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53)
던전 견문록-153화(153/319)
# 153
던전 견문록
제 154 화
헤임달의 다음은 릭샤샤를 비롯한 언더 엘프들이었다.
“왕이시여!”
한걸음에 달려온 릭샤샤는 그간 주인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지, 그를 발견한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이게 대체…….”
그녀는 변해버린 미궁의 모습과 전보다 몇배는 격이 올라간 김진우의 존재감에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가장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대미궁과 김진우가 아닌 자신과 언더 엘프들에게 이루어진 변화였다.
“축하한다, 릭샤샤. 그리고 언더 엘프들이여.”
그리고 김진우는 릭샤샤를 본 순간 그녀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찬탈자의 미움을 받아 시스템에게 배척받았던 언더 엘프들이 마침내 저주를 벗어났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지저의 노예이자 저주받은 방랑자가 아닙니다. 비록 과거 영광되었던 요정 군주와 그 숲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은 하이로드에 오른 주인 덕에 과거의 모습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저의 품으로 마침내 돌아온 그들은 점차 과거의 모습을 찾아갈 것입니다. 끊어졌던 지저와의 교감이 회복되며, 그들이 잃었던 진정한 힘이 깨어났습니다.] [언더 엘프의 고유 능력 ‘영매(靈媒)’가 활성화 되었습니다. 당장 영매 능력을 사용하기에는 무리지만, 그들은 곧 자신과 교감이 가능한 지저령(地底靈)들을 찾아 ‘계약’을 할 수 있을 겁니다.]시스템 메시지가 그들에게 일어난 변화를 설명해주었던 탓이다.
“그대들은 이제 더 이상 천한 노예도, 도망자도 아니다.”
그는 갑작스러운 축하 인사에 어리둥절해 하는 언더 엘프들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릭샤샤와 언더 엘프들은 숨죽인 채 그의 말을 경청하다 끝에 가서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의외군, 그대라면 담담히 기뻐할 줄 알았는데.”
그 포커페이스의 릭샤샤마저 눈물을 주루룩 흘려대는 모습이 놀라워 그리 말하니, 그녀가 이제 왕을 바로 곁에서 더욱 살뜰하니 모실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냐며 웃어 보였다.
그렇게 릭샤샤가 감격에 겨워하고 있을 때, 김진우는 깨달았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전부 고대 지저와 관련이 있는 자들이었다.
“다른 자들은 아직인가?”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호야와 묘인족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역시 처음부터 지저에서 노예로 부려지던 존재들은 아닌지, 과거와는 달리 상당히 강해진 모습이었다.
특히나 묘인족 여인의 변화가 눈에 도드라질 정도였다.
가녀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외모는 여전했지만,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전과는 달랐다.
소리 없는 묘인족의 걸음걸이는 전보다 더욱 은밀해졌으며, 가만히 바라보고 있어도 허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흐릿한 존재감은 전과 확연하게 다른 부분이었다.
[묘인족과 호인족은 과거 열 군주 중 하나인 야수왕이 다스리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요정 군주의 후예가 그러했듯이 찬탈자의 미움을 받아 지저에게 배척받았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하이로드가 탄생한 지금, 그들 역시 언더 엘프들과 마찬가지로 서서히 자신의 힘을 회복할 것입니다.] [호인족의 능력은 ‘강인함’, 그들은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누구보다도 빠르고 강한 전사들입니다.] [묘인족의 특수 능력은 ‘매혹’입니다. 그들은 전 수인족들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전투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상대를 매혹시키는 힘만큼은 인정할 만합니다. 난폭한 호법룡들이 이유 없이 그녀를 따른 것이 아닙니다. 그녀의 치명적인 매력은 스스로가 악의를 품지 않는 이상 어느 누구도 자신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들 것입니다. 아니, 설령 그녀가 발톱을 세우고 이를 드러내도 상대는 제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그녀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두 수인족의 능력을 확인한 김진우는 저도 모르게 묘인족 여인을 빤히 바라보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그녀의 외모가 어쩐지 시선을 떼기 힘들었다. 세로로 길게 세워진 눈동자도 자꾸 보다 보니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음…….”
[묘인족의 매혹 능력은 자신의 주인에게도 유효합니다. 비록 적을 상대할 때와는 달리, 숨통을 끊고야 마는 치명적인 매력은 아니지만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기에는 충분한 능력입니다.]마치 경고라도 하듯 떠오른 메시지. 김진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자꾸만 시선이 가려는 것을 보면 그녀의 능력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었다.
“아아…….”
그때 들려오는 억눌린 신음 소리, 여전히 말을 하지 못하는 묘인족 여인의 모습은 당장 달려가 보듬어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이미 매혹 능력의 존재를 알게 된 그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묘인족 여인. 안도. 감사. 갈망.]그저 외눈박이 군주로부터 계승된 ‘진실의 눈’을 통해 그녀가 자신의 무사함을 굉장히 기뻐하고 있음을 알았을 뿐이었다.
수인족 여인들이 마지막으로 오너 룸을 찾고, 그 이후로는 한참이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고대 지저의 후예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 소멸당해 대미궁의 양분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겨우 사라졌던 나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왕이시여! 무사하심에 이 퀀투스 죽어도 여한이 없나이다!”
요란스럽게 등장한 퀀투스를 필두로 한 나가들과 발리셔스가 나타나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다른 이들은? 왜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 그렇게 등장한 나가들의 수가 고작 스물도 채 되지 않았다. 그게 못내 이상해 물으니, 퀀투스와 나가들을 안내해 온 도미니크가 조심스레 추측을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격이 떨어지는 소환수들일수록 깨어나는 게 느린 건 아닐까요. 이곳에 모인 이들은 전부 주인님께서 영웅급으로 소환시킨 이들 뿐이랍니다.”
그러고 보니 도미니크가 인솔하여 데려온 병력들은 전부 영웅급 소환수뿐이었다.
“끄응.”
결국 이번에도 나가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에 모인 영웅급 소환수들 중 대다수가 전투 경험도 풍부하고, 손수 소환석을 섭취시켜 바닥부터 키워낸 알짜배기들이라고는 하나 얼마가 될지 모르는 폭도들 전부를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최악의 경우 얼마 남지 않은 다운 잼을 전부 쏟아부어 새롭게 군대를 꾸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요새와 인접해 있던 위성 미궁의 주인들이 속속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찾아온 이들이 큰엄니 멧돼지들의 왕, 오코누토시와 거울 망령의 왕, 에스페토스였다.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봉신의 계약에서 풀려난 오코누토시였지만 그는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았다.
애초에 그 스스로가 8층의 겁난을 피해 전승의 사령관이라는 거목의 그늘로 들어온 것이니, 갑작스러운 미궁의 소멸에 당황하고 실의에 빠지기는 했지만 함부로 이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보시다시피 미궁이 갑자기 커버리는 바람에 주변의 미궁을 먹어치운 모양이다. 내 병사들도 전부 종적을 찾아볼 수 없군.”
아무리 온갖 기괴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지저라고 하나, 미궁이 주변의 미궁을 먹어치우는 일이 흔한 일일 리가 없었다.
오코누토시는 일견 성의 없게까지 들리는 그의 설명에 할 말을 잃고 입을 쩍 벌렸다.
“애석하게도 나는 소멸해버린 그대의 미궁을 다시 살릴 방법을 알지 못한다. 만약 있다면 전력으로 도울 것이나, 지금으로서는 요원한 일이다.”
기왕지사 일이 이렇게 된 것 김진우는 아예 뻔뻔하게 나가기로 작정했다.
“끄응, 미치겠군.”
미궁을 잃은 것치고는 꽤나 침착한 오코누토시의 태도,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미궁의 주인들과는 달리 오쿠노토시는 자신의 종족을 더욱 귀히 여기지 미궁 따위는 그저 집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던 괴짜였다.
그러니 나름대로 위세를 떨쳤던 8층의 미궁을 버리고 9층으로 이주할 수 있었으리라.
“방법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노력은 해보겠다.”
이도저도 아닌 미적지근한 대답이었지만 이미 오코누토시는 만족했다.
그 스스로 봉신의 계약이 풀렸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그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다시 한 번 충성을 맹세했다.
이 또한 하이로드의 능력과 관계가 있을 게 분명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김진우도 오코누토시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부디 왕의 그늘에 거함을 허락해 주소서.”
[오코누토시와 큰엄니 멧돼지들이 대미궁에 합류하기를 원합니다. 만약 그들을 받아들인다면 대미궁의 일부가 그들에게 제공됩니다.] [핵이 관장하는 것은 미궁뿐이 아닙니다. 지저의 기운은 지저의 주민들이 살아가는 원동력이지만, 그들을 보다 폭급하고 야만스럽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미궁의 핵은 소환수들이 지저의 기운에 잠식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핵을 잃은 종족은 마침내 야성에 잠식되어 짐승처럼 지저를 헤매게 됩니다.] [큰엄니 멧돼지들은 큰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당신은 비록 제한적이나마 새로운 미래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당신은 하이로드의 힘을 완전하게 소화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당신은 9층의 난민들 모두에게 미래를 약속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도움을 받지 못한 난민들은 머지않아 야성과 본능에 잠식되어 짐승처럼 지저를 헤매게 될 것입니다.] [어깨가 무겁습니다. 당신의 손에 수많은 이들의 흥망성쇠가 달려있습니다. 당신의 선택에 따라 누군가는 멸족의 길을 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신중한 결단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한 번 받아들인 이들을 다시 내쫓아내는 것 역시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추방자들은 먼저 내쳐진 이들과 마찬가지로 미래를 잃고 지저를 떠돌다 비참하게 사라질 것입니다.]“호오…….”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를 보며 김진우는 탄성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대미궁은 그저 탐욕스럽게 다른 미궁의 에너지를 흡수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미궁을 잃은 이들에게 아직 희망이 남아 있음을 확인한 그는 씨익 웃어 보였다.
“그대가 나의 미궁에 거할 것을 허락한다.”
[오코누토시와 큰엄니 멧돼지들이 대미궁에 소속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영역 안에서라면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보장받습니다. 비록 일족의 수를 늘리는 것만큼은 당신에게 의존해야 하겠지만, 그들은 멸족의 길에서 다시 번성의 기회를 움켜쥘 수 있었습니다.] [큰엄니 멧돼지들이 자리 잡을 영역을 지정하십시오. 만약 그들의 주거지를 지정해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멋대로 미궁의 중심부에 자리 잡을지도 모릅니다.]요새가 대미궁으로 진화되며 일어난 변화에 혼란스러웠던 김진우였지만, 어느새 그는 빠르게 평정을 되찾아 머리를 맹렬하게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재미있겠어.”
남은 대미궁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일 난민과 폭도들의 모습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