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17)
던전 견문록-217화(217/319)
# 217
던전 견문록
제 218 화
어지간해서는 다이달로스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했던 김진우도 이번만큼은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해룡의 심장은 그가 천신만고 끝에 겨우 얻은 귀물. 나가 일족의 미래를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물건이었다.
그런 중요한 물건을 선뜻 내어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안 돼요!”
어지간해서는 그의 결정에 토 다는 법이 없던 도미니크가 끼어들어 완강히 거부감을 표했다. 그녀는 일족의 미래가 달린 해룡의 심장이 다른 자의 손에 들어가기를 바라지 않는 눈치였다.
그녀 뿐만 아니라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만을 해오던 퀀투스를 비롯한 나가 영웅들도 다이달로스를 씹어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주인님께 이리 간절히 부탁드린 적은 없어요. 부디 주인님…….”
망설이는 그를 보며 도미니크가 숫제 애원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무엇이 달라지지?”
“주인님!”
“왕이시여!”
희비가 엇갈렸다. 나가들은 사색이 되었고 다이달로스는 웃었다.
“단순히 해룡의 심장으로 나가들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미궁 자체를 다시 한 번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꽤나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군.”
이제는 도미니크를 비롯한 나가들의 얼굴에 절망이 어릴 지경이었다.
“또한 나가들 역시 해룡의 심장만으로 성장하는 것 이상의 성장을 할 것이라 장담합니다.”
“호오, 좋은 것 투성이야. 그런데 말이야.”
김진우는 고개를 푹 숙인 도미니크를 한 번 힐끗 보고는 다시 다이달로스를 바라보았다.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지.”
그런 그의 표정에 어느새 냉담함이 서려 있었다.
“그러한 작업에 수반되는 일체의 위험을 모두 고하라. 전부 듣고 하자가 없다 판단되면 그대의 청을 들어주겠노라.”
다이달로스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애매한 얼굴로 그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만약 그 청이 허황되기만 한 그대의 사리사욕을 위한 것이었다는 판단이 들면…….”
김진우의 눈빛에서 푸른 광채가 뚝뚝 흘러내렸다.
“친애하는 나가들을 능욕한 죄로 그대를 갈기갈기 찢어 대미궁의 먹이로 주겠다.”
그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도미니크가 번쩍 얼굴을 들었다.
“주인님…….”
“나는 처음에도 나가들의 왕이었고, 앞으로도 나가의 왕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니 그대들은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나가 일꾼 몇과 병사 몇으로 시작했던 미궁이 이제는 수천의 병력을 거느린 강대한 미궁이 되었고, 그 자신은 하이로드에 올라 탐욕이라는 진명을 받았지만 그는 여전히 나가들의 왕임을 자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지저에서 모든 것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다 해도 나가들만큼은 절대로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던 탓이다.
“왕이시여!”
퀀투스를 비롯한 나가들이 감격한 얼굴로 무릎을 꿇으며 그를 칭송했다.
오직 나가 마법사들이 다이달로스와 해룡의 심장을 번갈아 바라보며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얼굴을 해보였을 뿐이다.
“그러니 그대는 숨기는 것 없이 모두 털어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분위기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흘러가자 다이달로스가 다소 당황한 얼굴로 눈알을 데룩데룩 굴려댔다.
“어서 말하라, 나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
김진우는 그런 다이달로스를 엄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다그쳤다.
“그게… 아주 사소한 위험이 있기는 합니다.”
“말하라, 사소한지 아닌지는 내가 듣고 판단할 문제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인지 다이달로스가 눈을 질끈 감고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일이 잘못될 경우, 나가들의 성장에 돌아가야 할 기운이 전부 대미궁에게 흡수당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나가들은 어떠한 성장도 이룰 수 없겠지요. 물론 그 어떤 경우에도 기존의 나가들이 위험해지는 일은 없을 거라 확신합니다.”
속이 빤히 보이는 이야기였다.
미궁에 미친 다이달로스에게 있어 나가 일족의 미래란 그저 남의 이야기에 불과했으니, 애초에 그는 해룡의 심장을 통해 대미궁을 다시 한 번 성장시킬 생각만 했을 게 빤했다.
말하자면 나가 일족 전체의 미래와 대미궁의 성장을 두고 저울질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김진우에게 있어 나가들이란 그저 일개 소환수가 아니었다. 그 스스로가 하이로드 이전에 나가들의 왕, 나가라자(용왕)였으니까.
“그렇게 될 가능성은?”
이미 판단은 내렸다. 지금 그가 던진 질문은 형을 집행하기 전에 던지는 재판관의 확인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그 모든 사실을 깨달은 다이달로스가 절망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절반… 절반입니다.”
이로써 다이달로스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지닌 재주가 뛰어나 곁에 두고 싶지만, 사리사욕을 위해 번번이 그의 눈을 가리기를 주저치 않으니 그대로 두었다가는 언젠가 사달을 일으키고도 남을 존재였다.
“다이달로스를 구금하고 그 어떤 편의도 제공하지 말라. 큰 머리 난쟁이들을 보내 그의 지식을 남김없이 습득시켜라. 그의 생과 사는 그 이후에 결정하겠노라.”
태어날 때부터 충성심이 각인된 서리 큰 머리 난쟁이들이라면 다이달로스처럼 그를 기만하는 일은 시도치 않으리라.
“주인님!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그런데 그 순간 뜻밖에도 도미니크가 다이달로스의 구금을 막았다.
“혹시 다이달로스를 즉결 처분하지 않는 것이 불만인가.”
“어찌 감히 주인님의 뜻에 왈가왈부할 수 있겠어요. 그저 저희들에게 잠깐의 시간을 주시기를 부탁드려요. 다이달로스에 대한 처분은 그 이후에 부탁드리고 싶어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도미니크의 말에 김진우가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감사해요, 주인님!”
도미니크가 퀀투스를 비롯한 나가 영웅들을 끌고 오너 룸을 나섰다. 무언가 긴요한 이야기라도 할 모양인지 그렇게 나간 도미니크가 다시 돌아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제 됐나?”
“네, 주인님.”
사뿐히 다가와 그의 발치에 무릎 꿇은 도미니크가 갑자기 진중한 음성으로 외쳤다.
“다이달로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세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난데없는 말에 그가 일순간이나마 어벙한 얼굴을 해보였다.
그런 그를 향해 도미니크가 조리 있게 일족의 뜻을 전달해 주었다.
“사실 저희 일족은 요즘 들어 주인님께 큰 힘이 되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고 있었답니다. 저희 중 가장 강한 퀀투스라고 해도 까마귀는커녕 다른 영웅급 소환수들에 미치지 못하니 그러한 상황은 앞으로 더욱 더 심해지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하지만 해룡의 심장이 내 손에 있는 이상, 그런 걱정도 이제는 끝일 테지.”
평소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전혀 짐작치 못했던 김진우는 애통함마저 담긴 도미니크의 음성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사실상 용기사 부대만이 제 몫을 하고 있을 뿐, 나가 영웅들은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 조우하게 될 심층 공작들의 정예라면 나가 영웅들의 무력한 모습은 더욱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김진우도 서둘러 해룡의 심장을 사용하려고 했던 참이었다.
하지만 도미니크는 해룡의 심장을 사용한다 해도 자신들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며 다이달로스를 구금하는 것을 만류했다.
정상적인 성장이라면 사실상 나가들은 12층의 소환수들에 미칠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논리였다.
“설령 이번 일을 대가로 저희 일족의 미래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저희는 주인님을 결코 원망하지 않아요. 오히려 저희는 주인님께서 힘들여 구한 해룡의 심장을 사용하고도 주인님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더욱 더 두렵답니다.”
퀀투스 역시 나서서 그녀의 의견에 나가 일족 전체가 함께함을 거듭 강조했다.
“부디 저희들의 청을 받아주시어 저희 일족이 주인님께 부끄럽지 않게 해주세요.”
한참을 고민하던 김진우의 시선이 다이달로스를 향했다.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난쟁이는 눈을 빛내며 그의 결정을 기대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얼굴이 어찌나 밉살맞은지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다이달로스.”
“말하소서.”
희열에 가득 찬 입꼬리가 치켜 올라가는 것을 안간힘을 다해 참는 얼굴로 다이달로스는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기회를 주겠다.”
다이달로스가 화색을 띄었다.
“그대가 말한 절반의 확률을 절대로 바꾸어라. 그리 하면 내 그대가 나를 기만하고 나의 충성스러운 전사들을 기만한 죄를 더 이상 묻지 않겠노라.”
하지만 그도 잠시였을 뿐, 이어진 말에 다이달로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애시당초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이리 군주의 분노를 사는 일도 없었을 터. 불가능을 가능케 하라는 그의 말에 난쟁이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건…….”
“이견은 받지 않겠다. 만약 그대가 나의 말을 따를 수 없다면, 지금 당장 그대의 지식을 전부 뽑아내고 그대의 쓸모없는 육신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호법룡의 먹이로나 쓰겠다.”
일말의 여지조차 없는 단호한 어투에 결국 다이달로스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
일단의 소란 덕에 해룡의 심장을 사용하는 것은 다시 연기되었다.
언제 인근의 미궁들이 떨치고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힘이 절실했지만, 그는 나가들을 위해 조금은 무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혹시라도 도박이 성공해 다이달로스가 임무를 완수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으니,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렇게 복잡한 문제를 겨우 일단락 지은 김진우는 또다시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릭샤샤가 이상해요!”
지상의 미궁에 배치받은 이준영이 황망한 얼굴로 찾아온 것이다.
“릭샤샤가?”
릭샤샤라면 혹시 모를 디나리온의 마수를 피하기 위해 지상에 피신시킨 바 있었다.
요정 군주의 후예로서 하이로드의 계승권과 관계가 있는 그녀는 그만큼 중요한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에 김진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황급히 지상의 미궁을 찾은 그는 열병을 앓듯 몸져누워 일어서지 못하는 릭샤샤를 보고 신음을 흘렸다.
“주, 주인이시여. 미천한 종이…….”
“그대로 누워 있어.”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는 릭샤샤의 몸이 온통 땀으로 흥건했다.
가뜩이나 창백하던 얼굴은 마치 시체의 그것처럼 푸르게 변해 있었고, 입술은 보랏빛으로 변해 당장에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2주 전쯤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갑작스레 쓰러져 일어날 생각을 않았습니다.”
밀착 경호를 맡았던 모리건이 쓰디쓴 얼굴로 그간의 상황을 보고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김진우의 얼굴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2주 전이라면 지저에 1차 복원이 일어나던 그 시점이었다.
요정 군주의 계승권과 깊은 관계가 있는 릭샤샤가 시기를 맞춰 쓰러진 것이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어쩐지 그녀의 혼절과 하이로드의 계승권이 깊은 연관이 있을 거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외에 이상한 점은?”
어느새 다시 잠이 든 릭샤샤의 파리한 얼굴을 바라보던 김진우가 모리건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라고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해 설명할 길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 그의 의문을 풀어준 것은 지상에 배치해 두었던 겨우살이 나무들이었다.
“그녀는 가장 고귀한 요정의 핏줄. 필요한 때 필요한 곳에 있지 못했으니 저대로라면 하루하루 앓다가 죽어가겠지요.”
지저에서 가장 현명한 현자들이라는 겨우 살이 나무들답게 그들은 릭샤샤의 상태에 대해 뭔가 아는 듯한 눈치였다.
“그게 무슨 말이지?”
겨우살이 나무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약속된 때가 임박했으나 마땅한 임자를 찾지 못해 전해주어야 할 씨앗을 전해주지 못했으니, 씨앗이 스스로 발아하여 그 연약한 육신을 좀먹고 있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