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5)
던전 견문록-25화(25/319)
# 25
던전 견문록
제 26 화
#10. 드라카누스 오르테아가
탕!
“크악!”
둔탁한 총성에 이어 괴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김진우는 마치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는 듯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그만! 그만!”
흉악하게 생긴 드라칸 오르테아가가 눈물을 찔끔하고서야 김진우는 겨우 총을 내려놓았다.
“흠, 역시 총으로는 한계가 있군.”
흠집 하나 나지 않은 황금빛 비늘을 본 그가 실망한 얼굴을 해 보였다.
“이, 이……!”
애초에 인간이 아닌 터라 오르테아가의 표정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화가 났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충성을 맹세한 이 가엾은 드라칸은 그 어떤 항변도 하지 못하고 가슴만 탕탕 두들겨 댔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굉장해요. 드라칸 정도의 단단함이 아니고서야 아예 상처를 안 입는 건 아니니까요.’
지난 전투에서 나가 일꾼들이 활약을 하고 난 뒤로 도미니크는 인간의 무기라는 것에 부쩍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웅급이라고는 하지만 나가 시녀라는 태생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그녀에게는 이 간편한 무기들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가죽을 찢고 피륙에 상처를 내는 정도로는 큰 피해를 줄 수 없어. 사실 저번 전투에서도 마무리는 전부 용사와 수문장이 했으니까.”
‘그 폭탄이라는 건 어때요? 그 정도라면 꽤나 유용할 것 같은데.’
폭탄이란 말에 오르테아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찢겨진 비늘 사이로 짓쳐들던 폭발의 충격이 고스란히 기억에 남은 모양이다.
“그건 나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그리고 함부로 썼다가는 근방의 통로가 무너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어.”
사실상 지저에서 총과 폭탄을 사용하는 건 여러모로 무리가 있었다.
일단 위력에 비해 소음이 너무 커서 주변의 크리쳐나 비스트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고, 폭탄 같은 경우에는 자칫 잘못하면 붕괴 사고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우는 총을 사용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거처도 없이 지저를 헤매고 다니는 탐색자들과는 입장이 달랐다. 비스트와 크리쳐의 영역을 파고들어야 하는 그들과는 다르게 나가들은 온전한 자신의 영역에서 싸우는 상황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가들이 꾸준히 근방을 순찰하여 비스트와 크리쳐들을 몰아내고 있었고, 미궁이 열린 지 석 달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어지간한 놈들은 전부 정리된 상황이다.
다만 문제는 위력이었다. 코끼리도 잡을 만한 강력한 무기를 구해오지 않는 이상, 총은 큰 효력을 발휘하지를 못할 듯했다.
그리고 그런 무기를 대한민국에서 구하는 것은 이렇다 할 인맥도 뭣도 없는 김진우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전투가 운이 좋았던 거지. 마법사의 마법이 오히려 총보다 더 시기 적절했다고 봐야 할 판이라.”
‘아쉽군요. 제대로만 쓴다면 빠르게 미궁을 성장시킬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입맛까지 다시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오르테아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래서야 마치 그의 비늘이 멀쩡한 것이 아쉽다는 투나 다름없었다.
“대체 인간들이 무슨 수로 미궁의 주인들을 몰아냈는지 알 수가 없네.”
당시의 기록이 여러 곳에 남아 있기는 했지만, 정작 전쟁의 승패를 가른 몇몇 주요 전투에서 인간들이 어떤 식으로 승리를 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게 못내 아쉬워 김진우는 괜스레 산탄총의 개머리판만 두들겨 댔다.
“이, 이제 다 끝난 거면 가보겠다.”
김진우가 생각에 잠긴 사이 오르테아가가 슬며시 몸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그는 이 쓸 곳 많은 드라칸을 그대로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잠깐, 몇 개만 더 시험해 보고.”
“크악! 내 비록 그대에게 충성을 맹세하긴 했지만 온전하게 예우를 하라! 나는 긍지…….”
탕!
끝까지 들을 생각이 없는지 김진우는 심드렁한 얼굴로 새로 꺼내 든 K2 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높은 드라칸의 후예…….”
타타타타탕!
“드라카누스 오르테아… 카악! 그만! 제발 그만!”
오르테아가는 지닌 긍지와 단단한 몸에 비해 엄살이 무척 심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오르테아가는 무척이나 억울할 것이다. 서른이 넘는 부하를 잃고 군자금까지 뺏긴 마당에 이제는 원수에게 충성을 바쳐야 할 판국이니까.
물론 김진우의 입장에서 보면 드라칸은 침입자에 불과했고, 이제 와서 목숨을 대가로 맹세한 충성에 감동할 여지는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미궁을 침입한 적을 관대하게 대할 정도로 무르지 않았다.
빼앗은 군자금은 이미 미궁의 등급을 올리는 데 사용되었고, 드라칸은 나가들 이상으로 혹사시킬 예정이다.
“크악!”
탄창 하나를 다 비우고 나서야 테스트는 겨우 끝이 났다.
***
비록 엄살이 심하긴 했지만 드라칸의 강함은 진짜였다.
끔찍할 정도로 단단한 몸에 무식할 정도의 돌진력까지. 약점 간파 능력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면 김진우 역시 승패를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뒤를 받쳐줄 맷집 좋은 수문장과 용사들까지 있으니 운 나쁘게 역린을 공격당하지 않는 이상 드라칸은 기대 이상의 힘을 보여줄 게 분명했다.
그 덕분에 김진우는 미궁을 떠나지 못하는 신세를 벗어나 다시 지상으로 향할 수 있었다. 드라칸이 있는 동안에는 급박한 상황에도 충분히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테니까.
“뭔 급한 일이 있어 그렇게… 에잉.”
다시 찾은 백 선생은 김진우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아마도 저번에 갑작스레 자리를 비운 이후로 궁금함이 꽤나 컸던 모양이다.
“그땐 죄송했습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대체 무슨 일이길래, 에잉, 됐네. 말해줄 것도 아닐 텐데 물어서 뭐 해.”
백 선생의 핀잔에 김진우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보다 그때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언제나처럼 제 할 말만 하는 김진우를 보며 백 선생이 혀를 차고는 입을 열었다.
“교룡왕 아낙스투스의 미궁은 9층에 있네. 언더 워 당시에 육군 수색대의 병사들이 발견한 미궁 중 하나지. 큰 전투는 없었지만 전쟁 끝 무렵에 몇 번인가 작게 충돌한 적이 있는 모양이야.”
9층이란 말에 김진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렴풋이 지저 깊은 곳은 아닐까 했는데 생각보다 깊어도 너무 깊었다.
“어떻답니까?”
“뭐가 말인가?”
“그 교룡이란 놈들, 그리고 그 교룡왕 말입니다. 강하답니까?”
9층이란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는 상대의 정보를 빼야 할 때였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 했으니 언제 들이닥쳐도 들이닥칠 적에 대한 정보가 절실했다.
“일단 총은 안 통해. 실제로 교전했던 병사 중에 적을 사살했다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거든.”
“골치 아픈 놈들이군요.”
“근데 꼭 그런 건 아니야. 이 교룡이란 놈들이 단단하기는 무지막지하게 단단한데 느리기는 또 엄청 느린 모양이야. 어지간한 성인이 조금 빠르게 걷는 속도로 이동한다니 죽이기는 힘들어도 피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겠지.”
김진우가 눈을 빛냈다. 교룡의 약점을 찾은 듯한 기분이다.
물론 이 약점을 어떻게 공략하는가는 그가 풀어야 할 문제였지만, 일단은 유용한 정보를 얻은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교룡왕은 어떻답니까?”
이름까지 알려졌으니 정보가 없을 리 없었다. 하지만 이제껏 순순히 정보를 풀어놓던 백 선생도 이번만큼은 말을 아꼈다.
“이건 꽤 고급 정보라서 말이지.”
“대가는 치르겠습니다.”
최하급다운 잼이라면 품에 몇 개인가 지니고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가 일꾼들이 열심히 채집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수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굳이 신세를 질 것도 없이 그는 정보료를 셈하고도 남을 능력이 있었다.
“아냐, 아냐. 다운 잼은 필요 없어.”
품을 뒤적거리는 김진우를 보며 백 선생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내 부탁 하나 들어주게.”
백 선생의 말에 빈손을 꺼내 든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나한테 아낙스투스의 미궁을 물은 걸 보면 이번에는 꽤 깊은 곳으로 내려가려는 거 아닌가?”
아마도 오해를 한 모양이다. 김진우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런 오해가 반가운 상황이라 굳이 부정하지는 않았다.
“계획이 잡히면 말해주게. 그때 나도 이야기할 테니까.”
“어떤 부탁인지도 모르고…….”
“절대 무리한 부탁은 아닐세. 만약 정 무리다 싶으면 들어보고 거절해도 상관없네. 그렇게 되면 다른 걸로 셈하면 그만이니까.”
딱히 손해볼 만한 제안은 아니라 김진우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낙스투스는…….”
***
나가의 미궁은 근래 들어 부쩍 시끄러워졌다. 나가 일꾼들이 수시로 사격을 연습하는 바람에 총성이 잦았고, 그 소리를 듣고 몰려온 떠돌이 크리쳐들로 인해 몇 번이나 전투가 벌어졌다.
그때마다 오르테아가가 나서서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 적을 찢어발겼다.
거기에 더해 미궁의 확장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김진우가 가져온 탐색자들의 감시 장비와 동작감지기 등이 미궁으로 향하는 요소요소에 설치되었고, 허술한 방비를 메우기 위해 함정이 이곳저곳에 매설되었다.
‘떠돌이 크리쳐나 비스트들에게나 통하지 이 또한 임시방편에 불과해요.’
하지만 도미니크와 김진우의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업그레이드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야겠군.”
‘5등급만 되면 교룡들을 상대할 수 있는 나가들을 불러올 수 있을 거예요.’
“문제는 시간이야. 그동안 그 아낙스투스란 놈이 우리를 눈치 채지 못해야 할 텐데.”
역시나 이번에도 시간이 문제였다. 다른 그 어떤 때보다 시간이 소모되는 5등급으로의 업그레이드, 그 시간만 버티면 활로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지저의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이 그의 편이 아니었다.
웨에에엥!
갑작스레 울리는 사이렌, 동작감지기에 연결된 경보 장치였다. 볼륨을 조절해 둔 탓에 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김진우에게는 그 어떤 소리보다 크게 느껴졌다.
“주인이시여!”
그리고 그 순간 외곽 순찰을 나간 릭샤샤가 드물게 급박한 걸음으로 달려왔다. 평소와는 달리 바닥에 납작 엎드리는 대신 그녀는 다급하게 말했다.
“교룡! 교룡들이 왔나이다!”
“이런 빌어먹을!”
오르테아가와의 전투가 끝난 지 이제 겨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고 함정의 매설도 채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일꾼들을 불러들여!”
“뜻대로!”
릭샤샤가 다시 어둠 속에 녹아들고, 김진우가 도미니크에게 외쳤다.
“게이트를 지키고 있는 건?”
‘수문장과 드라칸, 그리고 용사 둘입니다!’
“나머지 병력도 전부 모아서 게이트로 보내! 난 곧장 게이트로 간다!”
연달아 지시가 터져 나오고, 도미니크가 꼬리를 빠르게 흔들며 멀리 사라졌다.
그사이에 체계가 잡힌 덕인지 병력의 집결은 빠르고 신속했다. 나가 일꾼들이 산탄총을 겨눈 채 전방을 노려보고 있고 그 뒤를 수문장과 용사들이 받쳐주었다.
가장 후미에는 나가 마법사와 사제가 입을 우물거리며 주문을 준비하고 있다.
완벽한 임전 태세. 김진우는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다.
‘주인님! 저기!’
나가들의 대열을 정리하고 있던 김진우가 도미니크의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눈에 위세도 당당하게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반쯤 일어서다 만 악어, 교룡들이 보였다.
“왜 저것밖에 안 되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각오를 다지고 서 있던 김진우는 생각보다 수가 적은 교룡들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리끝에서 꼬리 끝까지 5미터는 될 법한 교룡들은 그 자체로 위세가 대단하기는 했지만 미궁전을 치를 정도로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하나하나가 강력한 크리쳐들이라고 해도 고작 다섯 마리에 불과한 숫자로 일을 도모하기에는 나가의 미궁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짧은 뒷다리와 꼬리를 어기적거리며 다가오던 교룡들이 나가들을 발견하고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어떻게 할까요? 발사할까요?’
금세 하나를 챙겼는지 산탄총 하나를 손에 쥔 도미니크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적습에 긴장한 모습이더니 적의 수가 얼마 되지 않자 적지 않게 안심한 듯한 얼굴이다.
“아니. 기다려 봐.”
그런 그녀를 제지한 김진우가 수문장의 그림자에 몸을 숨기며 드라칸에게 눈짓했다. 오르테아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크게 포효했다.
“크아아아!”
사실은 엄살쟁이에 불과한 어설픈 드라칸이었지만, 그 실체를 모르는 교룡들은 엄청난 위세에 찔끔 놀란 눈치다.
“용의 먼 일족을 자처하는 그대들이여! 나 드라카누스 오르테아가가 있는 이곳에는 무슨 볼일로 온 것인가?”
듣기만 해서는 마치 이곳의 주인이 오르테아가 본인인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것이 김진우가 의도하는 바였다.
바짝 일어선 황금빛 비늘은 날카롭게 번뜩이고 부리부리한 눈동자에서는 섬광이 번뜩였다. 유황을 머금은 듯 잇새로 흘러나오는 연기는 위압적이다. 드라칸은 한 미궁의 주인으로 보이기에 충분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