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38)
던전 견문록-138화(138/319)
# 138
던전 견문록
제 139 화
[두 개의 인장이 하나로 합쳐집니다.]메시지가 떠오르기 무섭게 왼손에 끼고 있던 기존의 인장과 크라스토에게 얻은 인장이 녹아내리더니, 미약한 빛과 함께 흐물흐물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두 개의 반지는 마침내 하나가 되었고 전보다 한층 더 밝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한때 지저를 지배했던 위대한 군주, 하이로드들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찬탈자는 옛 지배자들의 흔적이 남지 않기를 바랐고, 지금에 와서 그들의 찬란했던 영광과 존귀했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런 찬탈자조차도 옛 지배자들이 소멸과 동시에 온 지저에 퍼트린 권능의 파편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찬탈자는 파편을 없애는 대신 새로운 지배자들의 권위를 세우는 데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하이로드의 권능을 부활시키려고 합니다.] [자격은 충분합니다. 당신은 9층 전체를 지배하는 지저 역사상 유일무이한 층의 지배자이며, 일백 미궁을 다스리는 진정한 왕입니다.]한때 지저가 단 하나뿐이었던 그 시절, 더없이 드높았던 옛 군주들이 바로 하이로드였다.
이제는 그 하이로드라는 이름조차 사라져 그저 심층의 백작들이 로드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과거의 흔적을 손에 쥔 김진우에게는 하이로드는 그저 잊혀진 옛 이름이 아니었다.
[지저 자작, 김진우가 하이로드(Highlord)가 되었습니다.] [하이로드가 되었지만 아직 당신은 이름뿐인 하이로드입니다. 흩어진 옛 지배자들의 파편을 모은다면 진정한 하이로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이름뿐인 하이로드라지만 오랜 세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하이로드의 탄생은 온 지저가 축복할 일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하이로드의 탄생이 찬탈자의 귀에 들어가 좋을 게 없습니다. 찬탈자는 새로운 하이로드의 탄생을 축복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돌리는 대신, 아직 작고 하찮은 이름뿐인 하이로드를 갈기갈기 찢어놓으려 할 것입니다.] [당신이 하이로드의 이름을 당당하게 내걸 수 있는 그 순간까지, 하이로드의 권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역시나 쉽게 일이 풀리는 법이 없었다. 고생 고생 끝에 하이로드의 흔적을 찾아 그 이름을 이어 받았지만, 당장 얻은 것이라고는 내세울 수도 없는 하이로드의 이름뿐이었다.
거기에 더해 찬탈자의 눈에 뜨일 경우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갈기갈기 찢겨지고 말 것이라는 위험 요소가 남았으니, 지금으로선 득보단 실이 컸다.
[서둘러 힘을 키워야 합니다. 찬탈자의 감시는 삼엄하고 치밀하며, 놓치는 것이 없습니다. 지저의 소란이 잠잠해질 때쯤이면 찬탈자는 새로운 하이로드의 존재를 알게 될 것입니다.] [가장 빠르게 힘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옛 권능의 파편을 모으는 것입니다. 운이 좋다면 흩어진 모든 파편을 모아 과거의 강대했던 하이로드의 권능을 완전히 되살릴 수도 있습니다.] [현재까지 모은 파편 (2/?)]게다가 한술 더 떠 지저의 시스템은 타임 리미트마저 걸어버렸다. 비록 힘을 빠르게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는 했지만, 상황은 결코 좋지 않았다.
옛 권능의 파편이라는 것이 귀족의 인장이라면 통로를 넘어 나타난 새로운 지저의 세력뿐이 아니라, 기존의 귀족들마저 상대해야 했으니까.
어렵지만 반드시 해내야 했다. 이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방비를 끝마치지 않을 경우, 이제까지 겪어왔던 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험이 찾아올 게 분명했다.
위기라면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김진우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눈앞에 떠오른 경고창을 보고도 웃어보였을 뿐이었다.
고난 끝에 올 막대한 보상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던 탓이다.
‘지금의 귀족들과 하이로드를 같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되오. 가장 강대한 공작의 권위도 하이로드의 권위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닐지니, 그대가 온전하게 하이로드로 인정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대의 복수는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오.’
외눈박이 군주가 남긴 사념의 파편 중 하나인 우스투스는 하이로드의 권능은 그저 미궁의 주인이 되어 한정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는 다르다 말했다.
하이로드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수많은 이들의 인정을 받아야 하며, 그들이 진정한 지배자로 권위를 인정할 때만이 그 권능을 누릴 수 있다 하였다.
그리고 김진우에게는 이미 일백에 달하는 복속 미궁이 있었으며, 그저 시스템에 강제된 것이라 하나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이 즐비했다.
하이로드가 되기 위해 풀어내야 할 가장 큰 과제를 미리 해결해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부터다.”
저 깊이 거미 공작이 웅크리고 있을 지하 세계를 노려보며 작게 중얼거리는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귀족의 인장이 흐릿하게 반짝였다.
그렇게 하이로드의 자격을 얻었지만, 김진우의 생활이 당장 영화롭게 바뀐다거나, 찬탈자의 견제로 위기에 처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이로드의 권능을 살리기에는 그가 손에 쥔 옛 권능의 파편이 너무나도 작고 하찮았으며, 찬탈자의 눈은 아직까지 9층에 닿지 않았다.
그는 원래 예정했던 대로 지상의 다운 잼을 다시 지저로 가져오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댔을 뿐이었다.
지상으로 흘러 들어간 다운 잼의 행방을 찾기 위해, 그 유통망이라고 할 수 있는 백 선생의 곁에 안젤라를 남겨두었지만 특별히 얻은 정보는 없었다.
다운 잼을 손에 넣었을 때까지만 해도 당장에라도 고객과 접촉할 것 같았던 백 선생이 웬일인지 며칠이 지나도록 움직이지 않았던 탓이었다.
안젤라와 김진우는 그러한 행동이 다운 잼의 값을 올리기 위한 백 선생의 의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윤희는 몇 번이나 지상과 지저를 오가며 조금씩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가고 있었다.
따스한 볕, 청명한 공기, 밝은 세상, 그리고 어느 누구도 위협하지 않는 안락한 세상을 겪어가며 그녀의 세상이 조금씩 확장되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새로운 세상은 김진우가 있어야만 존재하는 반쪽짜리 세상이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녀가 포탈을 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지상의 출입은 오직 자신이 연결한 포탈만을 이용하게 했다.
당연하게도 윤희는 안달이 났다.
지상 땅을 처음 밟아 본 모든 던전 베이비가 그러하듯 그녀는 조금이라도 더 땅 위 세상을 알고 싶어 했고, 또 느끼고 싶어 했다.
하지만 김진우는 여전히 그녀의 자유로운 외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돌아가.”
근래 들어 안가의 앞마당 정도는 돌아다닐 수 있게 된 윤희가 멍하니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다 난데없는 귀환 명령에 화들짝 놀랐다.
“벌써요?”
“밝은 세상에 적응하는 것도 이 정도면 됐어. 앞으로 그대가 지상에 올라오는 건 다운 잼의 행방이 밝혀졌을 때, 그때뿐이야.”
할 말이 많은지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거리는 윤희였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는 원망과 아쉬움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다 말없이 포탈을 넘었다.
“이짓도 못 해먹겠군.”
별다른 성과도 없는 지상 나들이를 계속하는 것은 김진우의 입장에서 시간 낭비였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고작 수하 하나를 길들이기 위해 이렇듯 공을 들이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윤희는 보통 수하가 아니었다.
그녀는 11층 백작의 계승전에 참가할 수 있는 명분이자 기회였으며, 또한 지저의 시스템에서 반쯤은 자유로운 인간이었다.
지금 그녀를 제대로 길들여 놓지 않는다면, 언제 그녀가 다른 생각을 품게 될지 몰랐다.
한낱 노예로 경매장에 올라 이지조차 온전치 않았던 과거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는 가진 것이 달랐고 일신의 능력이 달랐다.
그래서 그는 지루함을 꾹 참고 그녀에게 공을 들였다.
그녀의 입에서 아쉬운 소리가 나오는 그때까지는 이 지루하고 소모적인 작업을 계속해야 했다.
지상과 지저를 오고 가는 사이, 9층에서는 크고 작은 전투가 두 번이나 있었다.
방비가 탄탄한 9층을 두드리는 대신 다른 활로를 찾아볼 만도 하건만 적들은 집요하게 9층의 문턱을 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나라면 차라리 만만한 10층이나 8층을 공격하겠어. 그것 때문에 일부러 길을 열어주기까지 했는데 적들은 여전히 9층을 노리는군. 만약 다른 층 역시 난리가 나지 않았다면 9층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을 거야.”
적들의 공세를 다른 층으로 돌리기 위해 8층과 10층으로 통하는 통로를 열어주는 방법까지 시도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적들은 맹목적으로 9층 지저만을 공격해왔을 뿐이었다.
“아마 저들끼리도 무언가 협약이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럴싸하군. 이 아귀다툼을 하는 것을 보면 자기들끼리도 충돌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하던 대로 자기들끼리 싸워대다가는 이쪽의 다운 잼을 얻지 못할 거라 생각한 것인가.”
빈약한 추리였지만 적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도 없었던 탓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김진우는 문득 자신들이 놓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만. 저쪽에서 이쪽으로 넘어올 수 있다면, 이쪽에서 저쪽으로도 넘어갈 수 있는 게 당연해. 그런데 왜 우리는 한번도 저쪽으로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리 말하는 그였지만 사실 이유는 그도 알고 다른 이들도 알고 있었다. 그간은 적들의 공세가 너무도 맹렬해 감히 저들의 영역을 넘볼 생각을 하지 못했고, 전선이 고착된 지금에 와서는 다운 잼이 고갈됐을 게 뻔한 저들의 지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얻는 것이 없을 테니까요.”
통로 너머에 우글대고 있을 흉악한 적들, 도미니크는 이쪽에서 굳이 공세를 펼칠 메리트가 없다며 그의 말을 가볍게 받아넘겼다.
“그걸 어떻게 알지? 아직 우리는 저 너머가 어떤지 구경조차 하지 못했는데?”
결국 김진우는 의문을 풀기 위해 통로 너머를 정찰할 원정대를 조직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결사대 안에는 우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냥 탐식의 덩어리만 보내도 될 텐데, 왜 굳이 저까지.”
온몸으로 거부감을 표하며 꿀렁대는 우서의 몸짓에 김진우가 코웃음을 쳤다.
“탐식의 덩어리는 너무 작고 약해. 자리를 잡기까지 너무 변수가 많아.”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굳이 제가 넘어갈 이유가…….”
단호한 태도의 그를 설득하기는 힘들 거라 생각했는지, 우서가 우는 얼굴을 해보였다. 그는 그런 우서를 무시하고는 말했다.
“정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저 너머에 뭐가 있는지만 보고 바로 돌아오도록 해. 그렇다고 해서 대충 훑어보고 넘어올 생각은 말고. 따로 동행자가 있을 테니.”
진짜로 시늉만 하다 돌아올 생각이었는지 우서가 반가운 얼굴을 해보였다가 금세 시무룩해졌다.
“릭샤샤.”
“왕이시여.”
지난 1년간 언더 엘프 순찰대를 이끌고 무수히 많은 활약을 해온 언더 엘프 러너, 릭샤샤가 그의 말에 한발 앞으로 나섰다.
“그대도 마찬가지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정 아니다 싶으면 바로 돌아오도록 해. 최악의 경우 바로 귀환하는 것도 허락하겠다.”
우서에게 했던 말과는 미묘하게 다른 말, 그도 그럴 것이 이 맹목적이고 광신적인 언더 엘프는 어떻게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무리할 게 빤했던 탓이다.
“열과 성을 다하겠나이다.”
지금만 해도 그녀는 조기 귀환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은 얼굴로 사명감에 눈을 번뜩였다.
“절대 무리하지 마. 만약 성과가 없다 싶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도 되니까.”
“명심하겠나이다.”
부디 그녀의 맹목적인 충성과 사명감이 충분한 보상을 받기를 바라며 김진우는 원정대를 전송해 주었다.
그렇게 우려와 기대 속에서 떠나간 원정대는 불과 이틀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온 원정대의 수는 처음 출발했던 오십, 그 반의 반도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 생존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라고 해봐야 은신에 능한 언더 엘프 여섯과 릭샤샤, 그리고 우서뿐이었다.
“왕이시여!”
불과 이틀 사이에 점액의 3분지 2를 날려먹은 우서가 온몸으로 기포를 부글거리며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