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16)
던전 견문록-216화(216/319)
# 216
던전 견문록
제 217 화
79. 복원
캐서린의 사자는 그다지 오래 머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만 더 일찍 왔다면 유용했을 조언들이 늦게 당도하는 바람에 전부 무용지물이 되었던지라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던 탓이다.
김진우의 입장에서는 간발의 차로 재앙을 피해갈 기회를 잃었으니, 느긋한 사자의 태도에 울화통이 치밀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끝내 사자를 물고 늘어져 여러 가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럼 앞으로도 이런 일이 세 번이나 더 남았다는 건가?”
“주인께서도 앞으로 일어날 복원의 날이 오늘과 같을지 또 다른 모습으로 찾아올지는 알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더욱 더 속이 쓰렸다. 네 차례 중 단 한 번 대비할 수 있던 재앙을 타이밍이 맞지 않아 그대로 두들겨 맞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지고 난 후였고 막대한 자금이 대미궁을 복구하는 데 쓰였다.
사자를 다그친다고 해서 소모된 자금이 복구되는 것도 아니고, 대미궁이 멀쩡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는 그저 곱지 않은 눈길로 태연한 얼굴의 사자를 노려보았을 뿐이다.
“끄응.”
사자는 이미 블랙 머천트의 경매장에서 자신의 주인과 김진우의 만남을 주선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탓에 이미 그의 위세가 어떠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는데, 다시 만난 그의 기세가 전과는 완전히 다르자, 다소 깔보던 기색이 남아 있던 얼굴을 고개 숙여 황급히 숨겼다.
“수많은 망령이 흡사 번견이라도 되는 양 가는 곳마다 제 발을 붙드니, 이곳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았나이다.”
모아이들을 풀어놓아 침입자를 경계한 것이 이번만큼은 악수가 된 모양이다. 결국 더는 사자를 탓하지 못한 그는 과거의 일은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1차 복원은 갈라졌던 각 지저의 층들이 하나로 통합되는 첫 발걸음이니, 서둘러 주변을 확인토록 하소서. 이것은 주인께서도 일러주라 말씀하지 않으셨던 내용이나, 발이 느려 사자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제 작은 사죄의 뜻이옵나이다.”
그래도 조금은 책임을 느끼는 것인지 사자가 이런저런 정보를 전해주었다. 사자의 말에 의하면 이번 지진은 12층으로 나누어졌던 지저의 층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재앙이었다.
그리고 이 유난스러운 통합의 과정은 결코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으니, 지금 당장 몇 층과 몇 층이 맞닿은 것인지는 그도 알 수 없다 말했다.
“이미 병력을 보내 인근을 정찰하라 하였으니, 곧 답이 오겠지.”
김진우는 그때까지 사자를 잡아둘 요량으로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혹시라도 이후의 정보를 얻을까 하는 마음 탓이었다.
“그녀는 잘 지내고 있는가?”
“무엇을 알고 싶으신 건지 알 수 없으나, 주인의 평안을 위협할 이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으니 이것으로 대답이 되었는지요.”
그저 평범한 안부를 물었을 뿐인데 사자는 극도로 답변을 꺼렸다. 이래서야 차라리 복원 과정에 대해서 묻는 것이 나을 지경이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시간이 흐르고 이내 주변 정찰에 나섰던 순찰자들이 하나둘 복귀해 상황을 물었다.
“망령들 중 태반이 사라져 층이 텅 비어버렸습니다. 더 자세한 건 장거리 정찰을 나가봐야 알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미궁 인근이 완전히 비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통로가 무너져 탐색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남아 있는 통로를 보고 추측컨대 기존의 정보는 더 이상 소용이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복귀한 순찰자들의 보고는 영 영양가가 없었다.
“이제 가도 되겠나이까?”
사자의 말에 더 이상 그를 붙잡을 구실이 없어진 김진우가 결국 마지 못해 승낙해 주었다.
“가보아라. 그대의 주인에게는 배려에 감사하다 전하고, 조만간 전에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노라 전하라.”
“보고 들은 대로 전하겠나이다. 그럼 다시 만나 뵐 때까지 안녕하시기를.”
캐서린의 사자는 떠나갔다. 그리고 사자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거리 순찰을 나갔던 언더 엘프 순찰자와 나가 순찰자들이 9층의 상황을 전해주었다.
“서편으로 하루거리에 못 보던 미궁이 생겨났습니다!”
“동쪽으로 반나절 거리에 무너진 미궁의 흔적이 있습니다!”
“동북 방면에서 소규모 부대의 야영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남편 하루거리에 대형 미궁이 발견되었습니다!”
잇따른 보고에 김진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순찰자들의 보고 속에서 도대체 몇 층이 9층과 맞닿은 것인지 알 수 없었던 탓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미 유명무실해지다시피 한 저층에는 멀쩡한 미궁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만약 멀쩡한 미궁이 발견되었다면 그건 심층의 어딘가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가 부대 다섯을 대기시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라!”
김진우는 나가들을 대기시키는 한편, 미궁의 복구를 서둘렀다.
“다시는 부서지지 않도록 더욱 더 보강하겠습니다.”
다이달로스는 한동안 일거리를 잃고 미궁을 헤매고 다니다 파손된 대미궁을 보고 눈을 번뜩였다.
당장 그 모습만 봐서는 다이달로스가 이번 상황을 반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미궁에 미친 난쟁이의 실력만큼은 기대할 수 있었으니, 다시 태어날 대미궁이 전보다 더욱 더 단단해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아직은 힘이 부족해.”
혹시라도 9층과 맞닿은 층이 심층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준비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강대한 공작들을 상대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과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최소한 백작들의 인장을 흡수하여 힘을 더 키우기 전까지는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저가 그런 편의를 봐줄 리도 없으니 하루라도 빨리 대미궁을 완전히 복구시켜 해룡의 심장을 사용해야만 마음이 놓이리라.
그렇게 그가 미궁의 복구에 박차를 가하는 와중에도 대미궁의 출입구를 드나드는 순찰자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무용지물이 된 9층의 전도를 조금이라도 빨리 파악하기 위해 가혹한 스케줄에 몸을 내던지기를 마다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정보를 얻어오지를 못하고 있었다.
“인근에 생성된 미궁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시일이 걸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순찰자들이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미궁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단지 모른다는 것이 정보가 될 때도 있었다. 지금이 딱 그런 경우였다.
자신의 가치를 입증받기 위해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지저의 탐색에 열을 올렸던 언더 엘프들은 심층이면 심층, 저층이면 저층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런 그들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미궁들이라면 최소한 12층 공작들의 영지일 가능성이 높았다.
“모아이들이 넘어왔던 통로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보고는 그조차 아니라 말했다.
“아무래도 9층과 맞닿은 층이 이곳 지저의 층이 아닐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겠어.”
하지만 아직 속단하기에는 일렀다. 변해버린 지형 탓에 순찰자들이 단순히 이전 통로의 위치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일 가능성도 있었다.
모든 상황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찰 인력을 더욱 늘려야 했다.
“일단 저쪽도 이번 지진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은 확실해요. 그렇지 않고서야 미궁의 문을 걸어 잠그고 저렇게까지 조심하고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도미니크의 말이 일견 타당성이 있었다.
“확인 차 접근하기에는 위험 요소가 너무나 많다. 당분간은 주변을 에워싸고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미궁 밖으로 머리카락이라도 보일라 치면 내게 바로 보고하는 것도 잊지 말고.”
하지만 그 덕분에 미궁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도 늦어지고 말았지만, 김진우는 개의치 않았다.
시간이 필요한 것은 이쪽이 저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던 탓이다.
이쪽은 파손된 미궁을 복구하는 즉시 해룡의 심장을 사용해 다시 한 번 미궁의 강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전력의 상승을 꾀할 수 있었으니까.
혹시라도 저쪽 역시 기연이 닿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지만, 같은 상황이라면 하이로드의 힘과 대미궁이 버티고 있는 이곳이 더욱 유리할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대미궁에 웅크린 채 어서 이 초조한 시간이 다 지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이나 기다리던 미궁의 수복이 드디어 완료되었다.
[대미궁의 수복 및 보강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기존의 함정과 시설 대부분이 복구되었고, 더욱 보강되었습니다.] [파괴되었던 이종족들의 거주지 역시 몽마들의 거주구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복구되었습니다.] [고통으로 신음하던 대미궁이 겨우 안정을 찾았습니다. 대미궁은 더 이상 거주민들을 보며 군침을 흘리지 않게 되었습니다.]거의 반파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미궁이 완전히 복구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주일도 되지 않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창고에 가득했던 다운 잼 대부분이 소모되기도 했지만, 미궁의 회복만 앞당길 수 있다면 다운 잼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이라도 갖다 바쳐야 할 판국이었다.
[미궁 설계자 다이달로스는 자존심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지저에 다시없을 거라 생각했던 자신의 작품이 찾아온 재앙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 것은 그에게 크나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두 번 다시 자신이 설계한 미궁이 파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미궁의 수복과 보강 작업에 혼을 던졌습니다.] [장인을 넘어 명장의 등급에 오른 다이달로스의 손길에 대미궁이 다시 한 번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대미궁의 내구도가 지진 이전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대미궁의 일부가 지저의 맥과 연결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대미궁은 제 몸을 돌보기 위해 대미궁의 거주민들을 두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미궁이 손상될 경우 1차적으로 맥에 보관된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맥의 에너지는 거대한 대미궁을 지탱하기에는 초라하기만 했지만, 다이달로스는 맥의 에너지가 다운 잼에 모이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모자란 에너지의 집적 속도를 올렸습니다.] [덕분에 기존의 맥은 더 이상 다운 잼을 생성하지 못하고, 완전히 대미궁에 종속되고 말았습니다.] [순리를 거스른 작업에 지저의 맥이 혹사당합니다. 맥의 수명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미미르가 보았다면 난리를 쳤을 메시지였다. 지저의 근간을 이루는 맥이 손상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김진우는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 있어 지저란 수단에 불과했을 뿐, 지저의 맥이 완전히 소멸되든 고갈되든, 자신의 사후라면 애시당초 신경 쓸 만한 문제도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우서에 의해 한 번 고갈되며 쓸 모를 잃은 지저의 맥이 이런 식으로라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기쁜 얼굴을 해보였다.
“청이 있습니다.”
고된 작업에 피로해진 모습으로 다이달로스가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여러모로 수복된 미궁이 마음에 들었던 김진우는 꺼리지 않고 큰 머리 난쟁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말하라.”
“비록 한 번 파괴되었다지만, 덕분에 전보다 더 나은 아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단언컨대 똑같은 지진이 찾아온다고 해도 이번에는 쉬이 파괴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결과물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었던 것인지, 다이달로스는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바로 본론을 말하라 다그쳤을 그도 이번만큼은 그 장황한 공치사를 전부 들어주었다.
“아마도 이 이상 손을 댄다고 해서 미궁이 나아지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인님께서 갖고 계신 해룡의 심장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복원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를 말해줄 때 얼핏 꺼내었던 해룡의 심장에 대한 이야기를 용케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걸 지금 나한테 말하는 이유는?”
그렇게 물으니 다이달로스가 열기에 가득 찬 얼굴로 대답했다.
“제게 해룡의 심장을 맡겨주신다면, 주인님께서 바라시던 것 이상의 결과물을 내보이겠노라 약속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