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64)
던전 견문록-164화(164/319)
# 164
던전 견문록
제 165 화
김진우의 안가가 위치한 곳은 파주 게이트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요즘 같이 크리쳐들이 게이트를 통해 줄줄 새어 나오는 시기에 땅값이 제 값일 리가 없었다.
그는 백 선생과 블랙 머천트의 암상인을 상대로 갈고 닦은 노련미로 더욱 더 땅값을 후려쳤고, 땅 주인은 처치 곤란이던 인근의 땅을 모조리 그에게 떠넘겼다.
그렇게 안가 주변의 땅을 사들인 김진우는 곧장 공사에 착수했다.
우선적으로 사유지의 경계를 알리는 울타리를 빙 둘러치고, 그 안쪽으로 흙과 모래를 사다 마구잡이로 쌓을 계획이었다.
“와, 지상인들은 무지막지하게 빠르네요.”
밤낮없이 계속되는 공사를 보며 도미니크가 감탄을 토해냈다.
지금은 해가 사라진 저녁, 그녀가 완벽한 인간의 외형으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이쪽 사람들이 지상인 중에서도 유달리 빠른 편이긴 하지.”
야간작업에 대한 추가 수당을 넉넉히 걸었더니, 지상에 익숙한 자신이 보기에도 공사의 진척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나가 일꾼들은 정말 상대가 안 되겠어요.”
그의 말에 도미니크가 다시 한 번 감탄을 표했다.
지저에서만 평생을 보내온 그녀의 눈에 지상은 놀라움 투성이었다.
굉음을 내는 커다란 괴수는 한 번 올 때마다 산더미처럼 많은 흙과 모래를 토해냈고, 우악스러운 팔을 가진 괴수는 그렇게 쌓인 흙더미를 순식간에 다져버렸다.
“이런 힘을 지저에서 쓸 수만 있다면, 모아이니 백작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텐데…….”
“기껏해야 흙을 쌓아 올리는 데나 유용한 힘들이야. 백작들의 진짜 저력은 이런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어.”
진짜 정예라 할 수 있는 이들을 제대로 본 적이 없음에도 11층 백작들의 힘은 9층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대한 것이다.
이런 중장비를 가져간다고 해서 그들과의 격차를 단번에 좁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도미니크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그녀는 그의 말에 대답도 없이 생각에 잠겨들었다. 그 표정이 하도 심각해 그는 더 말을 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음?”
그런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쁘게 돌아가던 공사 현장이 얼어붙어 있었다.
열심히 흙을 다지던 포크레인은 거대한 삽을 들어 올린 채 움직이지 않았고, 분주하게 흙을 실어 나르던 트럭 역시 현장의 한가운데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
“이런…….”
뭔가 문제라도 생긴 건가 싶어 상황을 살펴보던 김진우는 뒤늦게 그 이유를 알아차리고는 실소를 내뱉었다.
인부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도미니크를 향해 있었는데 그 표정이 가관도 아니었다. 입을 쩍 벌린 채 몽롱한 얼굴을 한 인부들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도미니크의 미모에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하기야 언더 엘프와 흡혈귀, 비인간적인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지저에서도 유달리 아름다운 도미니크다.
그런 그녀가 달빛 아래 우두커니 서서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은 차라리 비현실적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몽환적이었다.
실제로도 수많은 인부들의 표정이 마치 꿈속을 헤매듯 몽롱해 있었다.
“도미니크.”
“네?”
그의 말에 도미니크가 생각에서 깨어났다.
“방해할 생각은 아니지만, 그대로 두자니 공사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아, 제가 방해가 됐나요?”
순진한 얼굴로 눈을 깜박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공사장 여기저기서 ‘헉’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실제로 방해가 되고 있긴 하네.”
지저에서의 아름다움이란 그저 보기 좋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살아남는 게 미덕인 삭막한 세계, 그녀의 가는 팔과 허리는 오히려 순수하게 생존이란 측면에서 보면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그런 그녀이니만큼 인부들이 자신의 미모에 넋이 나간 상황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현명한 만큼 상황을 파악할 눈치 정도는 있었다.
“흥! 감히.”
그녀는 인부들의 시선에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였다. 방금 전까지의 순진무구한 눈빛의 처녀는 온데간데없고 순식간에 냉기가 풀풀 도는 얼굴이 드러났다.
아무래도 주인 외의 시선은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자, 자. 들어가.”
“알겠어요.”
차갑게 인부들을 노려보고 있던 도미니크가 그의 재촉에 금세 표정을 풀어보이고는 아쉬운 얼굴을 해보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는 곧 등을 떠밀려 집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바깥세상 구경에 잔뜩 들뜬 그녀를 다시 어두컴컴한 지저로 밀어 넣기는 미안했지만, 이래서야 정말로 밤이 새도록 인부들이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아, 왜 들어가기 싫다는 아가씨를 자꾸…….”
“제 놈이 혼자 보려는 모양이지. 에잉, 돈도 많은 놈이 여자까지 끼고 저러고 있으니, 일할 맛 안 나네.”
도미니크가 사라지자 멈춰 있던 공사장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한탄과 불평이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도미니크의 모습이 사라진 것이 퍽이나 아쉬웠던 모양이다.
“니미, 누군 쎄빠지게 삽질하고 앉았는데, 누구는 애미 애비 잘 만나서 여자 끼고 연애질이여.”
개중에는 되도 않을 추측으로 김진우를 험담하는 이들조차 있을 지경이었다.
“나라 꼴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새파란 새끼가 일할 생각은 안하고 벌써부터 계집질에 빠져가지고는.”
“배알이 꼴려서 원, 가뜩이나 세상 살기도 힘든데. 아오! 아오오오!”
“씨바, 우리가 살기 좋은 세상은 대체 언제 올런지.”
지저에서 흘러나온 크리쳐 따위로 나라 분위기가 영 좋지 못하다보니 경제도 침체되었다.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 세상 더욱 힘들어졌다고 이를 악물고 일하는데 눈앞에서 염장을 지르니 시기는 박탈감이 되었고 금세 세상에 대한 분노가 되었다.
“음.”
말 그대로 갈 곳 없는 분노, 근거 없는 증오가 고스란히 김진우를 향했다. 청각이 범인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한 그에게는 마치 코앞에서 지껄이는 것처럼 생생한 음성이었다.
하지만 그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감독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내를 바라보며 은근한 압박을 주었을 뿐이다.
“이새끼들이 아주 배가 불러가지고는, 요즘 같은 때 수당까지 다 챙겨주면서 일 시키는 곳이 어디 있다고 흰소리들이여!”
“돈 많은 놈이 돈 많이 주고 일 시키는 건 당연한 거 아뇨?”
“그 돈 니가 벌어줬냐? 개소리 말고 작업이나 해!”
감독관이 빽, 하고 고함을 치고는 김진우의 눈치를 살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여기 더 있어 봐야 좋은 꼴은 못 보겠다 싶어, 김진우가 가볍게 목례를 해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 일이 터졌다. 어딘지 모르게 엉성하게 움직이던 트럭 한 대가 자재 더미가 있는 쪽으로 향한 것이다.
“어? 어? 저거 왜 저래!”
인부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튀어 나갔다.
“야! 멈춰! 멈춰!”
정신 나간 것처럼 돌진하던 트럭이 자재 더미를 들이받았다. 그 바람에 하필 근처에 있던 인부 하나가 깔리고 말았다.
“아아악! 내 다리! 내 다리이이이!”
순식간에 끔찍한 비명 소리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야, 이 새끼야! 뒤로 빼! 빨리 빼라고!”
“뭘, 멍하니 보고들 있어! 차 빼고 이것부터 들어!”
인부들이 욕설을 지르며 소란을 떠는데 그 와중에도 자재에 깔린 인부의 비명은 계속되었다.
“아오! 이 새끼는 왜 이렇게 차를 안 빼!”
사고에 휘말린 인부는 죽겠다고 난린데, 당황한 트럭 운전사는 차를 뺄 생각을 안 한다. 당장에라도 2차 사고에 휘말릴 것 같은 위태로운 현장. 인부들은 더욱 아우성을 떨었다.
“야! 차 빠진다! 뒈지기 싫으면 물러나!”
뒤늦게 트럭이 차체를 움직이고 걸쳐 있던 자재들이 다시 한 번 무너질 것처럼 흔들려 댔다.
“물러나라고! 새끼들아!”
“김씨는 어쩌고!”
“차가 빠져야 김씨고 박씨고 꺼낼 거 아니야! 이 멍청한 새끼들아!”
인부 몇이 여전히 자제 더미에 들러붙어 몸을 빼낼 생각을 하지 않자, 내내 고함을 치던 감독관이 다시 한 번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놈들아! 몸뚱이 하나 빼면 있는 것도 없는 새끼들이, 지금 뭐하는 거야!”
“으아악! 나 좀 빼줘! 아파! 아프다고!”
사내의 고함 소리에 그제야 위태롭게 트럭의 상부에 걸친 자재 더미를 본 인부들이 뒤늦게 몸을 빼냈다. 깔린 인부는 더욱 죽겠다며 아우성이었다.
덜컹.
“저! 저!”
아무래도 오늘은 마가 끼어도 단단히 끼인 모양이다. 정신 사납게 앞뒤로 움직여대던 트럭이 빠져나가며 또 다시 자재 더미를 건드리고 말았다.
우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철재 기둥이며 뭐며 온갖 살벌한 것들이 무너져 내렸다.
“김씨!”
공사터에서 잔뼈가 굵은 기질 드센 사내들마저도 비명을 지를 정도로 아찔한 광경, 당장에라도 김씨라 불린 인부의 몸이 자재 더미에 깔려 그대로 뭉개질 판국이었다.
“으으…….”
김씨가 겁에 질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앓는 소리만 내뱉어댔다. 인부들은 곧 눈앞에서 벌어질 끔찍한 사고의 현장을 미리 떠올리고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턱.
그런데 뒤이어 들려온 소리가 무언가 이상했다. 단단한 철제 기둥에 사람이 깔렸으면 응당 꽥, 하는 비명과 함께 둔탁한 소리가 나야 했다.
그런데 막상 들려온 소리라는 게 맥이 빠질 정도로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이상함을 느낀 인부들이 실눈을 떴다.
“어?”
인부들의 눈에는 자재 더미에 깔려 끔찍하게 훼손된 동료의 사체가 아니라, 단단한 철제 기둥 더미를 양손으로 지탱하고 있는 사내, 의뢰주의 모습이 보였다.
“읍차.”
인부들이 그 놀라운 광경에 입을 쩍, 벌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사이, 의뢰주가 아무렇지도 않게 철제 기둥을 옆으로 밀어냈다.
쾅!
기둥들끼리 부딪치며 요란한 쇳소리를 내고, 아직 단단하게 다지지 못한 흙더미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119 불러주세요.”
그의 나직한 음성은 기이할 정도로 힘이 있었다. 당황해 갈팡질팡해대던 인부들마저도 그의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을 크게 떠보였다.
개중에 행동 빠른 몇몇이 휴대폰을 꺼내 구급차를 불렀고, 이번 사고의 원흉인 트럭 운전수를 끄집어냈다.
“뭐야! 박가 놈의 새끼! 술 처먹었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이런 개 같은 새끼!”
아무래도 트럭 운전사가 사고를 친 게 그저 단순 부주의 때문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구석에 잘 쌓아둔 자재 더미를 건드린 것이 이상하다 했더니 운전수의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사고 이후,정신없이 어설픈 대응도 음주, 그것도 단순 반주가 아닌 제대로 된 음주를 한 게 분명했다.
“이런 미친 새끼가, 누굴 죽이려고 현장에서 이리 술을 많이 처먹고 핸들을 잡아!”
“아니, 딱 한 잔! 딱 한 잔밖에 안 했어!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었다고!”
“이 새끼가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를 씨부리네. 미친놈아 멀쩡한 사람 하나 골로 보낼 뻔해놓고 뭘 잘했다고 그렇게 큰소리야!”
“그게 아니래도! 아오! 사람 말을 좀 들어봐! 내가 분명 술 먹은 건 사실인데, 이게 평소에도 마시는 만큼, 딱 그만큼 마셨다고!”
“작작 좀 해, 박씨. 이번엔 그냥 못 넘어가. 경찰 오고 있으니까, 알아서 해.”
“그게 아니라 분명 뭔가 있다니까?! 여기 이상하다고! 멀쩡히 잘 가던 차가 멋대로 돌아 버렸는데, 아오! 미치겠네, 정말.”
성난 인부들의 고함에 트럭 운전사가 억울한 얼굴로 계속해서 떠들어 댔다. 자꾸만 뭔가 이상한 것을 봤네, 차가 멋대로 움직였네, 떠들어 대는데 술 취한 운전수의 말을 다른 사람들이 귀 기울일 리가 없었다.
“아, 진짜! 니들도 그랬잖아! 여기 뭔가 터가 이상한 거 같다고!”
그렇게 트럭 운전사와 인부들이 실랑이하는 사이, 김진우는 자재에 깔린 인부를 구해냈다.
“지금 구해드릴 테니까 입 벌리지 마요. 잘 못하면 혀 잘려 나갑니다.”
김씨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엇, 하는 사이에 무겁디 무거운 철제 기둥이 내동댕이쳐졌다.
***
김씨라 불린 사내는 결국 구급차에 실려 갔다. 트럭을 몰았던 사내 역시 사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연행되어 갔고,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 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날 경찰 조사에 의하면 트럭 운전사의 음주 상태는 그리 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큰 사고를 낼 정도는 아니었다.
무언가 석연찮은 점이 있었지만, 김진우는 다시 그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흘러가는 상황이 그를 그렇게 두지 않았으니, 자꾸만 공사 현장에 사건 사고가 터지는 것이다.
멀쩡히 짐을 나르던 인부가 갑작스레 술 취한 것처럼 픽, 쓰러지고 아무런 이상이 없던 중장비가 오작동을 거듭했다. 작업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질 수밖에 없었고, 당연하게도 김진우는 감독관을 불러다 몇 번이나 당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는 이어졌고, 나중에 가서는 터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심심찮게 들릴 지경이 되었다.
상황이 그쯤 되니 김진우도 눈치채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꾸만 헛것을 보았노라 떠들어대는 인부들과 거듭되는 사고는 정상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무언가가 저들에게 정말로 영향을 끼친 것이라면, 그것의 정체는 빤하기만 했다.
미궁. 지저의 미궁이 지금 이곳에는 두 개나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