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57)
던전 견문록-157화(157/319)
# 157
던전 견문록
제 158 화
60. 식탐
진실의 눈은 완벽하지 않다. 진실의 눈은 상대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 심리 상태의 일부를 확인할 뿐이다.
그래서 김진우는 계속해서 상대를 흔들어댔다.
협박과 회유, 그리고 다시 으름장,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가 보이는 자들에게는 집요한 추궁이 이어졌다. 그 결과 심층 백작들과 커넥션을 갖고 있거나, 또는 종속 관계에 묶인 이들이 추가적으로 넷이나 발견되었다.
“뭐가 절대로 배신을 못한다는 거야. 허술하구만, 허술해.”
봉신의 계약이 절대적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봉신의 계약은 단순히 계약자의 미궁이 파괴될 경우, 봉신 역시 운명을 함께한다는 제약이 걸려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미궁의 소멸이라는 조항이 참으로 애매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면, 이것만큼 쓸모없는 제약도 없을 것이다.
아니, 굳이 죽음을 각오하지 않아도 정보를 빼내는 정도라면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곁에서 지켜보다 정보를 전해주는 정도는 누구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런 허점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9층에 숨어든 첩자들의 수가 예상보다 많자, 김진우는 속이 쓰렸다.
“전부 먹어치워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첩자들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그는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그오오오오!
대미궁의 식사가 시작되었고, 말락수스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그 끔찍한 모습을 또다시 지켜봐야만 했다.
***
[말락수스와 난쟁이들이 대미궁의 주민이 되었습니다.] [난쟁이들의 가치는 전투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가치는 도끼를 들고 전장을 전전할 때가 아닌, 망치와 모루를 쥐고 있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됩니다.] [난쟁이들이 제 몫을 하려면, 공방과 작업실이 필요합니다. 굳이 명령하지 않아도 그들은 유용한 것을 만드는 것으로 당신에게 인정받으려 할 것입니다.]말락수스와 그 일족에게 공간을 배정해주는 것으로 드디어 9층의 난리도 끝이 났다.
운 좋게 참화를 피해간 이의 수는 열. 그들은 앞으로 대미궁을 떠나지 못하고 평생토록 그와 대미궁을 위해 헌신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 지은 김진우는 남아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냈다.
“아리아네.”
대미궁이 보인 비상식적인 힘에 완전히 압도된 아리아네는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어댔다.
“디나리온이 그대를 보낸 목적이 뭐지?”
설마 심층의 백작씩이나 되어서 제 딸을 걱정해 이런 짓을 벌였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옛 군주의 힘, 그 열쇠.”
예상대로 디나리온이 아리아네를 보낸 것은 단순한 이유가 아니었다. 아리아네는 더듬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자신이 아는 바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현 지저의 존재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막강한 권능, 그 실마리가 바로 왕께 있었어요.”
아리아네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김진우의 표정이 변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설명이 모두 끝이 났을 때, 그는,
“하하하!”
웃고 있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꿍꿍이가 있는 건 매한가지군.”
하지만 그 웃음이 끝이 났을 때, 그는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아리아네는 말했다, 옛 군주의 힘은 심층 백작들에게는 공공연한 비밀이나 다름이 없다고. 더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위한 그들의 욕망을 이루어줄 유일한 비원이 바로 옛 군주들의 힘이라 말했다.
이로써 철혈의 아나톨리우스가 내건 조건조차도 거짓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파르테논이 모리건을 내놓으라며 강짜를 부린 것 역시 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들은 모두 같은 목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깨닫자 그는 심층 백작들의 연기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을 기분이었다.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감탄은 길지 않았다.
심층 백작들의 심계에 대한 감탄보다, 분노가 더욱 컸던 탓이다.
하루하루를 절벽 위의 외줄을 타듯 살아왔다. 한 발만 잘못 딛어도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하는 상황, 그간 그 모든 역경과 고난을 헤치고 잘해왔다. 아니, 잘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외줄의 양 끝을 붙잡고 흔들어대고 있던 이들이 심층의 백작들일 줄이야. 그는 스스로의 오만에 비웃음을 날렸다.
또한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하이로드 각성에 축배를 들고 있을지도 모를 심층의 백작들을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네놈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새 차가운 이성을 되찾은 그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아리아네가 불안한 얼굴로 눈치를 살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한참이나 망설인 끝에 겨우 흘러나온 질문에 김진우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약속대로 살려주지.”
“가,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로…….”
“단!”
온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아리아네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그대가 해줘야 할 일이 있다.”
“어떤…….”
그의 말이 전부 끝이 났을 때, 아리아네는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그쯤은 해둬야 그대도 더 이상 배신을 생각하지 못하리라.”
절망에 고개를 떨군 그녀를 보며 김진우가 차갑게 말했다.
***
아리아네는 대미궁의 중심부에 감금되었다. 감시는 언제나처럼 호야가 맡았다.
호야는 평소에는 하릴없이 오너 룸의 왕좌 아래 누워 가르릉 대며 잠만 자는 식충이지만, 임무를 부여하면 잠조차 자지 않는 집요한 감시자가 된다.
부질없는 꿈으로 적을 현혹하는 아리아네에게는 이 잠 없는 고양이야말로 천적일 것이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나한테 보고할 것 없이 바로 처리해.”
만약의 경우, 아리아네를 폐기할 경우가 생긴다 해도 호야라면 근접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아리아네를 암살하기에 충분하리라.
“크릉.”
호야가 맡겨만 달라며 제 가슴을 두들겼다.
“그럼 호야, 부탁한다.”
그렇게 아리아네의 감시를 호야에게 맡긴 김진우는 오너 룸에 앉았다.
“주인님!”
도미니크가 그를 보고는 반색하고 달려들었다. 그녀의 뒤로 영웅 급 나가들과 모리건을 비롯한 고대 전쟁 영웅들이 한결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부 잘 처리됐어.”
“다행이에요, 다행이에요.”
품에 안긴 도미니크가 다행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어떻게 나올지 모를 수천의 폭도 앞으로 혼자 나선 주인의 무모함이 퍽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평소의 그녀라면 절대로 그를 혼자 수천의 적들 앞으로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도 어쩔 수가 없었으니, 수천 폭도들을 집어삼킨 대미궁이 아직 완전하게 그의 통제 아래 놓이지 않았던 탓이다. 통제를 벗어난 대미궁은 위험한 존재였다.
실제로도 폭도들을 집어삼킨 대미궁은 아직도 배가 꽉 차지 않은 상태였다.
[대미궁(1등급)] [포만도 72%. 완전히 배가 찬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포만감을 느끼는 상태.] [공복도 00%.] [*공복 상태의 대미궁은 위험한 존재입니다.] [포만도가 0%가 되면 공복도가 오르기 시작합니다. 공복도가 일정 수치 이상에 오르면 대미궁이 무작위로 미궁의 주민들을 집어삼킵니다.] [지속적으로 포만감을 채워주지 않을 경우, 대미궁은 스스로 제 배를 채우려 할지도 모릅니다. 가엾은 주민들이 희생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지속적으로 대미궁에게 에너지를 공급해 주십시오.]전과는 달리 세부적인 수치가 모두 사라진 대미궁의 스테이터스는 간단하게 포만도와 공복도만을 표시하고 있었을 뿐이다.
며칠간 스테이터스 창을 수백 번은 살펴보며, 나름대로 궁리를 해보았지만 고작 그 정도로는 대미궁이라는 미지의 존재를 파악해낼 수 없었다.
그나마 고대의 대미궁을 살아온 모리건과 헤임달이 아니었다면, 아직까지 그는 대미궁의 단 한 부분도 지배하에 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온갖 궁리 끝에 겨우 통제에 둔 대미궁의 권능이 바로 ‘탐식(貪食)’이었고, 그 하나의 권능만으로도 수천의 폭도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 야욕을 드러낼지 모를 심층의 백작들을 생각하면, 탐식의 권능 하나에만 의지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심층의 귀족들은 이미 강대했던 열 군주를 몰아낸 전적이 있는 자들, 분명 대미궁의 허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상대하려면 우선적으로 힘을 키워야 했다.
“폭도들을 몰아냈지만, 대미궁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이들은 너무도 많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도미니크를 겨우 떨쳐 낸 김진우가 영웅급 소환수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우리는 대다수의 정예 병력을 잃은 상태지. 이번에 새롭게 받아들인 이들이 있지만, 그들 중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이들은 아예 없다고 봐야 해. 그러니 당분간은 대외적인 활동을 완전히 중단하고, 미궁의 정비에 주력하겠다.”
모아이들이 활개를 치고, 1년간 힘겹게 지켜온 방어선이 무너지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의 그와 대미궁은 문을 걸어 잠그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대미궁에는 임의로 통로를 폐쇄하고 다시 열 수 있는 기능이 있으니, 다시 활동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는 반드시 대미궁을 완전히 무릎 꿇리고 통제하에 두어야 했다.
“망할 시간 제한,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아.”
자조적으로 한마디를 툭, 내뱉은 그가 이내 소환수들을 닦달하여 임무를 맡겼다.
“도미니크, 사라진 병력을 되살릴 방법을 찾아라.”
“네! 주인님!”
“모리건, 헤임달. 그대들은 이번에 미궁에 편입된 이들을 감시하라.”
“왕의 뜻대로!”
“릭샤샤는 미궁의 경계를 완벽하게 파악하여 지도로 보고하라!”
“명대로 하겠나이다.”
순식간에 명령이 하달되었고, 숨죽이고 있던 대미궁이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
“이제 밀린 일은 전부 처리된 건가요?”
모두가 떠난 오너 룸에 홀로 앉아 있던 김진우는 익숙한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놀라지 않는군요.”
걷는 것조차 힘든 것인지 벽에 몸을 기대 숨을 몰아쉬는 여인은 그를 보며 실망한 얼굴을 해보였다.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아직 통제하지 못하는 대미궁이지만, 누군가의 접근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놀란 얼굴 대신 걱정스러운 표정을 해보였다.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이젠 정말 괜찮으니까.”
퀭한 눈자위에 힘을 잔뜩 주어보이는 여인은 바로 이준영이었다.
미궁이 대미궁으로 진화하며 집어삼켜진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덕을 본 이들이 있었다. 이준영 역시 그중에 하나였다.
다운 잼에 중독되어 폐인이나 다름없던 그녀는 더 이상 전처럼 흐리멍텅한 시선을 보내오지 않았다.
“이제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그녀는 퀭한 얼굴로나마 똑바로 그의 얼굴을 마주 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