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26)
던전 견문록-226화(226/319)
# 226
던전 견문록
제 227 화
“드디어 도착했다!”
방준혁이 저 멀리 보이는 공터와 협회에서 제공한 지도를 번갈아 바라보며 환호했다.
“어? 근데 분위기가 뭐 저리 험악해?”
어지간한 학교 운동장은 되어 보일 법한 공터에 버글버글하게 모여 있는 탐색자들. 그런데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번뜩이는 날붙이들이 이곳저곳에 설치된 조명을 받아 번쩍이고, 탐색자들의 눈빛도 제 손에 쥐어진 그것만큼이나 살벌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눈에 힘을 준 일행이 어떻게든 상황을 먼저 파악해 보려고 했지만, 공터를 가득 메운 탐색자들 탓에 그 너머가 보이지를 않으니 도통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답답한 마음에 앞의 무리에 합류했다.
“이게 대체…….”
바짝 독이 오른 탐색자의 얼굴을 본 방준혁이 상황을 물으려다 그대로 굳어버렸다. 뒤늦게 선두의 상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탓이었다.
“미친 짱깨 새끼들이…….”
하지만 몸이 굳는 것도 잠시였을 뿐, 방준혁은 금세 살기등등한 얼굴로 무기를 뽑아 들었다.
“저희가 도착하기 전에 시비가 붙었던 것 같아요. 우리 탐색자로 보이는 몇이 쓰러져 있는데, 바로 앞에 중국 놈들이 있답니다.”
앞서 달려가 현장을 확인한 이준영이 김진우에게 저 앞의 상황을 설명했다.
“아무래도 협회 측에서 최대한 무력 충돌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한 상황이라 함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같지도 않은 소리. 협회에서 뭐라 한들 지 놈들이 나설 생각이었다면 진즉에 나섰겠지. 전부 다 핑계일 뿐이야.”
그의 눈에는 보였다. 분명 대한민국의 탐색자들은 기가 눌려 있었다. 무기를 뽑아 들고 눈을 번뜩이고 있었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진짜 달려들 것처럼 구체화된 살기를 뿜어대는 이는 없었다.
“원래 겁먹은 개가 이를 보이고 짖어대는 법이지.”
“그건…….”
이준영은 그의 신랄한 말에 지은 죄도 없이 찔끔한 얼굴을 해보였다. 그녀라고 왜 모를까, 평소라면 진즉에 달려들었을 사나운 탐색자들이 저리 이만 갈아대고 있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대한민국의 탐색자들에게도 변명은 있었다.
먼저 중국 측 탐색자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이쪽은 협회가 내건 포상 탓에 또 다른 게이트를 찾겠다고 태반이 흩어진 상황이라, 게이트 앞에 모인 수가 일백을 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중국 측의 탐색자들은 그 두 배가 넘었으니 기세에서 밀리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탐색자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바로 심층의 던전 베이비가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중국은 그 많은 인구수만큼이나 많은 심층의 던전 베이비들이 있었다.
그들은 질 걸 알면서도 달려드는 투견이 아니었다. 차라리 생존을 택한 야생의 늑대였으니, 전력상 열세인 지금으로선 복수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하지만 김진우는 다음을 기약할 생각이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
저 앞에서 잘난 듯이 떠들어대는 사내의 모습이 유달리 눈에 거슬렸다.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이만 갈아대는 대한민국 탐색자들의 모습도, 그 앞에 기고만장해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중국 측의 탐색자의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눈에 거슬리느냐 묻는다면, 그는 주저 없이 저 시끄러운 사내를 가리킬 것이다.
그것이 자신에게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소속감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같잖은 유대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사내의 목소리가 칠판을 손톱으로 긁듯 귀에 거슬리기만 했다.
그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상대의 기운이 익숙합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진 냄새이긴 하지만 상대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기운은 분명 지저 귀족의 그것입니다. 백작이라고 하기엔 미약하고 남작이라 하기에는 다소 강한 기운, 분명 상대의 기세는 하위 귀족의 위엄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상대는 지저의 자작이 분명합니다.]사내는 지저의 귀족, 자작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자신의 분노가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역시 알게 되었다.
하찮은 자작 나부랭이가 자신 앞에서 떠들어대는 모습이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주인님?”
서늘한 얼굴로 서서히 기세를 피워 올리며 나아가는 그를 본 이준영이 놀라 저도 모르게 주인님이라 불렀다가 흠칫 입을 가렸다.
“잠시 다녀오지.”
***
방준혁과 저 앞에서 바닥을 나뒹구는 던전 베이비가 서로 면식이 있는 사이였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화가 났다.
“망할 짱깨 새끼들.”
다만 그 화를 풀 방법이 없었다.
그저 기분대로 하기에는 전력차가 너무나 명확했다. 안타깝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
뒤늦게 자신과 동행한 12레벨의 던전 베이비를 떠올리고 잠시나마 기대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그 기대는 묵살당하고 말았다.
“같지도 않은 소리. 협회에서 뭐라 한들 지 놈들이 나설 생각이었다면 진즉에 나섰겠지. 전부 다 핑계일 뿐이야.”
무언가 심사가 꼬인 듯한 음성, 그 신랄한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저 심층의 던전 베이비가 나서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만큼 그 어조에 담긴 경멸은 명백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을 뿐, 그는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유달리 선명하게 들려오는 발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돌렸다.
“비켜.”
언제 다가온 것인지 김진우가 바로 뒤에까지 와 있었다. 그 서슬퍼런 음성에 그가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물러났고, 다른 이들 역시 무심코 그에게 길을 터주었다.
“악!”
그리고 그가 무리의 가장 앞까지 다가갔을 때, 기세등등해서 뭔가를 떠들어대던 중국 측 던전 베이비의 입에서 조롱이 아닌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알량한 힘을 자랑하는 것도 좋은데.”
뒤늦게 고통을 참고 임전 태세를 갖추는 사내를 본 그가 코를 찡긋거리며 말했다.
“때와 장소를 잘 가렸어야지.”
중국 측 탐색자들 사이에서 비명이 마구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처음에는 저 건방진 사내의 손을 봐주고 균형을 맞추는 것을 끝으로 자리를 벗어나려던 김진우였다.
어차피 그의 목적은 게이트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상층부의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었고, 사실상 지금만 해도 어느 정도의 목적을 이루었다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금세 생각을 고쳐먹어야 했다.
[상대의 기운이 익숙합니다. 상대의 몸에서 가장 격 낮은 말단 귀족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상대의 기운이 익숙합니다. 상대의 몸에서 가장 격 낮은 말단 귀족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상대의 기운이 익숙합니다. 상대의 몸에서 격 낮은 하위 귀족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상대의 기운이 익숙합니다. 상대의 몸에서 가장 격 낮은 말단 귀족의 기운이 느껴집니다.]놀랍게도 중국 측 탐색자들 중 상당수가 지저 귀족의 위를 지니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기세가 강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지저 귀족의 기운이 섞여 있었으니, 적진을 누비는 그의 손발이 바쁘기만 했다.
“끼요오오옷!”
개중에는 담 크게도 그에게 달려드는 이도 있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하이로드의 일격을 받아내지 못하고 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우으으으으.”
그렇게 얼마나 일방적인 구타를 벌였을까. 바닥을 나뒹구는 중국 측 탐색자들의 수가 스물이 가까워질 때쯤 더 이상 그에게 이를 드러내는 이는 남아 있지 않았다.
한국의 탐색자들이 전력의 열세를 느끼고 몸을 숙인 것처럼, 중국의 탐색자들 역시 대항을 포기했다. 무려 200에 달하는 던전 베이비들이 그 하나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김진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전승의 위업에도 포함시키지 못할 이 작은 승리에 만족하는 것보다 대관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중국 측 탐색자 중에 이다지도 많은 지저의 귀족들이 존재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당장 문제가 있었다. 그는 한국인이었고, 상대는 중국인이었다. 당연하게도 둘 사이에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이 중에 중국어 가능한 사람 있나?”
그가 그렇게 물으니, 탐색자들의 시선이 피떡이 되어 바닥을 나뒹구는 이름 모를 탐색자를 향했다.
“제길.”
어쩐지 협회 측의 간부가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가장 먼저 당했던 모양이다.
***
「끄응, 잘 하셨습니다.」
부상자들을 챙겨 게이트를 나선 김진우가 안쪽의 상황을 설명해 주니 박성진이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네가 나에게 부탁한 건 두 가지였지. 하나는 또 다른 게이트가 존재할지를 확인할 것. 그리고 하나는…….”
「혹시 모를 중국의 도발을 분쇄해 달라는 거였죠.」
물론 조금 과하게 손을 쓰기는 했지만 그의 입장에선 나름대로 할 말이 있었다.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뒷수습을 생각하니 잠깐 머리가 아팠을 뿐이지, 사실 제가 원래 부탁드리려던 것도 크게 다른 건 아닙니다.」
박성진은 무력 충돌은 어쩔 수 없었으며, 기왕이면 밟히느니 밟는 쪽이 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할 거란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사실상 이쪽에서 중국 쪽의 게이트 하나를 막고 있는 건 좀 문제의 소지가 있는 거 아닌가?”
「뭐, 명분이야 그런데, 사실 중국이 땅덩어리가 워낙 크다 보니 게이트도 꽤나 많습니다. 공식적인 개수만 40여개에 달해서, 그중에서도 몇 개 정도는 층간 연결이 끊어진 단층 구조인데 이번에 발견된 게이트가 아무래도 그쪽 같습니다.」
이참에 대한민국의 게이트 하나를 더 차지하려는 중국의 야욕을 정부에서도 은근히 협회가 막아주기를 바라는 눈치라고 말했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는 이제 와서 지상의 외교 관계가 어떻게 되든 간에 큰 상관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들여 흡수한 협회가 정부에게 토사구팽 당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이쪽에서도 나름 준비해 두고 있으니 너무 염려 마십시오.」
골치 아픈 이야기는 그렇게 대강 마무리를 지은 김진우가 중국인 통역을 보내달라는 것을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주인니이이임!”
통화가 끝이 나기가 무섭게 품안에 와락 달려드는 부드러운 물체가 있었다.
“안젤라.”
꿀빛 머리가 더없이 아름다운 흡혈귀, 안젤라가 막무가내로 그의 가슴에 뺨을 부벼댔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요.”
“피라면 충분히 보냈을 텐데.”
지상의 일을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아예 수혈 팩에 피를 담아 그녀에게 보낸 적이 여러 차례였다.
그 덕분인지 그녀는 오랫동안 주인을 만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색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 걸로는 제 생명의 근원이 소실되는 거나 겨우 막을 정도라고요. 그리고 제가 보고 싶었던 건 주인님이지 주인님의 피가 아니에요.”
볼을 부풀린 안젤라가 서운한 얼굴로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금세 혀를 할짝거리며 눈을 빛내는 그녀를 보니 꼭 그 말을 100프로 믿을 수는 없었다.
“끄응.”
결국 손목 하나를 내어주는 것으로 재회의 인사를 마칠 수 있었다. 혀에 묻은 붉은 얼룩마저 한 점 남김없이 먹어치운 안젤라가 뒤늦게 자신을 찾은 용건을 물었다.
“제가 보고 싶어서 부르셨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는 없고.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잠깐 부탁하고 싶은 것도 있고. 아버지, 어머니의 안부도 물을 겸해서.”
지저의 일이 바빠 찾지는 못했지만, 양부모의 안부가 궁금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버님도 이제는 완전히 건강해지셨고요. 어머님도 잘 지내세요.”
“뭐? 아버님, 어머님?”
그 껄끄러운 호칭에 인상을 찌푸리던 김진우는 때마침 울려대는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어머니…….”
「매정한 녀석아, 이제 집에는 아예 들리지도 않을 생각이니?」
변명조차 궁색하기만 한 상황에 그저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됐고, 한 번 들려라. 새아가가 마침 너 만난다고 갔으니, 엇갈리지 않게 집에 꼭 붙어 있고.」
“새아가요?”
그가 기겁을 하며 되묻는데 바로 앞에 있던 안젤라가 검지를 펴 자신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