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42)
던전 견문록-242화(242/319)
# 242
던전 견문록
제 243 화
모리건과 헤임달은 생각보다 이르게 임무를 마치고 귀환했다. 어지간히도 서두른 모양인지 강인한 두 소환수 모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물건이 물건인지라, 조금 서둘렀습니다.”
모리건이 지친 얼굴로 품 안에서 커다란 다운 잼을 건네주었다.
“과연. 이 정도의 물건이라면, 날파리가 꼬일 수도 있겠어.”
김진우는 차라리 무지막지하다 해도 좋을 존재감에 한차례 어깨를 떨었다. 저 강대한 고대의 영웅급 소환수들이 무리할 만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운 잼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지저에 보기 드문 귀물이었다.
속이 텅 비어 있어도 지저의 존재들이 군침을 흘릴 정도로 가치가 높은 최상급 다운 잼. 게다가 그 안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활동 중이던 미궁의 핵이 담겨져 있다.
그것도 보통 미궁이 아니라 무려 공작이 다스리던 미궁의 핵이.
[죄악의 결정체(주인을 잃은 미궁의 핵).] [온갖 부정하고 죄지은 것들의 유배지, 죄인들의 감옥을 지탱하던 ‘죄악의 심장’은 무려 17등급에 이르는 미궁을 관장하던 대단한 물건입니다. 비록 지금은 주인을 잃고 활동을 멈춘 상태이지만 언제든 다시 박동하며 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나가의 미궁이 해룡의 심장을 구하지 못해 7등급에 머무른 게 한참이다. 그 뒤로도 어렵사리 해룡의 심장을 구했지만, 여전히 업그레이드가 끝나지 않아 8등급에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단순 수치만 비교해도 두 배. 그 안에 담긴 힘은 얼마나 차이가 날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제대로 맞붙었다면 더 고생했겠어.”
그 안에 담긴 힘의 강대함을 느낄수록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무려 10등급에 이르는 미궁의 등급 차를 극복하고 심층의 공작을 꺾었으니, 실로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승리였다.
그것이 미궁 대 미궁의 전투에서 얻은 승리가 아니라, 하이로드의 권능에 기대 얻은 운에 가까운 승리였지만 결코 그 가치가 작다 말할 수는 없었다.
하기야 무슨 수를 쓰든 이기고 살아남는 것이 미덕인 지저였으니, 누가 있어 그를 비난할까. 설령 있다 한들 그는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나가들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그들의 빈자리를 메꿀 강력한 힘을 얻었다는 것뿐이었다.
[뤼양의 사후, 활동을 멈추었던 미궁의 핵이 새로운 주인을 각인하려 합니다. 각인 작업에 동의하십니까?]“두말할 것도 없지.”
[각인 작업에 동의하십니까?]“동의한다.”
[각인이 완료되었습니다. 한때는 죄악의 마군, 뤼양의 힘의 원천과도 같았던 핵이 새로운 주인을 맞았습니다.]메시지 창을 미처 다 확인하기도 전에 핵이 담긴 다운 잼이 폭발적인 섬광을 내뿜었다.
[새로운 핵을 활성화시키시겠습니까? 하나의 미궁에 세 개의 핵이 존재하는 경우는 이제껏 전례가 없었던 일입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핵의 활성화에 동의하십니까?]이건 고민해 봐야 할 문제였다. 교룡왕 아낙수투스를 꺾고 얻은 교룡의 심장이 득이 되었다고 해서, 이번에도 결과가 좋으란 법은 없었다.
최악의 경우 어쩌면 세 개의 핵이 충돌하여 대미궁에 이상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길은 정해져 있었다.
9층을 넘어 심층 초입까지는 그 용맹성을 입증받은 나가들이었지만, 그런 나가들조차도 진짜 심층의 소환수를 상대로 얼마나 무력한지를 절감했다.
나가 뿐 아니라 대미궁의 소환수들은 사티로스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한 사실을 직접 몸으로 겪은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군대의 존재가 절실하기만 했다.
언제까지고 자신 혼자 대미궁을 지켜낼 수는 없었다.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렇게 한 사람의 힘에만 의존해야 하는 미궁이라면 오히려 없는 것이 나았다.
그래서 김진우는 잠깐의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합성에 동의한다.”
[새롭게 자리 잡은 미궁의 핵이 활성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미 안정화된 두 개의 핵과 새로운 핵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공명하기 시작했습니다.]언젠가 하나의 핵이 두 개가 되었던 그 때처럼 오너 룸이 온통 빛에 휩싸였다.
[미궁의 핵이 공명을 마쳤습니다.] [새로운 핵의 등급이 지나치게 높아 기존의 핵들과 완벽하게 연결될 수 없었습니다.] [연결이 지극히 불안정합니다.] [힘의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이대로라면 아주 작은 충돌에도 핵의 에너지가 폭주할 수 있습니다.]눈앞에 떠오른 경고 창을 보며 김진우는 와락 얼굴을 구겼다.
“망할.”
지저가 하나로 합쳐진 후로 묘하게 운이 따르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불운을 탓하고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공들여 만든 터전이 날아갈 판국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오만상을 다 썼을지언정 당황하지 않았다.
자신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대미궁을 두고 무모한 도박을 할 정도로 그는 어리석지 않았고,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다.
김진우는 마구 요동치며 난폭한 기운을 흩뿌려대는 ‘죄악의 결정체’로 다가섰다.
“주인이시여!”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했던 릭샤샤도 심상치 않은 파동에 기겁을 하고는 새된 목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호들갑 떨지 마라.”
그는 침착하게 말하고는 당장에라도 폭주할 것처럼 들썩이는 핵에 손을 얹었다.
17등급과 7등급, 압도적인 격차가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지나치게 강력한 ‘죄악의 결정체’를 기존의 핵들이 받쳐주지 못해 탈이 나고 말았다.
문제의 원인은 한쪽으로 쏠린 힘의 저울. 그래서 그는 직접 나서 저울의 균형을 맞췄다. 포식의 권능으로 17등급 핵의 기운을 닥치는 대로 흡수한 것이다.
다소 무리한 시도였지만, 그의 계획은 보란 듯이 성공했고, 당장에라도 폭주할 것처럼 몸을 떨던 세 개의 핵은 모두 새색시처럼 얌전해졌다.
“휴우.”
김진우는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실로 위험했던 상황, 하지만 그의 안색은 오히려 조금 전보다 한층 더 밝아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대단한 공작이 다스리던 미궁의 핵이 지닌 에너지를 상당량 흡수했으니, 안색이 나쁠 이유가 없었다.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겁니까!”
뒤늦게 모리건을 비롯한 소환수들이 믿어지지 않는 듯, 얼떨떨한 얼굴로 그의 놀라운 업적에 감탄했다.
“그저 날뛰고 싶어 하는 망아지의 힘을 적당히 빼줬을 뿐이다.”
그 밑도 끝도 없는 말을 용케도 알아들은 것인지 소환수들이 다시 한 번 감탄을 토해냈다.
“두 번은 못 할 짓이군.”
육체의 기력이야 그 어느 때보다 충만했지만, 정신적인 피로마저 숨길 수는 없었다.
하기야 까딱 실수했다간 오히려 새로운 핵이 기존의 핵에게 밀려나 무리한 이유가 무색해지고 만다.
[나가의 심장(7등급-업그레이드 중)이 그대로 메인 코어의 자리를 유지하고, 교룡의 심장(7등급)에 이어 새로운 핵, 죄악의 결정체(17등급)가 추가로 서브 코어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기존의 핵과 새로운 핵의 등급이 다릅니다. 죄악의 결정체가 온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서브 코어의 등급이 17등급에서 7등급으로 임시 조정되었습니다. 미궁의 등급이 오르면 서브 코어도 다시 본래의 힘을 찾을 것입니다.] [새롭게 구성된 세 개의 핵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안정적이고 효율적입니다.] [핵의 등급 대비 효율이 무지막지할 정도로 상승했습니다.] [대미궁은 앞으로 더욱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지간해서는 더 이상 사티로스들 때처럼 부른 배를 부여잡고 영양가 높은 식사를 외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죄악의 결정체는 그 자체로 오염된 에너지의 정수이며 악의의 결정입니다. 이보다 더 혼탁한 에너지는 아마도 지저에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죄악의 결정체로 인해 오염된 에너지를 걸러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대미궁은 앞으로 그 어떤 악의로 점철된 기운일지라도 가리지 않고 먹어 치울 것입니다. 그것이 설령 모아이들의 영양가 없는 에너지일지라도 말입니다.]지나친 심력 소모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는 것도 잠깐이었을 뿐이다. 김진우는 눈앞을 가득 메우는 메시지를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탐욕의 대미궁이 지저 최초로 트리플 코어를 이루었습니다.] [나가들이 깨어났을 때, 새로운 소환수가 추가됩니다.]***
새롭게 얻은 죄악의 결정체를 완전히 대미궁의 일부로 받아들인 김진우는 대미궁을 나섰다.
중국 측 탐색자들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뤼양이 사라졌으니, 지상의 상황도 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꽤나 공들여 키웠을 게 분명한 지저 귀족들과 그 정점에 선 뤼양이 일시에 사라지거나 무력화되었으니, 전처럼 공격적으로 대한민국 지저를 압박하지는 못하리라.
과연 예상대로였다.
중국 측의 탐색자들은 마치 언제 나타났었냐는 듯이 빠르게 자취를 감췄고, 이제 게이트 인근에는 그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협회의 탐색자만이 이따금씩 정찰 활동을 벌일 뿐이었다.
하지만 표면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지상의 판도는 상당히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그간 모아이들의 준동으로 뜸해졌던 탐색자들의 지저 출입이 다시금 활발해진 것이다.
그들은 변해버린 지저의 모습에 움츠러들지 않았다. 그간의 공백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이 마구잡이로 지저를 헤집고 다녔다.
“일단 중국 측 탐색자들을 감시하는 것을 게을리 말도록.”
김진우는 박성진에게 이런저런 당부를 내리고는 다시 지저를 향했다.
그는 뤼양과의 전쟁을 치르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활발하게 움직였다. 이제까지 찬탈자의 감시와 도발을 우려해 몸을 사렸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결국 여태까지 수많은 의문을 참고 있었던 안젤라가 그 이유를 물었다.
대체 그날, 아리아네와 무슨 대화를 나눈 것인지, 또 어떤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못내 궁금했던 모양이다.
김진우는 막 미궁을 나서려던 발길을 멈춰 세운 채 안젤라를 돌아보았다.
“더는 찬탈자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까.”
***
무슨 명령을 받은 것인지 제법 협조적으로 나온 아리아네였지만, 그녀의 운명은 변하지 않았다.
벌써 몇 번이나 자신의 뒤통수를 친 배신자를 이제 와서 놓아줄 정도로 김진우는 무르지 않았다.
그저 끔찍한 저주에 몸이 썩는 고통 대신 편안한 죽음을 내려주는 것이 그가 베풀 수 있는 최선의 자비였다.
“찬탈자는 움직이지 못해요. 그는 지금 당신에게 신경 쓸 만큼 한가하지 못하거든요.”
그녀는 예상치 못한 자비에 대한 답례라도 하듯 한 가지 정보를 더 전해주었다.
“그건 그대의 생각인가, 그도 아니면 그대가 감히 입에 담을 수도 없었던 진짜 주인의 전언인가.”
“저 같은 미천한 종자가 귀한 군주님들의 근황을 어찌 알겠어요.”
“전언이란 말이군. 혹시 그 이유는 전하라 하지 않던가.”
그녀는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선선히 대답해 주었다.
“찬탈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또 다른 하이로드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그 말에 문득 소중한 것을 잃고 어딘가로 사라진 누군가가 떠올랐다.
“통곡의 군주…….”
아리아네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미 대답을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이제 이 고통을 끝내주세요.”
그녀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듯한 평온한 얼굴로 자신을 끝내줄 것을 부탁했다. 김진우는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고 그녀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포식의 권능에 흡수당했다.
디나리온이 보낸 첩자로, 다시 또 파수꾼으로 배신을 거듭하고, 이리저리 도망치고, 추접하게 살려달라 애원했던 과거의 모습과는 달리 꽤나 깔끔한 최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