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3)
던전 견문록-23화(23/319)
# 23
던전 견문록
제 24 화
‘주인님!’
포탈을 타고 들어선 김진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을 부르는 도미니크를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지금 적이……!’
“알고 있어! 상황은?”
덜그럭거리는 꾸러미를 움켜쥔 그는 냅다 게이트를 향해 내달리며 물었다. 도미니크는 꼬리를 바쁘게 움직이며 그에게 설명했다.
‘적의 수는 서른둘! 현재 나가 수문장과 마법사 덕에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언제 무너질지 몰라요! 순찰 나간 병사들이 돌아오면 조금 해볼 만하겠지만 지금으로선 현상 유지도 버거워요!’
급박한 음성에 김진우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나가 병사들은 돌아오지 않아.”
가장 먼저 적과 교전을 시작한 이들이 나가 병사이다.
그런 그들은 돌아오지 않고 적이 미궁의 게이트까지 들이닥쳤다는 건 안 봐도 뻔한 이야기였다.
적들이 양동작전을 펼친 것이 아닌 이상 나가 병사들은 필시 전멸했으리라.
속이 쓰려왔지만 지금은 고민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병사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가뜩이나 병력도 모자란데 열세를 이겨낼 수 없어요!’
“난 이대로 게이트로 갈 테니 도미니크는 나가 일꾼들을 모아와.”
‘네? 나가 일꾼들은 왜……?’
“시간이 없어! 서둘러!”
일말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단호한 어조에 도미니크가 입술을 깨물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빌어먹을.”
항상 시간이 부족했다. 이번 일이 잘 끝난다면 다시는 이렇게 불시에 덜미를 잡히는 일 따위는 생기지 않게 하리라.
각오를 다진 그가 있는 힘껏 바닥을 박찼다.
***
“크아아아악!”
나가 수문장의 포효에 온 통로가 진동했다. 그 기세가 어찌나 사나운지 뒤편에서 수문장을 보조하던 나가 용사들마저 흠칫 놀랄 지경이다.
하지만 적들에게는 그저 시끄러운 고함 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모양이다.
수문장 앞에 버티고 선 용인(龍人)은 수문장의 포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주먹을 내질렀다.
그때마다 성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문장의 방패가 움푹움푹 찌그러졌다.
“잇쿰!”
그 순간 들려온 낭랑한 음성. 냉기가 불어 닥치며 게이트 너머의 통로가 꽁꽁 얼어붙었다.
“크악!”
그 바람에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한 용인이 신경질적으로 괴성을 내지르고 뒷걸음질 쳤다. 방금 전까지 용인이 있던 자리에 나가 수문장의 거대한 미늘창이 내리찍혔다.
“이런…….”
전장에 도착한 김진우는 생각보다 더욱 좋지 않은 상황에 인상을 찌푸렸다.
나가 수문장의 방패는 이쪽에서 그 너머가 보일 정도로 깨져 나가 구멍이 숭숭 나 있고 온몸은 피투성이였다.
나가 마법사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끊임없이 무언가를 읊조리고 있는데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아 보였다.
“비켜!”
이를 악다문 그는 냅다 소리치고는 달려가던 기세로 뛰쳐나갔다. 나가 용사를 지나며 손에 쥔 둔기를 빼앗은 그는 그대로 수문장을 뛰어넘었다.
맞은편에서 자세를 수습하고 다시 내달려오던 용인이 그를 보며 사납게 울부짖었다.
금빛 비늘은 더없이 단단해 보이고, 비늘로 둘러싸인 전신은 차라리 하나의 갑주라고 해도 좋을 근육으로 뒤덮여 있다. 돌기가 잔뜩 돋아난 주먹이 날아오는데 그 기세가 멀리서 볼 때와는 또 달랐다.
김진우의 눈빛이 변했다. 어둠 속에서 빛나던 검은 눈동자가 파랗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기세가 돌변했다.
그리고 그 순간 김진우가 내지른 둔기가 용인의 주먹과 충돌했다.
“끄악!”
용인이 오른손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커다란 눈을 질끈 감고 눈물까지 흘려가며 물러나는 용인의 오른손이 완전히 박살이 나 있다.
“눈을 감아?”
김진우는 그런 용인을 보며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0.1초 사이에 생과 사가 오가는 급박한 전투 와중에 목이 날아간 것도 아니고 주먹이 조금 다친 정도로 눈을 감고 도망치는 용인의 태도가 차라리 황당할 지경이다.
‘주인님!’
때마침 도미니크가 도착해 그를 불렀다. 막 발을 내디디며 용인에게 달려들려던 김진우는 정신을 차리고 전황을 살폈다.
어느새 용인은 적들의 대열 안에 숨어들었고, 자신의 손에 쥐어진 둔기는 머리끝부터 완전히 사라져 있다.
기세를 이어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상황, 고민하던 김진우는 다시 게이트 안쪽으로 돌아왔다.
‘나가 일꾼을 전부 데려왔어요!’
용인이 아무래도 적들의 리더였는지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서로 대치한 채 사납게 목을 울려대는 두 무리의 괴수들을 보며 김진우는 꾸러미를 풀었다.
거무튀튀한 금속 막대 다발을 본 도미니크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이건……?’
“인간들의 무기다. 산탄총이라 부르는 놈이지.”
이것이 그가 암상인의 제안을 거절하고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곰도 잡는 슬러그탄이 장전된 산탄총이라면 나가 일꾼도 어느 정도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꾸러미에는 아직 다른 유용한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김진우는 산탄총만을 꺼내 나가 일꾼들에게 분배했다.
“그 끝이 적을 향하게 해. 그리고 내가 명령을 내리면 손가락에 걸린 그 부분을 힘껏 당겨.”
전투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닌 탓에 그는 나가 일꾼들의 자세를 잡아주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앞에 일렬로 서. 명령하면 손가락 당기는 것 잊지 말고.”
지능이 낮은 일꾼들이었지만 그 정도는 문제없다는 듯 혀를 쉭쉭거렸다.
“근데 도미니크.”
‘네?’
나가 일꾼들이 쥔 산탄총이 신기한지 눈을 빛내고 있던 그녀가 김진우의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저놈이 교룡왕 아낙스투스인가?”
언제 회복되었는지 너덜너덜했던 주먹이 완전히 멀쩡해진 용인이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보며 그가 물었다.
‘아뇨. 교룡도 용맹하긴 하지만 저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지는 않아요. 그는 교룡이 아닌 드라칸이에요.’
“근데 그런 대단한 놈이 여긴 무슨 일이지?”
실제로는 손 하나 박살났다고 눈물까지 찔끔거리던 놈이지만, 태어나기를 강대하게 태어난 놈이라 김진우도 함부로 상대를 경시하지 못했다.
‘가끔 있답니다. 저렇게 미궁의 주인에게 도전하며 미궁의 주인이 되기를 바라는 이들이요.’
“다른 오너들은 이런 경우에 어떻게 처리하지?”
‘보통은 무시하죠. 애초에 오너들이 떠돌이 도전자보다 부족한 게 뭐가 있어서 받아주겠어요. 세력에서부터 차이가 나니 오너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저런 떠돌이 따위는 수하들만으로도 처리가 가능하죠. 자주 있는 일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세력이 적으니 만만해서 들이받은 거란 말이군.”
도미니크가 하지 못한 뒷말을 짐작한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전방으로 나섰다.
“도미니크.”
“네, 주인님.”
“저 드라칸은 척 보기에도 강해 보이는군.”
‘드라칸은 용의 후예예요. 지금에 와서는 그 피가 상당히 희석되었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강자죠. 아마 힘든 싸움이 될 거예요.’
고작 손 하나가 박살 났다고 눈을 질끈 감고 꽁무니를 빼던 모습이 떠올랐다.
무릇 지저를 살아가는 이라면 팔 하나, 눈 하나쯤 잃어도 꿈쩍도 않는 독심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김진우는 그런 독기를 상대에게서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애송이라면 애송이고 풋내기라면 풋내기였다.
‘말이 통한다면 적당히 대가를 쥐어주고 돌려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에요.’
망설이던 도미니크가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김진우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는 대신에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주인님?’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그런데 말이야.”
그의 눈동자에 귀화가 서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질 것 같지는 않아.”
그렇게 말한 그는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준비!”
일렬로 선 나가 일꾼들이 산탄총을 단단히 잡고,
“당겨!”
신호에 맞춰 불을 뿜었다.
쾅!
총성이라기보다는 폭음에 가까운 소리, 방아쇠를 당긴 나가 일꾼들이 화들짝 놀라 몸을 떨었다.
“다시!”
하지만 김진우의 호령이 있자 일꾼들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잡았다.
“당겨!”
다시 한 번 폭음이 터져 나오며 매캐한 화약 냄새가 퍼져 나갔다.
“크아아아악!”
“키에에!”
역시 아무리 표피가 단단한 지저의 크리쳐들이라고 해도 12게이지 산탄총의 위력은 녹록지 않았다. 단단한 가위에 구멍이 숭숭 뚫린 크리쳐들이 괴성을 질러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크리쳐들이 슬러그탄 세례에 단번에 나가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개중에는 운 나쁘게도 급소를 맞고 비명을 지르는 놈들도 있었다.
그렇게 몇 차례 사격이 이루어지고, 마침내 산탄총의 탄이 떨어졌다.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김진우가 나가 일꾼을 뒤로 빼고 나가 수문장과 용사들을 전방으로 불러들였다.
‘주인님, 이건 대체…….’
“이게 앞으로 우리 미궁의 힘이 될 거야.”
산탄총의 굉음과 위력에 얼이 빠진 도미니크를 향해 씨익 웃어 보인 김진우는 이내 나가들을 데리고 전방을 향해 돌격했다.
“공격!”
김진우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력을 차린 나가 마법사가 냉기를 불러일으켰다.
순식간에 바닥이 미끄러운 빙판길이 되고, 산탄총세례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던 상대 크리쳐들이 일시에 균형을 잃고 나자빠졌다.
그런 그들을 김진우와 나가들이 덮쳐들었다.
“크아아악!”
바닥을 나뒹굴던 부하들이 나가들의 방패에 머리가 박살나고 찢겨져 나가는 것을 본 드라칸이 눈에서 불을 뿜었다.
드라칸은 그중에서도 가장 살벌하게 크리쳐들을 짓밟는 수문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고 했다. 그 앞을 김진우가 막아서지만 않았으면 아마도 드라칸은 수문장의 너덜너덜한 방패를 그대로 찢어발겼을 것이다.
하지만 김진우는 드라칸이 날뛰게 그대로 두지 않았다.
“네 상대는 나다, 이 도마뱀 새끼야.”
그새 드라칸의 다리 사이에 파고든 그는 두툼한 드라칸의 허벅지를 베어버렸다.
단단한 비늘에 칼날이 드르륵거리며 튕겨져 나오긴 했지만, 아예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크악!”
허벅지에 충격을 받은 드라칸이 괴성을 지르며 쿵쾅거리는 걸음을 멈춘 것이다.
화가 난 드라칸이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드라칸의 주먹은 수문장의 두꺼운 방패마저도 걸레짝을 만들 정도로 무지막지한 위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상대는 어쩐지 자신이 지닌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강한 공격이라도 상대방이 맞지 않으면 그만, 김진우는 날렵하게 몸을 틀어 주먹을 피해냈다. 그리고 곧장 칼을 내질렀다.
깡!
하지만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방의 공격이 내내 헛손질로 끝이 난다면 이쪽의 공격은 아예 생채기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드라칸의 비늘이 처음과는 다르게 길게 누워 있다. 첫 공방에서 박살이 난 주먹 역시 묘하게 모양새가 달랐다.
공격적이던 모습과는 달리 묘하게 방어적인 느낌이다.
캉! 캉!
금속 부딪치는 소음, 칼을 비스듬히 세워 비늘의 역방향으로 꽂아보았지만 역시나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벌떡 일어선 비늘에 끼어 하마터면 무기를 잃어버릴 뻔했다.
재빨리 날을 눕혀 칼을 빼낸 김진우는 바닥을 스치듯 뛰어 드라칸의 뒤편으로 돌아갔다.
“헙!”
뒤를 잡았다고 좋아하는 것도 잠시, 드라칸의 무기는 단단한 주먹만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성인 남성의 몸통만 한 꼬리가 차르륵 하는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간신히 공격을 피해낸 김진우는 그대로 몸을 날려 드라칸의 겨드랑이를 베어냈다.
“크악!”
상처를 내지는 못했지만 통증까지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격렬한 비명에 김진우는 눈을 빛내며 미친 듯이 칼을 내질렀다.
찍고, 베어내고, 찌르는 그 맹렬한 공격에 드라칸이 양 주먹을 휘두르며 거세게 반발했다.
하지만 김진우는 귀신처럼 그 모든 공격을 피해내며 상대방의 몸을 두들겼다. 그러는 동안 암상인에게 비싼 대가를 치르고 사온 칼의 날이 엉망으로 망가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우는 칼질을 멈추지 않았다.
한동안 잊고 있던 감각, 그때의 감각이 서서히 살아났다. 칼질이 계속될수록 공세가 한층 더 강렬하고 매끄러워지며 몸놀림이 짐승의 그것처럼 기민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자 김진우의 기세가 다시 한 번 변했다.
마침내 지난 10년간 고이 잠들어 있던 심층의 던전 베이비 고유의 능력이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