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71)
던전 견문록-171화(171/319)
# 171
던전 견문록
제 172 화
감시자는 처음 습격자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까지만 해도 금방 처리될 거라고 믿었다. 비록 동료 하나가 당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방심해서였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믿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크악!”
첫 비명은 사내의 배후로 접근했던 동료의 것이었다. 분명 자신의 은신이 완벽했다고 믿었을 그 가련한 동료는 지금 양발을 걷어차여 무릎이 박살 난 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 뒤에 이어진 동료들 역시 곧 같은 꼴을 당하고 말았다.
사지 중 최소 두 군데씩은 부러진 채 바닥을 기는 동료들의 모습에 감시자는 기가 눌리고 말았다.
“지켜보고만 있을 생각인가?”
협회에서 고르고 골라 뽑은 열 명의 던전 베이비를 어린아이 손 비틀 듯 무력화시킨 사내는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음성으로 지껄여댔다.
그 지독스러울 정도로 오만한 음성에 감시자는 반발하는 대신 고개를 숙여 눈을 피하고 말았다.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지.”
상대의 말이 끝나는 순간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레 겁을 먹은 감시자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악!”
“막아!”
하지만 예상했던 고통은 찾아오지 않고, 대신 귀가 괴로울 정도로 시끄러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슬며시 눈을 뜬 감시자는 사내의 공격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걸 어떻게 막아!”
언제 온 것인지, 소란을 눈치채고 달려 나온 건물 안의 동료들이 사내에게 무차별적으로 두들겨 맞고 있었다. 한 번 손이 스치면 살점이 뜯겨져 나가고, 발이 나오면 여지없이 사지 중 하나가 부러졌다.
역시나 동료들은 사내를 감당하지 못했다. 불과 1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모든 이들이 쓰러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제길… 간부들만 있었어도.”
누군가의 한탄, 하지만 감시자는 알고 있었다. 눈앞의 사내는 협회의 간부들이 전부 한 자리에 모여 있다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존재였다.
“뭐해! 저 새끼 막아!”
악에 받힌 동료들이 소리를 쳤다. 감시자는 그제서야 뒤늦게 멀쩡하게 서 있는 이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익…….”
동료들의 질타에 등 떠밀리듯 감시자는 비척거리며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그거 뽑으면 죽는다.”
사내의 말을 듣고 나서야 감시자는 자신이 3단봉 대신, 날붙이에 손을 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그는 화들짝 놀라 칼자루에서 손을 떼어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사내의 시선이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죽일 것 같았던 탓이다.
“좋은 선택이야.”
사내의 무심한 시선이 스쳐갔다.
“으으…….”
억눌린 신음을 내뱉으며 감시자는 사내가 보내오는 말간 시선을 피했다.
저벅, 저벅.
사내가 멀어져 간다. 그리고 이윽고 보이지 않게 되었다. 뒤늦게 다리에 힘이 풀린 감시자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사내의 시선이 아직도 생생하게 눈앞에 아른거렸다. 단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떨려왔다.
지저에서 도망쳐 나온 이후로 이렇게까지 스스로가 무력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지금의 자신은 과거의 토굴꾼 시절처럼 나약하고 무력했다. 그리고 사내는 그런 자신을 한없이 깔아보던 절대자들 중 하나처럼 보였다.
“괴물…….”
잇새를 비집고 흘러나온 음성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
협회의 감시자들을 전부 처리한 사내, 김진우는 스스로의 힘에 제법 놀라고 말았다. 스스로의 힘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다수의 던전 베이비들을 상대해보니 힘의 성장이 예상치를 한참은 넘어섰다.
각종 증폭 효과가 활성화되지도 않은 상태였음에도 본신의 능력만으로 수십의 던전 베이비들을, 그것도 협회에서 나름 신경 써서 배치했을 이들을 압도할 정도였다.
“후우.”
이래서야 차라리 맥이 빠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는 기생수의 탐지 능력에 걸려든 감시자의 존재를 눈치채고 씨익 웃어보였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김진우의 눈이 다시 은은하게 푸른 광망을 흘리기 시작했다.
***
건물 내부의 감시자들은 건물 밖보다 몇 배는 은밀하고 영리했다. 그들은 바깥의 상황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 기회를 살피기만 할 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생수의 탐지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오고 가며 그의 신경을 건드려댔다.
“귀엽게 노는군.”
기생수의 능력으로 대략적인 위치 정도야 파악하고 있었지만,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적들을 단번에 처리하는 것은 성가신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예 감시자들을 무시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시 하나의 기척이 멀어져가는 것을 느낀 김진우는 몸을 낮추고 천장을 이리저리 바라보다 그대로 펄쩍 뛰어올랐다.
쾅!
굉음과 함께 천장이 무너지고 김진우의 몸이 한 층을 뛰어 넘었다.
“저런 미친놈!”
멀리서 들려오는 욕설을 무시하고 그는 다시 한 번 뛰어올랐다.
“막아!”
그가 두 층을 더 오르고 나서야 감시자들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어지간히 급했던 것인지 그 자랑스럽던 은신 능력조차 비활성화 시킨 채 헐레벌떡 달려와 앞을 막아섰다.
“무식한 새끼.”
감시자의 말에 김진우는 피식 웃어보였다.
아마도 이들은 좁은 통로를 이점으로 삼아 사각에서 자신을 습격하려 했을 것이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만약 상대가 김진우만 아니었다면 이들의 암습은 충분한 효과를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번 상대는 적어도 그들보다 이런 전투에 있어서는 한 수 위였다. 강적을 상대로 좁은 통로를 방패삼아 싸우는 것은 그와 나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전법이었으니까.
당연하게도 그는 이런 방식의 허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지 않으면 된다. 그 단순한 행동만으로도 적들의 계획은 무용지물이 된다. 만약 이곳이 층간 경계가 두텁고, 외길뿐인 지저였다면 알면서도 소모적인 전투를 해야 했겠지만, 이곳은 지저가 아닌 지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고민할 것도 없이 그들을 상대하는 대신 천장을 부수고 상층으로 오르는 방법을 택했다.
계획은 성공했고, 감시자들은 자신들이 파두었던 함정 속에서 뛰쳐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입장이 바뀌었다.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던 감시자들은 이제 자신이 언제 또 뛰어오를지 불안해 선제공격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고, 적들이 누리던 지리적 이점은 이제 그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그가 뛰어오를 듯 무릎을 살짝 굽히는 것만으로 적들은 기겁했다.
“쳐!”
발작적인 누군가의 고함 소리와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
“커억!”
가장 먼저 달려들었던 감시자가 턱주가리를 얻어맞았다. 완전히 박살 난 턱이 흐물흐물 흘러내리는 것과 동시에 감시자의 몸이 무너지듯 넘어갔다.
그렇게 쓰러진 감시자의 뒤편에서 또 다른 감시자가 튀어나왔다.
“이 새끼!”
방금 전, 동료가 처참하게 당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일까. 작정하고 이를 악문 감시자의 공격이 제법 위맹했다.
비록 손에 들린 것은 날 없는 3단봉이었을지언정 그 공격의 날카로움만큼은 진짜였다.
하지만 김진우는 그 회심의 공격을 대수롭지 않게 잡아채 우악스럽게 관절을 꺾어버렸다. 다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적 하나가 무력화되었다.
“한꺼번에 치라고! 이 병신들아!”
조금은 늦은 명령, 이미 두 명의 동료를 잃고 나서야 적들은 제대로 된 포위망을 갖추고 달려들었다.
좁은 통로 앞뒤로 온갖 살벌한 공격이 날아들었다.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드는 공격 중 급소를 향하지 않는 공격이 없었다.
아마 저 중에 하나만 스쳐 맞아도 팔 하나 부러지는 것은 일도 아니리라.
그렇지만 그것도 공격이 적중했을 때의 일이었다.
쾅!
굉음과 함께 바닥이 꺼지며 김진우의 몸이 사라져 버렸다. 충격파에 휩쓸린 감시자들 중 몇이 균형을 잃고 아래층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떨어진 감시자들은 기다리고 있던 김진우의 발길질에 채여 볼썽사납게 바닥에 처박혔다.
“이익!”
바닥에 생긴 구멍을 통해 그 광경을 똑똑히 지켜본 감시자들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섣불리 뛰어내릴 생각은 못하고 호시탐탐 기회만 노렸다.
그런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김진우가 아니었다. 그는 위층과 아래층을 잇는 구멍이 미치지 않는 사각으로 사라졌다.
그리고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감시자들이 딛고 있던 바닥이 다시 한 번 무너져 내렸다.
“흩어져!”
같은 수에 두 번이나 당할 정도로 그들은 멍청하지 않았다. 흡사 날랜 메뚜기 떼처럼 이리저리 튀어 올라 붕괴에 휩쓸리는 것을 피해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김진우가 바라마지 않던 일이었다.
“흡!”
숨을 짧게 들이마신 김진우가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라 흩어진 감시자들을 하나하나 거꾸러트렸다.
“이런 망할 새끼를 봤나!”
뒤늦게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감시자들이 다시 한데 뭉쳐 3단봉을 내질렀다.
퍽, 퍽!
“어?”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손끝에 전해져 오는 묵직한 감촉, 감시자들은 이렇게 쉽게 맞을 줄은 몰랐다는 듯한 얼굴로 봉 끝을 바라보다 눈을 부릅떴다.
“켁.”
호되게 얻어맞은 건 김진우가 아니라 자신들의 동료였다. 작정하고 내지른 공격에 이곳저곳을 격타당한 동료는 눈이 하얗게 돌아가 축, 늘어졌다.
“이런 악랄한 새끼!”
뜻하지 않게 아군을 공격한 감시자들은 움츠러드는 대신 이를 갈아붙이며 다시 김진우에게 달려들었다.
“쥐새끼 같은 놈!”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동료들을 하나씩 쓰러트리는 상대가 얄미워 감시자가 욕설을 내뱉으며 3단봉을 내리찍었다.
그런데 당연히 피할 거라 생각했던 상대가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우두커니 서서 매서운 봉질을 그대로 얻어맞았다.
“어라?”
감시자는 꽤나 놀란 것인지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그런 감시자를 향해 김진우가 돌아섰다.
어지간한 강골도 단 번에 부숴버릴 듯한 공격에 당했음에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인상을 찌푸리고는 있었지만 고통을 참느라 인상을 찌푸린 게 아니라는 사실은 명확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까만 눈동자에 저리 짜증이 가득할 리가 없었다.
“입이 방정이군.”
“켁!”
욕설을 내뱉었던 감시자가 턱을 얻어맞고는 부러지고 깨어진 하얀 이를 내뱉으며 그대로 나자빠졌다.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이 부스러기들을 보니 아마도 평생 단단한 것을 먹기는 그른 듯 보였다.
“끄어어어.”
침을 질질 흘려대며 턱을 붙잡고 신음을 흘리는 동료의 모습을 확인한 감시자들이 질린 얼굴을 해보였다. 그러고 보니 욕설을 내뱉은 동료들이 하나같이 턱을 얻어맞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탓인지 감시자들은 욕설 대신 입을 꾹 다물고 서로 눈짓을 주고받다가 3단봉을 내던졌다.
“포기한 건가?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끝이 둥글둥글한 봉을 내던진 대신 각기 허리춤에서 단도 따위를 꺼내드는 감시자들의 모습을 본 김진우. 후드 아래로 드러난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어쩐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 보였다.
***
기세 좋게 날붙이를 꺼내 들었던 감시자들은 어느새 차가운 바닥에 몸을 뉘이고 말았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께를 보아하니 죽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당장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들이었다.
“시시하군.”
김진우는 무심하게 그들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돌아섰다. 전투 특유의 고양감이 온몸을 들뜨게 만들었지만, 그 투쟁심을 채우기에는 협회의 감시자들이 너무도 약했다.
그래서 그는 잔뜩 들떴던 기분이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뒤늦게 생각보다 시간을 지체했다는 것을 떠올린 그가 곧장 협회의 최상층, 송종철의 사무실로 향했다.
어쩐지 이 소란 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싶었더니, 송종철은 부재중이었다. 아마도 지금쯤 소식을 듣고 달려오고 있겠지만.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잠긴 문을 우악스럽게 뜯어내고 들어선 김진우는 곧장 금고가 숨겨진 벽으로 향했다.
교묘하게 숨겨진 합판을 뜯어내고 나니 두터운 철제 금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주먹을 내질렀다. 단단한 철제 금고가 그 한 번의 주먹질에 움푹 찌그러져 너덜너덜하게 변해버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주먹질이 가해졌고 그렇게 몇 번인가 금고를 두들기자 단단한 철제 문짝이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열린 문 너머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