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35)
던전 견문록-235화(235/319)
# 235
던전 견문록
제 236 화
“없어?”
김진우는 텅 빈 몽마들의 거주지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뒤늦게 주변을 뒤져보았지만, 아리아네는 그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미몽의 여왕을 찾아라!”
그 다급한 명령에 소환수들이 흩어져 미몽의 여왕을 찾았다.
“없습니다!”
잠시 뒤 돌아온 소환수들은 하나같이 그 어떤 흔적도 찾지 못했다며 무거운 얼굴을 해보였다.
“제길!”
때늦은 후회에 김진우는 욕설을 내뱉었다.
아리아네는 배신자다. 디나리온이 보낸 첩자였으며, 그 사실이 탄로 나 이미 한 차례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그런 그녀인지라 그도 무의식중에 그녀가 파수꾼일 가능성을 무시하고 말았다.
설마 겹겹이 가면을 쓰는 식으로, 정체를 숨겼을 거란 생각은 차마 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아리아네의 계획이었던 것은 아닐까. 디나리온의 명령을 받고 자신에게 접근했던 것도, 수천 폭도들이 학살당했던 그날 정체를 드러낸 것도, 지금에 와서는 전부 석연치 않은 일 투성이었다.
하기야 겨우 말단 귀족에 불과한 그녀가 제 주인이자 심층의 백작인 악몽의 디나리온을 도모한다고 한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었다.
신뢰할 수 없는 그녀이니 일이 실패해도 손해 볼 것은 없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무엇을 하든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손에 놀아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멍청하다, 멍청해.
스스로를 자책해 보았지만, 당시에는 그녀를 의심할 건덕지가 전혀 없었다. 가면 속에 또 하나의 가면을 쓰고 있었을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미몽의 여왕의 흔적을 찾았나이다!”
릭샤샤의 보고에 김진우가 이를 까드득, 깨물었다.
릭샤샤의 보고를 받아 움직였을 때는 이미 아리아네가 대미궁을 빠져나간 후였다.
“제길!”
애꿎은 바닥을 찍어대며 분통을 터뜨려 보았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정문 경비를 맡고 있던 흡혈귀들이 심드렁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다 이내 눈을 돌렸다.
가뜩이나 화가 나 있던 김진우는 그 무책임한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큭!”
우악스러운 손길에 목을 잡힌 흡혈귀가 억눌린 신음성을 내뱉었다.
“지금 뭘 잘했다고, 그렇게 고개가 빳빳하지?”
한 자, 한 자 씹어뱉듯 사나운 음성에 흡혈귀의 하얀 얼굴이 더욱 더 창백해졌다.
사사삭.
“이 새끼들이?”
동료 의식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도 아니면 자신이 만만해 보였던 것일까. 저를 둘러싼 흡혈귀들을 본 김진우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우으으으.”
분노한 하이로드의 기세는 흡혈귀들이 단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대단한 것이었다. 그들은 뒤늦게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깨닫고 온몸을 떨어댔다.
“주인님!”
당장에라도 흡혈귀들이 압살당할 것 같은 상황, 안젤라가 달려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부디 진정하세요. 그들은 미몽의 여왕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해요.”
김진우도 알고 있었다.
미몽의 여왕이 이토록이나 쉽게 대미궁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얽히고설킨 대미궁의 상황 때문이었지, 이들 탓이 아니었다.
파수꾼의 준동을 염려한 탓에 믿을 수 있는 소환수들은 죄다 중심부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고, 외곽을 맡은 것은 대미궁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는 흡혈귀들이었다.
당연하게도 대미궁의 경계가 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게 되어버렸다.
흡혈귀들이 자신에게 이를 드러낸 것은 그가 허락한 안젤라의 권한 밖의 일이었고, 그는 이 일을 절대로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이들을 변호할 참인가?”
안젤라가 그 아름다운 이마에 피가 튀도록 바닥에 머리를 쿵, 쿵 찍어댔다.
“절대로 그럴 생각은 없어요. 지금은 그저 아리아네, 그 간악한 년을 잡는 게 우선이라 말씀드리고 있을 뿐이에요.”
그녀는 서슬 퍼런 주인의 기세에 눌려, 평소의 장난스러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너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몇 번이나 사경을 헤매야 했던 안젤라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견제하고 경계하는 다른 소환수들의 직언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믿을 수 있었고, 또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었던 탓이다.
“그 점, 저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녀는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진혈을 닦아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거듭 그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한 번 뿐이다, 내가 참는 것은.”
그녀를 노려보던 김진우가 뒤늦게 제 손에 잡혀 있던 흡혈귀를 풀어주었다. 하지만 그들을 용서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관용은 오직 자신의 것에게만 통용되었고, 안젤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흡혈귀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그에게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끄, 끄악!”
흡혈귀들의 비명이 이내 아구아구대는 대미궁의 소란에 집어삼켜지고, 이내 조용해졌다.
“끄르륵.”
운 좋게 미궁의 경계 밖에 있었던지라 참사를 피해간 흡혈귀는 자처하여 섬기던 여왕의 손에 목이 베이고 말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 약속드려요.”
김진우는 대답 대신 푸른 안광이 뚝뚝 흘러내리는 눈으로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을 뿐이다.
***
안젤라는 스스로 대미궁을 나섰다. 일의 전후 관계야 어찌 되었던 간에 흡혈귀들의 실수를 스스로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산 자의 기운을 끔찍할 정도로 잘 잡아내는 흡혈귀는 그 누구보다 유능한 추적자였다.
아무리 신출귀몰한 파수꾼이라고 해도 제 몸 속에 붉은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는 한 그녀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안젤라가 대미궁을 나서고, 김진우는 은밀하게 ‘서리’의 이름을 빌어 새롭게 소환된 이종족들을 불러 모았다.
아리아네의 일을 통해 진실의 눈이 파수꾼을 잡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다른 이들 중에도 파수꾼이 있을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롭게 탄생한 이종족들, 그중에서도 ‘서리’ 이종족에게 일족을 감시토록 지시를 내렸다.
자신들의 왕 대신 대미궁에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라면 훌륭히 그 감시역을 소화해낼 수 있으리라.
그렇게 파수꾼의 일을 일단락하기가 무섭게, 또 다시 일이 터졌다. 그간의 평화가 마치 거짓이었던 것처럼 한 번 일이 터지자 계속해서 사건이 벌어졌다.
마치 멈춰 있던 지저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듯한 느낌이었다.
“사티로스들이 계속해서 인근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나이다. 순찰자 몇이 확인해 본 바, 그 수가 결코 적지 않거니와 움직임이 조직적인 것이 대규모 부대를 뒤에 둔 정찰조로 짐작되나이다.”
“제길, 하필이면 안젤라가 자리를 비운 이때.”
일이 다급하게 흘러가니 자꾸만 상황이 꼬였다. 제 수하의 잘못을 만회한다고 나선 안젤라 덕에 흡혈귀들의 발이 묶이고 말았다.
여왕이 자리를 비운 지금, 그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여왕의 명령 없이는 그저 소극적으로 기존의 임무를 맡을 뿐일 테니까.
시간을 끌어야 했다.
그는 궁니르를 꽉 움켜쥐고 대미궁을 나섰다.
과연 릭샤샤의 보고대로였다. 김진우는 미궁을 나서고 얼마 되지 않아 근방을 헤매는 사티로스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마창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전투는 수월했다. 아군의 열세를 생각할 것 없이 제 한 몸만 건사하면 되니 걸리적거릴 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내친 김에 사티로스 부대들을 보이는 족족 제거해 나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들의 진격 속도는 전혀 줄지 않았다. 저 멀리서 느껴지는 강렬한 군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대미궁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만 그 방향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대미궁을 향했다기보다는 마치 무언가를 찾아 헤매듯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는 것이 다소 이상하게 느껴졌다.
저래서야 대미궁을 노린다기보다는 마치 다른 것을 찾아 헤매는 것 같지 않은가.
김진우는 그들이 그렇게 9층을 들쑤시고 다니는 이유를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망할 개미귀신놈.”
그는 그리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뤼양을 흔들기 위해 개미귀신을 사티로스들의 미궁 근처에 풀어주었던 적이 있었고, 개미귀신은 그의 의도대로 사티로스들을 마구잡이로 집어삼켰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들의 미궁에서 멀리 떨어진 대미궁 근방까지 개미귀신을 추적해 왔을 리가 없었다.
아마도 저들은 자신들이 끝내 숨통을 끊어놓지 못했던 개미귀신을 추적해 왔으리라.
“전부 정리하지 못한 건가.”
김진우는 쓰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안젤라가 적을 놓쳤을 리가 없다.
차라리 사티로스들이 흔적을 따라 방향을 잡았을 거라 생각하는 편이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
릭샤샤를 비롯한 언더 엘프들이 흔적을 최대한 가리기는 했지만, 거대한 괴수가 지나간 길을 완벽하게 은폐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생각을 정리한 그는 사티로스 정찰대들을 계속해서 제거해 나가는 와중에, 슬쩍 대미궁을 들려 개미귀신을 끌고 나왔다.
“날뛰어라.”
신이 난 개미귀신이 마구잡이로 날뛰며 통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한참이 지나자 적의 진군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들은 갑작스레 중구난방으로 생겨난 개미귀신의 흔적을 보고는 방향을 잡지 못해 대열을 정비하는 듯 보였다.
김진우는 다시 개미귀신을 적당한 위치에 숨겨두고는 슬쩍 본대에 접근했다.
“음.”
사티로스들을 목도한 김진우는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멀찍이서 느껴지는 군기로 대충 예상은 했지만, 그 군세가 상상 이상이었던 것이다.
예전의 지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진 통로를 가득 메우고도, 그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는 사티로스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했다.
저 멀리 보이는 모퉁이, 그 모퉁이를 넘어 다시 모퉁이 너머에도 사티로스들이 가득했다.
마치 9층 전체가 사티로스들에게 점령이라도 당한 듯한 모습이었다.
만약 저들 전체가 대미궁에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과연 대미궁은 저들을 막아낼 수 있을까. 그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이미 수천의 폭도들을 집어삼킨 전적이 있는 대미궁이었지만, 과연 그 식욕과 탐욕이 어디까지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척 보기에도 폭도들과는 질이 다른 사티로스의 군대라면, 어쩌면 대미궁은 다 삼키기도 전에 배탈이 날지도 모른다.
운이 좋아 저들 전체를 대미궁의 먹이로 삼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으련만, 그는 자신의 기반 전체를 판돈으로 걸고 행운을 시험해 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음?”
생각에 잠긴 채 눈으로는 사티로스들을 헤아리고 있던 김진우가 그 사이로 끼어든 낯익은 기운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리아네?”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에는 사티로스들의 덩치가 너무 커 시야가 잡히지 않았지만, 그 기운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리아네는 아마도 공작, 뤼양의 것일 거라 생각되는 기운과 지척에 있었다. 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갔고, 언제나 그랬듯이 그 예감은 맞아 떨어졌다.
“이런 미친!”
설마설마하는 사이에 사티로스들이 머리를 돌렸다. 지금까지만 해도 개미귀신의 흔적을 따라 이리저리 출렁거리던 군대의 머리가 정확하게 대미궁을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