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173)
던전 견문록-173화(173/319)
# 173
던전 견문록
제 174 화
66. 다시 굴러가는 톱니바퀴.
[미궁의 등급이 1등급에서 2등급으로 격상됩니다. 잠겨 있던 시설들이 새롭게 활성화되었습니다.] [미궁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본래대로라면 인근의 비스트와 크리쳐들이 미궁을 인식해야 했지만, 이곳은 지저가 아닌 지상입니다. 미궁의 존재를 인지할 비스트와 크리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든 미궁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쌓아 올린 흙과 모래가 영원히 미궁의 존재를 감춰줄 수는 없습니다. 시설의 증축이 시급합니다.] [잠겨 있던 시설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새로운 소환수의 소환이 가능합니다.]보유한 미궁의 핵 중 가장 깊은 층의 것이라 지상의 보루로 심어두기는 했지만 처음으로 시도해본 지상에서의 미궁 업그레이드라 혹시 문제가 생길까 내내 걱정해야 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미궁은 성공적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었고, 마침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악령의 열매는 지저 가장 깊은 곳에서만 자라는 종족입니다. 그들은 한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크리쳐의 한과 공포 속에서 태어난 악령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인간의 모습을 닮은 이 악령의 열매는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비명을 지르고는 합니다. 그들의 비명은 심약한 이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장송곡입니다.] [이들은 저주에 능한 주술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과 저주 속에서 태어난 이 악령들의 근원은 스스로조차 저주를 내리고 마침내 제 주인마저 집어삼키고야 마는 끔찍한 것입니다.] [전의 주인도, 또 그 전의 주인도 한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한 박자 늦게 떠오른 메시지를 본 김진우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뒤늦게 이 미궁을 얻은 경로가 떠올랐던 탓이다.
1년 전, 새벽닭이 울었을 때, 9층이 감당할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김진우는 11층 백작들의 의뢰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거점으로 제공받은 미궁이 바로 이 악령 열매의 미궁이었다.
악령의 열매. 다른 말로 만드라고라의 미궁이라 불리는 이 미궁의 전 주인은 아나톨리우스를 압박하기 위한 포석으로 희생당한 파르테논의 수하이기도 했다.
으레 그렇듯이 그저 지저의 시스템이 거창하게 소개했다고 하기에는 정말로 전 주인의 말로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김진우는 이내 표정을 풀고 웃어 보였다.
저주가 있다면 어떻고, 전 주인의 말로가 좋지 않았다면 무슨 상관인가. 이곳은 지저의 신비가 미치지 못하는 지상 세계였다. 만약 저주가 실제한다고 해도 이곳까지 따라오지는 못하리라.
아니, 설령 저주가 정말로 자신에게 내린다고 해도 그는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지저에서 태어나는 것보다 더한 저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처음 메시지를 보고 느꼈던 찝찝함이 사라졌다.
-소환 가능한 병력
□ 악령 열매 일꾼 (1등급) (2)
* 악령 열매 일꾼은 뿌리와 가지를 뻗어 자원을 채취하고 미궁의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가지와 뿌리는 전투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침입자의 발목을 붙잡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억세고 질깁니다.
□ 악령 열매 파수꾼 (1등급) (4)
* 악령 열매 파수꾼은 일꾼과는 달리 한 번 뿌리를 내리고 나면, 다시 이동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뿌리와 가지는 넓은 미궁을 전부 아우를 정도로 길고 억세기만 합니다. 파수꾼은 죽음의 순간 끔찍한 비명을 내질러 침입자들을 길동무로 삼습니다.
우선 소환수의 목록을 확인한 김진우는 다운 잼 하나를 제단에 던져 넣었다. 다운 잼이 던전 에너지로 변환되고, 그는 이내 되는대로 악령 열매 일꾼을 소환해냈다.
팟!
섬광과 함께 나타난 악령 열매 일꾼의 모습은 기괴했다.
통통하게 부어오른 몸을 제외하면 산삼과도 비슷한 모습이었는데, 아마도 머리일 거라 짐작되는 부분 위로 돋아난 이파리가 피처럼 붉은 것이 불길하기만 했다.
“일단 통로를 조금 꼬아놓을 필요가 있겠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악령 열매 일꾼들이 이동을 시작했다.
“음…….”
그런데 그 속도라는 것이 느려도 너무 느려 가만히 바라보던 그가 실소를 내뱉고 말았다.
어지간한 어린아이만 한 크기로 어기적거리며 걷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만 했던 탓이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을 뿐, 도미니크의 능숙한 지휘를 따라 이곳저곳에 흩어진 악령 열매들은 가지와 뿌리를 내뻗어 순식간에 땅을 다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작업 효율이 좋아요. 이 정도면 나가 일꾼들 못지않겠어요.”
반색을 하며 보고를 해오는 도미니크의 모습에 김진우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공감을 표했다.
“악령 열매 파수꾼 소환.”
일단은 소환수들의 특성과 능력을 알아두는 것이 급선무라, 그는 지금 상황에서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악령 열매 파수꾼 하나를 굳이 소환해냈다.
“미치겠군.”
빛무리와 함께 튀어나온 악령 열매 파수꾼을 확인한 김진우가 머리를 짚었다. 파수꾼의 외견은 일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갓난아이의 몸통처럼 토실토실 살이 오른 몸뚱아리를 하고 어기적거리는 모습은 불길해보일지언정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왜 파르테논이 버렸는지, 이해 못할 일도 아니군.”
가장 깊은 곳에서 얻은 미궁의 핵이라 잠재력을 높이 보고 지상에 설치한 것인데 이대로라면 기대와는 다르게 이도저도 아닌 기괴한 미궁이 되게 생겼다.
다소 곤란한 얼굴로 파수꾼이 미궁의 입구를 향해 이동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도미니크가 다가와 말했다.
“일단은 조금 더 두고 보셔야 할 거 같아요. 만약 이들이 정말로 쓸모없는 이들이었다면 파르테논이 버리기 이전에 이미 도태되었을 거예요.”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 그래서 김진우는 다시 한 번 다운 잼을 제단에 던져 넣고는 미궁의 업그레이드를 진행했다.
***
미궁이 다시 업그레이드에 들어간 사이, 김진우는 오랜만에 지저로 향했다. 도미니크에게 미궁의 관리를 인수인계받은 릭샤샤가 그간 많은 경험을 쌓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진정한 왕의 대리자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미궁의 악의가 의식을 침범하는 것을 감수하고 다시 탐욕의 대미궁을 찾았다.
“왕이시여!”
운 좋게 넓은 미궁을 헤집고 다니는 일 없이 곧장 릭샤샤와 마주칠 수 있었던 김진우는 대미궁의 근황을 물었다.
“모아이의 공격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미궁이 스스로 움직여 그들을 모조리 멸하였나이다.”
예상했던 대로 대미궁이 모아이들을 먹어치우며 부족한 포만감을 스스로 채워나갔던 모양이다.
-탐욕의 대미궁(1등급)
-포만도 66%. 완전히 배가 찬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포만감을 느끼는 상태.
-공복도 00%.
-공복 상태의 대미궁은 위험한 존재입니다.
-포만도가 0%가 되면 공복도가 오르기 시작합니다. 공복도가 일정 수치 이상에 오르면 대미궁이 무작위로 미궁의 주민들을 집어삼킵니다.
-다행스럽게도 대미궁은 가엾은 주민들로 배를 채우는 대신, 적당한 먹잇감을 찾았습니다. 부나방처럼 찾아드는 모아이들이 있는 한, 대미궁이 배를 곯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
대미궁의 상태창 역시 상당히 안정화되어 있었다.
“다행이군, 그동안 별일이 없었다니.”
하지만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흘러갔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릭샤샤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왕의 권위 앞에 감히 대적하려 드는 자들은 없으나, 미천한 종이 부족하여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나이다.”
스스로의 무능함을 고하며 벌하여 달라 말하는 릭샤샤를 보며 김진우가 막 입을 열려는데, 멀리서 모리건이 나타났다.
“나의 왕이시여!”
오랜만에 김진우를 본 그녀는 한달음에 달려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랜만이군, 모리건.”
재회의 기쁨에 발갛게 상기된 모리건의 얼굴이 마치 오랜만에 주인을 만난 강아지와도 같았다.
그것이 평소의 광오한 모습과 어울리지 않아 피식 웃어 보이는데 어쩐지 릭샤샤의 표정이 굉장히 불편해 보였다.
고개를 숙인 채 은근히 못마땅한 눈초리로 모리건을 노려보는 릭샤샤를 보고 나니, 그녀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모리건, 이 오만하고 광폭한 까마귀가 필시 무슨 일을 저지른 것임에 분명했다.
하기야 하이로드에 오르기 전에는 그 스스로도 난폭한 까마귀를 다루는 데 애를 먹었었다. 그런 그녀를 릭샤샤가 제대로 통제하는 것은 차라리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문제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좋다. 잠시 물러가 있도록.”
행여나 자존심 강한 모리건 앞에서 릭샤샤가 험담할 경우, 이 성질 고약한 까마귀가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괜한 분란은 사양이라 릭샤샤를 물리치고 모리건과 독대했다.
“모리건.”
“말씀하소서.”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모리건의 얼굴이 꼭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보여 김진우는 좀처럼 적응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맹목적인 애정에 속아 넘어가기에는 그녀의 본질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냉엄한 음성으로 그녀를 꾸짖었다.
“내가 없는 동안은 릭샤샤가 나의 대리자다. 그녀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껏 들떠 있던 모리건의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알아들었으면 알아들었다고 대답하도록.”
자존심이 상한 얼굴을 한 모리건이 한참을 망설이다 알았노라 대답했다. 이를 악 다문 표정을 보아하니 당장 명령을 거역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리 좋은 마음으로 릭샤샤를 대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끄응.”
결국 앓는 소리를 내뱉은 김진우는 모리건이라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대미궁에 방치해 두는 대신, 지상으로 데리고 올라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 사실을 이야기했다간 가뜩이나 기가 센 모리건의 기가 더욱 살 테니, 당분간은 근신하도록 명령했다.
풀이 죽은 얼굴로 사라진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릭샤샤가 다시 나타났다.
“당분간 모리건이 훼방을 놓는 일은 없을 거다.”
“부족한 종이 왕께 번잡함만 더하였나이다.”
“쓸데없는 소리.”
주점에 흘러들어 와 용병으로 미궁에 자리 잡았던 떠돌이 언더 엘프가 이 정도나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니, 새삼스러워진 김진우가 릭샤샤에게 수고했다 공을 치하해 주었다.
그 한마디를 듣는 것만으로도, 다소 퀭하던 언더 엘프의 얼굴에 활짝 꽃이 폈다.
“앞으로는 잠깐이라도 미궁에 들를 테니, 릭샤샤가 조금만 더 수고해줘.”
“이 몸이 죽고 없어질지언정 반드시 지켜보이겠나이다.”
다소 부담스러운 릭샤샤의 대답을 뒤로 한 김진우는 뒤를 따르려는 그녀를 물리치고 아리아네를 찾았다.
아리아네는 자신의 처지를 잊지 않았는지 얌전하게 자신의 처소에 앉아 있었는데, 그를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나 예를 표했다.
“그렇지 않아도 왕께서 언제 오시나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당장 자신을 어떻게 하지는 않을 거란 확신이 생겼는지, 아리아네는 공포에 질려 있던 전날의 모습과는 달리 조금은 여유를 찾은 듯했다.
“그대가 나를?”
“제가 왕을 찾은 것이 아니라, 악몽의 군주께서 왕을 찾은 거지요.”
그녀의 말에 김진우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디나리온은 또 왜.”
“그분께서 11층의 전쟁이 대충 끝이 났다 전하라 하셨어요.”
뒤늦게 11층의 백작들이 말했던 한 달이란 기한, 모아이들을 전부 밀어내는 데 필요한 기한이 지났음을 깨달은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간 모아이들의 분탕질로 멀어졌던 백작들의 시선이 다시 9층으로 향하게 됐으니, 걱정이었다.
잠시 이후의 일을 생각하던 그가 지상에서의 일뿐만 아니라, 산재한 일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게 전분가?”
“중요한 할 말이 있어 왕과 따로 독대를 하고 싶으나 힘이 미치지 않으니, 기별을 달라 하셨습니다.”
아리아네는 자신이 디나리온에게 인도할 수 있노라며 적당한 때를 정해달라 말했다.
그저 알았다 말하고 돌아선 김진우가 다시 바삐 걸음을 옮겼다. 슬슬 의식을 침범해 오는 대미궁의 악의가 짙어질 무렵이라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빠르게 대미궁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릭샤샤가 체크하지 못한 문제는 없는지 확인했다.
지저목들은 두 개의 핵이 내뿜는 빛을 받아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각자 자신의 거처를 할당받은 말락수스와 미궁의 주인들은 제 살길을 찾느라 분주했다.
수인족 여인들 역시 나름대로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대미궁은 평안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사라진 나가들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점 정도였는데, 덕분에 넓은 대미궁이 상당히 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기분은 이준영을 만났을 때 더욱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가구라고는 급조한 침대 하나뿐인 방 안, 이준영은 벌써 소식을 들었는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분간 못 올 거라더니,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아니, 늦은 건가.”
말동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지내자니 상당히 스트레스가 쌓인 듯 보이는 그녀였지만, 안색만큼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그녀는 시간의 흐름도 모호해진 듯 다소 횡설수설했다.
“뭣 좀 물어볼 게 있어서요.”
무엇을 기대했는지 금세 실망한 얼굴을 해보인 이준영이 말없이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탐색자 협회, 그리고 송종철. 준영 씨는 왜 그렇게 그들을 적대했던 거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필요 이상으로 송종철과 탐색자 협회를 경계했던 이준영 일행이다. 그래서 김진우는 어쩌면 그녀가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준영은 그의 말에 대답대신 다시 되물었다.
“전부 말해줄 테니까, 제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요?”
그녀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말했다.
“이곳에서 나가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