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46)
던전 견문록-246화(246/319)
# 246
던전 견문록
제 247 화
“아무래도 하이로드가 애지중지하던 창고에서 튀어나온 물건이니만큼 지닌 힘이 범상치 않은 건 확실한데, 그 용도를 알 수가 없으니 선뜻 사용할 마음이 들지 않아서 말이야.”
김진우는 말을 하면서도 미미르의 기색을 살피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평소 얄미울 정도로 속내를 드러내 보이지 않았던 임프 특유의 능글맞은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절박해 보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역시 그대는 이 물건의 정체를 알고 있군.”
평소였다면 그 한 마디만으로도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표정을 달리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미미르는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얼굴로 다시 한 번 물건을 얻은 경위를 물어왔다.
“물건을 어떻게 얻었는지 보다는 이 물건을 대체 어디에 쓰는 건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물론 어디까지나 그의 입장에서나 통할 말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미미르는 반박하지 않았다.
“제가 군주님의 질문에 답해드린다면, 군주님도 제 질문에 답을 해주십시오.”
이제야 조금은 평정심을 찾은 것인지 미미르가 거래를 제안해 왔다.
어차피 그의 입장에서는 딱히 대단히 비밀스러운 경위를 통해 얻은 물건도 아닌지라 그러마하고 대답하고는, 눈빛으로 설명을 재촉했다.
여전히 위선자의 가면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한 미미르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 마물은 이곳에 있어선 안 되는 물건입니다.”
혐오와 두려움, 그리고 탐욕과 갈망, 상반 된 감정이 미미르의 낮게 깔린 음성에 짙게 배어 있었다.
“마물?”
답지 않게 깊게 가라앉은 임프의 목소리에 김진우가 저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미미르는 대답대신 노래라도 하듯 음울한 가락을 읊었다.
“진리를 쫓던 외눈의 거인은 하나뿐인 눈 뽑혀 창살에 꼬치 꿰이고, 숭고하게 죽음을 기리던 여인의 노래는 증오와 비탄의 통곡이 되었노라. 요정들이 노래하던 호수는 시체 썩는 늪이 되었고, 선홍빛 생명의 상징은 흐르지 않고 검게 굳었노라.”
듣기만 해도 섬뜩한 가사에 김진우는 순간적으로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미미르의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백스물두 가지 짐승의 모습으로 종종 달리던 청년은 두 발 꺾여 고꾸라졌고, 금빛 찬란하던 지룡은 비늘 하나 남기지 못했노라. 오색 영롱했던 광휘는 빛바래 차갑게 식고, 온 세상 어깨에 이고 우뚝 섰던 거인은 무릎 꿇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으니, 황혼 뒤에 남은 것은 배덕의 밤뿐이더라.”
지룡과 청년, 거인은 처음 듣는 존재들이었지만 그 외의 외눈과 통곡을 비롯한 군주의 이름은 들은 적이 있었다.
미미르의 노래는 황혼 끝에 파멸한 옛 군주에 대한 전승이었으며, 지저의 비사였다.
“고대의 열 군주에 대한 노래인가.”
“맞습니다.”
노래는 끝이 났고 미미르는 다소 숨이 찬지 벌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런 미미르를 보며 김진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왜 열이 아니고, 아홉이지? 외눈박이, 통곡, 요정, 진혈, 청년, 지룡, 광휘, 거인, 찬탈자. 내가 하나를 놓친 건가?”
노래에 등장한 군주의 수는 전부 아홉, 자신이 놓친 것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수가 맞지않았다.
“군주님께서 놓치신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이 노래는 아홉 군주에 대한 이야기만 전하고 있습죠.”
“어째서지?”
“이 노래를 만든 장본인이 빠져 있으니까요.”
미미르의 시선이 어느 순간 다시 위선자의 가면을 향했다.
“그가 바로 노래에 등장하지 않은 마지막 하이로드이자, 황혼을 일으킨 원흉.”
왠지 모를 불길함이 손끝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목덜미를 조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군주님의 손에 들린 가면의 원주인입니다.”
***
깊게 왕좌에 몸을 묻고 있던 김진우는 어느덧 고개를 쭉 빼고 미미르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단지 위선자의 가면이라는 용도불명의 물건이 어떤 것인지를 물었을 뿐인데, 뜻하지 않게 고대에서 현재로 이어진 지저의 비사를 듣게 되었다.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배덕의 군주, 찬탈자가 전쟁을 일으킨 게 아니었군.”
왠지 모르게 쓴맛이 올라오는 느낌이라 그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직접적인 전쟁의 주최는 찬탈자가 맞습니다. 다만 배덕의 군주가 아무리 대단한 존재고 수많은 이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들, 여덟이나 되는 하이로드를 상대로 승리했을 리가 있겠습니까?”
미미르는 전쟁을 마무리 지은 것은 찬탈자지만, 그 단초를 만들고 아홉 군주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은 가면의 원주인이라 말했다.
진짜 원흉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여전히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하이로드의 힘은 강대하다. 그 힘을 계승한 김진우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제대로 된 계승을 한 것도, 그 힘을 완전히 얻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강대한 공작 하나를 힘들이지 않고 집어삼킬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수를 썼기에 가면의 원주인은 여덟 군주가 패배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일까.
“그는 모순되게도 지저에서 가장 신뢰받던 존재였습니다. 어쩌면 그를 깊게 신용한 군주들이 자신의 약점 하나 정도는 털어놓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안타깝게도 미미르 역시 정확한 이유를 알지는 못했다.
하기야 전투가 다 끝난 전장을 뛰어다니며 전리품을 수습하는 게 고작이었던 창고지기가 아무도 모르는 지저의 비사를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군.”
“이해하실 수 없을 겁니다. 그 당시의 지저는 지금의 지저와는 달리 명예와 긍지를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했으니까요.”
아무래도 과거의 지저는 작금 지저의 모습과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어쨌건 간에 제가 그 가면을 마물이라 말한 이유가 바로 그 원주인 때문입니다.”
미미르는 더 이상 과거의 비사를 떠들어대고 싶지 않았는지, 다소 급하게 화제를 전환했다.
“황혼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가 그런 사악한 속내를 감추고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 존재라면 자신의 흔적에 무슨 끔찍한 안배를 해두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닙지요.”
석연치 않았다. 김진우는 아직 가면의 원주인이 어떤 식으로 군주들의 힘을 약화시켰는지 듣지 못했다.
심지어 마지막 하이로드가 범인으로 지목당한 이유조차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결과적으로 그 이유를 물을 수 없었다. 미미르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가 너무나도 뜻밖이었던 탓이다.
“가면의 원주인, 황혼을 일으킨 원흉의 이명은 방랑입니다. 바람처럼 지저를 헤매던 그를 잡아둘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육신마저도 말입니다.”
미미르는 가면의 원주인이 몇 번이나 완전히 다른 존재의 육신을 빌어 외눈박이 군주를 찾아왔었노라 말했다.
“그런 그라면, 어쩌면 그 작은 가면 속에 제 영혼을 담아두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등골이 서늘해지는 듯한 기분. 몇 번이나 강요하듯 가면을 착용해볼 것을 권장하던 메시지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러니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군주님께선 그 가면을 착용하셔서는 안 됩니다. 최악의 경우, 모든 것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미미르의 말에 김진우는 저도 모르게 가면을 바라보았다. 이제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가면의 무게에 어쩐지 손끝이 떨리는 느낌이었다.
결국 가면의 용도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김진우는 선선히 자신이 가면을 얻게 된 경위를 알려주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합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미미르는 전에 없이 심각한 얼굴을 지어보였다.
“영원의 창고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귀물입니다. 창고지만 살아 있는 존재이지요. 그리고 그 희귀함만큼이나 자존심이 강하고 성질이 고약한 녀석입니다.”
미미르의 말에 의하면 영원의 창고는 주인으로 인정하지도 않은, 그것도 자신의 유혹을 견뎌낸 자에게 성격 좋게 선물을 줄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에 쥐여진 위선자의 가면은 진짜였으며, 그날의 일은 실재한 일이었다.
“어쩌면 단순한 변덕일지도 모르겠지만, 하필이면 그 물건이라는 게 그런 불길한 것이니.”
결국 대미궁에서 얻을 수 있는 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답을 알 길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함께 가서 확인해 보도록 하지.”
김진우의 말에 미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
몰아치는 섬광은 은은한 보랏빛, 그 요요로운 빛을 이리저리 뒤덮은 실타래의 빛깔은 붉은 빛, 영원의 창고는 김진우가 처음 보았을 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마치 소우주처럼 스스로 팽창과 압축을 반복하며 약동하던 표면이 마치 굳어버린 시멘트처럼 미동도 없었다는 것뿐이다.
“이게 평소의 모습입니다. 아무래도 그날 영원의 창고가 처음부터 작정했던 모양입니다.”
미미르는 영원의 창고가 얼마나 탐욕스러운지, 또 그런 창고의 눈에 채 개화하지 못한 하이로드의 씨앗이 얼마나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으로 보일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제가 그날 그렇게 제가 당부드렸습죠.”
“확실히 기억이 나는군.”
조금이라도 틈을 보였다간 역으로 집어삼켜지고 말 거라며 몇 번이나 자신에게 당부했던 미미르의 말을 떠올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돌변한 창고의 입구를 보고 있자니 당시에 실감하지 못했던 창고의 음흉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지금도 잠잠하게 굳어 제 속을 내보이고 있진 않지만, 그는 어쩐지 영원의 창고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음.”
그럴수록 손에 쥐여진 위선자의 가면이 떨떠름하게만 느껴졌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구나.
대미궁도, 영원의 창고도. 하이로드에 관계된 모든 것들은 늘 주인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 사실이 꽤나 고약하게만 느껴져 그는 작게 옛 군주들을 욕했다.
“이런 긴장감이 좋았던 건 아니겠지, 변태 같은 놈들.”
“뭐라고 하셨습니까?”
어디서 가져왔는지 기다란 막대를 손에 쥔 미미르가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말을 얼버무리고는 임프의 손에 들린 막대를 살펴보았다.
“뭘 할 생각이지?”
그 재질이 궁니르의 창대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괴이쩍게 생긴 막대의 정체는 낚싯대였다.
“만약 영원의 창고에 이상이 있다면 제가 직접 들어가 확인해보는 건 미친 짓입니다요.”
창고지기마저 두려워하는 창고라니, 기가 차는 광경이었다.
“가면을 이리 주시겠습니까?”
“알겠다.”
김진우는 잠시 미미르가 하는 양을 지켜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군주님?”
그런데 어쩐 일인지 당장에라도 가면을 넘겨줄 것 같던 그가 가면을 꼭 움켜쥐고는 놓지 않았다.
“군주님?”
미미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한 번 그를 불렀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가면을 움켜쥔 그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빛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