치를 명심하라. 또 다시 선을 넘으면…….”
모리건은 그의 기세에 저항하기 위해 온몸의 깃털을 빳빳이 세우고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간신히 날을 세웠던 깃털과 부리는 금세 힘이 빠져 축 늘어지고 말았다.
단 1년 만에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미세하게 떨리는 그녀의 몸을 보고 나서야 김진우는 겨우 화를 풀고 만족스러운 얼굴을 해보였다.
“물러가라. 내가 다시 찾을 때까지 근신하고 있도록.”
“왕의 뜻대로…….”
그의 말에 그녀가 이를 악물고 대답하고는 물러섰다.
모리건이 빠져나간 뒤 김진우는 다시 왕좌에 주저앉았다. 고작 1년이란 사이에 저 사나운 까마귀를 길들일 수 있게 되었다.
발자크와 퀀투스, 오르테아가까지 나서 차륜전을 펼치고 나서야 겨우 제압할 수 있었던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발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힘이 부족함을 느꼈다.
요새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꼭 필요한 해룡의 심장은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복속 미궁들은 적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에는 충분하지만 심층을 도모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거기에 더해 세력을 성장시킬 수 있는 다운 잼의 수급 자체에 문제가 생긴 근래에는 성장의 원동력 자체가 사라진 듯한 기분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를 지저의 전쟁, 그리고 언젠가는 서로 날을 세워야 하는 심층 백작들과의 관계까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그나마 한 가지 그가 다른 지저의 주인들보다 상황이 나은 점이라면, 그가 지상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런 자신과 같은 지상인을 수하로 두고 있다. 비록 그 수하가 지저를 벗어나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지저의 존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인 것만큼은 분명했으니까.
“오셨어요?”
마침 오너 룸에 있던 윤희가 그를 보고는 반겨주었다.
“별일은 없나?”
“뭐, 아시다시피 특별한 일은 없어요.”
9층의 일이 바빠 좀처럼 찾지 못했던 파티 홀이다. 그간의 상황을 묻는데 윤희의 얼굴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상황이 별로인가?”
“더 이상 7층에서 버티는 건 한계가 있을 거 같아요.”
“생각보다 오래 버텼군.”
김진우의 말에도 윤희는 말없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을 뿐이었다.
온 지저가 난리가 난 와중에도 파티 홀은 단 한 번도 위기를 겪지 않았다. 전투보다는 미혹, 그리고 은신에 특화되어 있는 미궁의 소환수와 설비들 탓이었다.
덕분에 파티 홀은 다른 미궁들이 생존을 걱정할 때 오히려 힘을 키울 수 있었다. 전쟁에 휘말린 미궁들을 습격해 전리품을 챙기는 식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전쟁 특수도 이제는 끝이 났다. 절반 이상이 적에게 점령당한 7층은 더 이상 홀로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전장이었다.
“그림자 마술사들이 펼친 현혹의 마술도 더는 효과가 없어요. 소환수 몇을 희생해 적의 주의를 다른 쪽으로 돌리기는 했지만, 다음에도 또 통한다는 보장은 없겠죠.”
윤희는 솔직하게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인정했다.
그간 몇 번이나 있어왔던 이주 제안에도 불구하고 버텼던 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7층의 상황이 안 좋기는 안 좋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적들이 닥치는 대로 다운 잼을 먹어치운 탓에 7층의 다운 잼이 씨가 말랐어요. 지금이야 다른 미궁에서 약탈한 것들로 버티고 있다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유지조차 힘들 지경이에요.”
다른 층이라고 해서 상황이 다를까. 미궁의 유지가 어려운 것은 7층만이 아니었다.
비교적 적들의 침공을 잘 막아낸 9층마저도 다운 잼의 수급이 힘들어진 상황이다.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그녀가 이주를 입에 꺼내 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7층의 상황이 최악이라는 뜻이리라.
“이주 계획은 언제쯤으로 잡고 있지?”
“요번 달 안에는 할 예정이에요. 지금 작업에 공들이고 있는 미궁이 있어서, 그쪽만 끝나면 바로 9층으로 옮겨야겠어요.”
그녀가 공을 들이고 있다는 작업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빤했다. 아마도 적의 공격으로 방비가 허술해진 미궁의 뒤를 습격할 생각인 듯했다.
“계획을 앞당겨라. 모자란 병력은 내가 빌려주지.”
김진우의 말에 윤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제가 도울 일이 생긴 건가요?”
“그대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야.”
요새와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었던 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녀 스스로가 지저의 시스템을 반쯤은 벗어난 던전 베이비였던 탓인지. 그녀는 다른 복속 미궁처럼 절대적으로 그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그 덕에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했다.
“파티 홀 하나 자리 잡을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9층이라고 다운 잼이 넉넉한 건 아니야.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욱 더 상황이 좋지 않지. 이쪽은 분쟁이 없으니까 우연히 발견되는 다운 잼이 아니면 다운 잼을 얻을 길이 없어.”
분쟁조차 허용하지 않는 강력한 지배자의 통치 아래 9층의 미궁들은 서서히 말라죽어 가고 있었다.
다른 층의 미궁들이 급한 대로 다른 곳을 습격하여 모자란 다운 잼을 보충하는 것과는 상황이 달랐다. 김진우는 어떠한 경우에도 아군끼리의 교전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요? 다른 층에 다운 잼 채집이라도 갈 생각인가요? 지금 이 난리통에?”
윤희의 대답은 회의적이었다. 갑작스레 통로를 열고 뛰쳐나온 다른 지저의 세력들에 의해 다운 잼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는 상황, 지저의 어디를 가더라도 다운 잼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니, 다른 층을 털어봐야 소모된 병력을 보충할 다운 잼도 건지지 못하겠지.”
혹시라도 재수가 없어 적과 조우하기라도 한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게 분명한 계획을 두고 이리 나섰을 리가 없었다.
“그럼 심층을 노리겠다는 건가요?”
“심층이라고 상황이 다를까.”
심층의 백작들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덕분에 그쪽이라고 적의 습격에 다운 잼을 약탈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 대체 어디서 다운 잼을 얻겠다고요. 뭐, 다운 잼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한…….”
말을 이어가던 윤희가 순간적으로 눈을 크게 뜨더니 입을 다물었다.
“설마…….”
하필이면 수많은 수하를 두고 자신을 찾았다는 사실에서 한 가지 짐작가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도 현실성이 없었던 관계로 그녀는 애써 자신의 짐작을 부정하듯 고개를 저어보이며 혼잣말을 했다.
“설마 그럴 리가 없겠죠. 다른 때도 아니고 지금이라면 전쟁의 명분이 된다고요.”
그녀 역시 지저의 먹이사슬 경쟁에서 밀려난 크리쳐와 비스트들이 지상과 지저의 경계를 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덕분에 지상의 인간들이 지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들어 알고 있었다.
“그대의 짐작이 맞아. 내가 노리는 것은 지저가 아니야.”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녀의 추측이 기꺼운 듯 껄껄대며 웃어보였다.
“나는 그간 지상으로 유출된 다운 잼의 행방을 찾아볼 생각이다.”
“하지만 까딱 잘못했다가는!”
“잘못되는 게 어떤 거지?”
지저와 지상은 달랐다. 그녀의 우려에 김진우가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지저의 존재가 지상까지 올라가 다운 잼을 약탈한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저의 존재는 누구나 자신의 거주 층에 묶여 버려 지상에서는 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하물며 일이 잘못될 경우, 지상이 다시 지저를 대대적으로 침공할 빌미를 줄 수도 있었다.
물론 전쟁이 그렇게 쉽게 나겠냐마는 지금의 위태로운 지저는 사소한 지상의 도발조차 받아 넘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혹시라도 다운 잼을 찾는 도중에 정체가 발각되면…….”
“그러니까 어떻게 발각되는데?”
김진우는 시종일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야 중간에 잡힐 수도 있고…….”
그간 지상에 대한 정보를 많이 모아온 것인지 윤희는 이런저런 이유를 늘어놓으며 그의 계획을 반대했다.
하지만 그녀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나나 그대나 겉보기에는 완벽한 인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