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13)
던전 견문록-213화(213/319)
# 213
던전 견문록
제 214 화
이미 몇 번이나 보아왔던 문구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흔한 메시지는 아니었다. 김진우는 눈에 힘을 주고 번쩍번쩍 점멸하는 창을 노려보았다.
[진리에 닿고자 하는 미궁 설계자의 탐구와 열망은 진짜였습니다. 그 진리에 대한 순수한 집착이 기어이 지저의 신비에 닿고 말았습니다.]대체 얼마나 바라고 또 바랐으면 지저의 신비가 개입했을까. 다이달로스의 열망이 나가 마법사들 못지않음은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차라리 광기라고 해도 믿어질 지경이었다.
[대미궁의 등급이 또 한 번 상승했습니다.] [대미궁의 등급이 ‘희귀한’에서 ‘유일한’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탐욕의 대미궁은 앞으로 독자적인 성장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미궁이 얻을 모든 능력들은 다른 하이로드들의 대미궁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것들입니다.] [미궁 설계자의 염원이 대미궁이 얻을 고유 능력에 간섭했습니다.] [대미궁이 고유 능력, ‘반전’을 얻었습니다.] [핵에 보관된 에너지의 절반을 사용하여 미궁의 구조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신은 아직 대미궁의 고유 능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고유 능력, ‘반전’이 비활성화되었습니다.] [대미궁이 당신을 진정한 지배자로 인정하고 굴복하는 순간, 잠겨 있던 고유 능력이 활성화됩니다.]마창에 의해 굴종의 시늉을 해보이고 더러는 아양을 피우기도 한 대미궁이었지만, 역시나 정말로 굴복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메시지는 고유 능력의 활성화를 진정한 굴복과 지배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고오오오오오.
메시지가 전부 끝이 난 순간, 갑작스레 대미궁이 한 번 더 울부짖었다. 그런데 그 포효라는 것이 방금 전과는 그 느낌이 판이하게 달랐다.
미궁의 업그레이드에 기뻐 환호하던 훈풍은 삭풍이 되었고, 미궁 전체가 악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정말 알기 쉬운 놈이군.”
이제 겨우 그 음흉한 속내를 파헤쳐 악의를 찍어 눌렀다 생각했더니, 지저의 신비가 개입하는 바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성장한 군주의 존재감과 마창의 위엄에 몸을 숙이고 있던 대미궁은 등급이 오르기가 무섭게 다시 한 번 사나운 이를 들이댔다.
“아아…….”
그 짙고도 음험한 악의에 도미니크를 비롯한 소환수들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비틀거렸다.
기뻐 날뛰어대던 다이달로스와 큰 머리 난쟁이들 역시 주춤거리며 오너 룸에서 도망쳤다.
그아아아아아아아.
제 위세를 자랑하듯 대미궁이 다시 한 번 울부짖었고, 왕좌에 앉아 있던 김진우는 그 기고만장해 내지른 포효에 벌떡 일어났다.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끝을 봐야겠지.”
예전이라면 악의에 잠식되어 의식이 혼미해졌을 그였지만, 지금의 그는 성장과 각성을 거듭해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대미궁의 두 단계 성장, 그 또한 그 이상을 이루었으니, 이번에야말로 대미궁을 완전히 굴복시킬 생각이었다.
“어디 한번 네 놈이 더 컸는지, 내가 더 컸는지 이번 기회에 확인해 보라.”
마창을 움켜쥐고 의지를 세우니, 1미터에 불과했던 창이 순식간에 4미터나 길어졌는데, 볼품 없이 이리저리 휘어있던 창대가 꼿꼿하게 서 평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예기를 흘려댔다.
창끝에 달려 있던 풀잎과도 같은 모양새로 낭창거리던 창날 역시 날을 곧추세우고 마구 몸을 떨어댔다.
촤라라라라라라.
창끝이 떨릴 때마다, 마치 수천 그루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아아아아아아.
다시 한 번 대미궁이 포효하고, 김진우는 사납게 마주 고함치는 대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곧 눈앞이 깜깜해지고 귓바퀴를 찢고 들어설 듯 거북스럽게 울려대던 대미궁의 포효마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육신을 벗어난 의지의 영역에 도달했다.
크르르르르.
온통 어둠뿐인 세상 속에서 굶주린 짐승이 불쑥, 모습을 나타냈다.
뱀도 용도 뭣도 아닌 기괴한 짐승. 시커먼 주둥이를 쩍 벌린 채 게걸스럽게 침을 껄떡대는 그 모양새가 탐욕스럽기 그지없었다.
네놈이 바로 탐욕이로구나.
노린내 나는 숨결을 마주한 김진우는 눈을 부릅떴다. 검은 눈동자가 푸르게 빛나고 그의 시선이 닿은 곳마다 푸른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검은 짐승, 탐욕이 길게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그는 그렇게 순식간에 짓쳐드는 탐욕을 바라보며 마창을 들어 올렸다. 어느새 4미터 이상 자라난 마창이 짐승의 심장어림을 겨누었다.
아마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벌써 몸부터 달려나갔을 테지.
긴박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생각을 떠올리며 김진우가 창끝을 내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창이 울부짖고 창끝이 정확하게 짐승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에에에에.
듣기 거북한 비명과 함께 검은 몸뚱아리가 연기처럼 흩어졌다.
사나운 기세에 비하면 너무나 허망한 최후. 그는 승리에 기뻐하는 대신 서늘하게 웃으며 양손으로 창을 고쳐 잡았다.
불쑥.
아무 것도 없던 어둠 속에서 시뻘건 안광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떠오른 안광은 하나가 아니었다.
앞뒤, 좌우 할 것 없이 사나운 으르렁거림이 흘러나오고 온 사방이 검은 짐승이 토해내는 노린내로 가득 찼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가지.”
갑작스레 증식한 탐욕을 보고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그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 순간 마창, 궁니르가 적의 심장을 노리고 다시 한 번 짓쳐들었다.
***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과연 명성대로 울부짖는 마창, 궁니르는 적의 심장을 비껴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까다로운 상대를 그리 어렵지 않게 굴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호시탐탐 당신을 지배하기를 원했던 포악한 짐승은 이제 말 잘 듣는 번견이 되었습니다. 탐욕의 이빨은 다시는 당신에게 향하지 않을 것입니다.]몇 번이나 창을 내지르고 다시 회수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무렵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전투가 마침내 끝이 났다.
[비록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이룩한 승리였지만, 고대의 열두 짐승 중 하나를 무릎 꿇린 당신의 업적은 더없이 귀하고 값진 것입니다.] [카리스마가 어마어마하게 상승했습니다. 당신의 음성에 군주의 격에 맞는 위엄이 서리게 되었습니다. 소환수들의 충성도가 상승하고 대미궁에 거주하는 이종족들이 더 이상 배신할 염려가 없게 되었습니다.] [‘군주의 언령’ 능력이 생겼습니다.] [당신은 한 달에 한 번, 자신을 따르는 소환수들에게 암시를 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암시에 걸린 소환수는 당신의 말을 무조건 믿고 따르게 되며, 어쩌면 당신에게 충성심을 입증받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초월한 결과를 내보일지도 모릅니다.]고대의 열두 짐승이라는 표현에 김진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짐작하기에 고대의 짐승이란 하이로드의 권능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대미궁과 자신의 진명이 다르지 않음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 생각이 틀릴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알기로는 고대에 존재했던 하이로드의 수는 모두 합쳐 열. 열둘이라는 숫자와는 맞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탐욕의 권능이 고대부터 존재해 왔던 것인지조차 의문이었다.
지저의 모든 존재가, 또 시스템이 옛 군주의 수가 열이라 말해주었던 탓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느낌에 거듭 궁리를 해보았지만,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축하합니다. 드디어 온전한 대미궁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탐욕의 대미궁이 마침내 당신을 주인으로 인정했습니다. 대미궁의 자아를 완전히 지배하에 두는 데 성공했습니다.] [핵에 보관되어 있는 에너지를 통해 미궁의 시설물을 건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잠겨져 있던 시설들이 목록에 떠오릅니다.] [비활성화되어 있던 대미궁의 고유 능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고유 능력, ‘반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탐욕이라는 짐승을 무릎 꿇린 그날, 김진우는 마침내 진짜 대미궁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
김진우의 완전한 지배를 받게 된 대미궁은 눈부실 정도로 발전했다.
가뜩이나 다이달로스의 손을 타며 완성도가 한층 높아진 대미궁에는 나가 일꾼들이 뚝딱거리는 소리가 끊이지를 않았으며, 하루가 지날 때마다 없던 건물들이 솟아나고 시설물이 생겨났다.
그렇게 대미궁은 마치 지저에 존재하는 하나의 성처럼 변모했다.
“오! 큰 머리 난쟁이들이 제 몫을 한 모양입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미미르는 변해버린 대미궁을 보며 연신 감탄을 토해냈다.
외눈박이 군주가 지배하던 대미궁도 이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답지는 않았다며 그는 몇 번이나 반짝거리는 미궁의 빙벽을 어루만졌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김진우는 굳이 탐욕의 대미궁과 자신의 관계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자신이 보았던 심층의 상황을 언급하며 미미르에게 그 정보를 물었다.
“원래는 공작들에게 우선적으로 배포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공작들의 반응이 영 시원찮습니다.”
미미르는 노렸던 공작들이 대미궁의 복원품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바람에 백작들까지 염두에 두어야만 했노라 푸념했다.
“그럼 백작들에게 대가를 받은 건?”
“우선적으로 다운 잼을 받았고, 모자란 값은 보물로 치렀습니다요. 그러고도 모자란 금액은 계속해서 징수원을 보내 수금하고 있습죠.”
사채업자라도 되는 양 떠들어대는 모양새가 그다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백작들이 대금을 치르기 위해 무리할수록 이득이었다. 가급적이면 미미르가 악랄하게 백작들을 압박하기를 바랐다.
“그렇군. 그대가 말한 심층이 흔들린다는 게 이것이었나?”
“그럴리가요. 백작들의 자금 운영에 지장이 생기긴 했지만, 기존의 병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닙니다. 고작 이 정도로 뿌리를 흔들기에는 그들이 심층에서 군림해 온 세월이 너무나 길답니다.”
“하기야 그들의 지닌 저력은 나 또한 지난 1년간 지겹도록 봐 왔지. 쉽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강대한 만큼이나 백작들은 콧대가 높고 엉덩이가 무겁습죠. 심층 초입의 하급 귀족들이 완전히 도태되어 가는 와중에도 신경 쓰지 않았을 정도니 그들이 얼마나 오만한지 알 만하지 않습니까?”
이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났기 때문일까. 미미르는 전에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비릿한 얼굴을 해보였다.
백작들의 힘을 인정하면서도 그 오만함을 조롱하는 미미르의 눈빛이 위험스럽기만 했다.
“그렇게 뻗대고 있다가 손발이 잘려 나가고 눈과 귀마저 멀게 되겠지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 그때가 그다지 멀지 않은 듯합니다.”
거기까지 들은 순간 김진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미미르의 계획에 주인 없는 가짜 대미궁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미미르는 단순히 백작들의 자금 운용 능력을 경직시키기 위해 가짜 대미궁을 팔았을 뿐,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밥상 위로 올라올 백작들의 미궁을 두고 이렇듯 공을 들일 리가 없었다.
“그렇군.”
김진우는 속내를 감춘 채 미미르가 떠들어대는 심층의 정보에 귀를 기울였다.
***
미미르가 돌아가고 얼마 되지 않아 또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그렇게 찾아온 손님의 방문은 사실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이미 진즉에 약속되어 있던 손님이 이제야 온 것인데, 그간의 사정이 워낙이 바삐 돌아가니 김진우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왔군.”
대미궁의 입구에 선 손님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변해버린 미궁의 모습을 살펴보다 그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오랜만이야.”
그의 말에 손님이 굳어버린 자세 그대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려 제 발등만 바라보았다.
금빛 찬란한 비늘이야 색이 바래 그 귀태가 덜해졌다고는 하나, 곧게 뻗은 목이나 굳센 사지가 웅장한 그 모양새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비굴한 모습이었다.
“그래, 그렇게 말도 없이 도망치더니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는군.”
웃음기가 가득한 음성. 하지만 금세 그의 태도가 돌변했다. 차가운 눈동자에는 경멸의 빛이 일렁였고, 입꼬리는 잔뜩 비틀려 조롱의 기색이 다분했다.
“반갑다. 도망자, 오르테아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