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32)
던전 견문록-232화(232/319)
# 232
던전 견문록
제 233 화
김진우는 나가들이 층의 한계를 뛰어넘어 제대로 된 전력이 되는 순간을 내내 기다려 왔다. 해룡의 심장은 분명 그 계기가 될 게 확실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기쁘기 그지 없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산통이 다 깨지고 말았다.
“주인님! 미궁 외곽에서 웬 괴물이 난동을 피우고 있어요!”
도미니크의 급박한 음성이 들려왔던 탓이다. 다른 때였다면 아마 무시했을 것이다. 공작들의 도발을 대비하여 증강시킨 병력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시간을 벌 수 있기에 충분한 전력이었고, 사나운 대미궁 역시 호락호락 적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지만 그대로 무시하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았다.
찬탈자가 움직이기 시작한 지금, 그 어떤 조짐도 간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이달로스가 내민 상자를 보며 몇 번이나 입술을 짓씹다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꼼짝 말고 이곳에서 대기하라.”
미련이 남았지만, 한 번 결정을 내리자 그는 누구보다 기민하게 움직여 곧장 대미궁의 외곽을 향해 달렸다.
“상황을 설명하라!”
“한 번도 본 적 없는 괴물이 사티로스들을 이끌고 나타났어요! 퀀투스를 비롯한 나가들이 외곽에 진을 치고 있지만, 그들만으로는 막아내기 힘들 거예요!”
설상가상, 사티로스들만 해도 상대하기 벅찬 강적인데 정체불명의 괴물까지 대미궁을 노리고 나타났다.
김진우는 더없는 위기감에 속도를 올렸다.
“혹시 도미니크가 말한 괴물이 저놈인가.”
위급한 보고에 해룡의 심장마저 뒤로하고 달려왔건만, 정작 괴물을 확인한 김진우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허탈함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미궁의 경계를 넘었다는 그 괴물의 정체를 익히 알고 있었던 탓이다.
“아…….”
도미니크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괴물과 사티로스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끼에에엑!”
사티로스가 비명을 지르고 흉물스러운 괴물, 개미귀신이 거대한 아가리를 아그작거리며 그 육신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다시 사티로스들과 괴수의 난전이 이어졌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아무래도 개미귀신과 사티로스들이 같은 방향에서 나타나는 바람에 그들을 한편이라고 오인했던 모양이다.
“끄응.”
못마땅한 얼굴로 한숨을 내쉰 김진우가 도미니크에게 설명해 주었다.
“저들은 한편이 아니다.”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거대한 괴수와 사티로스들의 모습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그다지 좋은 관계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괴물의 모습이 전에 본 적 없는 흉악한 몰골이라…….”
하기야 그녀의 호들갑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시 만난 개미귀신은 김진우도 깜짝 놀랄 정도로 변해 있었다.
꾸물거리는 몸통은 통로 전체를 꽉 메울 정도로 거대했고, 아그작거리는 이빨 사이로 보이는 주둥이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불길했다.
거기에 더해 어디서 잘라먹은 것인지 끝이 떨어져 나간 꼬리 부분은 난동을 피울 때마다 역겨운 체액을 뿜어대고 있었으니, 현명한 왕의 조언자가 다급하게 위기를 고하기에는 충분한 광경이었다.
“끄응.”
김진우는 도미니크를 탓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저 괴물이 9층까지 오게 된 것 역시 자신 탓이었으니, 이제 와서 중요한 순간을 방해받았다고 타박할 수는 없었다.
그녀 역시 자신만큼이나 실망했을 게 분명했다.
모르긴 몰라도 해룡의 심장을 한시라도 빨리 사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도미니크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테니까.
게다가 오랜만에 본 개미귀신의 놀라운 변화가 해룡의 심장만큼이나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김진우는 전보다 몇 배는 거대해지고, 사나워진 개미귀신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사티로스들은 전부 사냥당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기에는 아까울 정도의 전사들이었지만, 개미귀신은 그 이상으로 끔찍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 끔찍한 괴물이 정작 김진우에게는 황당하게도 친근함을 표했다.
꾸웅.
자신의 체액과 사티로스들의 피를 덕지덕지 바른 아가리를 곱게 다문 개미귀신이 마치 아양이라도 피우듯 그의 발치에 머리를 박고는 벌러덩 배를 까뒤집어 보였다.
그건 개미귀신의 흉물스러운 외모와는 또 다른 의미의 끔찍한 광경이었다.
[개미귀신이 당신에게 호감을 표합니다.]구역질이 나는 듯한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김진우가 뜨악한 얼굴을 해보였다. 설마했더니 정말로 개미귀신은 자신에게 아양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뭐?”
[개미귀신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미귀신은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표현할 수단이 없습니다.] [개미귀신이 몹시 답답해합니다.]끄우우웅.
메시지를 확인한 그는 황당할 뿐이었다. 며칠 사이에 몰라보게 변해버린 개미귀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개미귀신이 필사적으로 당신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해괴한 몸짓을 ‘언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개미귀신은 끊임없이 그에게 뭔가를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타고난 육신의 생김생김은 물론, 닮은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개미귀신의 몸짓을 알아 듣기란 지난한 일이었다.
“응?”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우는 괴수가 뭘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막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너 설마…….”
그는 설마설마하는 심정으로 개미귀신에게 물었다.
“지금 네 꼬리를 잘라낸 놈이 누군지 알려주고 싶은 거냐?”
끄엉! 끄어어엉!
아무래도 짐작이 맞았던 모양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개미귀신이 거대한 머리통을 주억거리더니 이내 잘려진 꼬리와 씹다 남은 사티로스의 머리통을 가리켰다.
“끄응.”
김진우는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에도 기뻐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대한 괴수의 몸짓이 고자질하는 어린아이의 그것과 전혀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개미귀신이 몹시 기뻐합니다. 개미귀신은 자신의 뜻을 알아들은 당신에게 더욱 더 큰 호감을 느끼는 듯합니다.]끄어어엉!
[개미귀신이 온몸으로 말합니다. 자신의 꼬리는 사티로스들이 잘라낸 것이라고 몇 번이나 거듭 설명을 합니다.]“주인님?”
그 광경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도미니크가 마치 못 볼 것을 봤다는 얼굴로 제 주인을 불렀다.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죠?”
현명한 그녀도 지금의 상황은 불가해한 영역이었는지, 하얗게 질린 고운 얼굴에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나도 잘 모르겠군.”
하지만 황당한 것은 김진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아무래도 내가 터무니없는 놈을 주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애매한 얼굴로 개미귀신을 바라보았다.
***
개미귀신은 일단 대미궁의 외곽에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금세 또 방금 전 일을 까먹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되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지금으로써는 그저 개미귀신의 지능이 자신의 생각보다 더욱 더 월등해졌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외곽의 경계를 맡은 언더 엘프 순찰자들에게, 서편의 입구 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말라 말해 두었습니다.”
결국 도미니크가 인근에 소개령을 내리고 나서야 그는 겨우 개미귀신에 대한 일을 멀찌감치 제쳐둘 수 있었다.
“골치 아픈 놈이지만, 앞으로 제 밥값은 할 거다.”
어쩐지 변명하듯 말하는 그의 얼굴에 겸연쩍은 기색이 역력했다. 애초에 뤼양과 사티로스들을 견제할 목적으로 꾀어낸 개미귀신이었지라 그도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던 탓이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을 뿐,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해보였다. 비록 과격한 방문이긴 했지만, 의도치 않았던 행운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김진우는 사티로스들을 학살하던 개미귀신을 떠올리며 든든한 얼굴을 해보였다.
“근데 그런 개미귀신조차도 공작한테는 상대가 안 됐단 말이지.”
다만 그 끔찍한 괴수조차도 쫓아낸 공작의 저력이 다소 걱정이 되었을 뿐이다.
“근방의 생명체는 전부 처리했어요.”
그 사이에 명령을 받고 자리를 비웠던 안젤라가 돌아왔다. 그녀는 개미귀신을 추적해 온 사티로스들이 대미궁의 위치를 제 주인에게 알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인근을 돌고 온 참이었다.
빨갛게 범벅이 된 입가를 보면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추적자들을 처리했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힘에 부치진 않던가?”
“설마요. 그저 맛도 없는 식사가 고역이었을 뿐이랍니다.”
진혈의 위력이 크긴 큰 모양인지 안젤라는 전에 없는 자신감을 드러내 보였다. 곁에 있던 도미니크가 힐끗 그녀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보나마나 추적자들만 처리하고는 바로 돌아 왔겠죠. 그래서 제가 언더 엘프들을 보내 흔적을 지우라 명령해 두었으니, 너무 염려치 마세요.”
“고맙네. 신경 써줘서.”
안젤라가 눈가를 휘어 올려 웃어 보이며 나름대로 고맙다는 표시를 해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김진우는 눈을 빛냈다.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안젤라가 어쩐 일인지 유독 도미니크에게만은 고분고분한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던 탓이다.
“전에 말했다시피, 분하지만 그녀는 주인님이 가장 아끼는 존재니까요.”
그런 그의 내심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안젤라가 말을 덧붙였다.
“지상에서는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앞뒤 다 잘라낸 말이었지만,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빤했다. 괜스레 어서 결혼하라 등 떠밀던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른 김진우가 와락 인상을 썼다.
“그게 무슨 말이지?”
“흠, 말하자면 내가 본처, 네가 첩이라고 할까.”
대번에 눈썹을 치켜 올린 도미니크가 안젤라를 노려보다 그를 돌아보았다.
***
“왕이시여! 어서 해룡의 심장을!”
다소 소란이 있었지만, 그 사이에 다이달로스의 연구 결과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머리 큰 난쟁이는 여전히 오너 룸에 선 채 조금이라도 빨리 자신이 공들인 해룡의 심장이 사용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던 참이다.”
왕좌에 앉은 김진우가 다이달로스가 건넨 상자를 받아 들었다.
꿀꺽.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도미니크가 마른침을 삼켰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해룡의 심장을 목전에 두고까지 평정심을 지킬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언제 모여들었는지, 오너 룸을 가득 메운 나가들 모두가 그녀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잘 참아주었다. 그대들의 노고는 반드시.”
김진우가 해룡의 심장을 한 번 꽉 움켜쥐고는 제단을 바라보았다.
“보답 받을 것이다.”
해룡의 심장이 마침내 그의 손을 떠나, 제단 위에 떨어졌다.
[‘개량된 해룡’의 심장을 사용했습니다.] [대미궁의 핵이 되었지만 나가의 심장이 지닌 본질은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해룡의 심장은 여전히 7등급에 머무르고 있던 나가의 심장이 8등급 이상으로 올라설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개량된 해룡의 심장’이 제단에 흡수되었습니다.] [나가의 심장이 성장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