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51)
던전 견문록-251화(251/319)
# 251
던전 견문록
제 252 화
백곰들은 약속한 대로 새로운 전력을 추가로 파병했다. 이번에는 진짜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우르수스 하이(Ursus High)가 잔뜩 포함된 대군이었다.
그들은 등장과 동시에 그 어떤 조짐도 없이 타루스를 공격했다.
타루스들은 그간의 거듭된 승리로 사기가 드높았으나 그것만으로 우르수스 하이들과의 전력차를 극복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전투는 시작된 지 채 반나절이 지나기 전에 끝이 났고, 타루스들은 전멸했다.
그야말로 통쾌한 역습이었고, 시원한 복수였다.
“이 새끼들, 나까지 노렸군.”
사전에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끼고 겨우 늦지 않게 전장에서 이탈할 수 있었던 김진우는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그는 강력한 하이로드였지만 1만에 달하는 공작의 정예를 미궁 밖에서 홀로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다.
만약 수상한 낌새를 조금만 늦게 알아차렸다면 전투에 휘말려 어이없게 패배를 당할 뻔했다.
전승의 타이틀이라는 사기적인 증폭 효과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그에게 있어서 패배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하마터면 허무하게 전승의 타이틀을 잃을 뻔한 것이다.
“뭐가 온건하고, 뭐가 신의냐.”
슬슬 계획이 본 궤도에 오르자 죄악의 마군을 제거한 그의 존재가 부담스러워지기라도 한 것일까, 그 의도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타루스에 대한 복수보다 부담스러운 동맹의 날개를 꺾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끙, 아무래도 우리가 늦은 모양이오. 전력을 다해 달려왔으나 성난 우르수스 하이들을 따라잡기에는 내 발이 너무 느렸던 것 같소.”
한 발 늦게 도착한 우르수스 사자의 말에 그는 코웃음을 쳤다. 눈 가리고 아웅도 정도껏이지, 이쯤 되면 차라리 조롱과도 같았다.
“왜, 아주 우리까지 쓸어버리고 그 다음에 내 시체 앞에서 유감을 표하지.”
김진우는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소. 단지 너무나 많은 일족을 잃은 전사들의 분노가 생각보다 컸을 뿐, 이제 막 진짜 싸움이 시작될 판인데 벌써부터 동맹을 잃을 생각은 없소.”
우르수스의 사자는 이번 전투의 지휘를 맡은 자가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며 거듭 양해를 구했다.
사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멀찍이서 확인한 우르수스들의 지휘관은 일반적인 백곰보다 두 배는 거대한 우르수스 하이들보다도 두 배가량 거대했고, 척 보기에도 최소한 백작급 이상의 강인함이 느껴졌다.
“염치없지만, 그를 탓하지 말아주기를 바라오. 그는 이번 임무가 어떤 것인지 알고도 자원한 긍지 높은 전사라오.”
결국 어차피 죽을 놈이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는 소리를 참으로 고풍스럽게도 하는 우르수스의 사자였다.
결국 다시 한 번 항의하는 것을 끝으로 대담을 마쳐야 했다. 이미 지나간 일을 붙잡고 갈등을 빚어내느니 차라리 조금 더 생산적인 일에 매달리는 게 이득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김진우는 북쪽 미궁으로 전령을 보냈다. 그는 1만의 우르수스 하이들의 참전을 타루스들에게 알리는 동시에 그들의 전력을 낱낱이 알려주었다.
당연하게도 타루스들은 우르수스 하이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강군을 보내왔다.
정예 백곰 전사만큼이나 거대한 황소들은 타루스 오그레(Tarus Ogre)라 불리는 전사들이었다.
“그래도 우르수스들의 독단이 영 나쁜 것만은 아니었군.”
아직까지 공작 본인들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니었지만, 치솟는 군기와 투기를 보고 있자니 슬슬 계획을 앞당겨도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전투에서 향방이 판가름이 날 것이다. 패배한 쪽은 정예를 잃고 사기가 바닥을 칠 테고, 승리한 쪽은 다시없을 호기를 잡으리라.
그리고 이미 전투의 결과는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광폭하고 끈적끈적한 타루스 오그레들의 군기는 당장에라도 백곰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처럼 사나웠다.
그에 맞서는 우르수스 하이들의 기세 역시 못지않았지만, 그들의 투기는 어딘지 모르게 음울한 면이 있었다.
“전혀 흔들림이 없군. 저래서야 누가 저들을 패자라 하겠는가.”
죽음을 각오하고 전장에 선 우르수스들의 우직함에 그는 작게 감탄했다. 백곰들은 그저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사티로스들은 사납고 강했지만 죽음 앞에서 주춤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최후의 순간,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뤼양을 격살할 수 있었다.
“이게 진짜 공작과 급조된 반편이의 차이인가.”
시스템에 의해 강제된 충성심으로도 존재의 격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몸조심하도록. 이번 전투는 아마 쉽지 않을 테니까.”
백곰들의 장엄한 기세를 보며 김진우가 모리건을 비롯한 소환수들에게 거듭 당부했다.
***
이제까지 우르수스와 타루스들이 맞부딪치면서, 그 어느 때고 단 한 번도 분위기가 느긋했던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당시의 흉험함도 지금 전장에 흐르는 공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잔뜩 날이 선 공기는 칼날처럼 모두의 가슴을 할퀴어댔고, 묵직한 군기는 고개를 뻣뻣이 들기 힘들 정도로 무겁고 끈적끈적했다.
어지간한 소환수들은 전장에 서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쪼그라들어 그 자리에서 절명할 것 같은 분위기, 김진우는 드물게 두근대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혔다.
“후우.”
탐욕의 권능은 마치 맛 좋은 식사를 앞두고 손발이 묶인 먹보처럼 마구 안달을 냈고, 그는 흘러나오려는 하이로드의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다 써야 했다.
이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간 기껏 굴욕을 감수하며 연기를 해온 공이 사라지고 만다. 그는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슬슬 시작할 기미가 보이는군.”
서서히 요동치는 군기를 느끼며 그가 작게 속삭이니 모리건을 비롯한 소환수들이 슬며시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이번에는 아무래도 적당히 싸우기 힘들 거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껏 날뛸 수도 없다. 이곳은 우리의 전장이 아니니까.”
계획을 주도한 것은 자신이었지만, 아직까지 전장을 주도하는 것은 양측의 대군이었다.
자신과 소환수들은 그저 풍랑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전장을 떠돌며 작은 힘을 보탤 뿐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타루스들은 이번 전투로 전쟁의 향방에 쐐기를 박으려 한다. 우르수스들은 타루스들이 명운을 걸고 총력을 투입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 둘이 최대한의 피해를 입고 상잔하기를 바란다.
같은 전장에 섰지만 모두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하지만 바라는 것은 같다.
승리.
무려 세 개의 거대 미궁들이 뒤죽박죽으로 얽힌 이번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자가 되는 자는 엄청난 힘과 부를 얻으리라.
“과연 누가 주연인지, 조연인지는 막을 내려 보면 알겠지.”
그는 각자 다른 꿍꿍이를 갖고 전장에 선 이들을 둘러보며 마창을 고쳐 잡았다.
***
전투의 결과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투가 결코 격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니만큼 우르수스 하이들은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제 생명을 불살랐다.
덕분에 타루스 오그레들은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생명을 도외시한 우르수스 하이들의 맹공은 그만큼 살벌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애초부터 힘의 저울추는 타루스들에게 기울어 있었다. 처음에는 무섭도록 전장의 분위기를 주도하던 우르수스 하이들은 체력이 고갈되어, 끔찍한 피해에도 물러서지 않고 버티던 타루스들의 역공에 금세 파탄을 드러내고 말았다.
결국 마지막 우르수스 하이가 타루스 오그레들의 협공에 갈기갈기 찢겨지는 것을 끝으로 전투는 종료되었다.
1만 5천의 타루스 오그레들과 1만의 우르수스 하이가 격돌한 대전투는 그렇게 끝이 났다.
더는 그 어떤 비명도 포효도 들려오지 않게 되었을 때, 김진우는 다음 계획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큰 피해를 입고 차후의 일을 고민 중인 타루스들을 부추겨 진군을 결정하도록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결국 주인님 말대로 됐네요.”
안젤라가 숨 가쁘게 움직이는 전황에 조금은 질린 얼굴로 말했다.
“내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타루스들은 결국 진군을 결정했을 거야. 이런 호기는 쉽게 오는 게 아니니까.”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았더라도 숙적의 멸족이라는 오랜 숙원을 눈앞에 둔 타루스들은 결국 움직였을 것이다. 자신이 한 것이라고는 말 몇 마디로 그 시기를 조금 앞당겼을 뿐이었다.
“만약 내 생각과 달리 우르수스들이 준비한 것이 없다면, 어쩌면 정말로 이대로 전쟁은 끝이 날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만약 전력 차를 극복할 방도가 없었다면, 우르수스들이 자신들의 정예를 1만이나 희생시키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았을 테니까.
“슬슬 주연 배우들이 무대에 오를 때가 됐다.”
김진우는 비록 사기는 드높다지만 우르수스 하이들의 맹공에 너덜너덜해진 타루스의 군대를 보며 기대하는 얼굴을 해보였다.
능구렁이 같은 공작들이 얼마나 조심성이 깊은지 이제껏 그는 얼굴 한 번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총력전을 결심한 지금은 신중한 공작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진군 중에 보충된 타루스 사이에는 난폭한 황소 전사들의 정점에 선 자, 타루스의 왕이 끼어 있었다.
터질 것 같은 근육으로 둘러싸인 몸은 천장에 닿을 듯 거대했고, 넷씩이나 돋아난 뿔 사이로는 수시로 스파크가 튀었다. 타루스들의 지배자는 그야말로 괴물, 그 자체였다.
“뤼양은 상대도 안 되겠군.”
솔직히 말하면 뤼양을 저 괴물에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대충 견주어 보기에도 저 괴물의 힘은 뤼양이 둘 있어도 당해내지 못할 게 분명했다.
예상을 한참이나 웃도는 기세, 공작의 기세는 거대했고, 그만큼 광폭했다.
두근, 두근.
멀리서 공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는 심장이 빠르게 뛰어대는 것을 느꼈다.
이미 뤼양이라는 만찬을 즐긴 경험이 있는 탐욕의 권능은 또다시 병이 도진 모양이다. 아직 식사 시간은 오지도 않았건만 벌써부터 강대한 기운을 느낀 권능이 게걸스럽게 침을 흘려대며 그를 채근했다.
권능이 아우성을 친다. 어서 자신을 풀어달라고.
하지만 그는 하이로드의 힘을 해방하는 대신 황급히 기운을 억제했다. 다행스럽게도 탐욕의 권능은 드물게 참을성을 발휘했고, 나타났던 것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제길.”
하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그는 완벽하게 스스로의 기운을 통제했지만, 공작의 시선을 끄는 것만큼은 피할 수가 없었다.
“용케 기운을 느낀 모양이군.”
눈이 마주친 공작이 쿵쾅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