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66)
던전 견문록-166화(166/319)
# 166
던전 견문록
제 167 화
-한국 탐색자 협회
설마설마했다. 알맹이가 쏙 빠진 다운 잼이 버젓이 협회의 이름을 걸고 일반인에게 유통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김진우는 안젤라가 추적한 다운 잼의 행방과 협회를 연관지어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생각하는 탐색자와 탐색자 협회는 다운 잼을 공급하는 쪽이지, 공급받는 쪽이 아니라 생각했던 탓이다.
그런데 막상 안젤라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건물의 간판에 떡, 하니 쓰여 있는 ‘탐색자 협회’라는 멋들어진 글자를 보고 나니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고 말았다.
“이런 망할 새끼들…….”
당당하게 내걸린 간판이 그렇게 가증스러울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더 파헤쳐 봐야 알겠지만, 일반인을 상대로까지 사기 치는 걸 보면 결코 떳떳한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니리라.
잠시 간판을 노려보던 김진우가 차가운 얼굴을 해보였다. 빌딩의 안팎에서 감시자의 기척이 느껴졌던 탓이었다.
“이 이상 접근하면 감시자의 눈에 발각되고 말 거예요.”
아무래도 은신한 감시자의 능력이 제법이었는지 안젤라가 제법 멀찌감치 떨어져 걸음을 멈추며 낮게 속삭였다.
안젤라보다 다소 앞서 있기는 했지만 김진우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억지로 뚫고 들어가고자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굳이 그럴 이유는 없었다.
“주인님?”
갑작스레 은신을 풀고 모습을 드러낸 김진우를 보며 안젤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먼저 돌아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짤막한 한마디를 남긴 그가 탐색자 협회 사무실을 향했다. 그렇게 그림자 밖을 향해 나아간 그의 기세가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강해지더니, 가로등 아래로 나갔을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
탐색자 협회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탐색자, 이철호는 갑작스레 나타난 사내를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오늘 뭐, 손님 온다고 연락받은 거 있어?”
“시간이 몇 신데 새끼야, 있어도 이 시간에 오겠냐?”
“그럼 저 사람은 누구야.”
“낸들 아냐. 그걸 물어보는 게 네 일이지.”
낮은 목소리로 곁에 선 동료에게 사내의 정체를 물었더니, 괜스레 타박만 받고 말았다.
그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사내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니, 가로막으려 했다.
그러나 달빛 아래 말갛게 빛나는 사내의 검은 눈동자를 본 순간, 그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겉보기에 사내는 남다를 것이 없었다.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 아마도 이곳을 찾아온 것을 보니 일반인은 아니고 탐색자일 게 분명했지만 딱히 특색이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철호는 사내를 본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포식자 앞에 선 사냥감처럼 온몸이 굳어 입을 놀리기는커녕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던 탓이다.
저벅, 저벅.
사내가 그런 그를 무심히 바라보며 조금씩 다가왔다.
“야, 야.”
“아!”
만약 등가를 툭, 쳐오는 동료의 손길이 아니었다면 그는 제 임무도 잊고 멍하니 바라만 보고 말았을 것이다.
“누, 누구십니까?”
잠깐 사이에 꽤나 잠겨버린 음성으로 간신히 용건을 물은 이철호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송종철을 찾아왔다.”
사내의 용건을 들은 순간 그는 긴장이 탁, 하고 풀리는 것을 느끼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사내가 온전히 자신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는 것이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내가 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 것일지도 모르리라.
“혹시 약속이 되어 있으십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굳이 약속이 없다 해서 못 만날 사이도 아니지.”
아무래도 상대는 드러난 기세만큼이나 거물인 모양이다.
한때 세가 꺾이긴 했지만, 근래들어 다시 한 번 예전의 위세를 되찾은 협회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는 것을 보니 새삼 예의를 차린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성함을 말씀해 주시면, 바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정도로 거물의 분위기를 풍기는 이라면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거란 얄팍한 계산이 들어간 말이었다.
“김진우.”
잠시 사내의 무심한 눈길이 닿았을 때는 내심 움찔하고 만 그였지만, 이내 그 사실도 잊고 놀란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 놓고 말았다.
“혹시 12층에서 올라온…….”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정도 긍정도 않는 그 당당한 태도에서 이철호는 상대가 대한민국에 유일한 12레벨의 던전 베이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허둥지둥 사내, 김진우에게 기다려달라 말한 그가 몇 발자국 물러서서 안쪽으로 통신을 넣었다.
“우리나라 최고 레벨이라고 하더니, 막상 보니까 별 거 없네.”
김진우의 방문을 알리고 다시 통신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곁에 있던 동료가 입방정을 떨어댔다. 그 말에 이철호는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난 또, 우리보다 레벨이 5씩이나 높으면 뭔가 특별한 게 있나 했지.”
비정상적인 던전 베이비들의 청력을 감안해 잔뜩 낮춰 웅얼거리는 음성이었지만, 이철호는 통신도 잊고 동료에게 면박을 주었다.
“미친, 넌 지금 저 사람이 보통 사람으로 보이냐?”
“보통 사람 아니면, 안 보통 사람으로 보이겠냐?”
되도 않을 말장난에 기겁한 그가 동료의 표정을 살펴보았지만, 동료는 자신이 느낀 김진우의 기세를 10분지 1도 채 제대로 느끼지 못한 듯했다.
“너 이 새끼, 6층에서 올라왔다는 거 사기지?”
“미친놈. 올라올 때 같이 올라와놓고 뭔 개소리래.”
하도 어이가 없어 그렇게 면박을 주니, 동료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철호가 슬며시 김진우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라도 들리지는 않았는지, 기분이 상할 만한 건수가 있는 건 아닌지 눈을 굴려댔다.
정작 자신들의 대화는 안중에도 없는 그의 모습에 이철호는 순간적으로 굳어 버렸다.
어라, 내가 왜 이렇게 이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있지?
갑작스러운 의문, 미처 답을 내리기도 전에 통신기가 울어댔다.
「야! 정찬식이 내려갔다! 그 새끼 허튼 수작 못 하게 말려!」
“뭐?”
「정찬식이 갔다고! 근데 그 자식 지금 무기 들고 내려갔어!」
정찬식이라면 1년 전쯤인가, 반년 전쯤인가 협회에 합류한 던전 베이비였다.
협회에 반하는 소규모 탐색 팀 중 하나를 이끌다가 별안간 협회에 가입한 사내였는데, 그간 이렇다 할 특이점이 없어서 그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그 친구가 갑자기 왜? 알아듣게 설…….”
말을 채 끝마치지도 못했다. 뒤편의 문이 열린다 싶더니, 갑작스레 누군가가 튀어나와 김진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몰라, 뭔가 김진우하고 원한이라도 있는지 갑자기 흥분해 가지고…….」
“너 이 자식!”
뒤늦게 통신기 너머에서 허둥지둥대는 음성이 들려왔고, 이철호는 사무실의 문을 열고 뛰쳐나온 그림자, 아마도 정찬식일 게 분명한 사내가 김진우를 향해 사납게 소리치며 주먹을 휘두르는 것을 보았다.
“그런 건 빨리!”
갑작스러운 상황에 욕설을 내뱉은 이철호,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정찬식의 주먹이 김진우에게 닿았고,
“설명을!”
거의 그와 동시에 김진우의 한 손이 움직였다.
“컥!”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갑작스러운 기습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찬식이 김진우의 손에 목이 잡힌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해줘야지…….”
「일단 일 못 치게 해! 종철이 형님, 아니 협회장님도 내려간다니까!」
한발 늦은 당부가 통신기에서 들려왔지만, 이철호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정찬식의 목을 움켜쥐고 들어 올린 김진우의 무심한 눈길을 보고는 그대로 굳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은 눈동자를 보는 순간, 그는 깨달았다.
왜 자신이 그토록이나 김진우란 사내의 눈치를 살폈는지.
그의 눈빛은 한때 자신이 그토록이나 두려워하던 존재, 미궁의 주인을 무섭도록 닮아 있었다.
“정찬식!”
그때 건물의 입구를 열고 사내 여럿이 뛰쳐나왔다. 기세 좋게 뛰쳐나왔던 그들은 이내 눈앞의 광경에 황당한 얼굴을 해보였다.
“반가움의 인사라고 하기에는 꽤나 과격하군.”
그런 주변의 반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김진우의 한마디, 그 한마디에 담긴 서늘함에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고 말았다.
***
앞에서 수군대는 감시자들의 대화를 한 귀로 흘리던 김진우는 갑작스레 나타나 자신에게 달려든 정찬식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대로 있다가는 되도 않을 주먹질에 맞고 말 판이라 그는 왼손을 내밀어 정찬식의 주먹을 막아내고 반대편 손으로 그 목을 움켜쥐었다.
“이게 무슨 뜻이지?”
“큭.”
어쩐지 잔뜩 흥분한 얼굴을 보니, 뭔가 사정이 있는 듯했지만 김진우는 손을 풀지 않았다. 뒤늦게 건물을 뛰쳐나온 이들 중에 하나가 슬쩍 끼어들며 그에게 알은척했다.
“워, 워. 이거 일단 놓고 말하지. 아무래도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야.”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지껄여대며 김진우의 손을 슬며시 누르는 사내는 송종철이었다.
“오해? 이 친구하고 나 사이에 오해는 없을 텐데.”
이준영을 다운 잼에 중독시킨 장본인이 정찬식이다. 그런 그에게서 이준영을 뺏어 오다시피 한 것이 자신이었고. 오해가 생길래야 생길 수가 없는 사이였다.
“일단 알았으니까, 그 손부터 놓고 얘기해. 같은 식구끼리 뭘 그리 죽자고 서로 싸워. 여기서 그 친구 장례 치러줄 거 아니면 이제 그만 놓자고.”
송종철의 말에 김진우가 슬며시 손아귀의 힘을 풀어냈다.
“컥!”
바닥에 주저앉아 마른기침을 토해내는 정찬식을 싸늘한 눈초리로 바라본 김진우가 송종철에게 물었다.
“오해라. 무슨 오해가 있다는 거지?”
당사자가 이야기할 생각도, 또 여력도 없어 보여 송종철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 하자고. 거, 애들 앞에서 쪽팔리게. 그래도 나름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친구들이 말이야.”
그렇게 말한 송종철이 주변을 정리했다.
“구경났어? 다들 올라가 새끼들아!”
분분히 흩어져 제자리를 찾아 사라지는 사내들을 바라보던 김진우가 다시 한 번 정찬식을 바라보았다.
-분노. 좌절. 질투.
정찬식의 머리 위로 떠오른 진실의 눈 특유의 상태창. 그는 도무지 그 감정의 연유를 알 수가 없었다.
***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거 인사가 엉망이 됐구만.”
거의 1년 만에 만난 송종철은 여전했다. 능글능글 살가운 얼굴로 친한 척하는 모습이 전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인사보다 저 친구가 왜 그렇게 난리를 피웠는지, 그 이유부터 먼저 듣도록 하지.”
웃음기 가득한 송종철의 목소리와는 다른,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드는 듯한 음성이었다.
아직까지도 목을 부여잡고 씩씩거리고 있던 정찬식이 굳어 버릴 정도로 차가운 음성에 송종철이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게 진짜 아무 것도 아닌 건데 말이야. 말하기도 민망한데.”
“말해. 진짜 민망한 일은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은근한 압박, 불과 1년 사이에 변해버린 김진우의 분위기에 송종철도 더는 말을 돌리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내가 말실수를 좀 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