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48)
던전 견문록-148화(148/319)
# 148
던전 견문록
제 149 화
단숨에 내달린 9층의 군대가 그대로 시꺼먼 통로 너머로 몸을 던졌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김진우는 통로의 가장자리에 남아 퇴각을 지켜볼 뿐 9층으로 넘어갈 생각을 않았다.
“주인님, 부디 무사하시기를.”
이미 이야기가 된 것인지, 그를 끔찍이 여기는 도미니크마저 짧은 인사를 남기고는 통로 너머로 사라졌다.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대부분의 병력이 9층으로 퇴각을 마무리했을 때, 10층에 남은 것은 김진우와 나가들뿐이었다.
모아이들은 다운 잼의 향기에 민감하다. 또한 생명체의 박동하는 심장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다운 잼의 에너지가 응축된 미궁의 핵이었다.
그런 그들 앞에서 포탈을 연다는 건 10층에 존재하는 모아이 전부를 불러 모으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가 이 정신없는 돌격을 감행한 것이다.
크어어어어!
빠른 이동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다소 뒤쳐졌던 모아이들이 어느새 다가와 비척거리며 달려들고 있었다.
“퀀투스!”
“왕이시여!”
그동안 전투에서 활약할 기회를 딱히 찾지 못했던 퀀투스가 그의 말에 신이 나서 달려왔다.
“이곳에서 방어전을 치른다!”
“왕의 뜻대로!”
그의 선언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가들이 능숙하게 대열을 정비했다.
나가 용사들이 방패를 땅에 붙이고, 그 뒤로 나가 투사들이 창과 칼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이제껏 존재감 없이 대열을 따르던 나가 마법사들이 양손을 치켜올리며 알 수 없는 주문을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나가 친위대가 ‘방어전’을 시작합니다.] [지켜야 할 대상은 나가의 왕과 9층으로 향하는 통로입니다.] [왕을 지킬 때야 비로소 지닌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나가 친위대는 왕과 함께하는 전투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기가 고무되었습니다. 그들은 사지가 떨어져 나가더라도 결코 적을 물어뜯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나가 친위대장, 퀀투스의 특수 능력 ‘철벽’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나가들의 방어력이 상승하고 진영이 더욱 견고해집니다. 나가들이 어지간한 공격은 몸으로 받아낼 수 있을 정도로 터프해집니다. 또한 왕의 명령이 없는 한 그들은 진영 밖으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적이 이 진영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진영을 굳힌 나가들이 빛무리에 휩싸이고, 전승의 증폭 효과에 이어 철벽과 친위대의 고유 능력이 발동했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지금이야!”
전투의 시작을 알린 것은 상급 나가 마법사들이었다. 그간 다운 잼을 무던히도 잡아먹으며 식충이 취급을 받았던 나가 마법사들은 한풀이라도 하듯 무지막지한 냉기를 뿜어댔다.
그 냉기가 어찌나 강력한지 눈이 돌아가 달려오던 모아이들이 자세 그대로 몸이 얼어붙을 정도였다.
콰득.
그렇게 몸이 꽁꽁 얼어버린 전열의 모아이들이 바로 뒤의 모아이에게 짓밟혀 얼음 채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전방으로 노출된 새로운 모아이들이 다시 냉기의 폭풍에 휩싸여 얼음조각이 되었다.
“멈추지 마!”
김진우는 나가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냉기의 지옥을 보며 버럭 소리를 쳤다.
“킬킬!”
나가 마법사 몇이 그런 그를 보며 킬킬거리며 웃어댔다.
동족의 시체를 밟아 으깨며 달려드는 모아이들의 모습은 살벌하기만 하건만, 나가 마법사들은 어쩐지 신이 나 보였다.
낮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냉기의 방향을 이리저리 비트는 손짓이 흡사 물장구라도 치듯 경쾌하기만 했다.
“끄응.”
상황과 맞지 않는 나가 마법사들의 모습을 보며 김진우는 앓는 소리를 내뱉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가 나가 마법사들의 만행에 어이없어 하건, 어쨌건 간에 나가들은 착실하게 전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제는 기력이 슬슬 고갈되어 가는지 부쩍 약해진 냉기의 폭풍을 이겨내고 접근하는 적들이 생겨나고 있었지만, 꽁꽁 얼어버린 바닥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미끄덩, 넘어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버둥거리다 겨우 나가들의 진영에 도착한 모아이들은 몸을 채 일으키기도 전에 나가 용사들의 방패에 무자비하게 살해당했다.
“진영 굳혀!”
“하!”
이제는 슬슬 나가 마법사들에게 바통을 이어받을 때, 나가 용사와 투사들이 그의 호령에 바람 소리를 크게 내지르며 방패로 바닥을 찍었다.
그 사나운 기세에 맹목적으로 달려들던 모아이들이 잠시 주춤거렸다. 하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를 끝없이 증오하고 다운 잼을 탐하는 이 지저의 돌연변이들은 이내 본성을 드러냈다.
피부가 문드러진 코끼리의 모습을 한 모아이 하나가 너덜너덜한 코를 휘두르며 돌진해 왔다.
통로 하나를 꽉 채울 정도로 거대한 덩치, 발소리만으로도 온 천지가 울리는 듯 위압적이었다. 그대로 충돌했다간 단단하게 굳힌 진영이 무너질 판국이었다.
하지만 나가들은 물러서는 대신 더욱 자세를 낮추고 충돌을 대비했다. 나가 용사들의 방패가 땅을 파고들며 더욱 단단하게 고정되고, 뒤에 선 나가 용사들이 꼬리로 그들의 허리를 감싸 잡았다.
그리고 다시 그보다 뒤에 있던 나가들이 동료의 몸을 휘감았다.
그렇게 그들은 얽히고 얽혀 또아리를 튼 거대한 뱀이 되었다.
“충돌한다!”
방패에 시야가 가려진 나가들을 대신해서 김진우가 소리쳤다.
쾅, 하고 폭음이 터져 나왔다. 피륙과 쇳덩이가 부딪친 소리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과격한 소음, 하지만 나가들은 단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의지한 채 집채만 한 모아이의 돌격을 받아낸 것이다.
“찔러!”
돌진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그 충격을 온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는지 다소 정신이 없어 보였던 나가 용사들이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 사이로 용사들이 내지른 창과 도끼, 칼이 쏟아져 나왔다.
“끄에에에에!”
거대한 모아이가 순식간에 난도질당해 비명을 질렀다.
***
[나가 친위대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힘겨운 전투였지만, 나가 친위대는 왕을 지킨다는 긍지 하나로 잘 싸워주었습니다. 비록 피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압도적인 수의 적을 패퇴시킨 것 치고는 극히 미미할 뿐입니다.]마지막 모아이가 잘려나간 팔을 덜렁거리며 저 멀리 사라지는 것을 끝으로 김진우는 비로소 이 요란스러운 전쟁이 끝이 났음을 깨달았다.
[전승의 이름 앞에 작은 승리 하나가 추가되었습니다. 눈을 뒤집고 달려드는 광기의 군대를 두고 퇴각하지 않은 것은 진정 용기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총 159회의 크고 작은 승리를 얻었습니다.] [전승의 사령관의 효과가 소폭 상승합니다.] [사령관의 고유 능력과 특수 능력은 승리가 계속되는 한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의해 주십시오. 단 한 번의 패배만으로도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망할, 이 짓도 못해먹겠군.”
마치 약이라도 올리듯 떠오른 메시지를 본 김진우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가 퇴각한 상황에서 그만큼은 돌아설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전승’이라는 타이틀 탓이었다.
전승의 사령관. 승리는 그의 원동력이자 가장 큰 힘이기도 했지만, 또한 족쇄이기도 했으니까.
“돌아간다!”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김진우는 저 멀리서 또 다른 모아이들의 군대가 움직이고 있음을 느끼고 통로를 넘었다.
그렇게 명분 없는 그만의 전쟁이 끝이 났다.
***
전쟁이 끝이 나고 논공행상이 이어졌다.
“음…….”
큰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참전했던 미궁 주인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막대한 보상에 눈이 멀어 희생조차 감수하고 참전했건만, 막상 보상을 바라자니 자신들이 세운 공이 너무도 미비했던 탓이다.
그래서인지 요새의 광장에 쭉 늘어선 미궁의 주인들은 전쟁의 피로가 유독 짙게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광장에 임시로 설치된 단 위에 앉아 김진우가 9층 미궁의 주인들을 둘러보았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광장을 꽉 채울 정도로 많았던 인원수가 거의 반절 가까이 줄어 있었다. 남아 있는 주인들 역시 크고 작은 상처로 결코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이들은 아리아네를 비롯해 바르톨로뮤의 미궁을 공격했던 이들이었다.
탐스럽던 머리가 잘려나가 산발이 된 아리아네는 온몸에 멀쩡한 구석이 없을 지경이었다.
우악스러운 거인의 주먹질에 내장이 상하고, 뼈가 부러진 그녀는 결코 이 자리에 참석할 만한 상태가 아닌 듯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하고 이 자리에 버티고 선 것은 혹시 모를 논공행상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했던 탓이리라.
그녀뿐 아니라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눈치였다.
“지금부터 보상을 시작하겠다.”
잠깐의 침묵을 깨고 나선 김진우의 말에 모여든 이들이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시선을 보내왔다.
“먼저 전쟁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일괄적으로 10층의 군대가 쓰던 무구와 갑주를 내리겠다.”
가장 중요하다 말할 수 있는 귀족들은 하나같이 김진우와 그 수족들에 의해 제거되었다. 당연하게도 논공행상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파트를 그들이 독식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이번 전쟁에 참전한 것 자체를 후회할 게 분명한 상황, 김진우는 그들이 다음에도 열성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고심 끝에 전리품으로 얻은 물품 중, 다운 잼과 미궁의 핵을 제외하고는 전부 보상으로 풀었다.
그것만으로 전쟁에서 입은 손실을 만회하기란 요원한 일이었지만, 9층에서는 볼 수 없는 질 좋은 무구와 갑주 따위를 받은 미궁의 주인들은 그럭저럭 만족하는 눈치였다.
하기야 지저에 다운 잼의 씨가 마르기 전까지만 해도 수하들을 소모품 다루듯 쓰고 모자라면 찍어내던 미궁의 주인들이니, 이런 얄팍한 수가 통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모리건과 헤임달, 그리고 보레아스는 앞으로 나오라.”
각기 하나에서 둘의 큰 공을 세운 이들이 그의 호명에 앞으로 불려 나왔다. 9층 미궁의 주인들이 그들을 부러움과 질시 섞인 눈으로 흘겨보았다.
“그대들에게 각기 귀족들이 사용하던 가장 뛰어난 무기를 지급하고, 다운 잼과 소환석을 내리겠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나가 일꾼 몇이 크고 작은 상자를 가져다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왕의 자비로움에 감사를!”
보레아스와 헤임달이 만족스러운 얼굴을 해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모리건은 나가 일꾼들이 내민 상자를 받지 않았다.
“모리건?”
그의 호명에 그녀가 손을 내밀어 상자를 슬쩍 밀어냈다.
“따로 바라는 게 있는 모양이군.”
그녀는 대답대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 자리가 파하고 따로 자리를 청하겠습니다.”
“대체 무슨 요구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지만 일단은 알았다.”
모리건과 헤임달, 보레아스가 자리로 돌아갔다. 미궁의 주인들은 모리건이 거부한 다운 잼과 소환석 상자를 보며 탐욕스럽게 눈을 번뜩였지만, 김진우의 손짓에 나가 일꾼이 사라지자 이내 입맛을 다시고 말았다.
“그럼 대충 마무리하도록 하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두 수고했다.”
***
미궁의 주인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뒤, 김진우는 모리건과 따로 독대를 했다.
“보상이 눈에 차지 않은 건가?”
그녀는 질문에 대한 대답대신 오히려 되물었다.
“어떻게 된 거죠?”
“뭐가 말인가.”
짐작 가는 바가 있었지만 김진우는 의뭉을 떨었다. 그런 그를 보며 모리건이 입술을 짓씹다가 물었다.
“왜 주인님께 그분의 힘이 느껴지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안달이 난 것은 모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