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72)
던전 견문록-172화(172/319)
# 172
던전 견문록
제 173 화
김진우는 이미 기생수의 탐지 능력을 통해 다운 잼 무더기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고 속에서 쏟아져 나온 것을 본 그는 놀라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금고 속의 다운 잼은 전부 상급 이상, 하다못해 중급 다운 잼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는 잠시 멍하니 다운 잼 무더기를 바라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미리 준비해온 배낭에 그것을 쓸어 넣었다.
감상은 안전한 곳에 가서 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안전하게 다운 잼을 갖고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중요했다.
김진우의 손길이 바빠졌다.
그렇게 용건을 끝낸 그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 사무실의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기다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당장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던 아버지의 실종 사건의 배후는 아직 제대로 파고들지도 않았다.
이제,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싸늘한 눈으로 엉망진창이 된 사무실을 바라보던 김진우는 그대로 몸을 돌려 건물을 빠져나갔다.
“음?”
그런데 막 건물을 빠져나가려던 그는 기이한 감각을 느끼고 발걸음을 멈췄다.
누군가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 그래서 그는 기생수의 능력과 오감을 극도로 끌어올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수상쩍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떨쳐낼 수 없는 찝찝함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바로 안가로 돌아가는 것은 피해야 할 것 같았다.
한동안 어둠 속을 응시하던 김진우는 날 듯이 현장을 빠져나갔다.
***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온 송종철은 완전히 박살 난 협회의 사무소를 보고는 얼이 빠져버렸다.
“혹시 일 터지고 한참 있다가 연락한 거야? 내가 연락을 너무 늦게 받았냐는 말이야.”
“아, 아닙니다. 일 터지고 바로 연락드린 겁니다.”
완전히 망가져 버린 감시자들을 대신해 그보다 아주 조금 먼저 도착했던 협회의 간부 하나가 대답했다.
“그래? 그럼 침입자가 나타난 게, 30분쯤 전이라는 거네?”
“맞습니다.”
“그리고 침입자는 하나였고.”
“맞…….”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종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 병신들을 봤나! 건물 안에 있었던 새끼들이 몇인데 고작 침입자 하나를 못 막아서 이 난리를 쳐놨어!”
오랜만에 꼭지가 돈 송종철은 평소 보여 왔던 호방한 모습 따위는 온데간데없는 포악한 모습이었다.
“너, 이 새끼들이 그러고도 고레벨이라고 어깨에 힘주고 다녀? 이런 반편이도 못 되는 새끼들아!”
송종철은 하얗게 눈이 돌아가 길길이 날뛰어댔다. 아직까지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던 감시자 몇이 발길질에 모진 꼴을 당했다.
“이 새끼들. 그동안 편했지? 지저도 안 들어가고 배불리 먹고사니까, 아주 팔자가 늘어졌지? 이번에 한 번 제대로 정신 들게 해줄까!”
간부들은 눈이 돌아간 그를 말린다고 법석을 떨어댔다.
“휴우.”
한참을 날뛰고 나서야 겨우 진정된 송종철이 길게 숨을 내뱉으며 간부들의 손을 뿌리쳤다.
“피해는?”
“팔다리가 부러져 몇 달 요양해야 할 애들만 서른이고, 개중 몇은 부상이 심해서 회복이 될지 안 될지 모르겠습니다.”
또다시 불호령이 떨어지진 않을까, 잔뜩 어깨를 움츠린 간부의 말에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주 골고루 당했구만, 한 새끼한테.”
당장에라도 다시 윽박을 지를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린 송종철이었지만, 이번에는 화를 내는 대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당장 화를 참지 못해 난동을 피우기는 했지만, 이곳에 모인 감시자들은 평범한 이들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고르고 골라 뽑은 정예들로 전원이 레벨 6이상의 던전 베이비로 이루어진 강자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3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완전히 묵사발이 되었다. 그저 수하들의 능력 부족으로 치부하기에는 적이 너무 강했던 것이다.
그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머릿속에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이들의 리스트가 추려졌다.
만약 누군가가 일을 벌였다면 그건 레벨 6따위로는 막을 수 없는 고레벨 던전 베이비의 소행이 분명했다. 그가 알기에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강자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협회에 몰래 잠입해 난동을 피울 만한 인물은 더욱 적었다.
“김진우, 그 시각 김진우가 뭐하고 있었는지 확인해.”
“아무리 12레벨이라고 해도 이 많은 애들을 혼자서…….”
“그럼, 12레벨 말고 평범한 탐색자가 그랬을까? 닥치고 감시 붙여둔 애들한테 연락 돌려서 확인해.”
송종철의 말에 간부 몇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사이 현장을 살펴본 송종철이 뒤늦게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하긴, 그 난리를 쳐놨는데 여기만 그대로 뒀다는 게 이상한 일이지.”
완전히 박살 나 버린 문과 속이 텅 비어버린 금고를 발견한 그가 이를 갈아댔다.
“감시조와 연락됐습니다!”
“뭐래? 김진우 맞지?”
다른 이들은 모르지만 협회의 핵심 인사들은 알고 있었다.
간부 하나가 김진우의 부모에게 작업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인지 대답을 듣기도 전에 벌써부터 김진우를 욕하는 이들마저 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간부의 대답은 그들의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그게, 그 시간 김진우는 공사 현장에서 지 여자 친구들이랑 노닥거리고 있었답니다.”
“뭐, 뭐 이 새끼야? 그거 확실해? 잘 못 본 거 아니야?”
“제법 멀리서 확인하긴 했지만 신뢰도 100퍼센트의 정보입니다.”
그렇게 말한 간부가 휴대폰을 내밀어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제법 먼 거리에서 찍은 사진이긴 하지만 그 속의 남녀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만약 김진우가 일을 벌인 거라면 아직 제 집에 도착하기엔 시간이 맞지 않습니다. 감시자들 말로는 놈이 건물을 빠져나간 지 이제 겨우 15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여기서 파주까지 못해도 30분은 걸립니다.”
간부의 대답은 제법 논리 정연했다. 범인이 김진우라 확신하고 있던 송종철은 그 바람에 완전히 혼란스러운 얼굴이 되고 말았다.
“그럼 대체 누가…….”
한참을 궁리해 보았지만 다른 마땅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았다.
6레벨 이상의 던전 베이비들을 홀로 묵사발로 만들 정도의 강자, 그리고 협회를 습격할 동기가 있는 인물, 김진우 말고는 떠오르는 이가 없었다.
다른 이들 역시 답이 나오지 않았는지, 끙끙거리며 머리만 부여잡고 있었다.
“밑에 경찰이 왔습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송종철은 경찰이 왔다는 말에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오려면 일찍이나 올 것이지.”
“어떻게 할까요?”
“대충 둘러대서 보내.”
“신고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만약 범인이 김진우가 아니라면 경찰 쪽의 힘을 빌어보는 것도…….”
“아니, 그냥 돌려보내. 이 일은 우리 선에서 해결한다. 경찰이 나서면 나중에 범인을 찾았을 때, 일 처리하기가 복잡해진다.”
스산한 미소를 띤 송종철의 얼굴을 보니,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 사건을 해결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뒤늦게 그의 뜻을 헤아린 협회의 인물들이 사무실을 나섰다.
“완전히 박살을 냈구만.”
떨어져 나간 문짝을 대충 일으켜 가려둔 송종철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CCTV라도 달아둘 걸 그랬나.”
근래 들어 벌이는 일 중에 떳떳하지 못한 문제들이 있어, 혹시라도 역으로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 되어 아무런 감시 장비도 설치하지 않았던 게 이렇게 후회가 될 줄은 몰랐다.
“제길, 상납 일정을 늦춰야겠군.”
대체 어디에 상납한다는 것인지, 세상 무서운 것 없어 보이던 송종철의 얼굴에 곤란한 기색이 스쳐갔다.
“노인네들한테 또 한소리 듣겠어, 빌어먹을.”
“그것 참 안 됐군.”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음성은 갑작스러웠다. 그런데 송종철은 놀라는 대신 아무렇지 않게 정체불명의 목소리에 대꾸했다.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던 건가?”
그는 마치 처음부터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내가 그대의 금고까지 지켜줘야 하나?”
원망 섞인 송종철의 말에도 음성은 천연덕스럽게 되물었다.
“망할! 사정 뻔히 알면서 막아줄 수도 있는 거잖아!”
그 뻔뻔한 태도에 송종철이 쾅 하고 금고를 내리쳤다. 가뜩이나 너덜너덜하던 금고가 완전히 박살 나고 말았다.
“그거야 그대의 사정이지, 내 사정이 아니니까.”
“재수 없는 자식.”
정체불명의 인물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뻔뻔하게 지껄여댔다. 하지만 애초에 송종철도 무언가를 기대한 것은 아닌지, 이내 숨을 가다듬고 물었다.
“그래도 뭘 봤는지 정도는 말해줄 수 있겠지? 비즈니스 파트너끼리 그 정도의 도움은 주고받을 수 있는 거잖아.”
금세 평소의 모습을 되찾은 송종철이 느물느물한 태도로 대답을 종용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천연덕스럽게 입을 놀려대던 음성의 주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말해줄 수 있는 게 없군.”
“어째서? 다 봤을 거 아냐. 혹시 대가를 바라는 것이라면, 내가 제대로 셈하도록 하지.”
“아니, 대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음성이 어딘지 모르게 억눌려 있었다.
“뭐야, 너 쫀 거야? 그놈이 그렇게 대단했어?”
송종철이 의외라는 듯 말하니, 예의 그 음성이 대답했다.
“한 가지 말해줄 게 있다면…….”
“있다면?”
어쩐지 스산한 음성에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재촉했다.
“아무래도 그대의 앞길에 불운이 가득할 것 같다는 정도지.”
영문 모를 소리에 송종철이 성질을 냈다.
“망할 새끼. 또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해대는군.”
욕설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음성이 말했다.
“난 지저로 돌아가 봐야겠어.”
“아직 시일이 안 됐을 텐데? 그쪽 우두머리도 이번 일의 결과를 가져오기를 바라고 있을 텐데.”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겨서 말이야.”
말뿐이 아닌지, 짧은 인사를 남긴 상대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홀로 사무실에 남은 송종철이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다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지저의 괴물 주제에…….”
***
김진우가 안가로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나 지난 후였다. 협회의 건물을 나서며 느낀 기척이 찝찝해 바로 집으로 오지 못하고 꽤나 먼 거리를 돌아야 했다.
그렇게 하고도 채 날려 버리지 못한 찝찝함에 그의 표정은 시종일관 좋지 않았다.
“일이 잘 안 되신 건가요?”
마중 나와 있던 도미니크의 말에 김진우가 고개를 저으며 등에 멘 가방을 툭, 하고 쳐보였다.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들은 그녀가 의아한 얼굴을 해보였다.
“근데 왜 표정이…….”
“조금 걸리는 게 있어서. 그보다 일은 어떻게 됐지?”
“주인님의 말대로 주인님의 행방을 확인하려던 자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감시자들은 에스페스토를 주인님이라 철썩 같이 믿고 물러났답니다.”
협회에 문제가 생긴다면 가장 먼저 의심받을 사람은 김진우였다.
동기야 둘째 치고 대한민국에 이 정도로 일을 전격적으로 처리할 만한 인물이 많지 않았으니, 송종철은 자연스럽게 그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김진우는 일을 벌이기 직전에 거울망령의 왕을 불러 대역을 시켰다.
완벽한 알리바이. 협회는 에스페스토의 모습을 보고 그가 이번 일과 관련 없다고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김진우의 표정이 변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석연치 않았던 그의 얼굴에 화색이 떠올랐다.
“적당한 때 돌아왔군.”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앞에 메시지 하나가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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