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69)
던전 견문록-169화(169/319)
# 169
던전 견문록
제 170 화
결국 김진우는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조잘조잘 떠들어대던 현지는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고부터 그 전의 활기찬 모습은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눈물만 흘려댔다.
어머니는 그런 현지를 방으로 들여보내고, 그에게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했다.
“혹시 아버지께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닙니까?”
“그런 걱정일랑 말아라. 네 아빠 잘 있고, 일이 많아서 며칠 못 들어오고 있으니. 현지가 오랜만에 지 오라비를 보고 나니까 괜히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크게 신경 쓰지 말아라.”
되도 않을 말이었다. 당장 본인의 얼굴부터가 근심 걱정이 가득한 데다, 진실의 눈 역시 두 모녀의 심리 상태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정작 어머니 스스로도 거짓말이 익숙하지 않아 당혹스러워 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그렇지만 그는 다시 물을 수 없었다. 어머니가 바라지 않았던 탓이다.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이나 속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부수지 못할 금강석을 품은 어머니다.
1년 만에 갑자기 돌아온 자식, 그간의 이야기를 단 한마디도 묻지 않은 어머니, 그녀라고 왜 갑자기 사라진 자식의 사정이 궁금하지 않을까. 하지만 묻지 않았다. 그래서 그 역시 묻지 못했다.
현지를 채근하여 사정을 들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조용히 어머니의 뜻을 따라 물러났다.
“내일 또 올게요.”
작별 인사를 한 그는 문이 닫히고 나서도 한참이나 조용한 집안의 동정을 살피다 물러났다.
그렇게 선선히 어머니의 뜻을 따라 물러난 김진우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안가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안젤라를 불렀다.
“나에게 가족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한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
가족이란 말에 잠시 놀란 얼굴을 해보인 안젤라였지만, 제 주인의 얼굴에 서린 싸늘함을 읽었는지 빠르게 표정을 정리했다.
“제가 뭘 하면 되죠?”
“그들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봐. 그리고 만약 그들에게 해코지하려는 자가 있다면…….”
끝맺지 않고 흐려버린 뒷말이었지만 단호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안젤라는 그의 말을 이해한 모양이다. 새빨간 입술을 핥으며 포악한 미소를 지어보인 그녀가 물었다.
“언제부터 하면 되죠?”
김진우가 휴대폰 하나를 툭, 하고 던져줬다.
“사용법은…….”
“이미 알고 있어요.”
지상에 올라와 있는 동안 그저 빈둥댄 것만은 아니라는 듯 그녀의 얼굴에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좋아, 위치는 알려줄 테니까. 당분간은 그쪽에서 지내도록 해.”
재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떨어져 지내야 한다니, 그녀가 볼멘 얼굴로 투정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그녀의 투정을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감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가족들이 무언가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린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아버지의 처지가…….
“음.”
생각을 이어가던 그가 고개를 힘껏 휘젓는 것으로 잡념을 털어냈다. 쓸데없는 망상이 혹시라도 현실에 개입할까 걱정된 탓이다.
하지만 하이로드에 오른 그의 감각은 절대로 무시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만약 그들과 접촉하는 무리가 있다면, 반드시 그 행방을 찾아내 나에게 알려라.”
안젤라는 주인이 그들을 어찌할 것인지 묻지 않았다.
새파란 광망이 번뜩이는 김진우의 얼굴만 보아도 그들이 결코 좋지 못한 꼴을 당하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혹시 존재할지 모르는 불순한 무리의 불운을 동정하는 대신, 제 주인이 이번에는 어디까지 갈 것인지 몹시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지저에서 폭군처럼 군림하는 그가 이제껏 보여주었던 지상에서의 모습은 소극적이기 그지없는 것, 어쩌면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이미 죽어버린 심장이 벌컥대며 뛰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그녀의 기대를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김진우의 눈빛이 섬뜩한 광망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
집에 내려앉은 어둠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안젤라의 감시는 은밀하지만 대담했고, 바로 코앞에서 그들을 지켜볼 정도로 대단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그들을 곁에서 지켜본 안젤라는 고작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사건의 전모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변고가 생겼다. 그리고 그 변고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최악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안젤라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쪽 분들은 주인님이 얼마나 대단한 존잰지 잘 모르나 봐요.」
당연했다. 비록 대한민국 최고 레벨이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늘 지저의 악령에게 쫓기는 도망자였으며 약자였다.
악몽과 가위 눌림에 몇 년이나 시달리는 그를 곁에서 지켜봐 온 가족이 보기에 그는 사냥감이었고, 지저는 포악한 사냥꾼이었다.
「실종된 주인님을 찾아 뭔가 의뢰한 모양인데 그게 성에 차지 않으셨는지 주인님의 아버지 되는 분께서 직접 그들을 따라나섰답니다.」
최악이었다, 그가 생각한 것 보다 더욱 더.
1년이나 연락을 하지 않은 자식, 그리고 그 자식이 동생의 예단비를 마련한답시고 위험천만한 지저에 뛰어들었던 전적이 있으니,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다.
그런데 그 오해를 풀기 위해 취한 조치라는 것이 김진우가 보기에는 정말로 멍청한 짓이었다.
사라진 탐색자 하나를 구하기 위해 다른 탐색자를 고용해 지저로 향하다니, 그것도 난리통이 되어버린 지저로.
정상적인 탐색자라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의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의뢰는 성사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단 한가지였다.
사기. 그것도 한 가정의 생명을 담보로 한 악질적인 사기였다.
그리고 그는 이 질 나쁜 사기 행위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저와의 전쟁이 끝나고 몇 년 동안 이런 사기가 극심하게 유행했었으니까.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종전 직후, 사기꾼들은 지저에서 실종된 남자들의 행방을 찾아준다며 가족들에게 접근했고, 정부가 손을 놓아버린 상황에서 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들에게 의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당연하게도 돈과 함께 잠적해버렸다.
「일이 벌어진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어요. 한 달 정도 됐으려나?」
안젤라는 착실하게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보고했다.
“음…….”
그저 돈만을 원한 것이라면 의뢰비를 받고 잠적하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사기꾼들은 아버지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을 빌미로 계속해서 돈을 요구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조금 더 기다려볼까요?」
안젤라가 이후의 계획을 물었다.
“휴대폰에 찍힌 번호를 알아와. 그걸 보면 답이 나오겠지.”
그렇게 명령한 그가 전화를 끊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늘 말이 없던 아버지.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이기에 이런 되도 않을 짓을 벌였을 것이다.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은 무심한 자신의 성격 탓이었으니 만약 아버지의 안위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평생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에 대한 분노로 이성을 잃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 가족을 상대로 사기 친 사기꾼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여기 있어요.”
안젤라는 아직 휴대폰의 통화 목록을 일일이 확인하여 옮겨올 정도로 기계에 적응한 것은 아니라며, 아예 어머니의 휴대폰을 훔쳐왔다.
“최악의 상황도 생각하셔야 할 거 같아요.”
휴대폰의 통화 목록과 문자를 확인하는 그를 보며, 안젤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쩌면 주인님의 아버지는…….”
“그만.”
가만히 액정을 들여다보고 있던 김진우가 소름끼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파악한 안젤라가 금세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돌아가, 어머니가 휴대폰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돌려보내려 했지만, 그녀는 어쩐 일인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눈빛으로 남은 용건이 있는지 물으니 그녀가 망설이다 말했다.
“주인님의 동생 되시는 분, 현지님이라고 했지요? 그분과 이야기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분이라면 모든 사정을 이야기해 줄 법도 한데.”
아마 현지라면 어머니 모르게 그간의 일을 숨김없이 털어놓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진우는 안젤라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현지나 어머니 모르게 일을 처리할 생각이다.”
“어째서…….”
안젤라는 그 무엇보다 효율성을 중시하던 그가 이렇게 일을 어렵게 처리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지 자꾸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그녀를 보며 그는 지독하게 차가운 음성으로 대꾸했다.
“그들이 내 어두운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하니까.”
***
안젤라를 돌려보낸 김진우는 조용히 백 선생의 감정소를 찾았다.
“자네가 이 시간엔 웬일인가. 이제 막 닫으려던 참인데.”
늦은 시각 갑작스레 찾아온 그를 본 백 선생은 마침 할 말이 있었다며 반색했다. 하지만 김진우는 그보다 먼저 자신의 용건을 꺼냈다.
“저를 좀 도와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어쩐지 심상치 않은 음색에 덩달아 얼굴을 굳힌 백 선생은 자초지종을 듣고는 황당하다는 얼굴을 해보였다.
“어찌 그런 일이.”
한때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빈번했던 사기 수법이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속지 않는 낡아빠진 방식이기도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의 가족이 그런 일에 휘말렸다니, 백 선생은 안타까운 얼굴로 혀만 찼다.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의 질문에 백 선생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보자 마음먹으면 못 할 것은 없네만.”
교묘하게 말끝을 흐리는 백 선생을 보며 김진우가 품에서 다운 잼 몇 개를 꺼내 들었다.
지상의 미궁을 성장시키는 데 쓰일 소중한 다운 잼이었지만 그는 값을 치르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아니, 내가 아무리 장사꾼이라지만 우리가 하루 이틀 거래한 것도 아니고. 이런 일까지 정보료를 챙기고 싶지는 않네.”
“이건 선금입니다. 일이 끝나면 값은 제대로 치르겠습니다.”
백 선생이 답지 않게 친한 척했지만, 그는 못 들은 척 다운 잼을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뱉은 백 선생이 못 이기는 척, 테이블에 올려진 다운 잼을 챙겨 들었다.
그 모습을 본 김진우가 비로소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조금이나마 폈다.
적당한 값을 치르고 정보를 산다. 백 선생과의 관계는 이 정도가 딱 좋았다.
괜히 신세 지고 발목을 붙잡힐 필요는 없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
그렇게 말한 백 선생이 낡은 폴더 폰을 꺼내 몇 군데 전화를 넣었다.
“잠깐 나랑 차나 한잔하고 있지. 곧 연락이 올 테니까.”
그렇게 말한 백 선생이 싸구려 녹차 티백을 풀어 차를 내오더니 사기꾼들의 험담을 해댔다.
한때는 가족을 인질 삼아 다운 잼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던 백 선생이 그리 떠들어대는 모습은 가관이었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근데 그놈들 찾으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한참 떠들어대던 백 선생이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백 선생은 더 묻지 않았다.
덤덤한 체하고 있지만 노랗게 번들거리는 눈동자에 담긴 살기가 너무나도 노골적이었던 탓이다.
“어떤 놈들인지 재수 더럽게 없군. 자네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았으면 이런 짓은 하지 않았을 텐데. 아니지, 어쩌면 자네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랬을 수도 있겠구만.”
지난 1년간의 난리 통속에서 목숨을 잃은 탐색자는 부지기수였다. 그중에는 제법 레벨이 높다고 알려진 던전 베이비들 또한 있었으니, 사기꾼들은 김진우 역시 같은 신세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오, 벌써 연락이 왔구만. 잠깐만 기다리게.”
잠깐 차 한잔하는 사이에 벌써 일이 끝난 것인지, 백 선생이 전화를 받아들었다.
“그래, 알아봤나? 장사 하루 이틀하나. 어차피 이 바닥에 개인 정보가 어딨어. 걱정 말고 그냥 말하시게.”
인사 대신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던 백 선생이 한참 떠들어대다 갑작스레 입을 다물고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백 선생은 그의 말을 짐짓 못 들은 척하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그렇게 휴대폰을 내려놓는 백 선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까 내가 그놈들 찾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던 거 기억나나.”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자네, 아직도 생각 변하지 않았나?”
아무래도 사기꾼들의 정체가 생각보다 대단했던 모양이다. 백 선생의 얼굴에 노골적인 우려가 떠올라 있었다.
“누굽니까.”
그는 대답 대신 한결같은 얼굴로 다시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