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4)
던전 견문록-24화(24/319)
# 24
던전 견문록
제 25 화
심층의 크리쳐 중 어느 하나도 김진우보다 약한 놈은 없었다.
게다가 표피는 또 얼마나 단단한지 가진 거라곤 출처 불명의 뼈다귀 하나와 양 주먹뿐인 그가 적의 거죽과 껍데기를 찢어내고 타격을 가할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미궁을 통과해 마침내 지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 모든 게 심층에서 나고 자라며 생겨난 능력 덕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능력 ‘약점 간파’가 발동되었다.
파랗게 귀화가 타오르는 눈길이 빠르게 드라칸의 거체를 훑고 지나갔다.
그렇게 시선이 스쳐 간 자리에 빨간 선이 생겨났다. 실타래처럼 엉키고 풀어지기를 반복하던 붉은 선이 황금빛 비늘로 뒤덮인 드라칸의 몸을 이리저리 훑었다.
고유 능력 ‘약점 간파’의 효과였다.
“크아아악!”
드라칸이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괴성을 내뱉으며 주먹을 내질러 왔다. 김진우는 허리를 접어 몸을 낮추며 공격을 피해냈다. 그의 시선이 다시 드라칸을 쫓았다.
빨간 선은 여전히 정신없이 드라칸의 몸을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다.
김진우가 한 발 내디디며 제 몸통보다 두꺼운 다리를 끼고 드라칸의 배후를 쫓았다. 그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드라칸의 거체를 향해 있었다.
어디냐!
빨간 실타래가 이번에는 드라칸의 배후를 훑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하던 붉은 선이 어느 순간이 되자 뭉치기 시작했다. 드라칸의 넓은 등, 양쪽 날개뼈 부근이다.
찾았다.
그의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파랗게 빛나던 눈동자가 원래의 빛을 찾고, 그 순간 그의 양 팔뚝이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크아아악!”
동시에 드라칸이 몸을 돌리며 양팔을 휘둘러 왔다. 자신을 괴롭히는 쥐새끼를 단숨에 잡아 으깰 것처럼 험악한 손동작이다.
하지만 그 무지막지한 공격이 허공을 갈랐을 때, 이미 상대는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김진우는 자신의 종적을 놓치고 당황한 드라칸의 배후를 향해 날아올랐다. 양손으로 굳게 움켜쥔 칼이 허공을 찢어발기며 빨갛게 번쩍거리는 실타래 뭉치를 향해 내찔러졌다.
푸욱!
이제까지와는 다른 소리, 김진우의 검이 너무도 쉽게 황금빛 비늘을 헤집고 파고들었다.
“끄어어어어!”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한 박자 늦게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빨간 선혈을 그대로 뒤집어쓴 그가 있는 힘껏 칼자루를 비틀어 올렸다.
쩡!
“망할!”
하필이면 그 순간 이제껏 잘 버티고 있던 칼이 부러져 나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드라칸의 두꺼운 꼬리가 벌떡 일어나며 제 등짝을 후려쳤다.
“헙!”
간발의 차이로 꼬리를 피해낸 김진우는 다시 자세를 낮추며 공격할 준비를 했다.
그 와중에 드라칸은 제 등짝에 쑤셔 박힌 칼을 뽑겠다고 양손으로 등 뒤를 휘저으며 난리를 떨어댔다.
“끄억!”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그 여파는 절대 우습지 않았다. 드라칸이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마침 곁에 있던 크리쳐 한 마리가 짓밟혀 그대로 몸통이 터져 나가고 말았다.
“물러서!”
피아를 가리지 않는 드라칸의 난동에 김진우는 황급히 병력을 뒤로 물렸다.
“캭!”
“끼에에엑!”
포악한 크리쳐들이 우두머리를 잘못 만난 죄로 끔찍하게 죽어나갔다.
반면, 나가들의 피해는 전무했다. 이미 일차적으로 나가 일꾼들의 산탄세례가 있었고, 시기적절하게 나가 마법사의 마법이 터져 나왔다.
덕분에 나가들은 어떤 피해도 없이 말 그대로 적들을 짓밟을 수 있었다.
‘주인님!’
확연하게 드러난 승기에 도미니크가 환희에 찬 얼굴로 외쳤다.
“아직! 아직 끝나지 않았어!”
나가들이 벽을 쌓는 것을 보며 김진우는 꾸러미를 뒤졌다. 다시 꾸러미를 빠져나온 손에는 조그만 팩이 들려 있다.
“방패 올려!”
그의 구령에 맞춰 나가 용사들이 방벽을 세우고 그 뒤를 수문장이 받쳤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손을 떠나간 팩, 수제 폭탄이 드라칸의 피투성이 등짝에 부딪쳐 그대로 폭발했다.
쾅!
***
[강한 적을 상대로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놀랍게도 강대한 적 세력을 맞아 어느 누구도 죽지 않았습니다.] [전투에 참여한 모든 병력이 전투에 능숙해졌습니다. 그들은 앞으로의 전투에서 놀라울 정도의 투지와 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나가 일꾼들은 자신들이 전투에 일조했다는 사실에 몹시 놀라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다시 전투에 나서서 승리를 얻는다면 새로운 가능성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눈여겨본 나가 용사가 이번 전투를 경험 삼아 나가 정예 용사가 되었습니다.] [강대한 도전자를 맞아 호쾌한 승리를 얻은 당신의 업적에 모든 나가들이 감탄하고 있습니다. 카리스마가 대폭 상승합니다.]연달아 떠오르는 메시지 창을 보며 김진우는 흐뭇한 얼굴을 해 보였다. 다른 무엇보다 전력 외로 구분한 나가 일꾼들이 훌륭하게 제 몫을 해주었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다.
[당신은 미궁을 노리는 강도를 맞아 흠잡을 데 없는 승리를 얻어냈습니다. 던전 오너 김진우와 나가의 미궁이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어쩐지 호들갑스럽게 들리는 축하 메시지에 김진우는 낭패스러운 얼굴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미궁의 존재가 알려지는 건 그다지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님!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도미니크가 외치자 전투에 참가한 모든 나가가 일제히 머리를 숙여 보였다.
저마다 목을 울려대며 함성을 지르는 것이 이번 승리에 꽤나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수적으로도 질적으로 열세이던 전투 상황을 그가 아니었다면 누가 있어 뒤집을 수 있었을까.
전투가 끝남과 동시에 나가 일꾼들이 내팽개친 산탄총을 바라보며 김진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가들이 그의 손짓을 보고 다시 한 번 함성을 터뜨렸다.
[흉포한 도전자 드라칸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마무리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다 끝난 줄 알았는데 갑작스레 떠오른 메시지 창을 본 김진우는 드라칸의 피투성이 몸뚱이를 살폈다.
그러고 보니 미세하게 가슴께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정말로 숨이 붙어 있는 모양이다.
“무지막지하게 질긴 놈이군.”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을 바라본 도미니크가 눈치 좋게 칼을 구해다 주었다.
암상인에게 구한 검은 진즉 부러져 버린 터라 마침 마땅한 무기가 없었기에 그는 눈짓으로 감사를 표했다.
도미니크는 열세를 극복하고 압도적인 승리를 일궈낸 김진우에게 존경을 넘어 황홀함에 취한 눈빛을 보내왔다.
“끄으으…….”
드라칸이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려 그를 올려보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동자를 보며 김진우가 입매를 굳혔다.
역수로 칼을 잡아 든 그가 이제는 축 늘어져 푸석푸석하게 보이는 비늘의 결을 따라 칼끝을 기울였다.
“자, 잠깐만!”
막 칼을 내리꽂으려는데 드라칸이 비명처럼 말을 걸어왔다.
“사, 살려줘!”
어찌나 그 음성이 간절한지 어지간한 김진우도 무심코 손을 멈췄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는 무심한 눈동자로 드라칸을 내려다보며 다시 칼을 치켜 올렸다.
애초에 그에게는 자신의 미궁을 노리고 쳐들어온 도적을 살려줄 이유가 없었다.
“거래를 하자!”
김진우가 흡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양 팔뚝에 힘을 주었다. 당장에라도 내리꽂힐 것 같은 칼끝을 보며 드라칸이 다급하게 외쳤다.
“다운 잼! 다운 잼을 주마!”
“다운 잼?”
다운 잼이라는 말에 김진우가 순간적으로 몸을 멈칫했다.
그 모습을 보며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이었는지 드라칸이 허겁지겁 제 품을 뒤져 꾸러미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걸 전부 주마! 그러니 목숨만 살려다오!”
김진우가 슬쩍 손을 내뻗어 주머니를 낚아챘다.
“어차피 이 다운 잼들도 내 미궁을 뺏은 뒤 군자금으로 쓸 생각이었겠지?”
비릿한 미소, 다운 잼만 날름 먹고 살려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는 얼굴이다. 드라칸이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다운 잼도 줬잖아!”
“어차피 네가 죽고 나면 내 것이 될 물건이었지.”
나름대로 논리 정연한 반박에 드라칸이 당황했는지 입을 쩍 벌렸다.
“그럼 할 말 더 없지?”
“자, 잠깐만!”
정말이지 지독하게도 말이 많은 놈이었다. 코웃음을 치며 칼을 치켜든 김진우는 숨을 들이켜며 양팔을 서서히 내리찍었다.
“부하! 부하가 되겠어!”
비늘 끝에 칼끝을 걸어둔 김진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부하가 되겠어! 아니, 원한다면 충성을 맹세하겠어!”
“흠, 그걸 어떻게 믿고?”
그가 이번에는 흥미가 동한다는 얼굴을 해 보이자 드라칸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우리 드라칸은 거짓을 말하지 않아! 정말이라고!”
그 말에 김진우의 시선이 도미니크를 향했다.
‘정말이에요. 드라칸은 용의 후예, 거짓을 말하는 게 허용되지 않은 종족이에요.’
“이놈이 특별한 놈일 수도 있잖아? 아주 드물게 거짓말을 하는 놈이라든지.”
여전히 미심쩍다는 듯한 그의 눈빛에 드라칸이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긍지 높은 지룡의 후예들은 거짓을 말하지 않아! 거짓말을 했다가는 나는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 바싹 말라 죽고 만다고!”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드라칸은 거짓을 말하는 순간 죽고 말아요. 덕분에 강대한 신체에 비해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함정에 빠지기도 하지요.’
“맞아! 믿어달라고!”
저 멍청하다고 욕하는 건지도 모르고 드라칸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바람에 상처에서 피가 다시 울컥대며 올라왔지만 드라칸은 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양손에 쥐고 있던 칼을 한 손에 고쳐 쥔 김진우가 갈등하는 얼굴을 해보였다.
“나를 살려준다면 충성을 다하겠어!”
[지룡족의 후예, 드라칸의 일족 드라카누스 오르테아가가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를 가신으로 받아들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