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34)
던전 견문록-234화(234/319)
# 234
던전 견문록
제 235 화
파수꾼, 부릅뜬 눈 모양의 문신을 한 크리쳐들은 지저 최후의 보루이자, 지상에서 센티넬이라 불리며 군과 탐색자들에게 공포로 각인된 악몽 같은 존재들이다.
모두가 두려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려진 것은 극도로 적었으니, 무지와 신비 속에서 공포는 더욱 더 자라났다.
기질 강한 탐색자들마저도 바로 얼마 전에게 된통 당하고 난 뒤로는 그들의 이름을 말하기 터부시할 정도였다.
“파수꾼의 존재 의의는 지저의 절대 수호, 어떤 것보다 우선하는 신성한 가치에 대한 의무입니다. 설령 제 주인이라 한들 지저의 안위에 위협이 된다면 기꺼이 주인의 목줄을 물어뜯고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게 바로 파수꾼입지요.”
언젠가 그가 아직 지저와 지상을 저울 위에 두고 갈팡질팡하던 그 무렵, 미미르는 몇 번이고 경고했었다.
“지저의 어느 누구도 그들이 평소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있고, 또 먼 곳에 있을 수도 있습죠. 심층 가장 깊은 곳에 거하는 공작들조차도 그들이 누구인지 밝혀내기를 포기했습니다. 그저 그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최악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죠.”
침상 위로 칼날이 꽂히고 왕좌 위에서 아무도 모르게 목이 베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더욱 두려운 것은 그런 상상이 우려가 아닌 현실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아나톨리우스를 습격한 것은 평소 철혈의 거인이 가장 신뢰했던 부관이라 했으니,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브륜테스의 말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파수꾼은 누구나 될 수 있어요. 어쩌면 우리 중에 누군가 그 저주스러운 파수꾼일지도 모르죠.”
자신들 사이에 파수꾼이 섞여들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동맹을 맺은 이유도, 굳이 이 먼 9층까지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어느 것 하나 아직 그녀는 설명하지 않았다.
“왜 하필 나지?”
“최소한 당신은 파수꾼이 될 수도, 그의 편에 설 수도 없을 거라 확신하니까요.”
브륜테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당신은 지상인. 아니, 그 이전에 하이로드잖아요?”
그제서야 김진우는 납득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상의 인간인 자신이야말로 혼란스러운 지저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파트너였던 것이다.
“멍청한 질문을 했군.”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그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잠시 파수꾼에 집중한 사이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잊고 있었으니, 그간의 대화가 다 부질없어지고 말았다.
“당장 답을 달라는 건 아니에요. 지금은 그저 우리 백작들이 당신의 적이 아니라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심층의 백작들조차 믿을 수 없다면, 그 역시 그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저는 파수꾼이 아니에요.”
“말로는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브륜테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말에 대답했다.
“혹시 잊으셨나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김진우는 가만히 서서 설명을 기다렸다.
“당신과 타이레논이 처음으로 만난 곳이 어디였는지를.”
잠시 눈살을 찌푸렸던 그가 뒤늦게 그 의미를 알아듣고는 눈을 번뜩였다.
“설마.”
“맞아요. 백작들은 몰라도, 최소한 저는 당신 편이에요.”
그녀가 더없이 친근한 어조로 속삭였다.
“저는 이미 지상의 편에 서기로 마음먹었으니까요.”
***
홀로 남은 김진우는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며 목가를 쓸어 만졌다.
시시각각 격변하는 미궁 밖의 상황과는 다르게 고요하기만 한 대미궁의 침묵이 오늘따라 유독 무겁게만 느껴졌다.
9층에도 파수꾼이 있을까. 알 수 없다.
브륜테스는 신생 미궁인 나가의 미궁은 그나마 파수꾼이 존재할 가능성이 적고, 만약 존재하더라도 그 힘이 미약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다지 확신 있는 어조는 아니었다.
비록 대미궁이 생성되며 대다수의 미궁들을 먹어치우고, 그 구성원조차 집어삼켜 버렸지만 몇몇 종족은 끝끝내 살아남아 대미궁에 터를 잡았다. 어쩌면 그들 중에도 파수꾼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최악의 경우, 나가 중에도 존재할 수도 있다.
“첩첩산중이군.”
참지 못한 한마디가 끝내 목을 타고 넘어오고 말았다.
***
파수꾼에 대한 경고를 들었지만, 당장 그들을 솎아낼 방법은 없었다.
진실의 눈으로 온 사방을 뒤져보아도 파수꾼은커녕 그 어떤 조짐도 찾을 수 없었다.
하기야 그렇게 쉽게 걸러낼 수 있는 존재였다면 심층의 존재들이 그리 골머리를 썩지도 않았을 것이고, 아나톨리우스가 암습에 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김진우는 찝찝함을 남겨둔 채 수색을 끝내야 했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피아가 확실한 고대의 소환수들을 불러 모아 오너 룸 하나만이라도 지켜내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후우.”
아군을 온전하게 믿지 못한다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감내해야 했다.
인정에 얽매여 일을 그르치는 것은 절대로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정하지만, 안젤라를 비롯한 거의 모든 소환수의 중심부 출입을 통제했다.
눈치 빠른 안젤라가 제 주인의 태도가 이상함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굳이 그 이유를 묻지 않았고, 그저 미미하게 서운한 표를 냈을 뿐이다.
“안젤라, 나중에 설명하겠다.”
아무리 냉정한 그라도 마음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령을 철회하지 않았으니, 대미궁은 안과 밖으로 나뉜 채 삐그덕거리며 겨우 돌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주인이시여.”
그 와중에 릭샤샤가 그를 찾았다. 요정 군주의 후예인 릭샤샤는 고대 소환수를 제외하고는 거의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였다. 당연히 그녀의 방문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릭샤샤.”
그의 말에 성큼 다가온 릭샤샤가 발치에 납작 몸을 엎드리며 말했다.
“미몽의 여왕, 아리아네가 깨어났나이다!”
아리아네의 소식을 들은 김진우는 곧장 대미궁의 외곽으로 향했다. 한 때는 몽마들의 거주지였던 곳에 도달한 그는 다소 멍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아리아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리아네.”
오랜만에 의식을 차린 아리아네는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왕이시여.”
“드디어 깨어났군.”
악몽의 디나리온을 거꾸러트리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겠다던 그녀가 깨어났으니, 어떤 식으로든 결판이 났을 것이다.
“먼저 보고부터 듣도록 하지.”
거두절미하고 바로 용건을 꺼내니, 아리아네가 뒤늦게 멍한 얼굴에 표정을 떠올렸다.
“이제 어느 누구도…….”
느릿느릿 말을 꺼내는 그녀의 창백한 낯빛에 환희의 빛이 조금씩 퍼져 나가다 이내 가득 찼다.
“미몽의 이름 앞에 악몽을 둘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고작 이백 몽마를 다스리던 그녀가 심층의 백작을 쓰러트린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그런 만큼 그녀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디나리온을 꺾은 것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차 확인하니, 그녀가 다시 한 번 대답했다.
“악몽의 디나리온이란 이름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
김진우는 웃을 수도, 오만상을 찌푸릴 수도 없었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윤희가 떠올랐던 탓이다. 악몽의 디나리온은 심층의 백작이기 이전에 윤희의 아버지였으니까.
하지만 안타깝다거나 미안한 것은 아니었다.
디나리온은 절대로 다정다감한 아비가 아니었으며, 자신의 핏줄마저도 하이로드의 권능에 대한 탐욕으로 이용한 냉혈한이었다. 실제로 윤희는 제 아비가 두려워 그 권능이 미치지 않는 지상까지 도피한 상태였다.
윤희는 디나리온의 추락에 절대로 그와 아리아네를 원망하지 않으리라.
“백작의 위를 챙길 수는 없었으나, 그 권능만큼은 온전히 얻을 수 있었어요.”
아리아네는 백작씩이나 되는 존재를 집어삼킨 것 치고는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힘을 온전히 흡수하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애초부터 그는 미몽의 여왕이 강해지든 말든 크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좋아, 나머지 얘기는 이후에 계속하도록 하지.”
때마침 몸을 흐느적거리며 탈력감을 호소하는 아리아네를 보며 그는 몸을 돌렸다.
***
11층의 균형이 무너졌다. 아나톨리우스는 파수꾼에게 암습을 당해 중상을 입었고, 디나리온은 미몽의 여왕에게 권능을 빼앗겨 악몽 속에서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간 비등비등한 전력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피던 백작 간의 균형이 완전히 깨져버린 것이다.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인가.”
층과 층이 맞닿아버린 지저. 어쩌면 균형이 깨진 건 비단 11층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몰랐다. 다만 이번 일 탓에 그 붕괴가 더욱 가속화된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래서 그는 11층의 상황을 확인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대미궁의 복원품이 백작들의 영지를 서서히 잠식해 가는 것을 제 눈으로 확인한 지 오래전, 지금쯤 잠식이 한참은 더 진행되었을 것이다.
괜히 죽 쒀서 남 좋은 일을 시키느니 지금이라도 상황을 확인하고 할 수 있다면,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야 했다.
운이 좋을 경우,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백작들의 힘을 고스란히 흡수할 수도 있으리라.
“동맹 따위…….”
자신을 찾아와 협력을 요청했던 브륜테스가 떠올랐지만, 그는 이내 무시했다.
어차피 백작들과는 서로 믿을 수 없는 관계, 이미 지저에서 십수 년의 시간을 착취당한 상황에서 또다시 이용만 당할 생각은 없었다.
하물며 지금은 힘이 절실한 시기. 백작들의 사정이 어찌되든 그가 알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11층으로 향할 수 없었다. 막 11층을 향해 나서려던 참에 타락의 여왕이 보낸 사자가 대미궁을 찾은 것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제 주인을 대신해서 온 이 지저의 귀족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에 보았을 때에 비해 한참은 더 해쓱한 안색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대와 그대의 주인도 꽤나 바쁠 텐데, 여긴 또 무슨 일이지?”
막 움직이려던 차에 방해받은 터라 그의 태도가 고울 리가 없었다.
“악몽의 디나리온님이 당했습니다.”
김진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가뜩이나 방해를 받아 기분이 좋지 않은데, 하는 말이라는 것이 고작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냉랭하기만 한 그의 대꾸에도 타이레논은 당황한 기색 없이 대꾸했다.
“디나리온님의 사체에서 파수꾼의 흔적을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