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10)
던전 견문록-210화(210/319)
# 210
던전 견문록
제 211 화
왕좌에 앉은 김진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다이달로스의 요청대로 미궁의 규모를 축소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전에 광맥을 발견했을 때 이미 한 번 대미궁이 확장하는 방향을 임의로 지정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경험을 잘 살려 심상을 구현하면 무언가 길이 보이리라.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가 아직 대미궁을 완전히 굴복시키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름마저 탐욕인 이 욕심 많은 대미궁이 과연 제 몸을 축소시키는 데 선뜩 자신의 의지를 따를지는 미지수였다.
그리고 우려대로 대미궁은 그의 의지를 전면으로 부정했다. 어렵사리 떠올린 심상이 순식간에 대미궁의 분노에 휘말려 짓이겨지고 말았다.
“음.”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느낌에 그가 눈에 힘을 주고 미궁의 핵을 노려보았다.
그오오오오.
미궁 역시 지지 않고 그의 의지를 부정하듯 사납게 으르렁댔다. 아무래도 대미궁은 선선히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결국 승자는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창, 궁니르는 결코 평범한 창이 아닙니다.] [외눈박이 군주가 손에서 떼어놓지 않았던 마창은 오랜 시간이 흐르며 스스로 영성을 띠게 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그 어느 것보다 강력한 옛 권능의 조각이 되었습니다.] [마창은 그 자체로 권능의 상징이자 군주의 위엄과도 같습니다.] [한때 군주의 상징과도 같았던 궁니르는 더 이상 대미궁이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비록 이곳이 외눈박이 군주가 지배하던 대미궁은 아니지만, 마창의 위엄은 탐욕의 대미궁을 상대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습니다.]김진우가 울부짖는 마창, 궁니르를 손에 쥔 순간 대미궁의 기세가 급격하게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대미궁이 완전히 당신에게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닙니다. 마창 궁니르의 위엄에 일시적으로 압도되었을 뿐, 대미궁은 여전히 당신의 의지를 순순히 따르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미궁은 당신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꿈쩍도 하지 않던 대미궁이 마침내 지배자의 심상을 받아들여 조금씩이지만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의지가 조금이라도 약해지는 순간, 대미궁은 다시 그 사나운 이를 들이댈 것입니다. 대미궁의 규모가 원하는 수준까지 축소될 때까지는 정신을 집중해야 합니다.]잔뜩 찌푸려져 있던 김진우의 얼굴이 다시 평온을 되찾고, 더 이상 그 어떤 급박함도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때, 대미궁은 사나운 으르렁거림 대신 애달픈 신음과도 같은 소리를 내뱉게 되었다.
[대미궁이 규모가 축소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간 대미궁 스스로가 제 몸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에너지는 상상할 수조차 없이 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저 규모와는 달리 대미궁은 그동안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대미궁의 에너지 낭비는 위험한 수준입니다. 그간 대미궁이 제 스스로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했던 에너지의 태반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과연 다이달로스는 미궁 설계자라는 호칭이 부끄럽지 않게 정확하게 대미궁의 상황을 짚어냈다.
비록 그 안에 사심이 잔뜩 들어가 엉뚱한 요청을 한 전적이 있다고는 하나, 그 능력만큼은 입증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대미궁의 규모가 1% 줄어들 때마다, 필요 유지비가 일정 수준 감소합니다.] [필요 유지비는 현재 수준의 30% 이하로 줄어들지 않습니다.] [한때는 대미궁의 영역이었던 지역들이 비활성화되며 적게나마 에너지가 회수되었습니다.]희미했던 심상이 다시 선명해지며 그의 머릿속으로 대미궁의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
“끄응, 이거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군.”
하루를 꼬박 대미궁의 규모를 축소하는 데 몰두했지만 결국 원했던 만큼 줄일 수는 없었다. 기존에 계획했던 규모의 20퍼센트 가량을 겨우 진행했을 뿐이었다.
시작한 김에 끝을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 20퍼센트의 작업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의 피로가 쌓인지라 그는 비틀거리며 왕좌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일어서기가 무섭게 다시 왕좌에 앉아야 했으니, 겨우 축소되었던 대미궁이 의지를 거두어들이기가 무섭게 다시 확장을 시작한 것이다.
“마창의 눈치를 보는 것도 잠시뿐이라는 것인가.”
쓴웃음을 지은 그는 결국 흐트러졌던 정신을 바로잡아 의지를 떠올려야 했다.
[대미궁의 규모가 현재 29% 축소되었습니다.] [던전 에너지의 효율이 45% 상승하고 미궁을 유지하는 데 필요했던 유지비가 29% 하락하였습니다.] [대미궁이 전보다 더 오랫동안 포만감을 유지합니다. 포만감의 감소가 느려지고 공복 수치가 발생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더욱 길어졌습니다.] [쓸모없는 지역이 사라지며, 꽤 많은 에너지가 회수되어 미궁의 핵에 저장되었습니다.]생각보다 많은 지역을 덜어내는 작업에 대미궁이 놀라기라도 한 것인지, 작업 진척도는 30퍼센트를 코앞에 두고 더 이상 움직이지를 않았다.
“주인님, 안색이 좋지 않으세요. 다소 작업이 지연되더라도 조금 쉬었다가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어지간해서는 주인의 행보에 관여하지 않았던 도미니크가 사색이 된 얼굴로 다가와 그를 만류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김진우는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김진우는 길게 한숨을 토해내고는 삐딱하게 왕좌에 앉아 대미궁을 관찰했다. 심상의 영역은 그도 처음으로 접근해 보는 영역이었으니, 그 심력 소모가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다.
만약 다시 대미궁이 확장할 기미를 보인다고 해도 그는 더 이상 작업에 매달릴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지친 것은 대미궁도 마찬가지인지 급작스럽게 확장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주 약간이지만 경계가 확장되고 있기는 했지만, 그 정도의 속도는 그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휴우, 이 짓을 또 해야 한다니 미칠 노릇이군.”
드물게 불평하는 김진우였지만, 어쩐지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의 노동이 마냥 헛된 것은 아니었던 탓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먹혀버린다. 고민하고 궁리할 시간에 몸으로 부딪쳐 살아나갈 길을 강구한다.
그것이 그가 지저를 살아왔던 방식이고 노하우였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겪어본 심상과 의지의 영역은 이제껏 인장과 파편에만 의지해왔던 그의 방식을 송두리째 부숴버린 새로운 것이었다.
의지를 확고히 하고, 심상을 그려 그대로 따른다. 말이 쉽지 쉽사리 실행할 수 없는 일이다. 지루하고도 고되기만 한 노동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지난한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탐욕스럽고 억척스러운 대미궁이라는 사나운 맹수를 길들일 열쇠를 찾게 되었다.
이제껏 육체의 강인함에만 의존해왔던 세상이 확장되고,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나타났다.
심상, 그리고 의지야말로 하이로드의 강대한 힘의 근원인 것이다.
거듭된 각성으로 강인하게 변모했던 육신, 하지만 그 육신을 움직이는 것은 범인의 그것과 다름없었으니 이제껏 비틀려 있었던 심신의 균형이 비로소 맞춰졌다.
“후우.”
길게 내뱉은 숨결과 함께 해묵은 찌꺼기가 함께 토해지고, 그의 정신이 조금씩이지만 기울었던 저울추의 눈금을 맞추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본신의 힘이 갑작스레 강해진다거나 하는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작은 시작에 불과했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정신은 단단해지고 의지는 진정한 군주의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변화를 끝냈을 때, 그 앞의 세상은 더 이상 전과 같지 않으리라.
12층 심층의 던전 베이비이자, 나가들의 지배자인 김진우가 이제 막 진정한 군주의 힘에 눈을 떴다.
***
미궁의 규모를 축소시키는 작업은 계속되었다.
29퍼센트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지지부진하던 작업의 진척도도 차라리 무식하다 싶을 정도의 우직함 앞에 마침내 진척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일그러져 있던 심신의 균형이 제 자리를 찾아갔다.
“오늘은 40퍼센트에서 마무리 짓도록 하지.”
어느 순간이 되자 대미궁도 더 이상 무리한 확장을 강행하지 않게 되었다.
김진우는 그것이 자신과 대미궁의 기싸움에서 어느 정도 우세를 점했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대미궁이 슬슬 자신을 주인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더 이상 대미궁에 의식을 침범받는 일은 없을 것이란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 대미궁을 안락하다 여겼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생각은 대미궁에게까지 전해졌으니 마치 아양이라도 피우듯 대미궁이 바람 소리를 내며 울어댔다.
콰아아아아.
비록 그것이 서리가 깃든 대미궁의 삭막한 바람 소리라 듣기에는 굉장히 기괴하기만 했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네놈이 그토록 바라던 인장을 실컷 먹여주마.”
그의 말에 대미궁이 다시 한 번 들뜬 듯 바람 소리를 내었다.
***
미궁의 규모가 마침내 예정되었던 선까지 축소되었을 때, 다이달로스는 마치 장난감을 눈앞에 둔 어린아이처럼 설렘을 참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러댔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으니만큼 각별히 신경 써서 미궁을 확장하라.”
다시 하라면 못 할 것도 없었지만, 정신력이 고갈되는 느낌은 육체의 피로에 비할 바가 아니었던지라 김진우가 으름장을 놓았다.
“네! 네!”
하지만 다이달로스는 그런 그의 생각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열병을 앓는 듯한 얼굴로 그저 고개를 끄덕여 보였을 뿐이다.
“좋아, 대미궁의 개보수를 시작하라!”
그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이달로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반나절이 채 되기 전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대미궁이 다시 확장을 시작했습니다.] [대미궁의 확장 작업에 ‘미궁 설계자’, ‘다이달로스’의 손길이 닿았습니다.] [아직 지저에 이렇다 할 명성조차 없는 미궁 설계자지만, 블랙 머천트의 지원을 받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다이달로스의 능력은 이미 장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궁 설계의 달인 다이달로스의 참여로 미궁의 확장이 더욱 더 가속화되었습니다.]***
당장에라도 끝이 날 것 같았던 대미궁의 확장 공사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그저 간간히 어느 구역이 어떻게 개발되었으며, 이러이러한 장점이 있다 메시지가 떠올랐을 뿐이다.
당연하게도 지금으로서는 대미궁의 변모될 모습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던지라 그는 기대하는 마음 반, 걱정하는 마음 반으로 공사가 끝이 나기를 기다렸다.
“주인님!”
대미궁의 규모를 축소시키는 과정에서 심상과 의지의 수련에 눈을 뜬 김진우는 부쩍 명상에 잠겨드는 일이 많았다. 오늘도 그는 왕좌에 앉아 마창이 보여주었던 과거의 기억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도미니크가 오너 룸을 찾아왔다.
“우서가 찾아왔어요.”
“아.”
그러고 보니 다운 잼 광맥을 발견한 뒤로, 모아이들의 눈을 가리기 위해 우서를 배치해두었던 것이 벌써 한참 전이었다.
뒤늦게 그 존재를 떠올린 김진우가 곧장 우서를 만나기 위해 오너 룸을 나섰다.
“우서?”
그는 얼마 걷지 않아 대미궁에 들어선 우서와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라는 것이 과거와는 완전히 달랐으니 그가 황당한 얼굴로 우서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