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19)
던전 견문록-219화(219/319)
# 219
던전 견문록
제 220 화
80. 새로운 크리쳐
“대미궁 서쪽 방면, 미궁 밖으로 크리쳐들이 나왔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현재 분석해 본 결과, 지저 그 어느 층에서도 발견 된 바 없는 존재들입니다!”
도미니크의 보고에 김진우가 벌떡 왕좌에서 일어났다.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염소와 인간 새의 모습이 뒤섞인 크리쳐는 지저 어디에서도 발견된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라 확신합니다. 게다가 언더 엘프 순찰 조장이 접촉해 본 결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답니다.”
확신에 찬 대답에 그가 와락, 하고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망할 놈들! 같은 지저의 층이 합쳐진 거라더니!”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던 상황은 아니었지만, 막상 캐서린의 사자가 전해준 정보가 전부 엉터리였음을 직접 확인하자 짜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최초로 조우한 순찰조는 어떻게 하고 있지?”
검지에 힘을 주고 잔뜩 주름이 잡힌 미간을 꾹꾹 누르며 물었더니, 도미니크가 참담한 얼굴을 해보였다.
“현재 최초 보고 이후로 어떤 보고도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언더 엘프 순찰자들의 연락망은 그 비법이 궁금할 정도로 긴밀하고 촘촘했다.
그런 그들의 보고가 늦어지고 있다는 건 절대로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전령 하나를 뒤로 뺄 새도 없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거나, 그도 아니면 애초에 보고할 인원이 남아 있지 않든가 둘 중에 하나였다.
결국 어느 쪽이더라도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언더 엘프 순찰자들의 전투력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은신과 도주에는 그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언더 엘프 순찰자들이 당했다면, 적들의 전력은 최소한 이쪽 지저의 심층 백작급 이상일 게 확실합니다.”
도미니크는 자신을 비롯한 나가들이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전력 보강이 늦어진 건 아닌가 자책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김진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그녀가 했던 말은 전부 옳았으니까.
그는 고개를 푹 숙인 도미니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나가들이 완전히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할 만큼 우리 미궁은 약하지 않아.”
며칠 전이었다면 부족한 전력에 긴장했겠지만, 지금의 그는 여유가 넘쳤다.
“발리셔스에게 전해라! 먼저 회복된 모아이들을 우선적으로 전투에 투입하겠다!”
그에게는 또 다른 대안이 있었으니까.
***
어눌한 말투에 흐리멍텅한 눈빛, 어기적거리는 몸짓은 영 어색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 막 회복된 육신에서 느껴지는 힘만큼은 진짜였다.
“이번 전투는 이들만으로도 충분하겠군.”
그렇게 김진우는 이제 막 회복된 모아이, 고대의 영웅급 소환수들을 보며 짤막한 감상을 남겼다.
“지금은 겨우 서른일 뿐입니다. 장담컨대 너무 늦지 않게 전원 회복시켜 보이겠습니다.”
발리셔스가 그 안에 담긴 진한 만족감을 느꼈는지 우쭐한 얼굴로 성큼 나서 입을 나불거렸다.
“어련하겠나, 그대가 직접 몸을 던져가며 얻은 결관데.”
직접 몸을 던져 실험체가 되는 만행 끝에, 마침내 발리셔스가 해냈다.
그는 미궁 밖을 나서지 않았던 탓에 지저의 악의에도 오염되지 않았고, 덕분에 깨어진 그릇을 대체할 다운 잼을 박아 넣는 것만으로 다시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회복된 발리셔스는 모아이의 붕괴된 신체를 어떻게 재구성해야 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 결과 그를 따라온 수백의 모아이 중 일부를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또한 그가 타이밍 좋게 대미궁을 굴복시키지 않았다면, 모아이들을 대미궁으로 들일 수 없었을 테니 그야말로 천운이 따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그는 붕괴된 육신을 다잡은 영웅급 소환수 서른을 전력에 편입시킬 수가 있었다.
“일단 이전의 지성을 완전히 찾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당장 전투에 투입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전투는 머리보다는 몸으로 하는 거니까요.”
발리셔스가 회복시킨 모아이들은 전부 고대의 영웅급 소환수들이었다. 본신의 힘이 남다른 고대의 소환수들이니 만큼 수가 적어도 충분히 제 몫을 하고도 남을 게 분명했다.
“기대하도록 하지.”
그대로 있다간 날이 새도록 발리셔스의 호들갑을 받아주어야 할 판국이라 김진우는 짧게 상황을 정리했다.
발리셔스도 공치사보다는 제 작업실로 돌아가 모아이들과 씨름하는 것이 좋은지 군말 없이 회복된 모아이, 고대 소환수들을 인계해 주고는 사라졌다.
원래대로였다면 충성의 과정이니 시험이니를 치렀어야 했겠지만, 회복된 모아이들 자체가 이미 하이로드의 기운에 이끌려 따라온 이들이다.
그들은 어떤 거부감도 없이 그의 지시를 따라 퀀투스를 위시한 나가 부대에 녹아들었다.
“도미니크, 내가 없는 동안 미궁을 부탁한다.”
도열한 나가 부대들을 뒤로 하고 김진우가 도미니크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대미궁 스스로가 어느 정도의 방어력은 발휘할 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적의 도발을 주의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미궁은 걱정 마시고, 부디 주인님께서도 조심하시기를.”
“걱정 마, 무리할 생각은 없으니까.”
전쟁을 치르기에는 적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부족했다.
상대가 타 지저의 심층 미궁이 맞다면, 그것이 백작급의 미궁인지 그도 아니면 공작급의 미궁인지조차 모르는 상황.
적을 먼저 알아야 전력을 꾸릴 수가 있었다.
“그럼 다녀오도록 하지.”
미리 대기하고 있던 호법룡 위에 올라탄 김진우가 나가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출진!”
***
대미궁 밖의 세상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많이 변했군.”
그간 미궁 내의 일이 많아 단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김진우는 변해버린 지저의 모습에 감탄 아닌 감탄을 토해냈다.
짙게 깔린 어둠이야 여전했지만 그 외의 것들은 11층 심층에나 가야 볼 수 있을 법한 모습이었다.
호법룡 몇 마리가 나란히 서면 꽉 차던 좁디좁은 통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뻥 뚫린 통로는 용기사 십수 마리가 일제히 내달려도 될 정도로 널찍하기만 했다.
천장 역시 저 높이 솟아올라 더는 모리건이 바닥을 스치듯 비행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이따금씩 만나는 공터 역시 거대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잠깐 정지! 여기서 쉬었다가 가도록 한다.”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언더 엘프 순찰자를 발견한 김진우가 부대에 휴식을 명령했다.
“보고하라.”
“연락이 끊겼던 순찰 17조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일단 적과 거리를 두라 명령했더니, 따로 실종된 순찰조의 행방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언더 엘프 순찰자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아무래도 생존자는 없을 듯합니다.”
언더 엘프들이 즐겨 사용하던 곡도는 중간부터 날이 부러져 있었고, 손잡이 부분에는 검붉은 얼룩이 잔뜩 묻어 있었다.
“적들의 위치는?”
김진우는 동료를 잃은 언더 엘프를 위로하는 대신 적의 행방을 물었다. 복수보다 더한 위로는 없을 거라 생각했던 탓이었다.
“현재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부터 동남쪽으로 이동하여 인근을 천천히 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당황한 것은 상대 쪽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언더 엘프가 설명해 준 바에 의하면 그들의 이동은 지극히 조심스럽고 더뎠으며, 처음 출몰했던 미궁의 근방을 크게 벗어나는 법이 없다 말했다.
하기야 지저에 누가 있어 복원을 예상했고, 층과 층이 이동하여 맞닿을 것을 예상했을까. 천재지변에 혼란스럽기는 정보가 없는 상대가 더할 게 분명했다.
“반나절이면 만날 수 있겠군.”
순찰자를 통해 대략적인 방향과 거리를 가늠한 김진우가 부대의 이동을 명령했다.
“현재까지 미궁 밖으로 나온 적의 부대는 전부 2, 30 정도의 소규모 부대로, 총 열두 개의 부대가 근방에서 정찰 활동 중입니다.”
이동하는 사이에 적의 병력이 늘어났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광범위한 정찰 활동을 하는 적 부대들은 서로 간의 거리가 멀어 긴밀한 연계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부대 한두 개를 따로 목표 삼아 처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속도를 올린다!”
만약 저쪽에서도 정찰 부대를 운용 중이라면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것보다 전격적으로 이동하여 대비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 이득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호법룡에 올라탄 채 나가들의 이동속도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그렇게 나아가기를 한참, 김진우는 언더 엘프의 수신호에 다시 부대를 멈춰 세웠다.
“소규모 적 부대 하나가 서북 방향에서 접근 중이랍니다.”
“그놈들인가?”
앞뒤 다 잘라낸 질문이었지만 순찰자는 용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닙니다. 놈들과는 조금 더 거리가 있습니다. 지금 접근 중인 적은 새로운 부대입니다.”
아무래도 적의 정찰 부대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듯했다.
“규모는 열여섯, 그중 영웅급으로 보이는 적의 수는 지휘관을 포함하여 넷입니다.”
상당한 전력이었다. 수 자체야 소규모 정찰 부대답게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영웅급 소환수의 비율이 거의 25프로라는 건 경계해야 할 일이었다.
이로서 9층과 맞닿은 타 지저의 층이 심층일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어지간한 저층의 미궁이라면 고작 정찰 부대에 저 정도의 영웅급 소환수를 저만큼이나 배치할 수 없었을 테니까.
“어쩌면 어딘가의 공작일지도 모르겠군.”
김진우가 예상을 웃도는 적의 전력에 잠시 고민하는 사이, 언더 엘프가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대로 적의 이동 경로를 피해 가시겠습니까?”
“어차피 적들도 흔적을 추적하는 일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무의미한 이동은 지양하도록 한다.”
“그렇다면?”
“적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공격한다.”
언더 엘프 순찰조 하나가 전멸하며 대화로 서로의 화평을 다질 기회는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애초에 먹느냐 먹히느냐의 율법만이 존재하는 지저에서 타 지저의 미궁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적을 추격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방에서 순찰자들이 적의 흔적을 보고했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안내를 맡은 순찰자들은 그들이 전해준 정보를 토대로 부대를 이끌었다.
그 결과 대미궁을 나선 지 불과 한나절이 채 지나지 않아 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놈들이군.”
적은 맹수도 인간도 아닌 반인반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염소의 하체에 인간 사내의 상체, 정수리 하얀 독수리의 머리를 한 적들은 어지간한 나가 용사들 이상으로 몸집이 컸다.
그 모습을 보고도 언더 엘프 순찰자들이 왜 추가 보고를 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전멸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게 차라리 이상한 일이었다. 그만큼 적들은 날래고 강해보였다.
하지만 지금의 김진우에게는 그런 사실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부대에서도 내로라하는 강자들만을 추려 곧장 적들을 공격했다.
“캬앗!”
예상치 못한 기습에 반인반마들이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흉성을 돋웠다. 그런 그들을 모리건을 위시한 고대의 영웅급 소환수들이 덮쳤다.
나가들이 일순간 넓게 퍼져 적들을 포위했고, 순식간에 전투가 벌어졌다. 그리고 이내 사방에 피가 튀고 사나운 포효와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