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52)
던전 견문록-152화(152/319)
# 152
던전 견문록
제 153 화
울퉁불퉁, 땅굴을 파 만들어 두었던 통로가 대리석이라도 깔아둔 것처럼 반듯하게 변해 있었고, 덩치가 큰 소환수들이 다닐 때면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로 낮았던 천장이 불쑥 솟아 있었다.
예전의 요새가 좁은 통로가 얼기설기 이어진 토굴이었다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요새는 마치 커다란 성과도 같았다.
[나가의 요새가 하이로드에 오른 주인을 맞을 준비를 모두 끝냈습니다.] [나가의 요새가 대미궁으로 진화하였습니다.] [대미궁은 기존의 미궁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입니다. 지금까지 성장의 기준이자 한계였던 기존의 등급이 완전히 무의미해졌습니다.] [미궁의 등급이 초기화 되었습니다. 미궁의 등급이 7등급 미궁에서 1등급 대미궁으로 변화하였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거슬러 다시 지저에 모습을 드러낸 대미궁은 과연 전설 그대로 엄청난 힘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간 인위적으로 제한되었던 기존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지고 어마어마한 지역이 대미궁의 영역에 편입되었습니다.] [이제 막 깨어난 대미궁은 규모에 비해 다소 무력합니다. 대미궁의 완전한 모습을 찾으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합니다.] [대미궁은 스스로 판단하고 성장하는 진짜 살아 있는 미궁입니다. 대미궁이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위험을 감지하고 스스로의 기운을 갈무리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온 지저에 퍼져나갔을 대미궁의 탄생이 극히 일부에게만 감지되었습니다.]“이런…….”
김진우는 미궁의 등급이 초기화되었다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가 이내 대미궁이 기존의 미궁과는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기대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대미궁은 탄생과 동시에 지저의 동향을 파악하여 스스로의 기운을 갈무리했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모든 감시의 눈초리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덕분에 쓸데없이 주변의 경계를 사는 일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나가의 요새는 두 개의 핵(메인 코어, 서브 코어)로 이루어진 기형적인 미궁이었습니다. 같은 등급의 여타 미궁에 비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효율을 자랑하던 이 시스템은 미궁이 대미궁으로 진화한 지금도 건재합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핵이 거저 유지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 두 개의 핵은 대미궁의 핵으로 쓰이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화의 과정에서 대미궁은 두 개의 핵을 포기하는 대신 다른 미궁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인접 미궁들이 핵의 에너지를 흡수당하고 소멸하였습니다.] [덕분에 대미궁의 근간이 되는 이 두 개의 핵은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졌습니다.]“미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욕설이 튀어 나왔다. 미궁의 핵을 유지하기 위해 인접 미궁들의 흡수했다는 사실은 지저의 온갖 기괴함을 경험해본 그에게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놀라거나 말거나, 메시지 창은 무덤덤하게 깜박이며 문자를 토해냈다.
[기존의 미궁이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9층의 모든 미궁이 소멸되었습니다. 소멸된 미궁과 그 핵이 품고 있던 에너지가 대미궁의 핵으로 흡수되었습니다.] [망치와 모루의 땅이 소멸되었습니다. 말락수스와 난쟁이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잃고 어리둥절해 하고 있습니다. 난쟁이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그들을 대미궁으로 받아들이고 말고는 전적으로 당신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미몽의 땅이 소멸되었습니다. 여왕과 몽마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몽마들이 자리를 잡을 곳이 필요합니다. 대미궁은 그들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히 넓고 깊습니다.] [큰 엄니 멧돼지들이 자신의 보금자리를 잃고 영문을 몰라 하고 있습니다.] [헤카림과 반인반마들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비단 개구리들이 대미궁의 한구석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기를 희망합니다.]끝을 모르는 미궁의 소멸 소식과, 터전을 잃은 그 주민들이 대미궁에 자리를 잡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 김진우는 차라리 허탈함에 웃고 말았다.
[터전을 잃은 주민들이 아직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지금, 미리 대미궁을 정비해야 합니다.] [난민들은 곧 이 모든 사태의 근원이 당신과 관계 있음을 깨닫고 대미궁으로 몰려들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 중 일부는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고 과격한 폭도가 되어 당신에게 이를 드러낼지도 모릅니다. 그 하나하나는 보잘것없는 존재들이지만, 미궁을 잃은 그들의 광기는 결코 당신에게 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을 힘으로 찍어 누를지, 그도 아니면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당신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최초의 난민, 혹은 폭도들이 대미궁에 당도하기까지, 앞으로 71:59:59]모든 정황을 다 파악하기도 전에 또다시 타임 리미트가 걸려 버렸다.
비록 3일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기존의 체계와 완전히 달라진 대미궁의 이모저모를 파악하고 폭도들의 난동에 대비하려면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하물며 지금의 대미궁은 모든 시설이 비활성화되어 그 존재가 무실해졌고, 도미니크를 비롯한 나가들의 모습 역시 그 행적이 묘연했다.
어쩌면 성난 그들을 홀로 상대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주인님?”
모리건이 허공에 대고 손짓하다 다시 욕을 해대기도 하는 모습을 보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불렀다.
“모리건, 도미니크와 다른 나가들을 찾아줘. 만약 그들을 찾는다면 바로 오너 룸으로 보내줘, 서둘러.”
그의 말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특유의 날갯짓 소리와 함께 모리건이 사라졌다.
“쉽게 풀리는 법이 없군.”
위기감이 느껴질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여유가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9층의 모든 미궁들이 소멸되었다면, 그 과정에서 생겨난 난민만 해도 그 수가 1만은 족히 넘을 것이다.
그들 전부가 폭도로 돌변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일부라고 해도 모리건과 단 둘이 막아내기에는 그 수가 지나치게 많았다.
눈이 돌아간 이들 중 몇몇이 작정하고 그들의 눈을 피해 미궁을 휘젓고 다니면 비활성화된 시설 중 상당수가 파괴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자신을 이끄는 핵의 기운을 따라 내달리는 그의 눈에 방치된 시설들이 보였다.
한때 나가 마법사들이 북적거리던 연구실은 잠깐 사이에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고, 나가 대장장이들이 쉴 새 없이 망치질을 해대던 대장간은 차갑게 식은 화로만이 냉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음.”
그 모습이 흡사 수십 년은 방치된 채 시간이 흐른 듯한 모습이라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주인님!”
김진우는 자신을 부르는 반가운 음성에 이내 상념에서 깨어나야 했다.
“도미니크!”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지금 이 순간 그가 가장 필요로 하던 ‘왕의 조언자’가 있었다.
도미니크는 상황을 미처 파악하지 못해 의문이 가득한 모습이었지만, 중간에 말을 끊는 법 없이 가만히 그의 말을 전부 듣고 난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9층에 이곳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미궁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군요.”
차분한 음성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듯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사라진 소환수들을 찾는 거야. 정황 파악은 그 다음이다.”
단시간 내에 대미궁의 전모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거대한 미궁은 그 엄청난 덩치만큼이나 숨겨진 비밀이 많았다.
어설프게 그 비밀을 파헤치느니 지금은 사라진 병력을 찾아 지금 이 순간에도 대미궁을 향해 몰려들고 있을 난민들을 대비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었다.
도미니크 역시 같은 생각인지, 의문을 뒤로 한 채 나가들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그렇게 사라지는 도미니크의 뒷모습이 어쩐지 전과는 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정작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찾지 못해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도미니크와 잠시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어느덧 오너 룸에 도착한 탓이었다.
“아…….”
몇 배는 거대해진 오너 룸의 문을 연 그는 완전히 달라진 그 모습에 신음인지 감탄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9층의 지도가 올려진 테이블과 핵, 그리고 제단, 마지막으로 왕좌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던 석실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하게 변해 있었다.
높다랗게 솟아오른 천장은 돔 형태로 푸른 수정이 전체를 감싸고 있었고, 사방으로 넓게 트인 공간은 수백 마리의 나가들이 한꺼번에 도열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솟은 암석으로 만들어진 계단은 용과 뱀 따위로 화려하게 장식된 왕좌를 굳건히 지탱하고 있었다.
마치 홀린 것처럼 왕좌로 향한 김진우는 단 위에 올라 주변을 돌아보았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사방의 풍경이 전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괜스레 주먹을 불끈 쥔 그가 이번에는 왕좌의 뒤편에서 빛을 발하는 두 개의 핵을 살펴보았다.
나가의 심장과 교룡의 심장, 요새를 지탱해왔던 두 개의 핵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한 빛을 뿌려내고 있었다. 마치 지저에 존재할 리 없는 달과 태양이 이곳에만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두 개의 핵은 그 찬란한 빛만큼이나 강대한 힘을 뿜어대고 있었는데, 김진우는 벌써부터 두 개의 핵이 내뿜는 기운에 도취되어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무래도 그저 그의 기분 탓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미궁의 핵, 듀얼 코어가 하이로드의 기운에 공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나가의 심장과 교룡의 심장이 당신과 공명을 시도합니다.] [각인이 완료되면 당신이 아닌 어느 누구도 이 강력한 심장에 간섭할 수 없게 됩니다.] [각인 작업이 곧 완료됩니다.] [각인 작업이 모두 끝이 났습니다.]메시지가 번쩍이고 나서야 그는 기이할 정도로 들끓던 힘이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휴우.”
황홀하지만 그만큼 부담스러웠던 힘의 교류가 끝이 나고,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대미궁은 미지의 존재였다. 비록 자신의 소유였지만, 스스로 판단하고 살아 움직이는 이 거대한 생명체는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았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일을 겪어야 이 도도한 미궁을 비로소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털썩.
가만히 서서 미궁의 핵을 바라보던 김진우는 핵이 내뿜는 빛에 눈앞이 흐릿해질 때쯤이 되어서야 왕좌에 털썩, 하고 주저앉았다.
왕좌에 앉은 그는 습관처럼 팔걸이 끄트머리에 달린 보석을 부여잡고 미궁의 상태창을 불러냈다.
***
잠들어 있던 미궁의 병력들이 하나둘 깨어났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깨어난 것은 지저목들이었다.
과거 미궁의 외곽에 뿌리를 박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던 지저목들이 하나둘 대지를 뿌리치고 일어나 느릿느릿하게 오너 룸으로 향했다.
“아, 지저목들?”
워낙에 존재감이 없었던지라 한동안 잊고 지냈던 지저목들을 발견한 김진우가 반색했다.
그오오오오.
지저목들은 그의 음성에 화답이라도 하듯 울어대다 다시 느릿느릿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이 향한 곳은 오너 룸에서도 핵의 빛이 가장 잘 비치는 단 바로 아래였다.
[한때 지저에서도 강대한 축에 속했던 지저목들은 고대 지저의 태양을 잃은 뒤로, 쇠락하고 또 쇠락해 이제는 그저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시시한 존재가 아닙니다. 힘을 회복한다면 지저목들은 상상 이상의 힘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완전하지는 않지만 고대 지저에 존재했던 태양과 비슷한 빛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힘의 회복에 전념하려 합니다.] [지저목들이 당신의 허락을 구하고 있습니다.]이미 오너 룸까지 들어온 마당에 이제 와서 그들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김진우는 다른 이들이 보이지 않는 지금, 지저목들의 등장에 반가움마저 들 지경이었으니 흔쾌히 그들이 오너 룸에 상주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오오오오오오.”
[지저목들이 몹시 기뻐합니다. 그들은 당신의 자비에 감격했습니다. 언젠가 자신들이 나서야 할 순간이 온다면 지저목들은 마지막 잎사귀와 가지 하나까지 당신에게 바칠 것입니다.]지저목들의 뿌리가 단단한 암석을 파고들어 대지를 부여잡는 것을 본 김진우가 새삼 미궁의 핵을 바라보았다.
과거 지저에 태양이 존재했다고 하더니, 아무래도 그 태양이란 하이로드들의 핵이었던 모양이다.
지저목 다음으로 정신을 차린 것은 헤임달이었다.
끼오오오오오오오옷!
길게 울려 퍼지는 새벽닭의 포효. 헤임달은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울음소리로 자신이 깨어났음을 알려왔다.
그리고 마치 새벽닭의 울음소리에 오랜 잠에서 깨어나듯 대미궁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