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1)
던전 견문록-21화(21/319)
# 21
던전 견문록
제 22 화
김진우의 채근에 도미니크는 나가 용사 하나와 궁수를 대동하고 릭샤샤를 따라갔다.
그 뒤로 김진우는 장장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을 홀로 미궁에서 버텨야 했다. 근처에 미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라 섣불리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초조함에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당시에는 틀린 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최선을 다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너무나 안일했다. 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할 수 없는 것도 해내야 했다.
이 지저의 끔직한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자신만 비껴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지난 실수에 매달리기에는 그가 살아온 나날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는 도미니크와 나가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기 시작했다.
[버려진 미궁의 파편(11/30)] [아직 다 여물지 않은 다운 잼(3/20)] [아직 다 여물지 않은 다운 잼(2/13)] [부서진 다운 잼의 조각(1/5)]가장 먼저 지난 탐색에서 기생수의 탐색에 걸려들었던 미궁의 파편과 다운 잼을 처분했다.
언제나처럼 제단에 파편과 잼을 던져 놓고 던전 에너지로 환산되기를 기다리던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운 잼은 진즉 6의 던전 에너지로 환산되어 사라졌건만, 미궁의 파편은 아무리 기다려도 사라지지를 않은 탓이다.
기다리던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고 엉뚱한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버려진 미궁의 파편, 한때는 강대한 미궁의 일부이던 이 돌조각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이제는 평범한 다운 잼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궁의 주인인 김진우의 손에 들어가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버려진 미궁의 파편을 모두 모으십시오. 미궁의 파편(1/17)] [버려진 미궁의 파편에서 던전 에너지를 추출하면 파편은 파괴되고 맙니다. 버려진 미궁의 파편에서 에너지를 추출하시겠습니까?(Y)던전 에너지 11을 얻습니다. (N)버려진 미궁의 파편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한창 소환수를 뽑을 생각에 여념이 없던 김진우는 얼빠진 얼굴을 해 보였다.
메시지 창은 당장 선택하라며 종용하듯 깜빡거렸지만, 갈피를 잡지 못한 그는 결국 선택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을 떨쳐낸 그는 소환수의 목록을 확인했다.
……
□나가 사제(하급) (17)
*최초의 뱀을 모시는 사제들입니다. 땅속의 현자이자 의사인 나가 사제들은 부상당한 나가들을 치유합니다.
□나가 수문장(25)
*우직한 문지기이자 믿을 수 있는 전사입니다. 그 어떤 나가보다 강인하고 인내심 강한 나가 수문장은 당신의 허락 없이는 누구에게도 길을 열지 않을 것입니다.
미궁의 등급이 4등급에 오르며 새롭게 추가된 병종, 나가 수문장은 지금의 김진우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하지만 소환에 필요한 던전 에너지가 지나치게 높아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남은 에너지를 확인하고는 수문장 하나와 나가 병사 열을 소환했다.
그 덕분에 그간 꾸준히 모아오던 던전 에너지가 단번에 바닥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만큼의 보람은 있었다.
열씩이나 되는 나가 병사들이 일렬로 도열한 모습은 꽤나 믿음직스러웠다. 그중에서도 나가 수문장의 모습은 군계일학이었다.
나가 용사만 해도 나가 병사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거구였는데, 나가 수문장은 아예 차원이 달랐다.
거의 3미터에 이르는 장신에 그만큼이나 떡 벌어진 어깨, 미늘창과 커다란 방패를 든 모습이 그렇게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었다.
“하!”
창으로 바닥을 찍으며 바람 소리를 낸 나가 수문장이 두꺼운 꼬리를 흔들다 이내 오너 룸을 빠져나갔다. 딱히 시킨 것도 없건만 알아서 게이트를 찾아 방비하는 모습이다.
“너하고 너는 창고를 지키고, 나머지는 입구로 가도록 해.”
멀뚱멀뚱 자신을 쳐다보는 나가 병사들을 배치한 김진우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부족하던 전력이 어느 정도 보강이 된 듯한 느낌이다.
물론 이 정도의 병력으로 안심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으로써는 최상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나가 수문장과 병사들을 배치한 지 채 하루가 되지 않아 릭샤샤와 도미니크가 돌아왔다.
여정이 편치 않았는지 도미니크는 드물게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먼지가 가득 내려앉은 자신의 몸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곧장 보고를 해왔다.
‘저 언더 엘프의 말이 맞았어요. 나흘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또 다른 미궁이 있었어요.’
김진우는 신음을 내뱉었다. 아니기를 바랐건만 릭샤샤의 말은 사실이었다.
“우리 미궁과 비교하면 어떻지?”
그의 질문에 도미니크가 릭샤샤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노골적인 불신의 표시에 잠시 고민하던 그가 릭샤샤를 내보냈다.
“수고했어. 가서 쉬고 있도록 해.”
“일천한 재주가 주인께 도움이 되었다니 그저 기쁠 뿐입니다.”
서운한 기색도 없이 릭샤샤가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그녀가 멀리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도미니크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순찰자가 있어 근처까지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대충 보기에도 저쪽 미궁의 전력이 확실히 우세해 보였어요. 방비를 서두르지 않는다면 막아내기 쉽지 않을 겁니다.’
“도미니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나가 수문장과 병사 열을 소환했어. 이 정도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그것까지 포함해서 말씀드렸어요. 드러난 전력만 보아도 우리 미궁의 열세인데 거기에 미궁의 안쪽에 얼마나 되는 병력이 있을지 미처 파악도 하지 못했답니다.’
첩첩산중이다. 뭔가 일이 풀린다 싶으면 바로 또 더 큰 일이 생기니 김진우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하지만 안 좋은 소식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도미니크가 상대 미궁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병력 중 영웅급 소환수를 발견한 것이다.
“미치겠군.”
일반적인 전력으로도 상대하기 벅찬데 상대편에는 전투에 특화된 영웅급 소환수가 있다.
같은 영웅급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나가 시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도미니크와는 다르게 상대편의 소환수는 제대로 된 전력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저쪽은 아직 우리의 존재를 모른다는 것, 준비할 시간이 조금은 있다는 것이죠.’
그나마 위안이 되는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저들이 이쪽의 존재를 모른다는 걸 어찌 아느냐 물으니 도미니크가 단호하게 말했다.
‘알았다면 지금처럼 이곳을 가만히 내버려 뒀을 리가 없어요. 진즉 쳐들어왔을 거예요.’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도미니크의 현명함에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미궁의 방비를 서둘러야 할 때였다.
“당분간은 다운 잼을 발견하는 걸 최우선으로 하도록…….”
이따금씩 나가 일꾼들이 발견해 오던 최하급 다운 잼을 떠올린 김진우는 그리 말하다가 말을 멈췄다.
‘주인님?’
“작업장이 어디지?”
의문은 뒤로한 채 도미니크가 그를 나가 일꾼들의 작업장으로 안내했다. 작업장에 도착한 그는 걸음을 멈추고 도미니크를 불렀다.
“도미니크.”
‘네?’
“난 바보천치다.”
뜬금없는 말에 도미니크가 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진우를 바라보았다.
“정말 멍청했어.”
‘주인님?’
자랑스러운 주인의 갑작스러운 자아비판에 놀랐는지 입을 오물거리던 도미니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과는 달리 그의 입꼬리가 잔뜩 올라가 있는 것을 발견한 탓이다.
의문에 가득 찬 도미니크를 뒤로한 채 김진우는 작업장을 훑어보았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대던 그가 결국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주인님……?’
도미니크의 염려 섞인 음성에도 그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작업장의 이곳저곳에서 빛나는 녹색 광채를 보고도 어찌 평온할 수 있겠는가.
[당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기생수의 감각에 잡혔습니다.] [기생수의 능력, 탐사가 활성화되었습니다.] [기생수의 감각에 무언가가 잡혔습니다.] [기생수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기생수가…….]시야가 가려질 정도로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
[최하급 다운 잼을 제단에 바쳤습니다. 크기도 작고 질도 좋지 않은 최하급 다운 잼이지만 그 수가 많아 상당한 던전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총 55의 던전 에너지가 축적되었습니다.]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본 김진우는 반색했다. 나가 수문장을 소환하며 바닥났던 던전 에너지가 단숨에 55나 차오른 것이다.
“소환!”
나가의 왕좌에 앉은 그가 다시 병력을 충원했다. 하지만 아직도 도미니크는 전력이 열세라 말했다.
‘당장 수가 문제가 아니라 병력의 질이 문제예요.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방법이 없네요. 이렇게나마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나?”
‘시간이 있다면 미궁을 업그레이드하든지 용병을 구했을 텐데.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용병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녀는 아직 나가의 미궁은 명성도 악명도 없어 찾는 이가 없을 거라 했다.
고민이 깊어졌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기생수의 탐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근방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운 잼이란 다운 잼은 죄다 긁어모았지만 등급이 너무 낮았다.
게다가 미궁의 업그레이드가 요원한 상황이라 당장 병력의 수용 인원도 거의 최고치에 달하고 말았다.
“방법을 찾아야 해.”
미궁의 핵과 운명을 함께하게 된 김진우인지라 걱정이 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치 그러한 사정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손님이 찾아왔다.
“오! 기생수는 어떻게 마음에 드시는지요? 다시 말하지만 저희 블랙 머천트에도 얼마 남지 않은 놈이라…….”
다시 미궁을 찾은 암상인은 짧은 사지를 우스꽝스럽게 버둥거리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어째 제가 온 게 마음에 들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인사도 없이 멀거니 자신을 바라보는 김진우를 본 암상인이 과할 정도로 서운한 얼굴을 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썩 괜찮은 거래를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암상인은 불편한 존재였다. 아무래도 오래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여러모로 께름칙했다.
그래서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이곳에 온 용건을 물었다.
암상인은 그의 성질 급함을 불평하면서도 이내 용건을 꺼내 들었다.
“지금 혹시 곤란한 일이 있지 않으십니까?”
“뭐?”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김진우가 얼빠진 얼굴을 해 보였다. 대체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암상인의 얼굴에는 능글능글한 미소가 떠올라 있다.
“원래 새롭게 생겨난 미궁만큼 손이 많이 가는 곳도 없죠. 미궁도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병력도 확충해야지, 성질 더러운 크리쳐들 쫓아내야지. 어휴, 생각만 해도 진땀이 흐르네요. 사실 말이 나와 하는 소린데, 저한테 미궁을 맡으라면 전 죽어도 안 맡을 겁니다. 차라리 떠돌이 생활을 하고 말지. 할 일 많고 신경 쓰이는 일도 많아, 자리 노리는 놈은 오죽 많습니까?”
연극이라도 하듯 과장스럽게 지껄여대던 암상인이 이내 정색을 하며 말했다.
“하여 저희 블랙 머천트에서는 신생 미궁의 고충을 나누고 있습니다.”
싸구려 외판원처럼 떠들어대는 암상인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김진우가 물었다.
“고충을 나눠?”
“네.”
커다란 눈동자를 가늘게 뜬 암상인이 어딘지 모르게 음흉한 얼굴로 물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게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