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46)
던전 견문록-146화(146/319)
# 146
던전 견문록
제 147 화
“우선적으로 서쪽의 전선에 먼저 가시는 걸 추천드려요. 이쪽은 전투가 거의 막바진데 우두머리를 잡지를 못해 지지부진하고 있어요.”
이미 생각해둔 것이 있는지 도미니크는 그의 이동 경로를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밀리는 곳부터 가는 게 좋지 않겠나?”
“물론 주인님께서 참전하시면 전황이 뒤집히겠지만, 시간은 조금 걸릴 거예요. 그럴 바에야 최대한 많은 미궁을 함락시키고 전력을 집중시키는 게 차라리 나아요.”
나름대로 합리적인 말이었다. 물론 도미니크의 말을 그대로 따른다면 전황이 좋지 않은 전선의 피해는 더욱 극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병력의 집중으로 얻을 이득 또한 큰 것이 사실이었다.
“좋아, 도미니크 말을 따르기로 하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제껏 도미니크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손해를 본 적도 없거니와, 쓸데없이 궁리만 하자니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탓이다.
결정을 내린 즉시 김진우는 호법룡에 올라탔다.
“본대의 병력을 반으로 나눴어요. 이동속도가 빠른 용기사들과 순찰자들 위주로 병력을 꾸렸으니, 주인님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 거예요.”
“끄응, 알았어. 받아들이도록 하지.”
혼자 전장에 뛰어드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한마디에 결국 앓는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아무래도 그녀의 우려대로 기동성을 살리기 위해 단신으로 전장을 이동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주인님을 잘 보필하렴, 절대로 떨어지지 말고.”
용기사들에게 당부하는 도미니크의 시선은 어쩐 일인지 김진우를 향해 있었다.
“커흠, 그럼 다녀올게.”
괜스레 헛기침을 내뱉은 그가 본대를 벗어났다. 그런 그의 뒤로 용기사들 일백이 바짝 따라붙었다.
***
전장은 조용했다. 과연 도미니크의 보고대로 일찍 승기를 잡았는지 아군은 시체와 부상자만을 내버려둔 채 전부 미궁 안으로 돌입한 상태였다.
덕분에 미궁의 외곽 지대에는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작은 시체 청소부들만이 부산을 떨고 있었을 뿐이었다.
“훠이!”
김진우가 칼집 채로 칼을 휘둘러 커다란 쥐들을 내쫓았다. 시체의 팔과 다리를 움켜쥐고 오물거리고 있던 거대 쥐들이 그 서슬에 놀라 후다닥 사라졌다.
“난장판이구만.”
승기를 잡은 전장이라 해서 선전했나 싶었었지만, 사방에 가득한 시체를 보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전공과 보상에 눈이 멀어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인지 시체들 중 태반이 아군의 시체였다.
개중에 극심한 부상으로 청소부들에게 대항도 못하고 팔 하나를 반쯤 뜯어 먹힌 소환수 하나가 끙끙거리며 신음하는 것을 본 그가 용기사 셋을 전장에 남겨 시체와 부상자들을 보존케 했다.
“곧 전투가 있을 테니, 모두 준비하도록.”
그의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에 피 냄새를 맡고 흥분한 호법룡과 나가 용기사들이 눈을 빛내며 그의 뒤를 바짝 따랐다.
서쪽 미궁은 그가 일전에 보았던 귀족의 미궁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각종 사치품들로 과도하게 치장되어 있던 입구는 완전히 기능적으로 변해 있었으며, 갖은 종류의 함정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설과 함정조차도 이미 발동하여 흔적만이 남아 있었으니, 아군이 얼마나 무식하게 공격해댄 것인지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통로에도 아군의 시체가 한 가득이었다. 간간히 적의 것으로 보이는 사체가 있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아마도 적들이 물러난 것은 진짜 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전장을 확보하기 위해서인 게 분명했다.
그 증거로 얼마 가지 않아 나타난 광장에는 아군의 시체가 겹겹이 쌓여 산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아군도 마냥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원래대로라면 이곳이 적의 저지선이 되었을 테지만, 아군은 적의 저지선을 힘으로 분쇄해버린 듯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희미하게 들려오는 비명과 포효가 저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고 있을 리가 없었다.
“속도를 올린다!”
이제껏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다소 느린 걸음을 유지하고 있던 김진우가 속도를 올렸다.
“이런…….”
통로 몇 개를 지나쳐 다시 코너를 이리저리 지나고 나서야 겨우 전장에 합류한 그는 생각과는 다른 전장의 상황에 눈살을 찌푸렸다.
좁지도 넓지도 않은 복도, 건장한 성인 남성 다섯 정도가 어깨를 맞대면 비좁다 느껴질 통로를 따라 아군이 다닥다닥 붙어 서 있었다.
당연하게도 적은 좁은 통로를 막아선 채로 수월하게 아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눈에 차는 놈이라고는 하나도 없구나!”
그중에서도 가장 앞에 나서 네 개의 팔을 우악스럽게 휘두르며 아군의 소환수들을 학살하고 있는 거인이 김진우의 눈에 띄었다.
“네놈들이 오지 않겠다니, 내가 가마!”
쿵쾅거리며 달려드는 거인은 각기 네 개의 팔에 나눠 쥔 칼과 도끼, 창과 방패를 기세 좋게 휘둘러댔다.
그리고 그렇게 거인의 무기가 휘둘러질 때마다 아군에게 등 떠밀린 소환수들이 제대로 피하지도 못하고 도끼와 칼에 고스란히 제 몸을 내주었다.
“여기서 대기.”
좁은 통로를 가득 메운 병사들 탓에 용기사들이 지나가기에는 공간이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용기사들을 그대로 두고는 길게 늘어선 아군의 행렬을 비집고 들어섰다.
크르륵!
그의 손이 닿자 눈을 부릅뜨며 거칠게 목을 울려대던 소환수 하나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옆으로 비켜섰다.
“고맙군.”
좁은 공간, 용케 몸을 비켜준 소환수의 어깨를 두들긴 김진우가 틈을 파고들었다.
콱!
크르르륵!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온 누군가를 보며 성을 내던 소환수들이 잇따라 자리를 내어주고, 때아닌 소란에 고개를 돌린 소환수들 역시 그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몸을 빼냈다.
김진우는 그렇게 느리지만 착실하게 적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단번에 소환수들을 뛰어넘어 내달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굳이 적의 경계심을 살 필요가 없었던 탓이다.
“조심하소서. 적의 힘이 만만치 않나이다.”
그렇게 대열의 3분지 2쯤을 지났을 때, 그를 알아본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8층에서 이주해온 미궁의 주인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잠시 발길을 멈춘 그가 묻자 상대가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처음에는 수적 우위를 앞세워 미궁 안까지 들어오는 데 성공했지만, 요 바로 전의 광장에서 병력 중 상당수가 전사했습니다. 이제 남은 병력도 얼마 없지만, 상황이 어려운 건 적도 마찬가지인지라 어떻게든 수를 찾는 중입니다.”
“수를 찾아? 내가 보기에는 죽으려고 순서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좁은 통로에 압도적인 무위를 자랑하는 적, 길게 늘어선 아군의 행렬까지 마치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들과도 같은 모습에 그가 혀를 찼다.
상대는 변명 대신 저 앞에서 아군을 학살하고 있는 거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자가 바로 미궁의 주인인 용맹의 고르곤 남작입니다.”
***
“오호, 이제야 조금씩 괜찮은 놈들이 나오는구나.”
10층 지저의 남작이자 용맹한 네 팔 거인들의 왕인 고르곤은 조금씩 기세가 살아나는 적을 보며 눈에 이채를 띄었다.
가만히 줄을 서 사형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놈들인 줄 알았더니, 뒤로 갈수록 제대로 된 놈이 나오니 흥이 돋은 모양이다.
“비켜라! 이제 막 흥이 돋으려는 참이니!”
신바람이 나 어지럽게 칼과 도끼를 휘둘러대던 고르곤이 무리에서 툭, 하고 튀어나온 작은 병사 하나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비키지 않는다면 직접 치워주마!”
이대로라면 간신히 데워진 자신의 피가 다시 식을 판이었던지라 그의 손길에 신경질이 가득했다.
“어?”
자신의 공격에 머리통이 깨져나갈 거라 의심치 않았던 상대가 어쩐 일인지 멀쩡하게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상대의 손에 쥐어진 칼이 낯이 익었다. 낯이 익은 건 칼뿐만이 아니었다.
그 작고 보잘 것 없는 손끝에 꿰어진 팔뚝 하나가 유독 그의 눈에 들어왔다.
“끄, 끄으으으.”
그리고 갑작스레 팔 하나가 통째로 뜯겨져 나간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의 네 팔 중 하나가 그대로 뜯겨져 나가 있었으니까.
“균형이 안 맞는군. 도로 돌려주도록 하지.”
나직하지만 조롱기가 가득한 음성이 들려오는 순간 고르곤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잘려진 팔뚝과 상대를 번갈아 바라보던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팔뚝을 보며 사납게 이를 딱딱거렸다. 비록 방심한 탓에 팔뚝 하나를 뜯기기는 했지만,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지저에서 가장 용맹한 네 팔 거인 일족의 왕이다.
고작 이런 부상에 하찮은 잡졸처럼 비명을 떽떽거리지는 않았다.
“네놈이 이놈들을 보낸 배후인가.”
그는 상대가 보통이 아님을 단박에 깨닫고 신중하게 자세를 다잡았다.
“원래는 머리를 노렸는데, 보기와는 다르게 제법 날래군.”
그렇게 말한 작은 병사가 씨익 웃어 보이는데 그 기세가 방금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병사의 기세가 돌변하며 이제껏 자신의 무위에 억눌려 있던 적의 군기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니, 살아나는 것을 넘어 마치 형상을 갖춘 듯 달려들어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반갑다, 고르곤이여.”
푸른 광망이 줄줄 흘러내리는 눈이 자신을 똑바로 향한 순간, 고르곤은 난생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것을 느꼈다.
***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고르곤의 공격은 남달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지른 공격이지만 그 안에 담긴 거력이 온 사방을 울려댔다.
이러니 병사들이 맥을 못 추지.
짧게 혀를 찬 그가 몸을 반쯤 돌려 적의 공격을 피해내며, 재빨리 허리춤의 칼을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휘둘렀다.
베었다. 하지만 목적했던 목은 아니었다.
“어?”
잠시 얼빠진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고르곤은 금세 평정을 찾고는 신중한 얼굴을 해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김진우는 내심 작게 감탄했다.
“원래는 머리를 노렸는데, 보기와는 다르게 제법 날래군.”
적이지만 진심을 담아 칭찬한 그는 애써 갈무리했던 기세를 그대로 풀어버렸다.
[전승의 사령관이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고르곤의 무지막지한 위용에 압도되었던 아군의 사기가 단숨에 치솟았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희생과 피로를 모두 잊고 마치 방금 전투를 시작한 것처럼 전투력을 회복했습니다.] [층간 페널티에서 완전히 벗어난 아군 병력이 사령관의 참전으로 증폭 효과를 받습니다.]강제로 비활성화 시켜두었던 전장의 사령관의 효과가 단번에 전장을 지배했다. 전공과 보상에 억지로 묶여 있던 병사들의 눈에 투지가 살아났다.
“반갑다, 고르곤이여.”
아군의 군기가 치솟는 것을 본 김진우가 씨익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