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42)
던전 견문록-142화(142/319)
# 142
던전 견문록
제 143 화
언더 엘프 순찰자들이 전갈을 전하기 위해 미궁을 나섰다. 미궁을 나선 순찰자들은 우스투스의 미궁을 통하여 심층의 백작들에게 향할 것이다.
아직도 전선이 고착되지 않아 혼란이 극에 달한 11층이지만 이미 몇 번이고 11층의 염탐을 성공리에 마친 그들이라면 임무를 완수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언더 엘프들이 떠나가고 얼마나 흘렀을까.
김진우는 디나리온의 방문을 받았다.
언제나처럼 예의 그 기분 나쁜 악몽과 함께 나타난 디나리온은 김진우의 설명을 좀처럼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기야 지저가 살아 있는 존재도 아닌데 생명체들을 잡아 삼키고 있다니, 누군들 그의 말을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온갖 기이한 일이 왕왕 벌어지는 지저의 존재답게 디나리온은 거듭된 설명에 심각한 얼굴을 해보였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 전쟁, 단순히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군.”
디나리온의 말에 김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태라면 이겨도 이긴 게 아니겠지. 이쪽이라고 저 너머처럼 변하지 말라는 법은 없을 테니.”
혹시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기대했던 그의 바람은 무산되었지만, 디나리온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도 나름대로 성과라면 성과였다.
“방법이 있나?”
“일단은 적들을 몰아내야겠지. 다운 잼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하기야 적들이 남아 이쪽의 다운 잼을 갈취하고 있는 이상, 상황이 나아질 리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디나리온이 전쟁 자체에 대해 크게 비관하고 있는 눈치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할 수 있겠어?”
“가능하고 불가능한 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이대로라면 공멸은 자명한 사실이니까.”
그렇게 말한 디나리온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는 사라졌다.
디나리온이 다녀간 이후로 속속 언더 엘프 전령들이 귀환했다. 하지만 백작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바가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아무도 저 통로 너머로 넘어가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할 지경이야.”
철혈의 아나톨리우스는 심계가 깊은 자다. 또한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절망의 파르테논 역시 그 지모가 부족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만약 파르테논을 비롯한 백작들이 우둔한 자들이었다면 아나톨리우스가 그리 공을 들였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백작들 중 어느 누구도 통로 너머에 호기심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하지만 의문은 의문일 뿐이었다.
“11층은 곧 정리될 거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으리라.”
다시 찾아온 디나리온의 말에 김진우는 황당한 심정이 되었다.
그렇게 쉽게 몰아낼 적이었다면 진즉에 몰아낼 것이지, 왜 다 늦게 이제야 나서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하지만 심층의 백작들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으니 디나리온은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봐왔으니까. 이렇게라도 세를 약화시키지 않으면, 또 지루한 대치가 이어지겠지.”
역시나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철혈의 아나톨리우스 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쨌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상황을 바로잡으려 한다.”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김진우의 질문에 디나리온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길어야 한 달, 한 번 생겨난 통로를 다시 없앨 방법은 아직 없지만, 통로 바로 앞까지 전선을 밀어 올리는 것만이라면 그 정도로 충분하다.”
디나리온의 선언과도 같은 말에 김진우는 딜레마에 빠졌다.
전쟁이 오래 지속될 경우 다운 잼이 고갈된 지저가 저 통로 너머처럼 변하지 않으란 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전쟁을 일찍 끝내 버리면 찬탈자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새롭게 하이로드의 반열에 오른 자신의 존재를 눈치챌 수도 있었다.
어떻게 일이 풀리든 간에 그와 그의 요새는 위기에 빠지고 만다. 고민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애초에 심층의 백작들에게 정보를 주었을 때부터 이러한 상황을 예견하지 못했다면 그야말로 제 손으로 무덤을 판 꼴이리라. 그렇지만 그는 멍청하지도 우둔하지도 않았다.
“한 달이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그는 마침내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
디나리온과 만난 후 김진우는 곧장 도미니크를 비롯한 수뇌부와 회의에 들어갔다. 물론 회의에 참석한 것은 그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수하들, 도미니크와 퀀투스를 비롯한 나가 영웅들과 릭샤샤뿐이었다.
이번 모임에서 모리건과 헤임달은 그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다들 모였군.”
자리에 모인 인원의 면면을 살펴본 이들은 벌써부터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끼고는 긴장한 얼굴을 해보였다.
“한 달, 한 달 내로 심층 백작들의 전쟁이 끝이 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전쟁을 끝내기 전에 10층을 정리하려고 한다.”
도미니크가 당혹스러운 얼굴을 해보였지만, 그는 질문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목표는 그들의 미궁도 다운 잼도 아니다. 10층의 남작들과 자작, 그들이 내 목표다.”
김진우의 계획은 간단했다.
10층의 귀족들은 그간의 방종과 나태함의 대가를 치르듯 적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쓸려갔다. 수많은 귀족들이 모아이라 불리는 적들에게 살해당하거나 산 채로 잡아먹혔다.
그리고 남은 귀족들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자신의 미궁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그렇게 혈전을 거듭하느라 힘이 약화될 대로 약화된 귀족들이었다.
“백작들의 견제가 염려되시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들에게 이주를 권고하는 것이 어떠신지요? 살아남은 귀족들이라고 해봐야 근근이 명을 이어가고 있을 뿐, 좋은 조건에서 이주를 제안할 경우 그들도 기꺼이 충성을 바칠 거예요.”
가만히 듣고 있던 도미니크는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9층의 상황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균형 아래 유지되고 있는지를 설명하며 다소 온건한 방법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녀의 제안은 그가 받아들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예전이었다면 세를 확장하고 귀족들의 병력을 흡수하는 데 의의를 둘 수도 있었지만,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귀족들의 병력과 미궁이 아닌 귀족 그 자체였다. 그들이 살아 있는 한, 순순히 귀족의 인장을 넘길 리가 없었던 탓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귀족의 인장, 아니 옛 권능의 파편이 꼭 필요했다.
“이 사실은 대외비다.”
주변의 기척을 살펴본 김진우는 그가 숨겨왔던 하이로드의 진실과 찬탈자에 관한 비밀을 풀어놓는 것으로 우려를 표하는 수하들과의 비생산적인 입씨름을 정리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더는 회유책에 대해 논하지 말라.”
너무도 엄청난 비밀을 들었던 탓인지 수하들 중에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그저 릭샤샤만이 묘하게 상기된 얼굴로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을 뿐이다.
“방법을 강구하라. 최소한 귀족 열 명의 목이 필요하다.”
그 강경한 의사 표명에 수뇌부의 침묵은 더욱 길어졌다.
***
9층 전체에 소집령이 떨어졌다. 이는 1년간 이어져 온 전쟁의 와중에도 몇 번 없었던 일이었다.
근래 들어서 전선이 형성되고 최전방의 미궁들이 효과적으로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처음 생긴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9층 미궁의 주인들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최대한 빠르게 나가의 요새로 집결했다.
“전쟁이다.”
그렇게 모인 수많은 미궁의 주인들 앞에 나선 김진우는 짤막하게 소집의 이유를 밝혔다.
“전쟁 말입니까?”
지난 정찰 활동에서 힘을 소진한 우서는 아직도 본신의 덩치를 원래대로 복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평소보다 더욱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김진우에게 물었다.
“미궁을 방어할 최소한의 병력을 남겨두고 병력을 소집하라.”
그의 선언은 전격적이었고 또 그만큼 일방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충성을 맹세한 9층 미궁의 주인들 중에 그의 말에 반대를 던질 이는 없었다.
“대체 어디랑 전쟁을 한다는 거지?”
“설마 이제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할 생각이신가?”
웅성거리는 미궁의 주인들, 그들은 나름대로 타당하다 생각하는 추측을 내놓으며 왕의 의중을 헤아려 보려 했다.
직접 통로 너머의 참상을 제 눈으로 지켜보았던 우서만이 섣부른 추측을 내놓지 않은 채 혼란스러운 얼굴을 해보였을 뿐이다.
“왕의 명이니 병력을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대체 누구와 전쟁을 한다는 것인지…….”
난쟁이들의 왕이 성큼 나서며 모두의 의문을 대신해서 물었다. 1년 사이에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악한 흉터가 너댓 개는 생긴 난쟁이를 바라보던 김진우가 짧게 말했다.
“10층, 10층이 이번 전쟁의 목적지다.”
이 자리에 모인 미궁의 주인들 중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말, 그래서인지 미궁의 주인들은 하나같이 뒤통수라도 맞은 얼굴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포탈.”
그런 그들을 보며 김진우는 상황을 이해시켜주는 대신 작게 속삭였다.
“어라?”
어둠이 갈라지고 그 사이로 생겨난 공간의 문, 그 너머에 우서의 미궁이 보였다.
“이익!”
뒤늦게 포탈 너머로 보이는 미궁이 자신의 미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우서가 포탈 앞을 막아서며 그에게 항의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근래들어 다운 잼의 수급이 어려워진 이 순간, 수많은 미궁의 주인들의 시선이 우서의 미궁이 있을 포탈 너머를 향했다.
이대로라면 경쟁자들에게 자신의 허실을 그대로 드러내 보일 지경이라 우서는 온몸을 크게 부풀리고는 통로를 막아섰다.
탐욕과 호기심에 범벅이 된 시선으로 포탈 너머를 흘겨보던 미궁의 주인들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도 잠시, 미궁의 주인들이 모인 자리에 또 하나의 포탈이 생겨났다.
이번에 열린 포탈은 미몽의 여왕이 다스리는 몽마들의 미궁이었다. 미몽의 여왕이 날개를 넓게 펼치고 포탈을 가리는데 또 하나의 포탈이 열렸다.
그리고 또 포탈이 열리고 다시 또 포탈이 열렸다.
그렇게 넓은 공터에 백여 개에 달하는 포탈이 생성되었다.
도대체 그 저의를 알 수 없는 그의 행동에 수많은 미궁의 주인들이 제 미궁과 연결된 포탈을 막아선답시고 아우성을 떨었다.
혼란이 극에 달했다.
사납게 눈을 치켜뜨고 다른 미궁의 주인들을 노려보는 이부터 시작해서, 당장에라도 상대의 눈알을 뽑아버릴 듯 손톱을 길게 빼낸 미궁의 주인들까지. 분위기가 조금씩 더 과격해졌다.
그런 그들을 보며 김진우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나직한 음성이었지만 기이하게도 광장의 소란을 잠재우고도 남을 정도의 울림이 있는 음성이기도 했다.
“병력을 소환해라.”
이건 또 무슨 소린지, 서로를 노려보며 난리를 떨던 미궁의 주인들은 그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해 멍한 얼굴로 그가 상황을 설명해주기를 기다렸다.
“전쟁은 지금부터다.”
하지만 김진우는 그들에게 상황을 이해시켜 주지도, 계획을 설명해 주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